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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의 여왕’ 연수영 」2연개소문의 유혈혁명 ⑵

조의선인 |2010.11.09 15:46
조회 181 |추천 0

 

◆ 연개소문(淵蓋蘇文)의 동부가(東部家), 임인반정(壬寅反正)을 일으키다!

 

운명의 날인 서기 642년 10월 21일 아침이 밝자, 패수 강변 열병식장에는 요동으로 떠날 1만 군사가 도열하여 식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시(午時)가 가까워지자 귀족 대신들이 타고 온 수레와 마필이 속속 도착했다. 하릴없는 도성의 구경꾼들도 벌써 수백명이 열병식장 주변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구경꾼들은 열병식장에 들어갈 수 없었으므로 장막에서 멀리 떨어진 강변 둔치에 모여 앉아서 구경해야만 했다.

 

연개소문은 아침 일찍 입궐하여 영류태왕(榮留太王)을 알현했다.

 

“태왕 폐하! 소신 개소문이 성지(聖旨)를 받들어 요동벌로 떠나고자 하옵니다. 출병하기 전에 군사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열병식을 거행하고자 하오니 폐하께서 친림하시는 광영을 베풀어주소서!”

 

영류태왕이 손사래를 친다.

 

“아냐, 아냐! 열병식을 마치고 다시 입궐하도록 하게. 짐이 개소문 그대에게 특별히 하명할 것이 있으니까… 그러고 나서 임지로 떠나도록 하게. 그런데 짐은 어젯밤부터 배탈이 나서 바깥출입을 할 수가 없게 됐구나. 이젠 늙으니까 몸이 작년 다르고 올해 달라. 그렇지만 대신들은 모두 열병식을 참관하여 멀리 떠나는 개소문의 군사들을 격려해주도록 하라!”

 

“성은이 망극하여이다!”

 

임금이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대신들이 가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까닭에 100여명이나 되는 문무 대신이 마치 벌레라도 씹은 듯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삼삼오오 열병식장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연 장군, 뭐 이렇게 거창하게 열병식까지 할 거 있소이까? 그냥 조용히 군사들을 데리고 가도 될 터인데 말씀이야!”

 

태대형(太大兄) 고웅백(高雄栢)이 열병식장으로 들어서며 비아냥거렸다.

 

“그러게 말입니다, 에헤헤헤…“

 

“날씨도 차가운데… 우중충한 것이 어째 눈이라도 내릴 것 같지 않습니까?”

 

조의두대형(鳥衣頭大兄) 도병리(都丙利)와 의후사(意候奢) 고묘복(高苗福)이 고웅백의 비위를 맞추었다.

 

“열병식은 곧 끝날 것이오. 그리고 날씨가 쌀쌀하기에 조촐한 술자리도 마련했으니 한 잔씩 드시고 함께 입궐하시지요?”

 

“어흠, 이왕 온 거니까 뭐 그렇게 합시다.”

 

“그런데, 연 장군! 웬 군사들이 이렇게 많소이까? 요동에 가는 군사는 1만명으로 알고 있는데…… 훨씬 많은 것 같소이다?”

 

눈치가 빠른 대사자(大使者) 고승(高勝)이 중무장을 한 채 사열대 주변을 삼엄하게 지키고 있는 연개소문의 친군을 둘러보며 불안한 듯 묻는다. 연개소문이 태연한 목소리로 대꾸한다.

 

“모두가 소장의 가병이올시다. 국사를 이끌어 가시는 대신 여러 어르신을 안전하게 경호하기 위한 조치이니 추호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허, 그렇다면야 다행이지만……”

 

대신들이 모두 사열대에 마련된 자리에 앉자 곧바로 열병식이 시작되었다. 열병은 취타대의 북소리, 피리소리, 나팔소리에 맞춰 형형색색의 군기를 앞세운 군사들이 부대별로 분열하여 열병식장을 한 바퀴씩 도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부대는 군사 1백명이 1개 대(隊)를 이루고 10개 대가 모여 1개 당(幢)을 이루었다. 각 당이 사열대 앞을 지날 때마다 부대기와 장수기를 앞세운 당주(幢主)들이 오른팔을 번쩍 치켜들고 우렁찬 목소리로 군례를 올렸다.

