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共感과 利己

은돌이 |2010.08.29 14:53
조회 71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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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c의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그의 책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불안과 고독이 현대인을 죽음에 이르도록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다른 누군가와 감정을 공유하여

소외감으로 부터 벗어난 다고 하는것은 우리의 생존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공감(共感)'의 유무에 기초한 관계를 통해서

나와 다른 존재들을 점차 인식하게 된다.

 

  공감을 이용한 마케팅이

수면위로 떠오르는 것을 보면 현대사회가

얼마나 소외감에 진저리치는가 알 수 있다.

얼마전부턴 공중파 방송의 모 프로그램에서

주요한 컨텐츠가 되기도 했었다.

(이 프로그램은 컨텐츠와 매커니즘의 별다른 변화없이 몇년동안

승승장구하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수위의 시청률을 구가하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여야를 막론한 각 정당의 당명과 슬로건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진정으로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위정자를 원하는

가를 잘 알 수 있다. 다만 슬로건에서 그친다는 것이 문제지만..

 

  공감이 일선경영의 절대적인 원칙이 된지도 이미 오래 전이다.

국내의 한 굴지 그룹의 "혁신경영"처럼 "공감경영" 또한

치열한 자본주의의 믿음직스럽고 참신한 전략이 되어주었다.

노사소의 든든한 공감대가 예전 그 날의 알프스보다도 춥고 혹독한

시장경제를 넘을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교육적인 전략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젠 교수를 잘 하는 교수,

학생이 각종 학문과 기예를 잘 습득할 수 있도록

돕는데 효과적인 선생을 넘어서 그들과 공유할 정보나

감정 따위를 가진 사람을 요구한다.

심지어는 초등학교에서 간단한 크로키 하나를 가르칠 때에도

아이들은 속사화에 대한 잡학한 이론과 기술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아이들의 손끝을 예민하게, 민첩하게 하려면 방법은 하나 뿐이다.

공감을 기초로 그들의 비위를 맞추는 것.

더욱이 현대에 지혜의 전당에선 학도들에게 그들의 밥벌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주어야 한다.

 

학습의 성패가 배우고 익히는것이 무언가에 달린것이 아니고

가르치는 그네가 누구인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2

반면에,

이기(利己)는 마음속의 절규에 귀를 기울여

가장 솔직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현대인만큼 이 본능의 법칙에 순순한 것이 없다.

굳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본을 보여주지 않아도

자신의 내면의 외침을 따르다보면 곧 이기적인 사람이 된다.

 

공감에 목말라 하면서, 진저리 치면서 동시에 이기적인 존재.

사실 두 개념은 절대 상존할 수 없어야 할 것같지만 어디 그런가?

그렇게 생각했다면 당신은 너무 순진했거나,

혹은

인간의 무한한 자기충족성과 욕망에 대해 무지했다.

두 개념은 인간사회속에서 오묘하게 어울린다.

그리고 각 사람들은 이 둘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며 살아간다.

값싼 웃음과 눈물을 팔아가면서..

 

 

#3

이런 착잡하기 짝이 없는 현실 속에서

이 모든 곤고함들을 온전하게 극복할 수 있는것은

우리의 내적인 개념의 이해와 인식으로는 부족하다.

당신도 이미 잘 알고 있듯이..

 

그래서 초월적인 전제가 필요하다.

무한히 이타적이면서 동시에 무한하게 공감할 수 있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는 힘.

불행히도 이것은 우리가 제일 잘하는

이성적인 사고에서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이 아니라

경험을 기초하여 공감각적으로 인식하는 것에서 비롯한다.

그리고 십자가 지붕아래 모인 부족하고 무식한 우리 죄인들은

그것을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은혜"라고 말한다.

 

혹,

"점입가경(漸入佳境)"이란 말을 아는가?

우리가 즐겨 사용하는 인과적인 순서 혹은

논리적인 절차가 귀결되어져 감에 따라

그 정도를 더해가는 것을 뜻한다.

 

쉽게 말해 "맛을 봐야 맛을 안다는 것"이다.

한번 은혜의 맛을 본 사람은 은혜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음을 안다.

은혜없이는 단 한순간도 타인과 선한 관계를 할 수 없음을 잘 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은 초월적인 존재이지만

동시에 우리를 아껴주고 사랑해주며 이해해주는 인격적인 분이다.

그런 하나님이 계셔서 난 오늘도 여전히 행복하다.

그리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사람들과 선한 관계를 맺어가려고

행복한 몸부림을 치면서 그렇게 살아간다.

2007. 4. 29

written by 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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