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철저히 나의독백으로 작성됫기에
읽는사람이 불편할 수도 있다.
전역이다.
680일정도를 보내고
남은 하루를 카운트 하는 지금
그동안의 군생활을 적어보고자 한다.
2008년 11월 13일
눈물이 앞을 가리는 날이 었다-.,-...
논산으로 가는 차안에서 나는
반쯤 미쳐있던 것 같았다.
호정이랑 근우랑 누구냐? 태수였나? 너 왜갔음?
아무튼 그렇게 세명과 엄마
운전은 내가
경부고속도로를 마지막으로 달린다는 생각에
창밖으로 눈물을 흩날리며 달려달려
논산 훈련소 앞에 섰던 그순간..
아
지금도 손발이 부들부들 떨린다 ㅡㅡ
아무튼 그렇게 눈물콧물 흘리며 입대를 하고
운동장 한바퀴를 돌았다
솔직히 말해서 그때는 그냥
나이가 좀 먹었을 때라서
어린 89년생 아가들이 울고불고 할때
담담하게 입대했던것 같다.
하지만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입소대대랑 진짜 논산훈련소랑은
거리가 좀 있다.
한 두시간 걸어서 육교도 건너고
산넘고 물건너 훈련소에 도착했다.
두시간 걷는동안 수만은 사색을 하며
절망감과 어느정도 친해질때쯤 도착한 훈련소
사실 깜짝 놀랐다.
건물도 새로 지엇고
무엇보다 화장실에 비데가 있었다는 사실에 무한한 감동을 느꼇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하여 시작된 훈련소 생활
29연대 8중대 2소대 1분대
처음 1주일은 이름표박는거
이른바 가뜸에 목매여 있었다.
2주차부터 시작된 훈련은 솔직히 말해서 의경이라서 그랬나
완전 개나가리 였다-.,-
훈련장까지 거리가 2키로 3키로였기 때문에
걸어가는데 2시간 걸어오는데 2시간
가서 수류탄 한번 던지고
m16몇방 따닥거리고 오면 하루가 갔다.
누구나가 그렇겠지만
훈련소에 딱 들어가면
벽에 붙어있는 4주간의 훈련 일정표를 볼것이다.
맨 마지막에
완전군장 행군이 있다.
당장 앞으로 690일은 고사하고
한달을 어떻게 보낼까
언제쯤 완전군장 행군을 하며
훈련소 생활의 끝을 맛볼수 있을까
하며 좌절하지만
순식간이다.-.,-
그때 분대장들이 나한테
소대장 훈련병 하라고 권유 했지만
조카 빡셀것 같아서 분대장 훈련병으로 하겠다고 했지만
분대장이 더 빡셋다 신발ㅡㅡ
소대장 훈련병은 행군할때 구령만 붙여주면 되었지만
나는 그냥 px조사 물집조사 호구조사 보급품조사
그냥 뭐있으면 나를 불렀던것 같다.
오상택...
그때아마 일병이었지
잊지 않을거야
그때만났던 1분대 동기들은 아직도 잊지못하고 있다.
의경이 전우애는 없지만
동기애는 끈끈하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느새 시간이 훌쩍가고
경찰학교 646기 입소
파라다이스라는 말을 반신반의 하였지만
누구보다 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흡연의 자유 통화의 자유 올림픽의 자유
자유의 소중함을 깨닳는 1주일이 아니었나 한다.
하지만 나는 공부에 목숨을 걸었기 때문에
560명중 23등으로 인천 1등을 하였다.
내인생에서 가장 높은 점수였고 다시 없을 영광이었지만
우리집에서 제일 먼 남부경찰서로 오게 된건
신의장난이었나..
역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었다.
남부경찰서가 어딘지도 몰랏고
인천에 남구가 있는줄도 몰랏다 ^^
자대배치 받는날
춘천역이었나 청주역이었나
아무튼 기차타고 각 지방청으로 뿔뿔이 흩어지던날
안녕을 300번은 했던것 같다
일면식도 없던 사람들도
같은 경찰옷을 입고있다는 사실만으로
헤어짐이 아쉬운 그런 정도였다.
그때 인천에 중대가
1003 1006 119 129 139 149 159 169
가 있었다.
