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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사진 찍기

제임스 류 |2003.07.11 17:45
조회 241 |추천 0

단체 사진 찍기

 

20대의 흔들림이 어설픈 시대를 살아온 무지에서 시작되었다면
30대의 어지러움은 과감히 올라 탄 욕망의 기관차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40대인 지금의 이 무서움은 바로 디지털과 세계화에 기인한다.

 

예전에는 왜 그랬는지도 모르고 살아 온 세월이었다면 그래도 이제는 무엇이 문제인
지는 조금 안다는 것을 작은 위안으로 삼지만, 진짜 문제는 지금도 비극은 진행 중이
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허둥대고 있다.
 
세상에는 온통 회색의 언어만이 존재하고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다고 말할 수도
없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O, X는 없고 △와 □만이 부유물처럼 떠돌아다니며
그것의 악성 변종 (◐※▣¤★◈♧⊙▩∵▥◎◇●▷♡▒▼×) 만을 양산하는
참으로 희한한 시대를 살고 있다. 

 

요즘은 무슨 광고인지도 모를 CF가 TV를 뒤덮는다.
그래도 내가 영화 '접속' 은 보았고 서태지의 노래도 몇 곡 안다며 신세대인 척 하던
친구도 '나의 혈관엔 파란 피가 흐른다' 는 CF가 나온 이후로는 더 이상 나서질 않는
다.

 

과연 우리 40대는 폐기물 더미를 휘젓고 다니는 사오정 인생인가?
완전히 부서진 자존심과 꿈, 그리고 재정적 파탄으로 마비된 가정...
우리의 인생이 이대로 끝날 것인가? 불면의 밤은 오늘도 계속된다.

 

오랜만에 만났다는 핑계로 많이 떠들었다.

 

그래 나도 그 땐 잘 나갔지... 사회 첫 발을 디딜 땐 정말 폼나게 다녔지... 내 인생에
전성기였잖아... 여자 나오는 술집도 잘 갔어... 그러나 이제 나는 완전 빈털털이야..
완전히 파산이라구... 누구에게 하소연도 못해 나의 잘못도 많으니 말이야...

 

이젠 사업 해 먹기도 힘들어... 젠장! 온통 중국제가 판을 치니...나도 이 사업 그만
접어야겠어... 이젠 중국이 세계 공장이란다. 이제 나는 이 나라에 미련 없다. 이민이
나 갈란다. 요즘 캐나다와 뉴질랜드쪽을 알아보고 있는데 누구 정보 좀 있으면 주라...

 

그래도 한국만큼 재미있는 나라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돈만 있으면 한국이 최고
아냐? 지금 미국이나 일본에선 북한 핵 때문에 난리인데 우리만 평화롭고 조용하지...
참 대단한 민족이야? 대체 위 쪽 아저씨들은 뭐 하는 사람들이야?... 아무튼 무슨 배
짱으로 그러는지 몰라...

 

이건 사람 사는 것이 아니야... 회사를 그만 둔 지 몇 년이 흘렸는데, 아직도 나의 월
급의 반은 차압된 은행으로 빠져 나가니 말이야... 그래도 나는 어쩜 나은 편이야...
완전히 폐인 된 친구도 많다구...

 

정말 요즘엔 아침에 일어나기도 싫어... 모든 게 무서워졌어... 그리고 이제 사람도 회
사도 심지어 여편네까지도 싫으니 큰일났어... 나라에 높은 놈들은 이런 것 아는 지나
몰라.. 정권이 바뀌었으니 좀 달라 질라나...

 

그렇다고 이민을 떠난다든지.. 시골로 낙향할 생각일랑은 말자...  한국 사람들은 희한
하게 본질을 회피를 해 버리는 특성이 있어... 모호성으로의 도피라고나 할까! 아무튼
이제 이런 유치하고 시대 착오적인 것들과도 이별하잔 말이지..

 

우리 나라 사람들은 적응력도 뛰어나고 인내력도 강하잖아... 그리고 우리 세대만 그
런 것도 아니잖아... 다른 세대 다른 계층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야... 또 우리 세대 한
국 남자들은 씩씩하잖아, 아마 눈물을 모르는 마지막 세대일 껄...
 
자리를 옮긴 2차에서도 이야기는 계속 됐다.
술잔은 급히 돌아갔고 대화는 빨라졌으나 슬슬 겉돌기 시작했다.

 

경마장으로,,, 경륜장으로... 카지노의 세계로...
이왕이면 큰 것 한방... 로또 대박으로 인생 역전을 꿈꿔 봐...

 

시대의 부산물인 원조 교제나 하고 술이나 퍼마시면서 시대를 욕할 것인가?
아니면 똑같이 깨어지고 부서진 동년배 여인들과 밤을 지샐 것인가?

 

그래, 한 세상 대충 살다 가는 거지... 인생이 별 거냐...
마누라하고 자식 새끼 세 끼 밥이나 안 굶기면 되지... 나, 욕심 없~~~다~~

그러나 막상 술자리를 파할 때 쯤 되어서는 우리들 중 누구도 말이 없었다.
이미 우리는 내일의 걱정에 뒷덜미를 잡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순간 지난 번 부도로 고생하는 친구 면회나 가야겠다는 생각이 났다.

 

우리는 휘청거리며 술집을 나섰고 그 때 누군가가 소리쳤다.
야! 그러지 말고 우리 단체로 사진이나 찍고 가자...
그가 가리킨 곳은 다름 아닌 즉석 포토샾이었다.

 

이왕 찍는 건데 여기 가발도 쓰고 삐에로 코도 좀 붙여라..
야! 근사한데...  이것도 기념이야... 언제 우리가 이런데 다시 와 보냐?
(하기야 이런 곳도 처음이지만 어느 새 이것도 없어진 풍경이 되어 버렸다.)

 

사진은 즉석에서 나왔고, 사진 속 모습에는 우리에게는 절대 오지 않을 것 던 세월의
무게가 자리하고 있었고 또 우리가 그렇게 비난했던 각자의 아버지들의 얼굴까지도
선명하게 오버랩 되어 나왔다. 말 그대로 40대의 자화상이었다.

 

우리는 같이 찍을 마지막 사진이 될 지도 모를 사진을 그렇게 쉽게 찍었다.
목 굵은 친구도, 대머리 친구도, 공장 부도 후 빠진 이빨을 아직도 못해 넣은 친구도
그 순간은 모두 활짝 웃고 있었다. 그래도 참 재미있는 하루였다.

 

아직도 변화를 모르는 사람들이 불쌍하고 또 이 변화에 적응을 못하는 것을 자기 탓
만으로 돌리는 사람들이 안타깝다. 그리고 애써 이 변화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들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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