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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법은 법이 아니다]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EAST-TIGER |2010.08.10 00:14
조회 1,517 |추천 0

 

대학원 도서관에서 대여한 책이다.

 

  근래에 인권(人權)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오래전부터 내가 처했던 상황들은 인권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었고, 지금은 사회 내 인권회복이 곧 사회정의 실현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 수단으로는 실정법과 사회법 등 법질서의 확립과 준수가 가장 먼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대학원 도서관에서 법에 관련된 책을 살펴보다가 발견한 책이다. 변호사이자 참여연대 사무처장으로 있었을 때인 1995~1999년까지 여러 언론과 잡지에 실린 그의 글들을 한데 묶어 발간한 책이다. 우리 사회에 인권을 중시하며 법질서 확립과 준수를 오늘도 제창하고 사회정의를 실천하려는 그의 의지가 책 전반에 스며들어있다.

 

  부패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회는 없다. 인간은 타락하고 부패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셰익스피어는「앙갚음」이라는 극에서 “모든 분파와 모든 시대의 사람들이 이 악행(뇌물)을 즐긴다.”고 갈파하였다. 사회체제가 얼마나 그 타락과 부패를 막느냐에 따라 그 사회의 부패지수는 정해질 수밖에 없다. 선진국이라고 해서 그만큼 공직자의 도덕성이 원래부터 높다고 할 수 없다. 그 시스템이 부패할 수 없도록 통제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국제투명성 위원회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은 40개국의 조사 대상 가운데 중간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를 보면 수치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46p>

 

  세계 어느 정치사든 부패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지만, 유독 우리나라의 정치사는 부패와 밀접하게 관련되어있고 예전이나 지금이나 부패는 고질적인 문제이다. 정경유착(政經癒着)과 청탁(請託)을 비롯한 각종비리들이 언론과 매체의 단골이 되어버린 것이 그 언제부터인가? OECD국가 중에 정치, 사회 문제들에 있어서 심각성이 최고의 수준에 있는 대한민국. 박원순 변호사의 말대로 대한민국은 ROTC(Republic Of Total Corruption)인가? 대통령의 불법 비자금과 정치인들의 청탁비리, 기업가들의 세금포탈과 분식회계 등 국민의 혈세를 가지고 벌이는 부패축제는 언제 끝이 날 것인가? 박원순 변호사는 사회개혁에 있어서 부패청산을 가장 우선적으로 보고 있고, 부패에 가담한 정치인과 기업인들은 지위를 막론하고 반드시 처벌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은 대통령, 국회의원, 시장, 지방의회 의원을 우리 손으로 직접 선출할 수 있으니 이제 민주주의가 다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민주주의의 시작일 뿐이다. 이렇게 뽑은 사람들을 잘하는지 못하는지 감시하고 감독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마치 머슴을 뽑아놓고 낮잠이나 계속 자지 않는지, 추수하여 곳간에 쌀을 제대로 들여놓는지 주인이 감독하여야 하는 것처럼.  <72p>

 

  민주주의를 사회체제로 받아들인 우리나라에서 시민의식이 급속도로 성장한 것은 근래의 일이다. 우리 정치사의 자랑스러운 민주화 운동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의식과 행동에서 비롯됐다. 권력자들의 압력과 폭력에 불안해하면서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세상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는 시민들의 투쟁이 곧 지금의 민주주의를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 달리 사회 내 시민들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이 가능하고, 여러 곳에서 시민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민주주의 주체가 시민이라면 당연히 시민이 주체의식을 가지고 있어야한다. 작게는 법질서를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개인의 정당한 자유추구와 넓게는 사회 전체의 불법과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노력해야한다. 즉 사회 내 개인과 공동의 이익이 충실히 반영될 수 있도록 시민 스스로가 민주주의 처음과 끝이 되어야 한다. 만약 민주사회에서 시민의식과 운동이 사라진다면, 권력자들의 불법과 비리는 더욱 만연해질 것이고 국민의 세금은 권력자들의 배를 채우는데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민주주의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지키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 시민의 권리와 의무가 있다.