169가 계양경찰서 방순대였는데
내가 여기갓음 대박이지만
129중대에 오게되었다.-.,-
내동기 민중이와 함께
당시 2부관님이었던 박노현 경장님과
지마 부사수였던 찬수형과 함께
경찰서로 도착과 동시에
수많은 갈굼에 부딛혔다.-.,-
마치
사자우리에
사슴새끼한마리 풀어놓은 상황이라면
이해가 빠를 수도 있겠다.
가장 기억나는건
첫날 볼펜에 머리 찍혀서 피났다.
-.,- 이유는 잘 기억 안나는데
신발정리 안한다고 그래서였나?
아무튼
그때 챙이 897기부터 899기 까지였을거다
901기는 임챙이었나 평짱이었나..?
다들 악마로 보였다.....
그런 악마들 밑에서 군생활을 하면서 깨닳은건
나는 눈치가 조카 빠르다-.,-
처절한 생존경쟁에서
라인도 타고
미친짓도 하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지만 나의 약삭빠름과 눈치로
수많은 미친짓을 뒷끝없게 처리하고
숨길때 숨기고 할때 하면서
잘 먹고 잘살았다. -.,-
대표적인 미친짓이라면 이경때 핸드폰을 썻다는 것과
낮잠 금지령이 내렸을때
예비 기대마에서 숨어서 쳐자고 그랫다.
차기수였던 기용이. 황형. 인규는 뭐빠지게 일하고 있을때..
난 자고있엇단 말이다 ...-ㅅ-..
미안해...^^
하루걸러 하루 개스걸리고
그 하루 거른날 미씽하고
벌설거지 하고
하루하루를 취침시간만 바라보면서 살아가다보니
일경이 되고 상경이 되는날이
신기할정도로 빠르게 다가왔다.
가장 기억남는건 첫전령이었던 휘민이형
쌔뱅,신병,야,병신등등
나를 호출하는 각종 단어들 대신
막내라고 불러줌으로써
조금이나마 따뜻함을 느끼게 해준 휘민이형은
군대 좀만 더 빨리 왓으면 더 친해질수 있었는데 아쉽다.
언젠가 길다가 마주치면 인사라도 해야겟다.
아무튼 평대원때는
신병이 들어오는것과
보직을 하나씩 업그레이드 해가는 재미에 버텼던것 같다.
물땅 평차. 평짱을 잡고
상경이 되자마자 챙을 달았다.
의경생활에서
평대원과 챙은 하늘과 땅의 차이를 보여준다.-.,-
일단 침상에 걸터앉을수가 있었고
담배를 털어끌수가 있었고
상황나가서 커피를 마실수 있었고
물을 허락없이 마실수 있었고
화장실고 허락없이 갈수 있었고
담배도 깨스걸릴때 빼도 내맘대로 필수 있었고
애들을 갈굴 수가 있었고
점호때 앞만 안꼴아도 됬었고
공식적으로 핸드폰 사용이 가능했었고
매점이용을 자유로이 할수 있었다.
그외 자잘한 혜택은 수없이 많았다.
대신 할일이 엄청나게 많아진다.
눈뜨자마자 당직관 전달 해야되고
가침을 물어봐야 하고
방범나가기 전에 근무를 짜야하고
각종 전달 사항을 전달한뒤
방범 나가면 근무를 짜고
상황나가면 소리계 받고
아 이걸 글로 쓴다는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
솔직히 말해서
챙질에 대해서 논술형으로 서술 하라고 하면
100페이지짜리 논문을 낼 자신이 있다.
그만큼 의경 생활에서 빠질수 없는 존재이며
중대가 돌아가게 하는 톱니바퀴이며
중대 일과의 90%를 챙들이 다 한다.
중대총원 100명에서
챙은 10명 정도 인데
90%를 10명이 하는거다 -.,-
그만큼 힘들고 눈치보이고
평대원이 몸이 힘들다면
챙은 정신적으로 힘들다.
때문에 수많은 자유가 주어지는 거다.
지금은 수많은 개혁과
이경우의 개짓거리로 인하여
중대가 개나가리가 되었고
그만큼 챙질도 느슨해졌지만
지금도 나는 챙들이 챙질하는거 보면 한숨이 나온다.
지금은 벌설거지 미씽 깨스라는 이름의
가혹행위들이 다 사라졌지만
불과 6~7개월 전
내가 챙짱때 까지만해도 분명히 저것들은 나와 함께 했엇다-.,-
때문에 난 챙짱때도 일을 조카게 했다...
