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글을 읽는분이 과연 몇분이나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혼자 가슴속에 간직하기에는 아쉬운 마음이 들어 감사를 표하고자 키보드를 잡습니다.
저는 강원도 양구에서 군복무 중인 현역 상병입니다.
며칠 전, 동원훈련이 있었고 그 때 만난 소중한 인연에 대해 말해보고자 합니다.
타지에서 한번도 거주한적 없이 서울에서 토박이로 자란 저에게 지방이란 그저 두렵고 낯설기만 한 오지였고, 2009년 4월 14일부터 군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훈련소를 수료하고 하얀이슬 뚝뚝흘리며 얻어낸 보석같은 계급 '이등병'이라는 직함과 함께 저는 지금의 부대로 인생에 처음 얻어본 빽인 떠블빽을 매고 5월 27일에 들어갔습니다.
귀하게 큰 탓인지 처음부터 열심히하려는 의지는 박약상태였고, 늘상 선임들에게 못한다고 (흔히 말하는 하자) 꾸중을 듣곤 했었습니다.
며칠 안가자 5월이 지나고 신록의 계절 6월을 지나 7월이 되었습니다.
동원훈련이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 예비군들이 부대로 왔고, 저희 내무실에는 3명의 예비군이 왔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 말이 없고 머리는 바람의파이터 주인공인 최배달처럼 부스스한 단발머리를 하고있었던 무서운 분이 계셨습니다.
21사단 마크 뒷편에 박힌 8사단 마크와 수도없이 많이 박힌 비표며 얼굴에 뒤덮힌 그늘이며 한마디도 제대로 걸지 못건 채, 전 그냥 가만히 있었습니다.
여느때와 다름없던 저녁이 찾아오고, 전 다시 선임들에게 욕을 먹고 있던 그 순간, 그 예비군이 잠시 제게 할 얘기가 있다며 어깨동무를 하고 밖으로 데리고 나갔습니다.
내무실 문 밖으로 나오는 순간, 당신께서 봄날의 햇빛처럼 환하게 웃어주시더니
'힘들지? 담배 한대 피러가까?' 라며 팔리아멘트를 꺼내며 주시더군요.
정자앞에서 담배를 피며 그 분은 제게 이것저것 여러 질문을 하셨지요..
'어디에 사냐' '군대는 언제왔냐' '엄마보고 싶지 않냐' 그러던 중
핸드폰을 꺼내시더니 부모님께 영상통화를 시켜준다고 하시더라구요
신호음이 가기 시작했고, 어머니가 화면 너머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들..
엄마..
90 여일만에 보던 어머니 얼굴인데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던지 눈물이 왈칵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약 3분의 통화를 하며 열심히 할꺼라고 말씀을 드린 뒤
그분께서 제게 말씀하셨어요.
'노력을 재능처럼 쓰는 사람은 날으는 화살같이 빠르게 시간이 지날테니 너도 지금보다 노력해서 훌륭한 선임이 되서 이곳을 살기 좋게 만들어봤으면 좋겠구나'라고
다음 날, 저녁에 그분께서 px를 갔다오시면서 과자를 한바구니 봐오시더니
빵 두개만 꺼내서 당신 침상에 올려놓으시고는 '너 몽쉘 좋아한댔지? 여기 몇개 사왔다' 라며 주시더군요.
예비군들 오면 안 좋은 모습만 보여주는 줄 알았는데
그분의 정반대같은 모습에 저는 큰 결심을 시작했습니다.
벽돌 한장이 만리장성의 시작이라는 말이 있듯, 끝 없는 노력과 실천으로 모두에게 인정받아보겠다라는 다짐으로요.
셋째 날, 짠한 악수와 함께 그분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시간은 흐르고 흘러
저는 수 없이 몰려있던 격달군번의 선임들이 무더기로 전역을 해서 소위 말하는 '풀린군번'이 되어 많은 후임을 거느린 상병이 되었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되새기고 산지 15개월이 되는 이 시기에 다시 동원훈련이 시작되었고
예비군들이 다시 오자 저는 그분의 존함을 기억하고 찾아보았지만 첫날에는 보지 못한 채
'향토로 빠졌구나' 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조용히 보냈습니다.
하지만, 예상을 깬 다음날 아침.
식사를 끝마치고 올라오는 계단에서 덥수룩한 더벅머리의 강한 인상을 뿜어내는 어떤 예비군을 마주쳤습니다.
서로 눈을 마주치는 순간, 바로 악수를 하고 잘지냈냐는 안부인사와 함께 반가운 마음에 어디계시냐고 물었더니 같은 층 구석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저녁에 만나자는 이야기를 듣고 하루가 빨리 지나가길 하는 생각으로 동원훈련에 적극적으로 임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흡연장에서 다시 만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고 말하자
그분께서는 '난 너 볼 것같았다. 백일휴가도 못간 아가 지금 벌써 상병이네 ㅋㅋ'라며
어깨를 다독여주셨습니다.
그 이등병 힘든시기에 노력하라는 그 짧은 한마디가 없었다면 지금의 자리에 오르리라곤 전혀 생각도 못했을텐데 괜스래 눈물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울지말라고 다시 그분은 어깨를 다독여주며 씩~ 웃으시더니 '엄마랑 통화 또 시켜주까?'라고 하시더군요.
저도 해맑게 웃으며 '이젠 엄마가 전화만해도 징그럽대요'라고 맞 받아치며 서로 웃고 위로 올라가 라면 끓여다 같이먹고 이런저런 얘기를 했습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휴가를 어떻게 써야 가장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지도 상세히 알려주시고
훈련 뭐뭐 남았냐고 막 묻고 정말 동네 친한형같은 느낌이 그저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저기요 형님..
왜?
머리는 왜 자르셨어요? 전이 더 멋있었는데.
아~ 진짜? 에이~ 괜히 짤랐네 ㅋㅋ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고
마지막 날, 퇴소식을 하며 그분은 예비군 우수표창을 받았습니다.
표창수여식을 끝으로 퇴소식이 끝나고
다들 떠날채비를 하는데 제게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마지막이네.. 우리 기백이 내년엔 없잖아~
그냥 가슴이 확 짠한게 아쉬움이 역력했습니다.
언제 또 볼지 모르는데 건강히 잘지내라~
이 말을 마지막으로 포옹과 함께 버스를 타고 예비군들은 부대를 떠났습니다.
허무함과 기쁨이 교차했던 동원훈련 3일을 끝으로 오늘은 일기나 한편 써야지 라는 맘으로
개인서랍을 열자 작은 흰봉투에 '육군 상병 김기백에게' 라는 작은 글귀와 예비군에게 지급하는 여비가 들어있었습니다.
가르쳐주신 좋은 말씀 잊지않고, 초심 그대로 끝까지 유지해서 이곳을 꼭 살기 좋은곳으로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박성용 예비역 병장님..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