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코펜하겐. BKBN 방송 "울타리에 페인트 칠하기" 촬영
현장. 1984년 6월. 맑은 날씨.
*카헤버는 화이트색 페인트로 울타리를 칠하기 시작한다. 나이가 어린 레나스에게는 실제로 페인트 칠을 시키지 않고 스케치북에
연필로 그려진 울타리 그림에 색연필로 색칠하는 역할을 맡겼다.
촬영현장에는 레나스의 가족들도 지켜보고 있었다.
더크니 : 레나스는 직접 페인트칠을 하고 싶어해요.
*아들 : 더크니(8살). 레나스보다 두살 많은 친오빠.
아버지 : 나도 알아.
어머니 : 하지만 레나스 때문에 카헤버씨가 상금을 놓칠 수는
없잖아요.
아버지 : 그래, 최소한 일만 망치지 않는다면 카헤버씨는 이번해
겨울까지도 고생하지 않고 지낼 수 있을 거야.
*2시간이 지났을 때 카헤버는 페인트 칠을 절반 완성 하였지만
레나스(6)는 스케치북에 색칠을 이미 다 마쳤다.
사회자 : 이제 2시간 동안 휴식입니다. 카헤버씨, 수고 많으십니다. 레나스는 벌써 다했나?
레나스(6) : 저도 페인~트.. 하고 싶어요~
사회자 : 레나스는 열정이 넘치는 구나.
*휴식시간에 BKBN 채널에서 마련해 주는 간식들을 사회자가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카헤버와 레나스는 간식을 먹으면서도 사회자와 함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촬영했다.
사회자 : 카헤버씨, 코펜하겐에서는 한번도 일자리를 구해보지
못했나요?
카헤버 : 8년 전에 "데도마이클"식당에서 3개월 일했습니다.
사회자 : 3개월만 일했다고요?
카헤버 : 네, 그곳에서 3개월씩이나 일했습니다.
사회자 : 일이 힘들었습니까?
카헤버 : 그 식당은 하루종일 공포영화 비디오만 재생시켜서 밥먹는 손님들에게 혐오감을 주는데 매일 쉬지않고 반복됩니다. 한번 오고 다시는 안 오는 손님들이 많지만 식당주인하고 성격이 비슷한 손님들만 계속 찾아옵니다.
사회자 : 지금 카헤버씨가 말하는 내용을 상상하면서 들으니까 정말 웃기는 군요. 그것 때문에 그만 두었습니까?
카헤버 : 결국 식당 주인하고 싸워서 그만두고 인연을 끊었습니다.
사회자 : 그렇군요, 카헤버씨가 꼭 좋은 직장을 찾게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이번에는 레나스하고 대화를 해 볼까?
레나스(6) : 색칠~ 다 했어요~
사회자 : 레나스도 페인트 칠을 하고 싶지만 꾹 참고 있구나. 하지만 레나스가 이해를 해줬으면 한다.
레나스(6) : 울타리에 양들이.. 한마리도 안 보여요.
사회자 : 너의 친구들은 잠시 다른 곳에 있어.
레나스(6) : 잠시요?
사회자 : 그래, 페인트 묻으면 안 되잖아. 페인트가 완전히 마르고 나면 양들은 다시 이곳으로 올 거야.
레나스(6) : 양들도~ 페인트도~ 같은 하얀색이잖아요~
사회자 : 레나스. 니가 페인트를 좋아한다고 해서 양들도 페인트를 묻히고 싶어할까? 사람이든 동물들이든 각자의 성격이 있고 매력이 있는 거야.
*카헤버는 방금 사회자가 한 말을 듣고 과거에 메디세를 기억속에 떠올린다. 페이컨이 살아 있을 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카헤버, '메디세'는 덴마크 여자대표야. 체스를 못하는 남자하고는 절대 안 사귄다고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어. 넌 방법도 알기 싫어 할 정도로 체스는 인연이 없잖아."
*점심시간이 끝나고 카헤버는 다시 페인트 작업을 시작한다. 레나스는 이미 자신의 할 일이 끝났기 때문에 가만히 보기만 했다.
사회자 : 레나스. 심심하지?
레나스(6) : ..
사회자 : 지금 페인트 칠을 하고 있는 아저씨를 위해서 노래 한곡 해 줄 수 있겠니?
레나스(6) : 어떤 노래를 불러요?
사회자 : 지금 상황과 어울리는 노래를 부르면 더 좋겠지만 레나스가 부르고 싶은 거 불러 봐.
레나스(6) : 지금.. 어울리는 노래는 잘 몰라요.
더크니(8) : 너, 없는 노래 잘도 만들어 내잖아.
사회자 : 레나스가 직접 노래를 만든단 말이야?
더크니 : 예, 노래를 부르면서 순간적으로 생각해 내요. 그래서 노래 도중에 포기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사회자 : 그래도 괜찮으니까 레나스, 어차피 코미디야.
*레나스는 따로 생각할 시간도 없이 직접 노래를 만들면서 부른다.
