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자동차 업계는 파트너십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예전처럼 혼자서 다 하는 경우는 좀처럼 찾아보기가 힘들죠. 글로벌 경제 위기가 찾아오면서는 업계의 지도도 재편되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짝을 찾는 일도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과거 같으면 생각하기 힘든 일도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인피니티에 벤츠 엔진이 올라가는 것이죠.
이전에는 플랫폼 공유, 기술 공유라는 개념이 희박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독불장군처럼 혼자 다할 수가 없죠. 규정이 엄격해지면서 비용 상승에 대한 부담이 엄청나게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메이커들은 하나 이상의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있습니다. 혼다는 좀 특이 케이스라고 하겠군여.
애스턴마틴
애스턴마틴은 포드의 PAG에서 떨어져 나오면서 독립 메이커가 됐습니다. 마진이 좋은 모델 위주긴 하지만 독자 생존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 대안으로 애스턴마틴은 메르세데스를 선택했습니다. 차기 애스턴마틴은 벤츠와 플랫폼, 파워트레인, 하이브리드를 공유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 계획은 프로젝트 앨리게이터라고 부른다네요.
애스턴마틴이 파워트레인과 플랫폼 공유로 벤츠에게 치루는 비용은 2억 유로가 넘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따라서 현재 사용하고 있는 V12 자연흡기는 점차 사라질 전망입니다. 애스턴마틴은 새 럭셔리 브랜드로 런칭 예정인 라곤다의 SUV 계획도 잠시 보류했습니다.
BMW
BMW를 보면 유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 초대 미니는 크라이슬러와 엔진을 공유했는데, 신형은 PSA와 공유합니다. 이전에는 브랜드 이미지상 고급차 회사와 대중차가 기술 공유를 꺼렸습니다. 하지만 BMW는 이득이 된다면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PSA와 돌려 쓰는 1.6리터 직분사 터보가 대표적인 예이죠. BMW도 3기통이 나올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미 발표된 PSA의 3기통이 베이스가 될지는 정확치 않습니다. 가능성은 있다고 봐야겠네요.
안 어울릴 것 같지만 메르세데스와도 손을 잡고 있습니다. 출발은 GM의 투-모드 하이브리드를 두 브랜드에 맞게 개발한 것이며 X6와 ML에 사용되고 있죠. 거기다 작년부터는 부품을 공동 구매합니다. 최대의 라이벌이지만 지향하는 시장이나 고객층이 비슷해 부품의 공동 구매 대상으로는 가장 좋은 파트너인 것이죠. 독일 신문에 따르면 BMW와 다임러가 부품을 공동 구매할 경우 첫 해에만 3억 유로 이상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네요.
크라이슬러
크라이슬러의 고민 중 하나는 소형차가 없는 것이었죠. 현 라인업으로는 경쟁력이 떨어지지만 돈이 없어 개발하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러다가 피아트가 지분 20%를 인수하면서 이런 문제들이 해결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반면 피아트는 크라이슬러를 통해 북미에 재진출합니다.
앞으로 피아트와 알파로메오는 크라이슬러와 닷지 이름으로 북미에 판매될 예정이고 도입 시기는 2011년 하반기로 잡혀 있네요. 도입하는 모델도 500부터 알파로메오까지 다양합니다. 거기다 가솔린 터보, 듀얼 클러치가 같은 파워트레인도 공유합니다. 크라이슬러는 피아트가 지분에 참여하면서 닛산과 소형차-트럭 주고받기 계약도 단숨에 없던 일이 됐습니다. 현재 피아트 이외의 파트너십은 남미에 팔리는 닛산 소형차와 현대의 4기통 엔진, 폭스바겐 정도입니다. 폭스바겐에게는 디젤 엔진을 받고 미니밴을 OEM으로 주고 있죠.
포드
연간 생산 대수가 일정 수준에 오르면 파트너십의 필요성은 다소 희석됩니다. 이른바 규모의 경제인데, 포드는 자체적인 볼륨으로도 비용 절감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일단은 혼자서 잘 해나가고 있습니다. 아직 사업성이 불투명한 전기차는 부품 회사와 손을 잡긴 하지만요.