 

  법대로 살고 원칙을 지키고 사는 사람이 득을 보는 사회, 새치기와 변칙을 통해 득을 보려는 사람은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당하는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이다. 그러나 이런 사회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방관과 조소만 하고 있는 사람들만으로는 파산 지경의 이 사회를 구조할 수 없다. 자신이 탄 배에 구멍이 뚫려 있음을 모른 채 자신과 가족의 안일만 구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그런 점에서 국민들도 직무유기자다. 온 나라에 직무유기자들로 가득 차 있다.  <125p>

 

  박원순 변호사의 말에 공감을 하면서 한 가지 덧붙이자면, 국민들이 올바른 시민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공권력을 가진 사회 공공 기관들이 먼저 법질서와 도덕성을 회복해야 한다. 국민 전체가 올바른 시민의식을 가지며 권리와 의무를 실천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그래서 국민들은 정부와 공직자들에게 일부 권리를 위임했고, 이는 국민들과의 약속이자 절대적 계약이다. 그렇다면 정부와 사회 공공기관들은 앞 다투어 국민의 이름으로 우리 사회 내에 불법과 부패를 일삼는 악의 무리들에게 ‘레드카드’를 들어 퇴장시켜야한다. 그리고 국민들에게 올바른 시민의식과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위해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고 스스로 근신하며 국민들의 요구와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헌신해야한다. 이것이 선행되지 않으면 국민들이 권리를 행사하기 이전에, 정부와 권력자들의 횡포로 폭력과 피로 얼룩진 시민운동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김일성 주석과 북한 정권의 과오를 분명히 하는 일과 한반도에 한 정부의 실체로서 존재하며 통일 파트너로서의 북한 정권의 존재를 인정하는 일과는 분리되어야 한다. 만약 서독이 국경의 울타리를 넘던 피난민을 사살하도록 발포 명령을 내렸던 호네커를 처벌하는 일과 동독의 실체를 인정하고 통일의 협의를 해나가는 일을 분리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오늘의 통일독일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임이 분명하다. “현실을 인정하는 것은 하나의 용기”라고 외치며 동독의 실체를 인정하고 대화의 노력을 시작했던 브란트 같은 지도자, 그가 추진했던 동방정책 같은 민족 화해책을 받아들이는 아량과 현실감을 오늘 우리 민족은 가질 수 없을까.  <233p>

 

  남북관계에 대한 박원순 변호사의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지난 10년간 민주정부는 남북관계에 있어서 괄목한 성과를 거뒀다. 물론 ‘퍼주기’ 논란과 친북좌파의 오해를 받았지만, 현실적으로 남북관계가 좋아진 것은 사실이다. 한 예로 해마다 이산가족이 상봉했고,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을 비롯한 남북경협이 추진되었다. 무엇보다 역사적인 남북한 정상회담이 두 번이나 있었던 것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전 세계도 이를 인정하여 故 김대중 前 대통령께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지 않았나? 이런 성과에도 남북관계가 문제 있다며 민주정부를 비난하는 나라는 타국가도 아닌 우리나라이다.

 

  현 정부는 남북관계에 대해 상호호혜주의 원칙을 강조하며 한반도를 긴장상태로 몰아넣었다. 이산가족들은 이제 더 이상 이 땅에서 서로 만나지도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해야하고, 군인들은 천안함 사태가 언제, 어디서 또 벌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긴장으로 하루하루를 맞이해야한다. 국민들은 연일 북한의 공격적인 발언에 불안해하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국민들은 전쟁을 바라고 원하지도 않는다. 그저 민주정부의 대북정책을 수정·보완하여 그동안 추진되었던 정책들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남북한이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고 경협을 통해 북한의 경제발전을 도와야한다. 지금 상태로는 통일 후 북한의 경제회복을 위해 남한정부는 많이 비용을 투자해야하고, 위기를 느낀 북한이 어떤 방식으로 무력도발과 행보를 할지 알 수 없다. 더구나 탈북자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살기위해 남한으로 왔는데, 그들을 위한 정부차원의 지원과 사회적 관심이 없다면 탈북자들이 가질 소외감과 허탈감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한편, 국가보안법의 수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책에서 지적한대로 남한의 이산가족들이 북한의 이산가족과 연락을 시작하면서 이미 ‘통신죄’를 저지르고, 만나기 위하여 김포공항을 나서는 순간 ‘탈출죄’, 북이나 제3국에 도착하여 만나면 ‘회합죄’, 자칫 고향 사정이나 사회 실정을 잘못 이야기하다간 ‘국가기밀누설죄’,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면 ‘잠입죄’가 되는 것이 바로 국가보안법이다. 반공과 북한의 무력도발은 엄정하게 대처해야하지만, 이미 이산가족상봉이 어려운 상황에서 국가보안법은 또 하나의 장애물로 이산가족의 슬픔이 되었다. 만약 간첩활동에 빌미가 된다면, 따로 그것에 관련된 법을 제정하여 개정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성희롱을 직장에서 추방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이번 판결이 요구하듯이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잠재적 가해자인 직장 상사나 남성들은 말할 것도 없고 피해자인 여성조차도 스스로의 좌절의식, 피해망상증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 차원을 넘어서서 각 직장마다 성희롱 피해자를 위한 상담센터 등이 마련되고 회사 사규로서 ‘성희롱 가이드라인’ 이 생겨나 신입사원은 말할 것도 없고 기존 사원들을 교육하여야 한다. 이 사규에는 어떤 것이 성희롱이며 그 피해자는 어떤 방법으로 신속하게 구제받을 수 있는지 정해두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고용주의 의무는 남녀고용평등법에 삽입되어야 하며 노동부는 성희롱 추방을 위한 온갖 계몽운동을 펼쳐야 할 국가의 의무를 져야 한다.  <277p>

