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커피를 끓였다. 새로 주문한 코스타리카산이다. 코스타리카산 커피는 커피 콩이 크고 탄 모양이 깨끗하다. 맛이 부드럽고 특히 적절한 신 맛이 일품이다. 커피의 신 맛은 묘한 매력이 있다. 꿀과 파인애플이 들어간 조금 단 맛의 볶음밥을 먹기 전에 먼저 테이블에 내기에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한다. 시계를 본다. 어디가 고장났는지 알 수 없지만 언제부턴지 알람소리가 요상해진 시계다. 지난달 부터 띠리리리 커컥 하는 알람소리가 나는 거다. 그러나 시계가 정상인지 아닌지는 큰 상관이 없다. 아마 곧 그녀가 올 것이다. 그는 그녀가 지난 번과 같은 옷을 입고 올지 궁금하다. 뒤통수에 바짝 올려붙은 똥머리 아래로 까마득하게 떨어지는 그녀의 목덜미는 아이러니하다. 그는 최대한 그녀에게 맞추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가 천박하게 구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는 친절하고 배려깊은 남자의 인상을 주고 싶다. 자꾸 담배를 피운다. 거울을 본다. 소변이 마려운 것도 아닌데 화장실에 들락거린다. 다시 담배를 피운다. 그녀도 담배를 피우지만, 그래도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녀가 냄새에 미간을 찌푸리는 일이 없도록 방향 스프레이를 넉넉하게 뿌려둔다. 하지만 다시 담배를 피운다. 방향 스프레이를 뿌린다. 시계를 본다. 친구녀석으로부터 전화가 온다. 그러나 그 전화를 받지는 않는다. 어쩌면 그녀가 막 도착해서 내 집을 바라보았을 때, 침울하고 어두워보이는 현관은 그녀로하여금 돌아가고 싶다고 여기도록 만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관문 밖 등을 켜둔다. 작은 달 같은 오렌지 등은 오래된 나무 문을 따뜻해보이도록 덮어줄 것이다. 그녀는 이 앞에서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남자의 배려에 고마워할지도 모른다, 고 그는 생각한다. 그러나 어쩌면 조금 과하다고 그녀가 부담을 느낄지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친다. 잠시 망설이다가 현관 불을 끈다. 꽤 시간이 지나 그녀가 오지 않는다. 음악을 끄고 TV를 켰다가 집중하지 못하고, 다시 현관 불을 켠다. 당연히. 그녀는 이유가 있어서 늦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그녀가 오기는 올 것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그가 그녀에게 부러 전화를 해서 왜 늦는지를 묻거나, 어딘지를 묻는 등의 천하고 불합리한 행동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소파에 눕는다. 머리가 헝클어질지도 몰라 일부러 옆으로 누워 TV를 본다. 달달한 볶음밥이 다 식었다. 커피를 더 데우면 향이 모두 날아가 버릴 것이다. 차갑고 시고 부드러운 풍미가 풍부한 코스타리카산 커피를 반 잔 정도 따라 마신다. 담배를 피우고 방향 스프레이를 따로 뿌리지는 않는다. 당연히. 아주 늦은 밤을 지나 새벽도 지나 그녀는 미안한 얼굴로 조심스럽게 웃으며 현관 벨을 누를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2시를 넘은 이 시각은 하루를 마무리 지을 시간이다. 그러나 오늘은 그것을 생략하기로 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모든 집중을 다해 그녀를 기다리는 중이다. ---------- 시애틀 퍼블릭 마켓의 경사진 입구 오른쪽으로 파란 페인트가 칠해진 카페 옆으로 붙은 나이든 문 하나. 구름이 끼고 바람이 불지만 여전히 밝은 오전 11시. 현관 등을 우두커니 켜놓고 주인은 잠이 들었다. 대낮에 현관 등을 켜 놓은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은 두고두고 오지 않았다. Seattle. 당신과 나의 더 많은 이야기, www.kyom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