포드는 글로벌 플랫폼을 도입해 비용 절감을 시도합니다. 그동안은 북미와 유럽형이 전혀 달랐지만 지금은 월드카의 개념으로 접근합니다. 예를 들어 뉴 피에스타, 포커스, 트랜시트 커넥트를 북미에도 판매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야심차게 개발한 에코부스트는 전 세계적으로 사용됩니다. V6와 4기통 에코부스트는 지역을 막론하고 앞으로 나올 대부분의 포드 신차에 탑재될 예정입니다.
GM
GM은 파트너십 보다는 구조조정이 우선이죠. 벌써 캐딜락과 GMC, 시보레, 뷰익을 제외한 모든 디비전을 정리했습니다. 사브와 허머까지 처분하면서 그럭저럭 다운사이징에 성공했습니다. GM의 파트너십은 토요타와 NUMMI였는데, 이것도 끝이 났습니다. NUMMI에서 생산되는 GM 차는 폰티액 바이브 하나였고 이조차도 판매가 신통치 않아서 유지할 이유가 없는 거죠.
혼다
혼다는 좀 특이한 케이스죠. 그야말로 혼자서도 잘해요라고 할 수 있겠네요. 판매 대수 기준으로 5위권 이하의 메이커 중에서 혼다만큼 파트너십 소식이 없는 메이커도 드물죠. 모든 걸 혼자서 하면서도 높은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잔디깍이 기계부터 비행기, 로봇까지 움직이는 모든 것의 엔진을 제작하는 게 혼다고 R&D 개발 부담이 큰 친환경 기술 퓨얼 셀에서는 가장 앞선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합작이라고 해야 리튬-이온 배터리 개발을 위한 ‘블루 에너지’ 정도입니다.
현대
현대도 특별히 파트너십이 필요없죠. 일단 자체 볼륨이 괜찮고 내수 시장이 탄탄합니다. 마진 좋은 것으로 알려진 내수의 점유율이 80% 이상이라서 안정적인 매출이 가능합니다. 현대 해외 진출의 기반인 셈이죠. 현대는 크라이슬러, 미쓰비시에 4기통 월드 엔진을 제공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메이커와 특별한 공유는 없습니다.
재규어/랜드로버
재규어, 랜드로버는 타타에게 매각됐지만 여전히 포드, 볼보와 끈이 이어져 있습니다. 볼보의 엔진은 영국에서 생산되며 포드 호주 법인에게는 2.7리터 V6 디젤이 제공됩니다. 앞으로도 PSA와의 디젤 엔진 공유는 계속된다고 하죠.
피아트
피아트의 CEO 세르지오 마르치오네는 참 일 벌이기 좋아하는 사람 같습니다. 한편에서는 언론 플레이가 심하다는 평가를 받긴 하지만 능력이 있는 사람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마르치오네는 피아트를 흑자로 돌리기 위해 지역과 메이커를 가리지 않고 손을 잡습니다. 거의 성사 직전까지 갔었던 BMW와의 협력 건은 마르치오네가 CEO로 부임한 2004년 6월 이후 34번째 파트너십이 될 뻔했죠.
마르치오네의 논리는 간단합니다. 볼륨을 늘려 규모의 경제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죠. 한때 피아트와 크라이슬러, 오펠, GM의 남미 법인까지 거대 법인을 구상했지만 수포로 돌아갔죠. 일단은 크라이슬러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피아트는 지난 1996년부터 커민스와 함께 EEA(European Engine Alliance)를 설립해 4~6리터 디젤을 생산하고 있으며 인도에서는 타타와 상용차 엔진을, PSA와는 상용밴을 공유하고 있으며 평화 자동차는 지난 2002년부터 피아트 시에나와 도블로 베이스의 뻐꾸기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거기다 세르비아의 자동차 회사 자스타바 지분 67%를 사들이기까지 했습니다.
