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최고의 명절 추석이에요.
17시간 교통체증을 뚫고 일가친척이 다 모였어요.
고생고생해서 막상 모이면 다들 혼자 놀기 바빠요.
어차피 인생은 혼자사는 거니까요.
할아버지
정년퇴임 후 이빨빠진 호랑이에요.
손자들 용돈 줄 걱정에 차라리 3박4일 단기 가출이라도 할까 고민 중이에요.
왜 설날에도 털리고 추석날에도 뺏겨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가요.
반가워야 할 손주들 얼굴이 다 세종대왕으로 보여요.
'그래도 내 제사상 차려줄건 새끼들밖에 없지' 라는 생각에
빳빳한 신권을 꺼내들어요. 받으면 고마운 척이라도 해줬으면 좋겠어요.
할머니
3시간째 부동자세로 작은마랑 수다중이에요.
할머니는 수다라고 생각하는데 작은엄마는 아닌가봐요.
판소리도 아닌데 고수가 된 마냥 추임새만 넣고 있어요.
할머니는 6시간 완창해서 명창 대열에 오를 기세에요.
대화의 주제는 옆집 며느리의 효성이에요.
아빠
12시간째 잠만 자고 있어요.
장시간 운전하느라 철야한 날보다 더 피곤해요.
큰아빠
15시간째 잠만 자고 있어요.
작은아빠
하루 먼저 도착해 숙면을 취한 작은아빠는
일어나자 마자 티비 리모컨과 사투를 벌이고 있어요.
명절전용 성룡영화를 보고 전에 본건지 안본건지 헷갈려 하고 있어요.
누가 채널을 돌리려고 하면 갑자기 집안의 큰어른이 되셔서 족보를 다시 확인해요.
그래봤자 큰아빠와 아빠가 깨어나기 전까지에요.
삼촌
오자마자 고향 친구들 만나러 나갔어요.
내일 아침 꽐라가 누군가에게 엎혀 들어올게 뻔해요.
사실 시골와서 삼촌 얼굴 본적 없없어요.
어쩌면 삼촌 내려왔다는 건 그냥 소문일지도 몰라요.
큰엄마
동태전 부쳐요
엄마
동그랑땡 부쳐요
작은엄마
할머니 수다 들으며 산적 부쳐요
그녀는 언제나 멀티플레이어에요
사촌오빠
아이폰으로 하루종일 게임해요.
사촌언니
아이폰으로 하루종일 트위터해요.
사촌동생
성룡영화를 복습하던 나에게 와서 엉기기 시작해요.
입을 막기 위해 얼른 슈퍼로 데려갔어요.
짱구를 집어줬어요. 싫대요.
새우깡을 집어줬어요. 싫대요.
그러다니 마켓오 순수감자를 집어요. 오 마이 추석용돈~!
과자 2개 집었을 뿐인데 6천원이에요
얻어먹을때는 고급으로 비싼걸 먹어야 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아나봐요.
시골슈퍼라 할인따위 없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마트에서 쟁여올 걸 그랬어요.
우리오빠
여자친구와 전화질 중이에요.
'보름달을 보니 니 생각이 난다' 개드립으로 싸움질 중이에요.
'내가 얼굴이 크다는 거냐? 촌스럽다는 거냐'로 시작해서
사랑이 식었으니 날 버리고 시골로 3박 4일이나 가 있는거 아니냐.
아직 날 사랑하면 지금 당장 올라오래요.
이참에 깨졌으면 좋겠어요.
나
남친도 없고 아이폰도 없는 잉여인간이에요.용돈도 4천원 남았어요.
갑자기 사촌동생들이 개떼로 달라 붙어요.놀이터에 가재요.
엄마한테 구원요청을 했더니 '니가 전 부칠래?'라는 싸늘한 대답이 돌아와요.
졸지에 보호자 되어 사촌동생들과 놀러 나갔어요.
동네 아주머니가 새댁이 참 젊고 복-_-스럽다고 덕담해주셨어요.
연휴 너무 길어요. 빨리 우리집에 가고 싶어요.
저녁이 됐어요.
혼자 놀던 가족이 다 한자리에 모였어요.
그래도 모이니까 좋아요. (음식이)
맘을 바꿔 먹었어요.
일년에 한두번은 괜찮을거 같아요.
가족에게 잘해야겠다는생각이 0.1초 들었어요.
이래서 다들 명절명절하나봐요.
다들 추석 잘보내세요.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