 

  사회 내 성범죄가 끊이지 않았던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문제는 여성인권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이다. 성범죄는 더욱 교묘해지고 대부분 면식범들의 소행인데, 처벌의 강도는 약하고 피해자 관리에 있어서 이렇다 할 사회적 보상이나 조치가 미비하다. 무엇보다 피해여성들에 대한 사회의 차가운 시선이 이를 대변한다. 그러니 피해여성들은 성범죄에 침묵하거나 힘없는 저항을 하다가 이내 포기한다.

 

  어떻게 여성인권을 신장시킬 것인가? 박원순 변호사의 제안은 시민들의 의식전환과 법과 제도의 개선에 초점을 두고 있다. 덧붙여서 나는 강력한 처벌도 원한다. 이미 사회는 성문화에 있어서 개방적인 성향으로 전환되고 있다. 대중문화와 미디어는 섹시한 여성을 좋은 먹잇감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음란물이 급속도로 유포되어 인터넷을 할 수 있다면 어느 나이대의 남성이든 보거나 소장할 수 있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성범죄가 없을 수 없다. 문제는 처벌이다. 처벌의 강도가 상황과 재판에 따라 천차만별이라, 피해여성에게는 평생의 상처가 되었는데 가해자는 형기만 채우면 모든 것이 끝나는 듯 생각하고 있다. 더구나 술이나 불안한 정신 상태에서 일어난 성범죄는 그 처벌 강도가 더욱 낮아지니 가해자들의 변명은 한편의 조작된 드라마를 연출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성범죄 처벌만큼은 어떤 상황이든 상관없이 강력하게 시행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경제 위기 원인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한마디로 우리 사회에서 ‘견제와 균형의 결핍 현상’ 이라고 말하고 싶다. 부패와 비리, 부정과 불의가 이 땅을 뒤덮은 대신 투명성, 책임, 정의는 실종되고 말았다.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특별히 악질적이라거나 부패했다거나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우리 사회제도와 그 현실이 훌륭한 사람은 도태하고 악인이 득세하게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올바른 제도가 만들어지고 그것이 지켜지도록 감시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소중하다. 그런데 그 일을 누가 하랴. 한 개인은 위대하지만 사회의 공의를 실현하는 데 무력할 수밖에 없다. 혼자 공권력을 상대로 하여 감시하고 잘못을 규탄하며 그것을 시정하는 데에는 무기력하기만 하다. 그래서 시민단체가 필요하다. 우리 시민들이 회원이 되어 회비를 내주고 자원봉사자가 되어 스스로 인력을 보충해준다면 시민단체는 부패한 정치를 바로잡고, 잘못된 경제체제를 개혁하고, 불의한 사회를 정의로운 사회로 바꾸어내고, 마침내 이 땅을 법과 정의가 지배하는 살맛나는 세상으로 만들 수 있다.  <304~305p>

 

  현재는 박원순 변호사가 이 글을 작성했던 때보다 많은 시민단체들이 생겨나, 사회공익과 국민권익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특히 적극적인 시민들은 시민단체에 가입하여 정부와 공공기관, 기업 등 사회 내 부패척결과 사회적 약자들을 도움으로 사회정의실현의 파수꾼 역할을 담당한다. 더 이상 시민들은 위정자들에게 모든 것을 위임한 채, 그들이 만들어놓은 거짓놀음과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는다. 시민 서로서로가 힘이 되어주는 순간, 빼앗겼던 권리를 되찾게 될 것이고 눈물로 고통스럽게 보냈던 날들을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다.

 

  박원순 변호사의 말대로 오래전부터 이런 시민단체들이 활동했다면, IMF와 같은 경제위기는 없었을 것이다. 전직 대통령들의 불법 비자금, 한보사태와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붕괴 등 1990년대의 참혹한 부실경제와 비리정치는, 민주주의를 열망했던 시민들의 피 흘린 투쟁이 잠시 가라앉았던 시기라 더욱 안타깝다. 그러나 오늘날 촛불집회와 인터넷을 통한 자유로운 발언과 탄원은 시민들의 힘이 살아있다는 증거라 생각한다. 앞으로 시민들은 눈 앞에 펼쳐지는 현실 속에 침묵하는 관중이 아니라 법질서와 사회정의를 실현하려는 주심과 부심으로 활동해야한다.