메르세데스-벤츠
메르세데스의 가장 큰 고민은 차기 A, B 클래스입니다. 그런데 르노로 가닥이 잡혔죠. 지금처럼 A, B 클래스를 직접 개발하고 생산하면 답이 없다는 판단이죠. 비용을 줄이고 가격을 내려서 최대한 많이 팔아야 연비나 CO2 규정에도 유리합니다.
알려진 것처럼 르노와의 포괄적인 파트너십이 핵심입니다. 스마트 포투는 르노의 소형차와 플랫폼을 공유하고 메르세데스는 인피니티에게 승용 엔진을 공급합니다. 반면 유럽 메이커로는 드물게 리튬-이온 배터리를 독자 개발합니다. 다임러가 에보닉과 합작한 리-텍은 2012년부터 자동차용 리튬-이온 배터리를 생산할 계획이죠.
미쓰비시
미쓰비시는 PSA와 친합니다. 2005년부터 SUV가 없는 PSA에 미쓰비시의 아웃랜더가 공급되고 있죠. 또 2011년 가동을 목표로 러시아에서 합작사를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이곳에서는 미쓰비시와 푸조, 시트로엥 3개 브랜드의 자동차 생산되고 주력은 SUV와 중형급 모델입니다. 미쓰비시는 PSA에 공급하는 아웃랜더의 생산량 모두를 네덜란드 네드카에서 생산합니다. PSA에게는 디젤 엔진을 받고 있으며 아이미브는 푸조와 시트로엥 배지를 달고 팔립니다.
PSA
PSA는 BMW와 1.6리터 가솔린 터보, 디젤을 공유하고 있으며 재규어와는 V6 2.7리터 디젤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피아트와는 1970년대부터 상용 밴을 공동으로 개발해 왔죠. 현재 두 회사가 공유하는 상용 밴은 터키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피아트는 피오리노, 시트로엥은 네모, 푸조는 비퍼라는 이름으로 팔립니다. 이 세 차종의 부품 공유 비율은 90%가 넘습니다.
르노
르노도 피아트만큼이나 파트너십에 적극적입니다. 이미 닛산과의 협력으로 인해 상당한 코스트 절감을 이뤄냈고 플랫폼과 부품 공유 비율을 높여 연간 15억 유로의 비용을 절약했습니다. 그리고 GM과 피아트를 제치고 아브토바즈와의 파트너십에 성공해 러시아 시장 진출에 대한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습니다.
르노는 올해부터 브라질의 공장에서는 2대의 닛산 모델을 생산하고 남아공의 닛산 공장에서는 2가지의 르노 모델을 생산합니다. 큰 투자 없이 생산 차종을 늘려 라인업을 다양화하겠다는 전략이죠. 초저가 모델 개발을 위해서는 인도의 바자즈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습니다. 세 회사의 합작 법인은 바자즈가 50%, 르노와 닛산이 25%씩의 지분을 확보하게 됩니다.
토요타
토요타가 메이저 메이커와 맺은 파트너십은 GM과의 NUMMI 정도입니다만 앞서 말했듯 이조차도 사라졌습니다. 올해에는 2013년부터 마쓰다에게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공급한다는 계약을 맺기도 했죠. 현재 마쓰다의 하이브리드는 트리뷰트 뿐인데, 포드의 시스템입니다. 직접 개발 보다는 사다 쓰는 것이 코스트 면에서 유리하죠.
폭스바겐
폭스바겐은 자체 볼륨이 상당하고 플랫폼 공유도 확실합니다. 산하 브랜드 간의 교통정리도 잘 되는 것 같군요. 폭스바겐은 포르쉐, 람보르기니, 부가티, 벤틀리 같은 호화 브랜드도 소유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전동식 하드톱으로 유명한 카르만, 그리고 카로체리아의 명가 이탈디자인-쥬지아로까지 인수했습니다. 자회사의 면면을 보면 완전 토탈 패키지입니다.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들의 브랜드 밸류 면에서 볼 때 폭스바겐에게 대적할 메이커가 없다고 할 정도죠. 피에히의 생애 마지막 목표가 2018년 세계 1위가 아닌가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