 

그렇게 새로 편성된 1만명의 요동군단이 사열을 끝내는 데는 한 시진정도가 걸렸다. 열병식이 끝나자 연개소문은 준비한 대로 그 자리에서 군사들을 먹이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대신들을 열병대 바로 뒤에 설치한 커다란 군막으로 안내했다. 수백명이 들어가도 충분한 대형 군막 안에는 두 줄로 식탁과 의자가 배열되어 있었다. 연개소문은 가신들과 더불어 조정의 문무 대신들과 조정의 내평 5인에 속한 대인과 군주(軍主)들을 일일이 자리에 안내해서 앉게 한 다음 연회를 시작했다.

 

그 사이에 장막 밖에서는 두방루와 술탈이 지휘하는 동부가의 친병 5백명이 조용히, 그러나 신속하게 움직여 연회장을 물샐 틈 없이 포위한 채 신호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연개소문이 옆에 있던 아우 연정토에게 눈빛을 보냈다. 연정토는 고개를 끄덕이고 혼자서 장막 밖으로 나와 열병대에 있던 취타대에게 북과 나팔을 울리게 했다. 요란한 취타 소리에 놀란 대신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어 연개소문을 주시한다.

 

“연 장군, 저게 갑자기 무슨 소리요?”

 

고웅백이 소리쳐 묻자 연개소문이 그를 쏘아보며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내뱉었다.

 

“잘 들어라, 이 역적 놈아! 저 소리는 바로 네놈을 저승으로 보내는 마지막 작별 인사니라!”

 

“무, 무엇이!“

 

곰처럼 우람한 체구에 철갑으로 중무장한 두방루가 무지막지하게 커다란 철퇴(鐵槌)를 치켜들고 장막 안으로 들어서자, 그의 뒤를 따라 창과 도끼를 든 갑사(甲士)들이 줄줄이 들어섰다.

 

“개소문! 감히 반란을 일으키다니…”

 

고웅백의 놀란 외침에 따라 대사자 고승을 비롯한 몇몇 군주가 허리에서 패검(佩劍)을 빼어 들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두방루의 철퇴가 허공을 가르자 고승이 머리에 피를 흘리며 나뒹굴었다. 다른 군주 두 명은 술탈이 번뜩이는 칼날에 베이며 쓰러졌다.

 

연개소문이 한 손에는 장검(長劍)을, 다른 한 손에는 고웅백의 목덜미를 나꿔채며 소리쳤다.

 

“항거하면 흑백 구분 없이 모조리 주살할 것이다. 모두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어라!”

 

저승사자가 따로 없었다. 대신과 장수들은 순식간에 제압당하고 말았다. 두방루와 술탈의 지휘에 따라 친병들이 이들을 모두 뒷짐 지워 포박했다.

 

“너희는 오늘의 죽음을 억울하게 생각하지 마라! 이는 너희 자신이 저지른 죄악의 업보이기 때문이다!”

 

연개소문의 말에 고묘복과 도병리가 발악을 했다.

 

“우리가 무슨 죄가 있단 말이냐? 우리는 태왕 폐하께 충성을 바친 죄밖에는 없다.”

 

“개소문아, 너의 반역을 역사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연개소문이 두 사람을 발길질로 걷어차며 소리쳤다.

 

“더러운 주둥이 닫아라! 누가 반역을 했단 말이냐? 그 동안 어리석은 태왕을 끼고돌며 나라를 어지럽힌 것은 바로 너희들이었다. 네놈들이 호의호식하는 동안 굶어 죽고 얼어 죽은 백성이 얼마나 되는지 아느냐? 나라를 들어 당나라의 오랑캐들에게 가져다 바치려고 흉계를 꾸민 게 너희 매국노 간신배가 아니고 그 누구란 말이냐? 어서 이 간악한 역적들을 처단하라!”

 

1백여명의 대신과 장수들을 완전히 제압한 다음, 연정토가 호명하는 대로 죽일 자와 살릴 자를 일단 구분했다. 그리고 살생부에 들어 있는 자들은 그 자리에서 즉각 참살했다.

 

그 시간에 장막 밖에서는 연수영과 금화, 걸곤우 부자가 이끈 요동의 수비군과 낭자군들이 도주로를 완전히 차단한 다음, 살생부에 들어 있는 대신과 장수들의 수행원들을 잡초 뽑듯이 솎아내어 목을 베고 있었다. 패수 강변에서 벌어진 무시무시한 피바람은 그렇게 두어 시진이나 계속되었다. 이날 목 없는 귀신이 된 친당파 대신과 장수는 80여명, 그들의 수행원이 2백여명, 도합 3백여명에 이르렀다.