 

  우리 사회의 사회악은 끝없는 탐욕에서 비롯한다. 인간의 이욕추구는 자연스러운 본능이기는 하지만 지나치면 해악이 될 수밖에 없다. 기업은 기업대로, 국민은 국민대로 돈을 향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든다. 탈법과 불법이 판을 치고 거짓과 사기가 횡행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렇게 번 돈은 자식에게 고스란히 물려준다. 큰 돈을 한꺼번에 유산으로 남기는 것은 자식을 망치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모른다. 심지어 그 탐욕은 축재과정의 죄를 씻고 천국에까지 부귀를 연장시켜보려는 데까지 이른다. 그래서 ‘면죄부’를 파는 교회와 사찰은 날로 부자가 된다.

  지존파·막가파에 세상이 날이 갈수록 험해져도 사람들은 자신과 가족이 다치지 않으면 안심한다. 성폭력범이 마구 날뛰어도 자신의 부인과 딸만 안전하면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런 무관심과 이기심 때문에 사회는 점점 황폐해져가게 마련이다. 온 세상이 병들고 썩는데 자신만은 안전할 수 있다는 어리석은 생각, 실종된 시민정신, 고립된 정의감으로 우리 사회는 끝갈 데 없이 표류하고 있다.  <318~319p>

 

  이와 같이 외국에서 조금이라도 살다가 돌아온 사람들이 한국에서 깨닫게 되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공격적’ 이며 ‘폭력적’ 이라는 사실이다. 법이나 질서를 지키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바로 옆사람에게 해를 끼치고도 전혀 사과는커녕 미안하다고 생각하는 법이 없다. 그것은 ‘방자함’이요, ‘몰염치함’이다. 이런 작은 ‘폭력’ 이 마침내 큰 ‘폭력’을 낳는 법이다. 이웃의 생각이나 공동체 전체의 이익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만 잘 되고 이해가 맞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마침내 법을 무력하게 만들고 도덕을 타락시킨다. 기실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엄청난 사기, 강도, 살인, 뇌물 사건은 모두 깊이 속병 든 우리 사회의 표피적 현상일 뿐이다. 얼마 전 아래로는 부천세무서 하급 공무원이 1백억 원대에 이르는 뇌물을 받아 세인을 놀라게 했는가 하면 최근에는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수천억을 꿀꺽함으로써 ‘보통 사람’ 들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고 있다. <340p>

 

  개인주의와 물질만능주의는 묘한 관계를 맺는다. 개인주의의 본래 취지는 개인의 자유와 자아를 가치 있게 생각하며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아닌 자신과 주변 영역에 집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학적으로는 개인주의는 정부가 인간의 삶에 최소한으로 개입하고 개인이 타인의 삶에 간섭하는 것을 막으며, 법과 계약이 자발적으로 실행되도록 치안유지에만 주력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개인주의가 보기에 국가는 필요악으로 규정되며 ‘작은 정부’ 를 주장한다. 그러나 현재의 개인주의는 많은 부분에서 변질되었다. 대표적인 변질의 예로 개인주의와 물질만능주의가 결합했을 때의 경우이다.

 

  물질만능주의는 개인주의의 극단적 이기심을 유발하여 맹목적인 부를 축적하고, 인간으로 하여금 비인간적인 말과 행동을 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사회 양극화는 심해졌고 이 양극화는 경제의 호·불황기에 상관없이 계속 심해지고 있다. 뒤늦게 정부가 규제를 하며 진화에 나섰지만, 이미 사회 양극화는 극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해졌고 최악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극단적인 행동으로 엽기적인 범죄와 자살 등을 택하고 있다. 게다가 성윤리 의식도 문란해져 인간 자체의 신뢰와 인격은 바닥으로 떨어진 상태이다. 이는 사회가 이렇게 될 동안 무방비 또는 협력하고 지켜보았던 정부와 부조리한 현실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하며 저항이나 찍소리조차 못하고 침묵했던 시민들의 직무유기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자신의 삶과 관련되지 않으면 상관하지 않고 침묵과 방관으로 일관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사회 내 엽기적인 범죄나 권력자들의 횡포와 탄압은 남의 나라 이야기와 같다. 나는 예전에 이것에 관련하여 중학생들에게 수업을 한 적이 있었고, 1년 동안 진행했던 수업 내용의 대부분은 인간의 도덕성 회복과 사회정의 실현을 위한 노력을 강조했었다. 나는 이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지금의 젊은 세대들과 예비 젊은 세대들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마저 변질된 개인주의에 매장된다면 이 사회의 희망은 점점 줄어들 것이고, 양극화는 극에 달하여 민주주의를 가장한 권력자들의 독재가 굳건하게 세워질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시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불의에 분개하는 시민의식을 가지고, 법질서와 도덕성을 회복해야한다. 그래야 시민들 서로가 신뢰를 가지며 이기적인 마음을 줄이고 이타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조건 ‘관용’ 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정확히 따지고 철저하게 시비를 가려야 할 때도 있다. 법이나 규칙을 위반하는 행위를 우리는 그냥 봐 넘겨서는 안 된다. 감시의 불침번이 있지 않으면 우리 공동체의 질서는 도둑맞고 만다. <336p>