23기들은 나한테 고마워 해야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니들을 내가 살린거야
그리고 한가지 더
내가 평대원과 챙을 하면서
함께 동거동락햇던 1주차 후임 재혁이
평대원때 거마에서 손붙잡고
힘내자는 말을 수도없이 했엇고
미친짓도 함께 했고
내가 하극상 친 재혁이 커트도 쳐주고
내가 좀 후달리면 재혁이가 와서 도와주고
서로 상부상조 했는데
어느새 이새끼는 2차 3차 외박 특박
다붙혀서 제대했다
나보다 후임인데
이게 군대에서 말이나 되는 일인가?-.,-
아무튼 재혁이한테
내 밑으로 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너가 없었다면 버티기 힘들었을테지만
그나마 니가 있어서 군생활 재밋고
힘들어도 참고 했던것 같애
너도 내가 그럴꺼야
난 너에게 수호신이니까
-.,-...?
아무튼 이런 개같은 암흑기를 거쳐
서무가 되던날
세상을 다가진 기분이었다
서무가 되면
운동도 할수 있고
공부도 할수 있고
pmp도 볼수 있고
아 이딴거 다 제끼고
챙질 안해도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했다.
그치만
서무되고 1달뒤쯤에
세상을 떠난 내동기 민중이..
지금도 네이버 등등 포털사이트에
인천남부경찰서 의경 이라고 검색하면
나온다.
개고생 다하고 서무달자마자
제대로 누려보지도 못하고 간게
너무나 가슴아프고
나혼자 꿀빠는게 미안하다.
친구새끼들이 강아지고
내동기 민중이는 강아지들을 만나서
개같이 하늘로 갓지만
하나는 약속한다
우리 918기 전역하는 그날
민중이 있는 절에 전역증을 꼭 가져다 줄거다
민중아
거참 거기 조카게 자유롭냐....?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수경이 되고 열외가 되고
나는 3소대 전령이 되었고
재혁이는 중대 기율&수하나가 되었다.
전령은 뭐 없다.
그냥 소대를 대표하는 반장정도라고 이해하면 된다.
그리고 이젠 그 전령조차도 23기에게 내리고
나는 완전열외가 되었다.
종합하자면 끔찍햇던 기억도 있지만
재밌는 기억도 많았다.
16 17 18기들끼리 교통 나가서
주안역에서 재밌게 놀고 스티커사진찍고
정수형 생일파티 해주고 했던 기억들
음주단속 나가서 미친새끼하나랑 조카 싸웟던 기억들
재혁이랑 태형이랑 방범 나가서 호의호식 했던 일들
등등..수없이 많다ㅎㅎ
죽을때까지 술자리에서 안주거리가 될 얘기들이
이렇게나 많다는게 너무나 좋다
그리고 재밌엇던 상황
2008년 12월 31일 재야의 종 철야
첫상황이 어서 그런지 개긴장 모드였지만
거마에 달린 tv로 가요대전도 보고
재밌었다.
2009년엔 첫 동계훈련
100일 훈련이라고 지칭하는 이 훈련은
그냥 100일동안 뭐빠지게 DM훈련 연습을 하는거다.
지금 내 비디오 폴더에 가보면
각종 DM 동영상이 있다
저게 하루이틀만에 만들어지는게 아니다
100일에 DM전 10일정도 해서 110일동안
분대,소대,중대끼리 서로의 합을 맞춰보고 또 맞춰보는거다.
아마 대부분 의경들이 적으면 3번
많으면 4번정도 DM을 받을거다
훈련 동안은 정말 힘들지만
끝나고 특박이 있기 때문에 그거만 바라보고 버틴다.
용산
용산참사 시신이 보관되어 있던
순천향대 병원에서
전철연의 난입을 막고자 입구를 지키고 있어따
후임 하나랑 고참몰래 끝말잇기 하면서 놀고 있는데
저멀리서 달려오는 전철연 스타렉스가 보였다
일단 막고보자 라는 짬밥안되는 생각으로
앞에 나섯다가 밟힐뻔 했다.
크락션에 하이빔 줜내 쏘면서 ㅅㅂ마치 내가 와이셔츠라도 된 양
다리미 처럼 달려와 짓누르려 했다 ㅅㅂㅅㅂㅅㅂ
제주도 9박10일
제주도에서 정상회의 한다고
9박10일동안 다녀온 기억이 있다.