 

일차로 숙청이 일단락되자 연개소문은 먼저 요동의 군사와 낭자군을 성낼 진입시켜 진격로를 확보토록 했다. 그리고 다시 열병대에 올랐다. 두방루와 술탈과 가신들, 동부가의 친위대가 그를 옹위했다. 연개소문의 손에는 친당파 괴수 고웅백의 수급(首級)이 들려 있었다. 취타대의 연주가 멈추자 열병장의 1만 군사가 일제히 열병대를 주시했다.

 

“대고구려의 용감한 무사들아, 이것을 똑똑히 보라! 이것이 바로 친당 매국노의 괴수 고웅백의 모가지다! 이것이 바로 당나라의 오랑캐들에게 나라를 팔아 먹으려던 매국 역적 간신의 말로니라! 이 연개소문이 나라가 망하는 것을 차마 두고 볼 수가 없기에 마침내 일어섰도다! 오늘 이 자리에서 역적 일당을 모조리 주살했노라! 그대들은 이제 요동벌로 가지 않아도 된다. 이제부터 그대들이 이 나라 대고구려의 주인이도다. 자, 모두 나를 따라 황궁으로 가자! 나라를 오랑캐에게 바치려는 썩어빠진 태왕을 내쫓고 새로운 제국을 건설하자! 하늘에 제대로 빛을 내는 해가 떠 있어야 하듯이 나라에도 임금다운 임금이 있어야 한다! 그대들은 서토 오랑캐들에게 무릎 끓고 노예가 돼서 살겠는가, 아니면 당당한 고구려의 사나이로서 오랑캐들과 맞서 싸우겠는가?”

 

군사들이 모두 기치창검(旗幟槍劍)으로 땅바닥을 힘차게 두드리며 함성을 질러 연개소문의 열변에 열렬히 호응했다.

 

연개소문이 더욱 우렁찬 목소리로 외친다.

 

“그렇다면 그대들 모두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 기꺼이 나를 따르겠는가?”

 

그러자 “와아!” 하는 우레 같은 함성이 패수 강변에 울려 퍼졌다. 그것은 연개소문의 사자후(獅子吼)에 대한 화답의 함성이었다.

 

“가자, 황궁으로! 모두 나를 따르라!”

 

연개소문과 장수들이 말에 오르고 그 뒤를 가신과 가병들, 살생부에서 빠져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소수의 대신과 장수들, 그리고 혁명군으로 변한 1만 군사가 뒤따랐다.

 

평양성 외성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해가 뉘엿뉘엿 기우는 저녁때였다. 혁명군은 밀물처럼 외성을 지나 내성으로 육박했다.

 

그 무렵 연수영과 금화가 이끈 낭자군은 황궁의 정문에서 힘겨운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소부손과 고문, 걸곤우와 걸중상 부자, 동부가의 무예사범 추요선과 궁장령에서 달려온 온사문 등이 거느린 요동의 군사들은 황궁 안학궁의 대소 궁문과 통로를 차단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는데, 이 부대도 다소 고전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황궁 안에서 호응하기로 한 해철주와 그의 부하 차대웅이 아직도 태위군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듯했다.

 

그러나 연개소문이 이끈 본진이 당도하자 근왕군(近王軍)이 점점 밀리기 시작했다. 대군이 밀어붙이니 육중한 황궁의 정문도 별 수 없이 뚫려 버리고 말았다. 필사적으로 안학궁 정문을 지키던 2천여명의 태위군은 황급히 정전인 남궁 쪽으로 퇴각했다.

 

하지만 황궁의 서문 쪽을 공략하던 장수들 가운데 추요선이 그만 태위군의 화살을 맞고 낙마(落馬)하여 중상을 입었다. 추요선은 부하들에 의해 안전한 후방으로 옮겨졌으나 군의(軍醫)가 어떻게 손을 써 볼 틈도 없이 곧 숨을 거두었다. 연수영은 자신에게 무예를 가르쳤던 추요선 사범이 그렇게 죽자 눈물을 뿌리며 슬퍼했다.

 

황궁을 철통같이 에워싼 다음, 연개소문은 친병들을 이끌고 정문을 통과해 남궁으로 달려갔다. 황궁을 장악한 것이 확실해지자 연개소문은 연정토와 생해에게 한 부대를 주어 동부가 별당에서 대기하고 있는 고추가(古鄒加) 고장(高臧)을 급히 모셔오도록 시켰다.

 

연개소문이 내전의 문을 활짝 열자 그제야 내사부 위장 해철주와 그의 부장 차대웅이 안에서 급히 달려 나와 맞이했다.

