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터넷 곳곳에는 유명환 외교부장관 딸 특채관련 패러디영상이 돌고 있다.
어찌나 완성도가 높은지 무척 신경써서 만들었다는 감탄과 함께 지켜보고 있는데,
자막에 유독 눈이 번쩍했던 문구.
'그렇다고 못사는 집 애들처럼 고시공부를 시킬수도 없고..'
그렇다. 고시공부는 못사는 집 애들이 유일하게 붙잡을 수 있는 승천의 두레박일지도 모른다. 이 사회 어디에서 돈없고 빽없는 사람들이 그만한 기회를 올라탈 길이 있던가 말이다.
몇십년 미친듯이 야근에 특근을 밥먹듯 직장생활한다고 그런 명예가 주어지던가. 그나마 있는 집 자식들과 어깨라고 견줄라치면 장사라도 해서 악착같이 돈벌어 졸부행세라도 해야할지도.
사법고시를 없애고 로스쿨을 도입해야한다고 목청높여 얘기했던 사람들의 주장은 '똑똑한 젊은이들이 고시촌에 틀어박혀 몇년을 허송세월하는 이 사회의 잉여인력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했었다.
혹자는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놈들이 고시하나 떡하니 붙었다고 뜬금없이 공무원 5급, 4급에 자리잡고 앉는 시스템이 문제'라고도 했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과연 그들은 고시라는 시스템을 접해본 적이 있는가. 그런 노력을 해본 적이 있는가.
대한민국 3대 국가고시라고 하는 행정고시, 외무고시가 5급 공무원인 반면, 사법고시는 4급 공무원에 준하는 대우가 주어진다.
평균 사시합격자들의 수험기간은 4년 6개월, 매일 공부시간은 10-15시간.
주말도 명절도 가족의 경조사조차 참석하지 못하면서 1년 365일을 4,5차례 반복해야만 붙을 정도로 시험의 수준은 가히 top이라 할 수 있고, 일반인들은 대체 무슨 소린지도 알아듣지 못할 무수히 어려운 전문언어와 수십년 이어져온 학자들의 다양한 학설과 대한민국 건국이래 켜켜이 쌓여온 엄청난 양의 판례들을 평균 80만 페이지에 걸쳐 반복.또 반복하고나서야 겨우 800-1000여명 합격자 사이에 편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마저도 합격자수는 매년 줄이는 형국.
젊은 청춘들을 구제한답시고 만든 '로스쿨'은 정작 전문가들 사이에 무수히 많은 걱정과 비난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린애 달래듯 달콤한 사탕발림으로 기꺼이 저지르고 말더니.
우리나라 법은 독일법을 근간으로 일본법을 이어받은 성문법이기 때문에 불문법인 영미법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시스템이라 할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로스쿨'을 도입한다?
정작 우리가 참고해야할 독일에서는 로스쿨이라는 제도 자체가 없고, 일본에서조차 로스쿨 졸업자의 사법고시 합격률은 고작 25%밖에 안될 정도로 이미 일본에서는 로스쿨이 법조인을 만들기에는 턱없이 수준낮은 시스템이라며 외면받고 있는 상황에서 곳곳에 폐교가 넘치고 있다는 사정은 왜 쏙 빼먹으셨는지.
우리나라에 배심원제도가 정착되어 있던가. 우리나라에 헌법.민법. 형법등 이미 만들어진 성문법이 존재하지 않던가. 미국에서는 변호사가 설득력있게 배심원만 구슬리면 있던 죄도 없어지고, 없던 죄도 있게 되며, 심지어 재판도 필요없이 돈으로 합의하는게 다반사인데. 그렇니 법 몇조 몇항 보다는 유사한 사건의 이전 판결이나 피고인의 감정. 건강상태등을 고려해 얼마든지 결말이 뒤바낄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자유로운 생각을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능력. 즉 토론 위주의 로스쿨이 당연하다지만. 우리나라는 엄연히 헌법, 민법, 형법, 갖가지 특별법과 하위법들이 떡하니 존재하고 이럴 땐 이렇게, 저럴 땐 저렇게가 어느 정도 규정돼 있는 상황에서 미국식 로스쿨이 대체 왜 필요하느냔 말이다. 그것도 한 학기에 천만원에 달하는 누구나 들어가지도 못하는 그들만의 상아탑을 만들어놨으니.
이제 2016년 사법고시가 폐지되면 그들만의 상아탑을 졸업한 자들에 한하여 이 땅의 정의와 공평을 책임질 판.검.변호사가 나와야 하는 실정이니. 참으로 개탄스런 수준이 아니냔 말이다.
수년간의 노고를 기꺼이 감수한 고시 합격생들에게 그 대우가 과하다고, 그렇니 다른 일반인들에게도 그 기회를 열어줘야한다고 어찌 그리 당당히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무한경쟁에 돌입한 법조시장에서 사무실 임대료조차 내지못해 문닫는 변호사가 수두룩한 판국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촌이 땅을 사면 배아프다'는 심정으로 그들의 청춘 또는 인생을 바친 수고들은 아랑곳 하지 않은 채, 그저 밑도 끝도 없는 기회균등 운운하며 언론을 부추기고, 무지한 국민들을 앞장세워 국가고시를 없애고 나니 이제는 가진 자들이 그 자리를 대물림하는 시스템으로 정착된 것이 아니냔 말이다.
국가고시는 학력, 성별, 나이, 심지어는 응시횟수까지 그 어떠한 제한도 없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도전해 볼 수 있는 길이란 말이다. 이보다 더 공평한 기회균등이 어디있단 말인가.
개천에서 용나는 시절은 지났다지만, 고시가 존속되는 한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개천에서 용들은 자라나고 승천하고 그 꿈들을 한껏 펼칠 수 있는 것이다.
대체 언제까지 노력하지 않은 자가 노력한 자들의 성취감까지 빼앗아야만 등따시고 배불러 더 이상 남의 떡은 탐내지 않을 것인지.
유명환장관의 딸 특채논란은 과연 그들만의 도덕적 해이가 만든 개인적 사건인 것인지. 그들만의 개념없는 행동의 결과로 치부해버리면 되는 것인지.
고시폐지, 대체 누가 찬성했던가. 앞다퉈 선진국 운운하며 우리도 함께 하자고 누가 동참했더냔 말이다. 참으로 사촌이 땅을 사면 배아픈 국민들, 그리고 그들을 약삭빠르게 이용하는 이른바 가진 자들. 모두가 똑같이 비난받아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