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보다 제가 먼저 죽게 해 주세요

정수 씨(가명, 32세)는 매일 밤 엄마보다 먼저 죽게 해달라고 마음속으로 간절하게 기도한다. 엄마 천영순(가명, 55세) 씨의 건강상태가 나빠졌기 때문이다. 24시간 호흡기를 끼고 방에 누워 생활해야 하는 정수 씨는 몸을 전혀 쓸 수 없는 지체 1급 중증 장애인이다.
8살부터 누워 지내는 삶
"집에서 그냥 잘 먹이세요. 20살까지밖에 못 삽니다."
의사의 말에 영순 씨의 심장이 아프게 죄어왔다. 8살 아들이 앓고 있는 근위영양증은 몸의 모든 근육 세포가 죽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병이라고 했다.
"애가 걷다가 쓰러져 자주 머리에 피를 흘리며 들어왔어요. 다리 힘이 약해서 그런다고 생각했지 그렇게 중한 병인지 몰랐어요."
영순 씨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들 뒷바라지에 힘썼고, 남편은 집을 나갔다. 다시 두 사람 생활비를 벌기 위해 정수 씨는 2년 동안 시설에 들어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감기와 고열로 집에 오기를 수십 번, 아주 심한 중증 환자라 영순 씨 외에는 아무도 감당할 수 없다고 했다. 정수 씨는 결국 시설에서 집으로 돌려보내졌다.
매일 아침 가슴을 힘줘 눌러 가래를 뽑아내고, 온몸을 구석구석 긁어주고, 변을 받아내는 영순 씨. 세 수저도 안 되는 밥을 1시간 동안 입에 조금씩 떼어 입에 넣어주는 수발은 아무나 할 수 없다. 그녀는 너무 손의 관절을 많이 쓴 탓에 조금만 무거운 걸 들어도 손가락에 통증이 심하다.
"정수가 인공호흡기 덕분에 20살 넘게 건강하게 제 곁을 지켜주어 다행이에요. 이 녀석 보내고 그 다음 제가 눈 감는 게 소원이지요. 어미라면 누구나 같은 맘 일 거예요."
▲ 정수 씨에게 엄마는 산소와 같은 존재다.
밤에도 편히 잠들 수 없는 모자
"사랑해요, 엄마!"
정수 씨는 천성이 밝아 영순 씨의 컨디션이 나빠 보이면 농담이나 사랑 고백으로 너스레를 건넨다. 간혹 건강을 잘 챙겨야 하는데 밥 대신 라면을 먹겠다고 떼를 써서 영순 씨 속을 썩이기도 한다.
정수 씨는 늦은 나이에 후원 받은 컴퓨터로 인터넷을 시작, 온라인에서 만난 따뜻한 사람들에게 사회성을 배웠다. 하지만, 그마저 손의 근육이 퇴화해 지금은 간신이 음악을 듣고 이웃들과 채팅창에서 인사를 주고받는 정도다.
정수 씨는 밤이면 1시간에 한 번씩 영순 씨를 깨워 자신의 몸의 방향을 바꿔달라고 부탁한다. 혼자 뒤척일 수 없고, 뒤척이지 않으면 통증이 너무 심해 견딜 수가 없다. 제대로 수면을 취하지 못하는 엄마에게 미안해 일부러 낮에 잠을 청하기도 한다.
올해 들어 영순 씨는 몸에 피로가 쉽게 오고 이유 없이 몸무게가 10kg이나 빠졌다. 보다 못한 정수 씨의 재촉으로 영순 씨는 병원에서 내시경과 MRI 검사를 받았다.
"엄마는 저를 돌보면서 절대 감정이나 눈물을 드러내지 않으세요. 그런데 병원에서 재검사를 받고 돌아온 날은 제 손을 잡고 막 우셨어요."
▲ 머리부터 발끝까지 엄마의 손길이 없으면 잠조차 이룰 수 없다. 엄마가 없는 하루는 생각할 수도 없다.
엄마, 하반신 마비가 염려되는 상황
영순 씨는 16년 전 아들을 혼자 목욕시키려다 허리를 삐끗했다. 오랜 시간 허리 통증은 약과 파스로 방치됐다. 그때 삐끗했던 충격이 목과 허리에 큰 충격이 되었고 결국 추간판탈출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하반신에 마비가 올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저를 간호할 수 없게 되면 어쩌나, 제 걱정부터 되더래요. 저 때문에 엄마가…"
▲ 진통제로 간신히 몸을 지탱하는 엄마, 잡아주는 손이 따뜻하다. 그래서 죄송하다.
정수 씨는 어려운 형편에 자신만을 위해 희생해온 엄마가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영순 씨는 자신이 치료받는 동안 누가 자식을 돌봐줄지 걱정되어 마음이 지옥이라고 했다.
영순 씨의 목 디스크 3군데 수술비와 수술을 하고 완쾌되는 동안 정수 씨를 돌봐줄 간병비용이 1800만 원 이상이 필요하다.
굉장히 힘든 상황에서도 얼굴에서 웃음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영순 씨 가족을 취재하며 마음이 시큰했다. 큰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어머니의 존재가 한없이 커보였기 때문이다. 수술과 보살핌 이후 모자는 예전처럼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갈 것이다.
24시간 자식을 간병하느라 청춘을 다 보낸 어머니를 우리 이웃들이 끌어안아 주고 지금까지 잘했다고 어깨를 다독여 힘을 보태주는 것은 어떨까. 영순 씨의 아름다운 희망이 다시 시작되기를 바란다.
※ 영순 씨 가족(서울 중랑)에게 도움을 주길 원하시는 분들은 월드비전(☎ 02-784-2004)로 연락하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