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뵌 황장엽 선생님
written by. 이현오
그의 말속에든 '김정일 독재체제를 파탄내고 북한주민을 구해야 한다'는 진정성은 언제나 동일해 보였다.
탈북자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다하며 고령에도 불구하고 탈북자 단체가 주최한 자리면 가능한 참석하고자 애쓰시고, 정히 건강이 허락지 않으면 손수 쓰신 서면으로 행사를 빛나게 하셨던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비서)북한민주화위원장이 10일
갑작스럽게 타계했다.
향년 87세다. 하지만 선생께서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도 활발한 강연과 20권에 달하는 서적 출판 등 집필활동을 계속했다고 측근이 밝히고 있다. 특히 지난달 30일에는 대북 단파라디오 방송인 '자유북한방송'의 정규 프로그램인 '황장엽의
민주주의 강좌'에서 "개인은 죽어도 집단은 영생합니다"의 제목으로 강연하고, 지난 7일에도 북한의 '3대 세습'을 비판하는 내용의 파일을 남겼다고 하니 그가 남긴 마지막 육성 녹음으로 보여진다.
기자가 처음 주체사상의 대부라고 알려진 '황장엽' 이름 석자를 분명하게 인식한 계기는 20년 전인 1990년 현역 장교로 있을 때다. 이 때 기자는 육군 초급장교들을 대상으로 '북한사회 실상'과 '북한 독재체제 비판' 과목으로 장교들을 교육하고
있을 때고, 과제에 '주체사상 비판'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사회 젊은이, 특히 운동권 내 대학생 사회에서는 운동권의 바이블로 불리어지던 '강철서신'을 포함해 주체사상교육이 널리 확산되고 있었다. 그래서 당시 비판 교육을 하면서 황장엽 선생에 대한 이름을 크게 각인했던 것으로 지금도 기
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로부터 7년 후인 1997년 일본 방문 중 베이징을 경유해 4월 서울공항으로 망명한 뉴스를 접하면서 다시 한번 놀라게 되었다. 당시는 김일성 사망 후 3년이 되는 시점으로 북한은 아사자(餓死者)가 속출하고 있던 때에다 '주체사상의 대부
'가 망명함으로 인해 김일성·김정일 체제의 종말이 다가오는 것 아니냐는 낙관론도 지배했었다.
1949년 모스크바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1970년대 북한의 통치이데올로기인 주체사상을 체계화한데다 이를 김일성 주의로 발전시킨, 직책으로 봐도 김일성종합대학 총장(1965), 당중앙위 비서(1984),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1984),
사회과학자협회 위원장(1987)으로 최고위층의 망명이었으니 어찌 그렇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황 선생의 남한에서의 망명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그의 강연활동이나 외국방문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통제했기 때문이다. 햇볕정책 추진으로 교류·화해협력에 물꼬를 튼 양 정권 시각에서 볼 때 당연히 그의 활동은
눈엣가시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기자가 황 선생의 강연현장에 나가 취재를 하려해도 당시 그를 보호하던 10여 명에 달하는 관계 직원들의 제지는 눈으로 보일 정도였다. 무언의 압력을 보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출범 후에는 활동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미 정부의 초청에도 우리 정부 당국의 방해공작으로 유야 무야 되었던 선생의 미국 방문이 열리게 돼 미 조야에서 강연을 한 게 바로 지난 해 3월말에서 4월초였다.
언젠가 황장엽 선생은 천안에서 열린 한 포럼 주최 특별강연회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북한 실정에 대해 남한 국민들이 너무 몰라 실체 전달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고. 이 말을 기자는 취재하면서 가끔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는 또 한미동맹이냐, 북한독재체제와의 공조냐를 분명히 택할 것을 강조하면서 북핵에 대한 입장을 명백히 밝히기도 했다.
즉, "나라의 발전방향으로 한미 동맹의 강화를 통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길을 계속 고수하고 개선해 나갈 것인지, 아니면 북한 독재체제와 공조하고 용공반미 방향으로 나갈 것인가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고 말하면서, 북핵에 대해서는“북한
의 핵 보유는 미국, 중국, 일본 등 주변 강대국과의 경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치, 전술적 정책에 따른 남한 점령 수단이 명백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런 발언들이 결국 당시 정권에게는 눈엣가시이자 커다란 혹으로 작용한 것이다.
그럼에도“남한 국민들은 이를 자각치 못하고 의식 위험사태가 더욱 진전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연세 탓인지, 억양 탓인지 취재현장에서 귀를 쫑긋해서 듣지 않으면 무슨 말인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의
말속에든 '김정일 독재체제를 파탄내고 북한주민을 구해야 한다'는 진정성은 언제나 동일해 보였다.
망명 이후 북에 남겨진 부인을 비롯해 딸과 사위들이 모두 숙청 당하고, 망명 중 김·노 정부의 핍박 속에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고 북한독재체제 비판과 북한민주화 운동에 앞장선 탈북자의 대부 황장엽 선생. 삼가 고인의 영전에 애도를 표하는
바이다.(konas)
코나스 이현오 기자(holeekv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