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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기는 연애는 개뿔이다.

아잉* |2010.06.02 01:07
조회 429 |추천 0

긴가민가 살짝 꺼림칙했는데, 끝내 사단이 나고 말았다.

동호회의 한 쌍이 사귄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헤어져버린 것이다.

둘 다 성품 무난하고 활동에도 열심이어서 다들 어여삐 여기던 처녀 총각이라,

엮였다는 말에 모두들 기뻐했다.

시국이 하 지랄맞아 저마다의 가슴에 광장의 촛농처럼 울화가 쌓여가던 참에,

야금야금 놀려먹을 일 생겨서 즐거웠던 것도 사실이다.

먼저 손을 내민 것도, 맞잡은 지 채 한 달도 안 돼 그 손을 뿌리친 것도 남자였다.

부담스럽고 편치 않으니 우리 그냥 좋은 친구로 남세.

남자의 대사는 너무 빤해 하품 나오는 이별의 하이쿠.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여자의 입이 죄였다.

여자는 사람들 많은 자리에서 얼결에 연애를 털어놓았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연애를 알아버렸다는 사실을 남자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위로 잔치’에 함께 한 언니들의 분노는 순식간에 안도로 바뀌었다.

빨리 끝나서 천만다행…오래 갔으면 큰일 날 뻔…알아서 손 놓은 걸 보니 영 나쁜 놈은 아닌…

쏟아져 나오는 급반전 대사들에 여자는 훌쩍거리다 얼떨떨해했다. 언니들은 단박에 알아차렸다.

그 남자, 약도 없고 매도 듣지 않는 ‘드러내기 기피증’ 환자라는 사실을.

될 성 부른 연애의 떡잎은 드러내기 햇살에 무럭무럭 자란다.

자신의 연애를 드러내는 일은 가벼운 인간들의 입방정이 아니다.

치밀하고 엄격한 사회적 행위다. 정체를 감춘 채 웅크리고 있을지 모를

각자의 연적들에게는 확실한 접근 금지 표지이고,

자기 세계(가족, 친구, 직장 동료 등)의 국경에 그 사람을 들인다는 허가증이자

자신 또한 상대의 세계에 끼워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천부의 권리조항이다.

뿐이랴. 혹 일어날지 모를 ‘안전사고’(양다리, 한눈팔기, 애인 없는 척하기 등)에

각종 벌칙 당당히 때릴 수 있는 심판관의 자격증이기도 하다.

확인, 견제, 감시, 통제 등등의 구구절절한 이유 5만개를 합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드러내기란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배려라는 사실이다.

존재를 부정당하는 연애, 그처럼 서글프고 허망한 일이 세상에 또 있으랴.

사랑하는 사람을 그런 서글픈 구덩이로 밀어넣고도 탱자탱자 마음 편할 인간은 또 어디 있으랴.

그래서일까, 허구한날 연애가 들통 나 헤프게 취급받는 연예인들을 보면 왠지 정이 간다.

솔직하고 착한 사람인 듯싶어서다.

반대로 스캔들 하나 없이 철통보완 사생활을 자랑하는 누구누구를 보면 의뭉스러운 데다 살짝 무섭기까지 하다.

하여 다시 한 번 말하건대, 연애를 감추는 사람과는 절대 엮이지 마라.

과묵해서, 숫기 없어서 그러는 거 아니겠느냐고?

시끄럽고, 당신과의 관계를 세상에 드러내기 꺼려하는 이와는 절대 연애하지 마라.

둘만 있을 때는 물고 빨고 다하더니 밖에 나가서 과묵은 개뿔.

단 하루를 지탱하다 말지라도 세상에 당당히 드러내는 것, 그것이 제대로 된 연애의 첫 걸음이다.

-연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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