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평 원룸에서 17평 오피스텔로 이사를하고
비가 내린 두 주간은 힘든날들이다
창이 크다는 이유로 여기에 오긴했으나 창이 큰 만큼 빗소리때문에
도저히 잠을 들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책없이 피곤한 날 저녁이면 어김없이 꿈속에 나타나는 그 사람때문에
잠드는 그 순간마저도 그리 반갑지 않다
외삼촌이 돌아 가셨다
육군 헌병대장이셨던 키가 크고 아주 잘 생기셨던 큰 외삼촌
작년에 칠순 잔치때 혼자 걷지도 못하실만큼 변해 버린 20년의 시간의 틈이 야속하기까지했다
전역하시고 사회경험없이 사업시작하셔서 인생의 그 많은 노력들이 모두 무너지고
홧병으로 10년이 넘게 요양원에 계시다 쓸쓸히 혼자 먼 길을 가셨다
자식들이 회계사고 교수고 박사면 뭐해!
사촌 언니랑 오빠들이 새벽 영안실에서 부주금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니 억장이 무너졌다
누구는 얼마 부주되었고 누구는 얼마네.......웃기는 소리들이였다
역겨워서 작은 외숙모랑 소주를 마시고 새벽에 출상가는데 장지에도 따라가지 않았다
새벽 6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촌동 한강 고수부지 수영장이 눈에 들어왔다
수영장 첫 개장하던날 외삼촌이랑 사촌 언니랑 오빠들이랑 같이 갔던 기억들이 그리도 많이
지나 다녀도 아무렇지 않더니 그 새벽만은 왜 그리도 생생하던지...........
낯선 눈물이 싫어 썬그라스를 쓰고 고개를 돌렸다
한달전즈음 꿈에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내 방으로 들어오려는 것을 막무가내로 막고
돌아서는데 다시 벨이 울려 문을 열었는데
그 검은옷의 남자가 내 방에 화분 하나릏 놓아두고 그냥 가벼리는 꿈을 꾸었다
기분이 좋지 않은 그 느낌이 싫었는데
그리고 계속되는 이사하는 날의 캔슬도 싫었고 괜히 의식되던
그꿈이 그 아침에는 왜 편안하게 받아들어지는 것인지..........
바르게 정의 내리고 논리적인 내 사고방식이 무너지는것을 느끼는
요 몇칠은 힘이 들고 숨차다
치킨 두 조각에 맥주 한잔!
혼동스럽다
초등학교 4학년때 할아버지의 죽음을 웃으면서 편안하고 아름답게 그리고 좋은 결과라고
믿었던 그 마음은 이젠 아닌것 같다
가을 청명한 하늘 열흘이나 학교에 가지 않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만을 기다렸던 시간
그 시간이 가슴아프게 느껴지지 않고 따스한것은
놀다가도 순간 순간 정신없이 뛰어서 할아버지 계시는 안방까지 들어와
" 할아버지!! 응 아직 안 죽었지?"
그 철부지 없던 나이에도 죽음이 이별의 가장 절대적인 공식이란것을 의식하였던것 같다
그러면서도 임종때 할아버지 옆에 누워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있었던
그 기억은 아직도 따스하고 좋다
임종하시고 가족들이 찬송가를 부르며 눈물을 흘리고 그리고 나도 그냥 따라 울었던 기억은
아프고 쓰라리진 않은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목이 아팠다 그냥 한 마디라도 삼촌에 대한 발언을 하면 목에서 피가 날것 같은
통증으로 아무말도 않고 그냥 어떻게해~~~~ 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제야 삼촌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 삼촌!!
나 7살때 둘째오빠 장난에 놀라 넘어지는 바람에
삼촌댁 목욕탕에서 뜨거운 물에 화상 입고 중대 부속병원에 입원해 있을때
우리 아 빠 일본 가시고 안계셨는데 삼촌이 멋진 군복입고 병실에 들어올때
너무 좋고멋있었어요 나 안고 병실 나가면 사람들이 멋진 삼촌에게 안긴 나를
쳐다보는게 너무 좋았는데..... 칠순 잔치때 손 한 번 못잡아드렸어요
삼촌! 미안해요
너무 초라하게 변해버린 삼촌을 보는 내 마음이 아팠어요
그냥 그 때 멋있었던 삼촌으로 기억하고 싶었어요
화상 하나도없이 다 치료해 주시겠다고 일본까지 날 데려가 일년동안 나 치료해 주셔서
지금 화상자욱 하나도 없이 깨끗하게 이쁜 피부로 돌이켜 주셨는데
커서 한 번도 삼촌에게 재대로 감사하다는 말 하지 못했어요
삼촌! 사랑해요
아프고 지쳐버린 이 세상 그리고 삼촌에게 너무 가혹했던 삶의 무늬들
이젠 잊으시고 쉬세요
난 삼촌 멋진 헌병대장으로만 기억할께요
그리고 삼촌 나 우리 엄마 그거 다 알아요
삼촌이 그리도 아파했던것 다 알고 있어요
삼촌! 우리엄마 편안하게 잘 보살펴 주세요
삼촌!
이젠 마지막이예요
삼촌! 죄송해요 너무 죄송해요
그래도 제가 삼촌 많이 사랑하는거 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