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스물세살 부산남자입니다.
바로 본론 들어갑니다. 출발~
때는 8월 14일 토요일 밤.
부산에서 서울로 멀리멀리 놀러온 나.
이날만은 낯선 서울에서 나 혼자서 밤을 지새워야 했다.
친구들과 강남에서 헤어진 후,
다음날 약속이 잡혀 있는 대학로로 향했다.
환승하기 위해 사당역에 도착하니,
왠 공익새끼가 더이상 열차가 없다고 소리치고 다녔다.
'에라이; 근데 어쩌지?' 하다가,
그냥 근처 찜질방에 가야겠다고 마음먹곤 발걸음을 옮기려했다.
그때 때마침, 어느 한 외국인이 오지 않을 열차를 한없이 기다리는 모습이 보였다.
순간 멈칫 했다. 도와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럴때 써먹으라고 지금껏 영어란걸 배우지 않았나.
잠시 고민하다가 그 외국인에게 다가갔다.
"오늘 열차 없어요. 토요일 밤이라 일찍 끊겼대요"
버벅; 거리면서 말을 하니 용케도 알아들었나 보다.
"Oh! Really?"라고 다소 격한 리액션을 보인 그는
돌아서는 나를 붙잡곤 서울 지하철 노선도 영문판을 보여주었다.
그리고는 yong-san을 가르키며 자기는 여기를 가야한다며 "영솬 영사안"을 연발했다.
영산? 영산?? 거기가 어디지??....
부산 남자에겐 더없이 복잡해보였던 서울 지하철 노선도.
아무튼 뭐 거기가 어딘들 중요하나,
"영산엔 왜 가요?"라고 물어보니 거기 "찜쥘봥"이 있단다.
'아 그렇구나.... 어? 찜질방?????!!!!!!!!!!!'
오 이 외국인 아저씨 나랑 목적지가 같구나.
어디서 무슨 용기가 그렇게 솟구쳤는지 지금도 도저히 모르겠다.
"어? 나도 이 근처 찜질방 갈려고 하는데 같이 갈래요?"
"그래, 좋아!" 이런다.
'오늘 밤도 외롭진 않겠구나!'하곤 잠시나마 행복해했는데,
현실은 내 몸 하나 성히 간수하기 힘든 부산 남자의 낯선 서울 여행길에서 졸지에 외국인 아저씨까지 떠맡으니 막막할 따름이었다. 더군다나 이 짧은 영어로 말이다....
일단은 데리고 사당역을 빠져나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순간만큼은 정말 책임감이 막중했다.
이 외국인아저씨 길바닥에 재우면 안되는데 하면서....
없는데 찾으려했는지
있는데 못찾았는지
아직도 의문이지만 한참을 헤메다보니 외국인아저씨도 내가 안쓰러워 보였나보다.
자기가 영산가는 버스를 안단다.
'알면서 왜 말 안해준거야?ㅠㅠㅠㅠ'
버스남바는 502.
'휴; 이 버스는 또 어디서 타야할까? 막차가 지나간걸 아닐까?'하고 고민하려 하는 순간,
옆에서 502남바를 단 버스가 슝하고 지나간다.
우리는 뛴다. 가랑비를 맞으며 일단 뛰고 봤다.
겨우겨우 잡아 기사아저씨께 "영산역 가요?"라고 물어보니 간단다.
'오 드디어 하나씩 풀리는구나' 싶어 버스에 올라타 버스 노선도를 빠르게 스캔했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아.... 이 영산(yong-san)의 정체가 용산이었구나.... 내 영문 이름에도 yong이 들어가는데.... 왜 왜 왜....
'나 사실 영산은 몰라도 용산갈 줄은 알았는데......'
뭐 암튼, 이 외국인 아저씨와 대화를 나누며 용산역으로 향했다.
자기 이름은 알렉스고 러시아인이란다. 뉴질랜드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집은 블라디보스토크인데 가는길에 한국 잠시 들렸단다. 짧은 영어에도 어째 신기하게 들렸다.
아 문제는 우리 알렉스씨.
좀 소심한 성격이었다. 한국와서 나랑 말 처음 해본단다.
아 어째 좀 안타깝긴 했다.
근데. 근데. 알렉스씨.
몇일만에 입을 열어서 그런지 말이 정말 너무 많다.
아오;;;; 버스에 안그래도 사람 많은데 그것도 너무 크게 말한다.
다쳐다본다ㅠㅠㅠㅠ 미치겠다ㅜㅜㅜㅜ 정말ㅠㅜㅠㅜ
더군다나 한국사람들 외국인 참 신기하게 쳐다본다.
알렉스가 얘기할땐 알렉스.
알렉스가 대답기다릴땐 나.
아 정말 부담스럽다. 영어 공부 좀 열심히 할 걸 그랬다.
알렉스가 크게 말할수록 난 점점 작아진다.
그래도 하늘은 나의 편. 용산역이다. 드디어 왔다.
여기부터는 알렉스가 길을 안단다. 어제 와봤단다.
가까운 곳에 정말 엄청나게 큰 찜질방이 하나있었다.
도착하니 카운터에 계시던 한 아리따운 여성분께서.
