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 고등학교 분반 수학여행 기사를 보고 화가 치밀어 올라...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사실 매우 어리고 미약한 19살의 대학 1학년 생이지만...
소위 대선정국을 앞두고 썩을대로 썩어버린 이 사회에 대한 비판을 멈출수가 없어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선배님들께서 보시기에 어린놈의 경거망동한 행동이 어설프게 보이시겠지만...
적어도 가장 최근 한국교육을 몸소 체험한 입장에서
미약한 지식이나마 이 사회를 약간이라도 바꿀수 있다면... 하는 바람으로 적어내려가 봅니다.
이하는 과거 제가 작성한 본문입니다.
희망한국, 교육개혁 미래로의 투자 도덕으로의 회고
- 교육과 관련한 미래 한국사회의 준비.-
<管子:權修> 一年之計, 莫如樹穀; 十年之計, 莫如樹木; 終身之計, 莫如樹人.
“일년 계획은 곡식을 심는 것만 한 것이 없고, 십년 계획은 나무를 심는 것만
한 것이 없고, 평생 계획은 사람을 키우는 것만 한 것이 없다.”
옛 말에서도 이르듯 교육은 백년대계라,
청소년은 미래사회의 주역이며 미래사회의 계획은 곧 교육이다.
라는 말이 있듯이 미래사회를 준비하는 이러한 과정의 중요성을 부정하는이가 과연 있을까?
하는 의문으로 서두를 써내려가보고자 한다.
최근 한국사회는 급격한 사회변동을 거치며 다양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예를 들어 대규모의 청년실업난 혹은 사회전체의 도덕의식 부재 또는 각종 세금포탈 및
공금횡령의 공직자, 부정직한 정치인, 비도덕적인 종교인, 제자를 성폭행하는 교사,
아버지를 때리고 또 딸을 강간하는 인면수심의 사회...
과거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리며, 공자선생께서도 오고싶어했던
인의국가 한국은 어디에 가고이런 파렴치한 국가로 변모한 것일까?
이런 다양한 문제를 놓고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지만 필자는
거두절미하고 교육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하고자 한다.
자 그렇다면, 우선 현재 한국사회는 미래사회를 위하여
어떠한 투자를 하고 있고 미래사회의 주역에게 어떠한 교육을 하고 있는가?
소위 우리가 말하는 고등교육과정은 입시을 위한
치열한 경쟁으로 얼룩져있고, 그 과정에서
우리 청소년은 우정과 의리, 신의를 배우기보다는
경쟁과 편법 약육강식을 배울뿐이다.
아니 더 나아가 고등교육과정 뿐만이 아닌
경쟁적인 시장경제사회에서 적응한 이기적인 사회전반의 문제이리라.
어려서부터 수능점수와 토익점수로 판가름나는 어른들의 시선과
학교이름으로 달라지는 사회대우를 느끼며,
우리 미래사회의 주역들은 과연 무엇을 배울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가 말하는
교육은 단순한 의미의 교육이 아닌,
미래사회에 대한 계획이고, 또 미래사회를 향한 투자이다.
이에 대하여 한국사회는 단순한 이기심과 경솔한 판단으로
미래사회를 그르치고 있지는 않은가?
단순한 예로 현 정부 시스템을 들어보자,
지금의 우리 헌법은 대통령이 임명되면
그 대통령에게 각부장관의 임명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물론 국회의 동의가 있어야 하기는 하지만
대통령의 임기 5년 안에 대다수의 장관이 교체되고 있으며,
여기에 대하여는 이렇듯 중한 교육부 장관이란 직책 또한 예외가 없다.
실제로 교육부장관의 평균 수명은 1~2년 정도에 불과하고 있다.
과연 100년대계의 과업을 1~2년의 계획으로
적절하게 현실화한다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물론 이는 현 헌법 시스템의 문제라고 할수 있다.
이번 년도 대선이 있는 만큼,
다음해가 되면 다시금 변하게 될 교육정책과 다시 한번
우리 미래사회를 되새겨 본다면, 시급한 문제임에 틀림없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부분에 대하여
우리 정계의 소위 대선후보라고 하는 이들은 관심조차 없는 상황이다.
물론 교육개혁의 구체적인 방향에 대하여서는 많은 의견 분열이 존재하리라 사료된다.
하지만 우리 모두 이제는 교육개혁의 필요성에 대하여 한번쯤은 상기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필자가 생각하는 교육개혁은 우선적으로 교육부 수장에 대하여
짧은 임기를 강요하는 현 시스템에 대한 개혁이 선행되야 함을 전제로 삼고있다.
현재와 같은 교육부 수장의 짧은 임기는 어떠한 교육정책, 핵심, 타이틀과도 어울리지 않으리라.
자 그렇다면, 현재 한국교육의 문제는 무엇일까?
- 도덕교육의 부재
위에서 말해보았듯 다양한 사회문제의 근원은 무엇일까?
