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이름은 김윤옥이다.
< 군시절, 삶이 힘들 때면 여군 병장이 내무실에 있음 어떨까, 라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
그냥 내 생각이지만, 김은 아마도 김해 김가일 거고, 윤은 예쁠 윤일거며 옥은 옥처럼 반짝이라는 의미에 옥일 거다. 그녀의 나이를 헤아리려면 생일에 쓰는 긴 초가 세 개, 짧은 게 하나 필요하다. 그래서인지 같이 일을 하면서 노련하다고 느낀 적이 많았다. 역시 경력은 무시할 수 없는 거다. 그리고 그 노련함은 위기를 맞이하는 순간에 옥처럼 반짝였다. 지금의 조직에서 이등병과 같은 난, 이런 여자 밑에서 일을 배울 수 있기에 복받은 놈이다. 여하튼 지금 마구 칭찬중인 그녀는 나의 직속 상관이었으며 직책은 대리다. 그러니 소속이 홍보실인 건 당연한 거고, 이렇게 적얻는 건 혹시나 눈치가 모자랄 당신 탓이다.
내가 속한 회사의 홍보실은 총 네 명이다. 그리고 해야할 업무의 양은 넷이서 하기에 벅찰 수준이다. 기업 홍보부서에서 기본적으로 진행하는 업무 이외에 제품 패키지 디자인과 이외의 업무까지 기타 등등. 그러다보니 업무를 진행하는 데 마감에 늘 쫒긴다. 인력이 부족한 건 아니지만, 고정적으로 진행되는 업무를 수행하는 와중에 타 부서에서 협업 사항이 발생되면 거의 정신줄을 놓고 일을 맞이하게 된다. 외부로 뿌려지는 홍보물 기획하랴, 신제품 패키지 디자인하랴 안 그래도 오른손 잡이인 게, 손과 팔이 두 개인 게 마음에 들지 않아 죽겠는데 또다른 업무가 나타나니 죽을 맛이되는 건 자명하다. 이런 상황의, 홍보실 네 명이 우왕자왕할 수 있는 때에, 마치 사하라사막 한 가운데에서 오아시스가 있는 위치를 명확하게 찾아내는, 주옥같은 네비게이터의 역할을 하는 건 김 대리 그녀였다.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졸업한 이후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기사를 작성하여 보도하는 직업만 갖았던 나는, 새로운 회사에서 맡아야 하는 일에 일가견이 부족했다. 그래서 앞으로의 발걸음에 걱정이 앞섰다. 실제로도 하루를 살아가는 내 삶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면, 가로등 불빛을 배회하는 하루살이처럼 위태롭게 보이는 날이 많았다. 초심의 자세에서 모든 걸 마딱드려도 맡겨진 일이라는 건 내가 가진 실력을 통해 해야할 뿐, 다른 사람의 그것을 대여하여 하기는 어려움이 많으니까. 그런 와중에 그녀는 나를 잘 이끌어줬다. 어찌 생각하면 부족한 게 있으면 안될 나였는데 그녀는 그러한 내게 짜증 한 번 부리지 않았고, 성난 모습을 내비치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였다. 배움이란 것은 지나침이 없다고는 생각하지만 회사에서 그것을 받는 다는 건 쉽게 상상할 수 없는 노릇이니까. 이건 예전에 퇴근 후 나를 데려다줬던 그녀의 차에서 했던 말이다.
"전 지금 행복해요."
"뭐가?"
"절 데려다주는 선배님을 모시게 됐으니까요."
"대박인데"
"그건 농담이구요, 선배님을 제 인생에 등장했던 누군가에게 비유하자면 마치 군시절 말년 병장님 같아요."
"내가 남자 같아요...?"
"보통 군대의 이등병은 사고뭉치에요. 그래서 혼날 경우가 많고 대부분 상병에게 욕을 많이 들어먹죠. 이런 이등병을 병장들이 보면 얼마나 더 속이 끓겠어요. 근데 말년들은 매우 관대해요. 오히려 그 이등병을 따듯한 가슴으로 감싸주며 힘내라는 응원도 아끼지 않죠. 우리나라같은 징병제의 군대에서 탈영병의 비율이 0점 대의 비율이 될 수 있는 건 말년들의 따듯한 가슴이 한 몫 한답니다."
이 말은 그녀에 대한 내 고마움의 표현이었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직장에서, 이제 막 입사하여 가르칠 게 많은 부하직원을 보며, 세심하게 알려주며 하는 일마다 박수를 보내줄 상관이 얼마나 있겠는가. 게다가 나이 서른에 히스테리까지 부리는 여성 상관도 얼마나 많은데. 그러니 내가 그녀에게 감사의 마음을 품는 다는 건, 응당 스승의 날에 은사께 전하는 마음과도 같은 이치였다.
그러나 우리의 시간은 짧았다. 이유는 그녀가 자기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회사를 퇴직한다는 거였고, 나는 그 빈 자리를 채우는 한사람이었으니까. 누가 말했던가, 자신과 적합한 사람과의 소중한 인연이 때로는 길지 못하다는 걸. 옛말이 틀린 게 없으니, 이런 말을 읊은 인간이 미울 뿐이다. 그리고, 얼마 후 이별의 날을 맞이했다. 그녀의 마지막 업무는 금요일이었다. 난 지난 목요일과 금요일에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진행되는 교육 참여 차 이틀간 외근 중이었으니, 떠나는 그녀를 볼 수 없어 아쉬울 뿐이었다. 적어도 그녀가 회사건물을 떠나며 주차장을 나서는 그 순간만은 지켜보고 싶었는데.
아무튼 내가 그녀와 장단을 맞춰 손뼉을 치며 발을 굴렀던 시간을 헤아려 보면 딱 보름이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540,000초다. 함께 한 시간이 비록 짧지만 그를 향한 고마움과, 떠나보내며 밀려오는 아쉬움이 매우 크다는 의미다. 앞으로도 그 사람이 많이 그리울 거 같다. 그러할 때면, 그가 예전에 만들어 두고 갔던 것들을 들춰 볼거다. 그렇게라도 하면 당시 그녀의 육성과 손짓 발짓이 떠오르겠지. 기억력 만큼은 뛰어난 나이니까.
PS
마치 빨간 색깔의 렌즈를 낀 듯, 붉은 눈빛을 띄며 옥구슬 같은 눈물을 떨구던 그녀를 본 적이 있다. 자기보다 먼저 떠난 후임과의 이별이 아쉽다며, 자기가 왜 아이처럼 그렇게 울음을 터뜨린 것인지 말해줬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던 그녀의 모습은, 앞으로 내 사회생활 속에서 쌓여가게 될 기억 중에서도 가장 잘보이도록 최대한 윗쪽에 올려 둘 계획이다. 사회에서 가슴이 따듯한 사람을 만나 함께 일을 한다는 건 높지 않은 확률이다. 마치 '붉은악마'의 틈바구니 속에서 분홍색깔의 티Tee를 입은 일본인을 만나는 것만큼 쉽지않은 걸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