거마 3대 배에 태우고 하루 밤새서 갔다 왔다.
공항 활주로에 차세워놓고 안에서 우발대비 하고
같이간 169랑 축구 시합도 하고
여기서 장기를 처음 배웠다.
때맞춰 서울등 수도권 지역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로
개난리가 났다.
제주도 안온 인천중대들도 서울청 지원을 가면서
고생했지만 우리는 다행히 제주도에서 꿀빨았다.
평택 쌍용차 상황
1달동안 매일 아침 6시에 출발해서 밤 12시에 부대에 도착했다.
그무더운 여름날 완진하고
근무를 섰다.
처음으로 선봉을 서서
화염병도 맞아보고 볼트도 맞아보고
뉴스에도 나와보고
2년동안 상황중에서 재일 빡셋지만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고 보람찬 상황이었다.
2009 인천세계도시축전
그냥 꿀빨았던 기간이었다.
90일 동안 진행됫는데
1주일에 3일씩 3개중대가 돌아가면서 나갔던 걸로 기억한다.
그냥 안에서 방범도는 거였는데
꽁짜로 다 구경했다 -_-v
139 대원중 하나는 거기서 근무스다가 바이킹타다가
사진찍혀서 걸렷지만 나는 그렇게 허술하지 않다.
인천대교 개통식 & 걷기대회
개통식 전날 이명박대통령 온대서 다리 밑에 들어가서
위험물 검침했다. 아마 인천시민중 인천대교 밑에 들어간사람은
우리중대원들밖에 없을거다...-.,-
걷기대회가 있던 날은 인천 전중대가
코스 전구간에 배치되었다.
화장실이 없어서 똥줄타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인천의 마스코트인 인천대교를
개통도 하기전에 밟아봤다는데에 의미가 있다.
2010년에는 상황이 별로 없었다
그나마
요번 태풍 곤파스 때문에
충남청 피해복구지원 나가서
인삼밭 하나를 구해냈다.
그리고 겨울에 폭설 내렸을때
새벽부터 교통근무 나가서
삽하나 들고 빠진차들을 꺼내주고
꼬리끊기 근무를 하고
시민들이 고맙다고 인사했을때 보람을 느꼇다.
아.
2010년 2월인가 3월인가
나는
주안역에서 입수,탈모 보행을 하다가
황성용, 김태형과 함께
사진에 찍혀서 본청 청장과의 대화 란에
당당히 얼굴을 알리는 대업을 달성하였다.
부상으로
외출1달정지 외박1회정지 특박정지
반성문3장 복무규율위반6장
제출을 하사받았고
그일로 인하여
아직도 이경우는 나를 싫어할 것이다.
가뜩이나 가혹행위를 하였다는 이유로
본서 청문감사관들에게 찍혀있던 나를
지옥에 빠뜨릴 신호탄을 터뜨려 준것이다.
참고로 나는 구타및 가혹행위를 하지 않았다.
철저히 오해를 받은것이다.ㅅㅂ
뭐
이것도이제 추억이다 후후
마지막으로
의경은 방순대고 기동대고
상황 나가는 건 똑같다.
방순대 간다고 상황 안나가는거 아니고
기동대 간다고 방범 안나가는거 아니다
다만 40대 60으로
방순대는 방범을
기동대는 상황을
조금더 많이 나간다는 것뿐이다.
거기다 인천 기동대는 다 교기대라
교통 근무를 매일같이 나간다.
그리고
2달마다 3박4일
2주에 한번 정기외출
각종 특박과
근무 자체가 사회에서 방범 순찰을 도는 거니까
그맛에 군생활 하는것 같다.
아무튼 내군생활은 끝났지만
너무나 재밌던 기억은 평생 간직할거다.
누구나가 그렇겠지만
군생활이라는게 조카길다-.,-
하루하루를 세자면
평생 오지않을 것만 같던 전역인데
이미 이만큼의 시간이 지났다는게 신기할 뿐이고
남자로 태어나서 꼭 넘어야 할
산하나를 가뿐히 넘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다행이고 감사하고 오늘 이순간을
누군지 모르지만 나중에 내 와이프하고
자식새끼들에게 미리 바친다 후후..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