과연 개인의 문제라고 할수 있을까?
아니면 법 규범의 모호함에서오는 문제일까?
이에 대하여 논어에서 공자선생은 이렇게 말해주고 있다.
子曰 道之以政하고 齊之以刑이면 民免而無恥니라,
자왈 도지이정 제지이형 민면이무치
道之以德하고 齊之以禮이면 有恥且格이니라.
도지이덕 제지이례 유치차격
법률, 제도로써 백성을 지도하고 형벌로써 질서를 유지시키면,
백성들은 법망을 빠져나가되 형벌을 피함을 수치로 여기지 아니한다.
덕으로써 이끌고 예로서 질서를 유지시키면 백성들은 부정을 수치로 알고 착하게 된다.
미래사회의 문제를 대비하고 해결함에 있어
법이라는 가치기준은 언제나 항상 사후적 대책일 뿐이며,
근원적 대책일수 없을 뿐만아니라 많은 물질적 제약이 따르는것이 사실이다.
물론 지금 당장 교육개혁으로 도덕의 중요성이 강조된다고 하더라도
단기적으로 사회에 미치는 효과는 미미할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축적되 1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고 100년이 지난다면,
우리는 굳이 비리공직선거 방지를 위해 포상금을 내걸고,
임금협상을 위해 대량 파업한 노동자를
탄압하며, 탈세한 정치인을 손가락질할 필요가 있을까?
필자가 좋아하는 한 게임프로 중개진이 케이블 방송에서 이런 말을 한적이 있다.
「한국 사회는 이게 문제야...... 초등학교다니는 그 어린애들을 앉혀다 놓고,
성인이 읽기도 지루한 그 위인전 셋트를 사다가 읽히면서...
너도 나중에 이렇게 되야된다~ 하고 가르치는게 잘하는 거냐고?
막말로 그 어린애들이, 뭘 안다고?
아직 뛰어놀기도 바쁘고 장난치기도 바쁜 그 애들한테,
너희는 행복하고 기쁘게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한다... 를 가르쳐야지
위대한 사람이 되야 한다... 하고...
그애들이 뭘알겠어 뭘? 그냥 행복하게 살면 그만이지......」
본인은 이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과연 이들 중 위대하기에 위대한 사람이 존재하는가?
우리는 누군가를 위대하다고 칭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아마도 사람에게 있는것이 아닐까?
이들은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했고
가족을 사랑했고 나라를 사랑했고 인류를 사랑했기에
위인으로써 평가 받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렇듯 사랑이라는 가치, 행복 평화 등과 같은 중대한 가치를 잊어버린
우리 교육은 단순히 알맹이 없는 위인만을 양성할 뿐이며,
이것들은 결과적으로 권력과 부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야심가를 양산할 뿐이었다.
우리 사회의 권력형 비리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어디있는가?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아이들에게
읽혔던 알맹이 없는 위인전에서 비롯한 것은 아닐까?
현대 자본사회로의 진입로를 닦은 애덤스미스는
이 사회의 원동력을 "개인의 이기심"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우리가 앞다투어 가르친 이 이기심의 결과는 무엇인가?
결국 자본주의 사회의 이기심의 확대는 빈부격차의 확대를 초래할 뿐이다.
우리가 이기심을 가르칠수록 우리의 아이들은 나누는법을 잊고 살아가며,
위에서 언급한 논어의 도이지형과 같이...
진심없는 강제분배는 탈세와 편법 아집으로 얼룩질 뿐이다.
우리의 위인은 과연과 이기심으로 위인이 되었는가?
우리는 이기심을 가르치기전 사랑을 가르칠수 있고,
사랑하는 이는 그 누구보다도 열정적이다.
당신은 누구를 위해 가정을 위하고 있는가?
누구를 위해 오늘하루를 참아내는가?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아는이는 좋아하는 이만 못하고, 좋아하는 이는 즐기는 이만 못하다.
나누는 것을 아는자는 좋아하는 이만 못하고 나누는것을 좋아하는 이는 즐기는 이만 못하다.
교육부터가 이기심을 강조하는데 어떻게 가진것을 나눌수 있겠는가?
어찌 빈부격차 해소가 당국자에 입에서 나올수 있는 말인가?
경제학의 원동력은 그 근원부터 잘못되었다.
인간은 이기심으로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경제활동을 한다.
가장 쉽게 먼저,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부터가 그러하리라 생각한다.
그대는 정녕 당신의 이익을 위해 경제활동을 하는가?
아니면 사랑하는 이를 위해 경제활동을 하는가?
우리는 요즘 도덕에 그리 큰 중요성을 상기하지 못하고 있는듯 하다.
하지만, 우리가 물질을 추구하던, 정신과 행복을 추구하던...
도덕이라는 방향의 교육이좋은선택이 되리란걸...
우리모두 어렵지않게 상기시킬수 있을 것이다.
이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