 

  지나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추구하다보면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거나 사회 공동체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다. 나는 사람들의 다양성을 인정하지만 이는 법질서에 근거하여 다양성을 존중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만을 강조하다보면, 사회 내 질서와 사회정의 실현은 더욱 어려워진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개인의 자유와 권리의 남용을 보고 제재와 주의를 주이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관용을 가장한 무관심, 발언보다는 침묵에 더 익숙하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란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이익에도 공헌해야한다. 그 자유와 권리 중 한가지로 사회 내 법과 규칙을 위반하는 사람이 있다면 무관심과 침묵으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일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말과 행동으로 법과 규칙이 위반되는 상황들을 막아야한다. 그렇다면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가 서로를 존중하되 감시의 역할을 동반하여, 서로가 약속하고 제정한 법과 제도, 규칙들이 사회 내 실행될 수 있게 도와야한다.

 

  장애인에 대한 대우의 정도야말로 그 사회의 문화적 척도가 되고 그 시민의 인간성의 기준이 된다. 장애인이 보통인과 마찬가지로 대우받고 그 능력을 발휘하는 사회는 그만큼 인간의 권리가 보장되고 문화의 발전이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장애인이 차별받고 고통당하는 사회는 덜 문명화되고 덜 인간화된 곳이다.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야만적 사회이다. 이웃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고통당하는 이웃을 위해 손발이 되어주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사는 동네는 살아볼 만한 사회이지 않겠는가?  <363p>

 

  분명 예전보다 사회 내 장애인에 대한 배려는 많이 좋아졌고 이것은 보기 좋은 현상이다. 그러나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 극복은 아직 만족스러운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박원순 변호사의 말처럼 “장애인에 대한 대우의 정도가 그 사회의 문화적 척도가 되고 시민의 인간성의 기준” 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장애인에 대한 대우가 부실하다면, 보통 사람들에 대한 대우 역시 좋다고 예측할 수 없다.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이 정당한 대우와 따뜻한 배려가 있는 사회. 내가 이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 있다면 마다하지 않을 것이고, 자녀와 후손들도 이런 사회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회가 되길 꿈꾸어 본다.

 

 

  박원순 변호사의 개혁의지가 담긴 이 책을 보면서 변호사의 입장에서 법질서 회복을 통한 사회개혁 방법론이 짙게 느껴졌다. 강단한 그의 개혁의지가 다소 이상적으로 보이거나 융통성 없이 느껴질 수도 있겠으나, 자세히 보면 그동안 우리 사회는 불법과 비리를 현실에 맞게 적용했고, 융통성이 너무 만연하여 양극화를 가속화 했으며 사회적 약자들을 직, 간접적으로 억압해왔다. 그러기에 박원순 변호사의 개혁의지는 실추된 법의 권위를 일으켜 세워 누구를 막론하고 법의 심판을 받을 수 있게 시행될 것을 주장한다.

 

  흔히 “법대로 하자!” 라는 말이 요새는 순수하게 들리지 않는다. “법 앞에서 평등하다” 는 말도 이상적인 말처럼 들린다. 소박한 꿈과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법과 도덕인데, 지금처럼 법과 도덕이 문란하고 무시된다면 절망감과 회의감 속에 사회에 대한 복수심과 이기심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집 밖을 나가서 길을 걷거나 집에서 TV와 신문을 보면 느낄 수 있다. 세상이 얼마나 무서워졌는지를.. 하물며 자라나는 어린 세대들은 지금 무엇을 보며 생각하고 있을까? 고도화 된 첨단 문명 속에서 살고 있지만 더 좋은 사회를 위해서는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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