오늘은 주말이라 사람이 정말정말 많으니까 자리가 부족할지도 모르겠다며 그리고 환불이 안되니 옆에 있는 외국분한텐도 전해달라고 하길래 공손하게 "네^^ 나중에 말해줄게요" 하고 들어왔다.
와나. 사람 진짜 터무니 없이 많았다. 정말 발 디딜틈이 없다.
그래도!!!! 알렉스 데리고 찜질방에 왔는데 그냥 잘 수 있나.
알렉스한테 한국 전통 음료가 있는데 찜질방 오면 꼭 마셔야 한다고 안마시면 탈난다고 하곤 계란이랑 사서 나눠 먹었다.
"오 시퀘? 이거 맛있다. 어떻게 만드는 줄 아나?"
"알렉스, 나 몰라요ㅠ 쌀인건 알겠는데 몰라요ㅠ"
"응"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여전히 알렉스는 크게 말하며.
여전히 나는 작게 말하며.
자, 다먹고 시간도 늦었겠다.
"이제 자자 알렉스"
"그래. 근데 훈(내 이름이 어렵다고 이렇게 불렀다). 저 사람들은 머리에 수건으로 어떻게 한거야? 나도 알고 싶어."
"응? 뭐 양머리?"
나 할 줄 모르는데..........-_ㅜ
그래서 알렉스한테 그럼 우리 찜질 하러 다니면서 보이면 물어보자하곤 이리저리 땀빼러 돌아다녔다.
그러던 중, 알렉스가 날 툭툭치네.
"왜?"
그러더니 어딘가를 가르킨다.
양머리를 하고 있는 내 또래 아가씨들ㅋㅋㅋㅋ
'알렉스가 센스가 있구나. 짜식. 여자친구 없는거 어떻게 알고. 이렇게 인연을 만들어주네. 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하구나'
다가갔다. 그리곤 옆에 앉았다.
어? 뭔가 이상하다.
한국 사람 같기도 하고 아닌거 같기도 하고.
한국 사람? 한국말 고?
외국 사람? 영국말 고?
못 정하고 우물쭈물....하고 있으니
"저 항쿡사뢈 아뉘에요"
"헉; 네ㅠ 근데 그 양머리 어떻게 한거에요? 알려주세요."
이리저리 훅훅. 뒤집고 뒤집고 훅훅. 끝!
"아아 감사합니다. 근데 중국분이세요?"
"아뇨. 대만에서 왔어요"
"헉! 죄송해요ㅠㅠㅠㅠ"
"아니, 괜찮아요"
하; 부산 남자가 서울 와서 뉴질랜드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는 러시아인 소심남 알렉스를 데리고 찜질방에 들어가 대만사람한테 양머리 어떻게 하냐고 물어볼 때 그 심정. 하;
나도 국제인이구나ㅋㅋㅋㅋ
어쨋든 양머리에 만족해하는 알렉스를 데리고
드디어 수면실로 가 잠을 청했다.
다사다난했던 밤이 지나가고 다음날,
삼각김밥으로 가볍게 배를 채우곤 알렉스한테 계획이 뭐냐고 물어보니... 저녁 7시 비행기란다. 그래서 인천 가서 을왕리 해수욕장 들렸다 간단다. 아 그렇구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어딘가를 가르킨다.
저 멀리 산에 있는 뾰족한 타워를 보면서 저기 저 티비타워는 뭐냐고 물어본다. 아. 그건 내가 아는거다. 그건 남산타워다. 한번 가봤다. 그래서 알렉스한테 내가 너라면 을왕리 안가고 남산타워 가겠다고 하니 오 그러냐면서 그럼 저기 가겠단다. 그리고 어떻게 가냐고 물어본다.
아ㅠㅠㅠㅠ 알렉스ㅜㅜㅜㅜ 나 부산남자. 그리고 여기 서울. 내가 어떻게 알아? 너나 나나 여기 처음. 엉? 엉? 따지고 싶었으나. 한국사람은 착한사람, 외국인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어필하기 위해 인터넷 카풰 그니까 PC방에서 가는길을 찾아보자고 했다.
뚜둥. 외국인이 들어오니 당황하던 PC방 알바녀. 그 눈빛을 잊을 수 없다. '니가 데리고 왔지? 많고 많은 PC방 중 왜 여기? 엉?' 뭐 이런 눈빛. '나도 힘들다, 알바녀야.'
이리저리 찾아 메모장에 적어줬다.
"알렉스. 고 충무로역! 아웃! 남바2 출구! 버스스탑! 남바2 오알 남바5 엘로우 버스. 덴 N서울타워. 오케이?"
우리 알렉스 잘 알아듣는다. 고맙다 정말.
그렇게 함께 충무로역까지 가서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눴다.
알렉스한테 배운 러시아어 "바콰!(??)" 웃는다 ㅋㅋㅋㅋ
정말 고맙단다. 너 아니었으면 지금도 지하철 기다리고 있을꺼라고. 그리고 이메일 주소를 알려줬다. 러시아나 뉴질랜드 올 일 있으면 연락하라면서.
갈 일이야 있겠냐만은. 뭐. 나도 고마웠다. 외로운 서울에서의 하루밤 같이 있어줘서.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악수를 나누고 보증금 환급기에서 500원 받는거까지 보고 엄지 손가락 치켜 세워주면서 쿨하게 헤어졌다.
"바콰! 알렉스. 굿 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