"양들에게는 왜 울타리가 필요하지?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싶어도 못 다니는 거야? 그럼, 울타리를 좀 더 넓게 만들 수는 없을까? 내가 볼 땐 이것도 왠지 비좁은 거 같아."
사회자 : ..
더크니(8) : 레나스. 긍정적인 노래를 불렀어야지.
사회자 : 노래가 끝난 거니?
레나스(6) : 하다가.. 그만 줬어요, 아니~ 그만 뒀어요~
더크니 : 말했잖아요, 레나스는 노래를 끝까지 못하고 포기
한다고요.
*그때 무관심한 것 처럼 보였던 카헤버가 레나스를 칭찬한다.
카헤버 : 너처럼 노래를 만들면서 부르는 제주는 나 같으면 시작도
못해.
사회자 :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레나스는 겨우 여섯살인데 노래를 아주 잘하는 구나.
*카헤버가 페인트 칠을 다 마칠 때가 되었다.
레나스(6) : 아저~씨.. 남은 부분만~
카헤버 : ..
사회자 : ..
어머니 : 하지만 레나스..
더크니 : 너 때문에 아저씨가 상금을 놓칠 순 없어, 아저씨는 돈이 꼭 필요해!
사회자 : 이건 어떻습니까? 방송을 다 마친 후에 레나스에게 별도로 기회를 주는 겁니다. 그러면 카헤버씨에게도 지장이 없을 테니까요.
어머니 : 그렇게 하면 되겠네요.
레나스(6) : 이미 다 끝나고.. 소용 없을 거에요..
아버지 : 레나스. 너 자신만 생각 하지마.
레나스(6) : 나도 하고 싶어요, 허락 해 주세요~
아버지 : 레나스, 너 야단 좀 맞아야 겠군!
*레나스는 얌전하게 주저앉아서 울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본
카헤버는 11년 전에 메디세가 그녀의 집 우편함 앞에 주저앉아서
울었을 때를 기억한다. 카헤버는 페인트 붓을 들고 레나스에게
다가간다.
카헤버 : 레나스. 나머지는 니가 색칠해.
어머니 : 하지만 카헤버씨..
사회자 : 카헤버씨, 저는 사회자이지만 한번 더 기회를 드릴 수 있는 권한은 없기 때문에 만약 잘못 되면 카헤버씨를 도와 줄 방법이
없습니다.
카헤버 : 제가 선택한 일은 다른 사람에게 원망하지 않습니다.
오늘같은 추억만으로도 저에게는 이미 상금을 준 것이나 마찬가지죠. 그리고 지금 어차피 코미디 아닙니까.
레나스(6) : 제가 잘못했어요, 아저씨가 다 하세요~
카헤버 : 레나스. 붓을 잡아. 니가 원하는 자유를 페인트로 표현하는
거야.
레나스(6) : 아저씨..
아버지 : 낮은 점수를 받으면 상금은 절반만 받게 될 텐데
괜찮겠습니까?
카헤버 : 그정도는 충분해요.
*레나스는 카헤버에게 페인트 붓을 이어받아서 울타리로 향한다.
레나스의 눈에는 눈물이 멈추었다. 그 모습은 마치 비가 온 후에
맑은 구름의 모습과 같았다. 레나스는 최선을 다하면서 페인트 칠을
하고 있었다. 카헤버는 여섯살인 레나스의 귀엽고 아름다운 모습을
지켜보면서 상금에 대한 집착은 사라졌다.
사회자 : 레나스, 잘하고 있어!
카헤버 : 진작에 레나스를 시켰어야 하는 건데 말이죠.
*레나스의 눈빛은 점점 자신감과 아름다운 자유를 추구하고
있었다.
레나스(6) : 그~런데.. 너무 힘들어요~
*나이가 어린 탓에 레나스는 빨리 피곤함을 느꼈다. 그것 때문에
레나스는 실수로 발이 페인트통 손잡이에 걸려 넘어지면서 페인트
를 쏟아 그 부분은 울타리와 잔디밭을 하얀 썰매장으로 만들어
놓았다. 심사를 맡은 개그맨들은 심사점수에서 냉정하게 실격처리를 하면서도 그 이유를 코믹하게 해설하였다. 레나스의 눈빛은
다시 흐린 날시가 되어 버렸고 카헤버에게 눈치만 보고 있었다.
더크니(8) : 레나스! 너 때문에..
*카헤버의 얼굴은 더욱 불쌍한 인상으로 변했다. 냉정한 개그맨들
은 카헤버의 불쌍한 모습에 대해서도 서로 코믹하게 해설한다.
"아무래도 실격이니까 상금은 절반이 아니라 아에 국물도 없죠."
*카헤버는 레나스에게 가까이 가서 차분하게 말을 한다.
카헤버 : 레나스..
레나스(6) : 아저~씨.. 저 때문이에요..
카헤버 : 넌 소질이 있어, 페인트 미술가를 목표로 하는 건 어때?
레나스(6) : ?
*카헤버는 더이상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고 인사도 없이 촬영현장
에서 나가버린다.
아버지 : 잠깐만, 카헤버씨! 그대신 제가..
사회자 : 이미 돌아섰습니다. 안타깝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