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있는 한 고등학생입니다. 얼마전 이슈가 된 일이 우리 학교에도 일어났다는게 믿겨지지않았습니다. 어제만 해도 수업을 같이 했던 선생님께서 갑자기 짤린다니...모두 경악했습니다.
선생님은 전교조인데, 정치후원금을 냈다는 이유로 방학이 되면 해임되십니다.
그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수험에 찌들고 잠에 찌든 우리에게 한편의 시를 읊어주면서 잠시나마 수험에서의 압박감에서 벗어날수 있게 해주셨고 우리의 감성을 자극해주셨습니다.
그 선생님께서 최근에 쓴 시를 모두 함께 읽으면서 우리의 일을 알고 선생님께 격려를 해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저희는 선생님과 함께 했던 수업시간이 즐거웠다고,감사하다고.....
어떻게 할 수 없는 우리가 참 죄송스럽습니다.
행복(징계를앞두고) 노영민
그간 행복이 참 많았다
빠지는 달 없이 월급 통장에 꽂혔고
그 돈 빼내어 맛있는 것 해먹고 옷 사입고
가고 싶은 곳 가고
아이들 대학에도 보냈다
크게 아픈 일 없었고
한데로 밀려나 산 적도 없었다
그간 행복이 참 많았다
가르치는 일 마친 퇴근길
성지곡 삼나무 길 걷고, 보듬고
호수에 그림자 담그고 막걸리도 마셨다
버스는 어김없이 내 앞에 서주었고
잘 다녀오세요, 아침에 배웅했던 아내는
여보 왔어요,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제 조금 힘든 일이 생겼다
마음에 둔 정치인에 몇 푼 후원한 일이 죄가 되는 세상,
그것이 해임과 파면의 사유가 되는 시대
학교를 잠시 떠나야 할 일이 생겼다
수업 시작하기 앞서 “휴지 주워라”, 그 말 못 하게 될 일이 생겼다
잠시 통장에 돈 꽂히는 일이 멈추고
돈 빼쓰는 일이 조심스러워질 것이다
“노영민 선생님 안녕하세요?”
언제나 이름을 부르며 인사하는 특수반 현오를 못 보게 될 것이고
뜨거운 태양 아래서도 그늘보다 먼지 나는 운동장을 더 좋아하는 아이들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조금 고통스러운 일이 생겼다
고통이 곧 불행은 아님을 나는 믿는다
성지곡 삼나무는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고
운동을 마친 아이들은 여전히 수돗가 물을 덮어쓸 것이고
집의 문은 나를 위해 열려 있을 것이다
예기치 않은 힘든 일로
가족들은 더 단단히 묶이고
자식들은 스스로의 성장을 촉진하게 될 것이다
이해해주시는 늙은 아버지, 장모님께는 내 몸을 더욱 가차이 기댈 수 있을 것이다
그간 행복을 행복이라고 느끼지 못할 만큼 행복이 많았다
고통이 곧 불행이 아님을 믿는 나는
살아 있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축복
고통은 행복의 감수성을 키우고
삶에 대한 환희와 감사의 마음을 벼리는 기회가 될 것임을 믿는다
새로운 행복의 씨앗이 될 것임을 믿는다
노영민/부산 사직고 교사 / 한겨레신문 2010/06/19(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