 

“어서 오시게, 연 장군! 빨리 태위군을 장악하지 못해 지금까지 소탕하고 있었네.”

 

“수고했네. 그런데 지금 태왕 건무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도 찾고 있는데, 북궁으로 숨었는지 아직까지 찾지 못했네.”

 

“건무부터 잡아서 처리해야 하네!”

 

연개소문과 해철주는 친병과 이쪽으로 넘어온 태위군 병력을 이끌고 황궁을 샅샅이 수색했다. 날이 어두워지자 횃불을 밝혀들고 안학궁 내전의 각 전각과 후원을 이 잡듯이 뒤진 끝에 마침내 영류태왕을 찾아냈다. 그는 태자 환권과 함께 북궁의 황후전인 곤전(坤殿)의 내실에 숨어 있었다.

 

“건무를 끌고 황궁 남당으로 가자!”

 

연개소문이 명령한다. 피에 굶주린 군사들이 황후와 태자 부부를 비롯한 황족과 궁인들을 닥치는 대로 학살한다.

 

남당은 태왕의 정무소인 대전이다. 연개소문은 태왕의 옥좌를 비워둔 채 그 앞에 의자 두 개를 가져오게 하여 영류태왕과 마주앉았다. 백발이 성성한 영류태왕이 마지막 위엄을 돋우어 호령했다.

 

“네 이놈, 개소문아! 짐이 너를 친자식처럼 어여삐 여겼건만 대역을 저질러? 무도한 놈! 그래, 짐을 어쩔 셈이냐?”

 

“당신에게는 대역인지 몰라도 나라를 위해서는 대충(大忠)이외다! 미물도 밟으면 살려고 꿈틀거리는 법이오! 하물며 사람이야 오죽 하겠소? 당신은 내가 무슨 죄가 있어서 잡아 죽이려고 했소?”

 

“그래, 너를 죽이려고 했다! 네놈이 이렇게 대역무도한 놈인 줄 알고 미리 화근을 제거하려고 했다! 짐은 오로지 나라와 백성을 위해 전쟁을 피하고 화평을 추구하려던 죄밖에는 없다!”

 

“나라 땅과 백성을 통째로 들어 오랑캐에게 바치는 것이 화평이란 말이오? 저승에 가서 열성조께 그렇게 고해보시오!”

 

“그렇다면 너는 대국에 맞서 감히 전쟁을 하자는 말이냐?”

 

“그럼 전쟁이 두려워서 있는 것 없는 것 모조리 털어다 바치고, 싸워 보기도 전에 오랑캐에게 항복을 하고 노예가 되자는 거요?”

 

“싸워보나 마나 뻔하니까 그렇지. 저 대국을 상대로 우리가 무슨 힘이 있어서 싸우잔 말이냐?”

 

“그 뻔뻔한 얼굴로 터무니없는 허튼소리는 그만 하시오! 마지막으로 그대의 죄상을 들려주리다. 이 죄를 인정하지 않으면 죽어서도 한이 남을 거요. 첫째, 그대는 열성조께서 피땀 흘려 가꾸고 지켜 오신 우리 대고구려 제국을 하루아침에 당괴(唐傀) 이세민에게 바치려고 했소!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죄악이 아니고 무엇이오? 둘째, 해마다 흉작이 되풀이됐건만 백성들의 참상은 외면하고 매국노 간신들에게 둘러싸여 호의호식하는 것으로 나달과 해를 보냈으니 그러고도 그대가 태왕 노릇을 제대로 했다고 말할 수 있겠소? 셋째, 간신들만 편애한 반면 목숨 걸고 나라를 지키는 장수와 사졸들은 모두 헐벗고 굶주리게 했으니 그 죄를 절대 용서할 수 없소! 이제야 죽어 마땅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겠소?”

 

“오냐, 죽여라! 짐이 먼저 황천에 가서 개소문 네 놈을 기다리고 있겠다. 짐은 천손이야! 천손을 시해한 네놈은 안 죽고 얼마나 오래 사는지 짐이 먼저 가서 지켜보겠다! 그건 그렇고, 이 역적 놈아! 짐을 시해한 뒤에는 누구를 다음 태왕으로 저 보위에 앉히려는고? 혹시 개소문 네놈이 태왕 노릇을 하려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구나, 엉?”

 

“그런 걱정은 마시오. 다음 태왕은 천손다운 천손 고추가 고장 전하로 이미 정해놓았소이다!”

 

“무, 무엇이라고? 대양왕의 아들을 옹립해? 그, 그럼 환권 태자는?”

 

“환권은 이미 죽었소!”

 

영류태왕이 충격과 공포에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이 했다. 연개소문은 영류태왕을 외면하고 두방루에게 명령했다.

 

“이 자는 이제 우리 나라의 태왕이 아니다! 나라와 백성의 원수(怨讐)다! 이 더러운 매국노를 어서 끌어내 군사들에게 내주도록 하라!”

 

“명을 받들겠소이다!”

 

두방루가 영류태왕을 의자에서 잡아 일으켜 남당 밖으로 질질 끌고 나갔다. 그리고 계단 밑에 모여선 군사들에게 내동댕이쳤다.

 

“자, 너희들의 원수다! 태왕이 아니라 나라를 서토의 오랑캐들에게 팔아먹으려던 역적의 우두머리다! 군사들은 이 백성의 원수를 처단하라!”

 

군사들이 피에 굶주린 야수처럼 달려들어 영류태왕의 몸을 난도질했다. 영류태왕은 그렇게 죽었다.

 

고추가 고장이 남당에 들어선 것은 영류태왕이 성난 군사들에게 갈기갈기 찢겨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연개소문은 고장을 부축하여 보좌에 앉혔다. 그리고 모두가 그 앞에 부복하여 배례를 올린 뒤 만세를 불렀다.

 

“태왕 폐하 만세!”

 

“대고구려 만세!”

 

유혈혁명으로 정권이 바뀌게 됨에 따라 친당파 대신들을 모조리 주살하고 영류태왕을 제거한 뒤 보장태왕(寶藏太王)을 옹립한 혁명의 주역 연개소문은 당연히 최고 집권자가 되었다. 제1품관인 대대로(大對盧) 위에 대막리지(大莫離支)라는 관직을 신설하고 연개소문이 그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그런 다음 조정을 완전히 물갈이했다. 당연히 혁명 주체세력에 대한 논공행상(論功行賞)이 뒤따랐다. 대주부(大主簿)에는 군부의 최고 원로이며 연개소문의 장인이기도 한 고정의(高正義)를 제2품관 태대형(太大兄)으로 복직시켜서 임명했다. 국내성(國內城)의 욕살(褥薩) 고량(高量)을 중앙으로 불러올려 역시 태대형으로 임명하여 병마원수(兵馬元帥)로서 고구려 60만 전군을 통솔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국내성주는 그의 아들 고문(高文)이 이었다. 연정토에게 조정의 여러 정보를 제공했던 발위사자(拔位使者) 선도해(先道解)는 제4품관인 태대사자(太大使者)로 임명하여 내정(內政)을 총괄하는 중리대부(中裏大夫)로 발탁했다. 이복동생 연정토도 태대사자로 중용하여 외정을 맡은 중외대부 벼슬을 주었다.

 

해철주(解鐵周)는 조의두대형(皁衣頭大兄)에서 태대사자로 승진시켜 그대로 태위군 수장을 맡도록 했고, 국내외 정보 수집 임무를 총괄토록 했다. 그의 부장 차대웅(車大雄)도 조의두대형으로 승진시켜 내사부의 대모달(大模達)로 임명했다. 혁명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전부 출신인 가득소(加得蘇)·능루(能婁)·최헌(崔櫶)·하취문(河取文) 등을 을상(乙相) 등 대신급으로 조정에 중용했다.

 

또한 고준(高準)은 평양성(平壤城)의 욕살에 임명하고, 기병대를 이끌고 요동벌로 돌아가는 속말말갈인(粟末靺鞨人) 걸곤우(乞昆羽)에게는 보장태왕의 어명으로 대씨(大氏) 성(姓)을 하사(下賜)하여 남소성주(南蘇城主)로 부임하도록 했다. 그 밖에 가신인 집순(執盾) 유대룡(柳大龍)과 술탈(述脫), 연정토의 심복인 생해(生偕)와 고죽리(高竹離), 온사문(溫沙門) 등도 각각 대사자(大使者)·대형(大兄)·소사자(小使者) 등 알맞은 벼슬을 주어 공로에 보상했다. 연개소문의 호위무사인 두방루(豆方婁)는 대모달로 임명하여 대막리지의 친위부대 총수인 위장으로 임명했다.

 

연개소문의 누이동생인 연수영은 제6품관 대사자로 승진되어 낭자군의 모달이 되었다.

 

▶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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