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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가진 부모에게(퍼온글)

james405 |2003.07.12 20:35
조회 420 |추천 0

전국적인 파업을 통해 밥그릇을 키웠으면 거기에 상응하는 책임도 질줄알아야 하는것이 사회지도층의 올바른자세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자식잃은 부모앞에 어떻게 이런 비인간적인일이 우리나라 최고의 의료기관에서
일어날수 있는지 개탄합니다.
자식잃은 부모에게는 금전적보상이 우선이 아니라 진심어린 사과 한마디가 절실할것입니다.
가능하시면 여러곳에 옮겨주시어 유가족과 함께 아픔을 나누었으면 하고, 의료사고에서 절대적인 약자들인 민초들이 보호받을수있는 제도적장치 마련을 촉구합니다.
또한 해당 의료기관은 얄팍한 상술로 유가족 가슴에 다시못질하지말고 진심어린
사과와 백배사죄하는 자세를 촉구합니다.

(퍼온글)

매우 어처구니가 없고 억울해서 이글을 올립니다. 몇일전 2003년 7월3일 아침 저는 뜻밖에 전화를 받고 놀라서 어안이 벙벙했읍니다. 형이 울면서 제조카가 죽었다고 얘기를 하는 것이었읍니다. 저는 전화를 받고 믿을 수가 없어서 부리나케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으로 갔습니다. 병원에 가보니 형과 형수가 조카 시신을 붙들고 울고 있었읍니다. 저는 조카 시신을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읍니다. 몇일전 집에와서 다리수술 받으러 간다고 좋아했던 아이였는데 이렇게 시신으로 누워있는 것이 정말 믿을 수가 없었읍니다.

사고 경위는 이러했습니다.
7월1일 형수님과 조카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으로 다리수술을 받으러 갔습니다. 그리고 7월2일까지 이런저런 검사를 받았습니다. 2일 밤 9시경에 MRI를 촬영했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촬영에서 조카가 움직여서 촬영하지 못하고 두 번째 촬영을 했습니다. 그 촬영과정전에 담당주치의는 조카에게 2번의 수면제를 조치했습니다. 그러나 조카가 뒤척인다고 주사 수면제를 2번 더 투여했습니다. 그러니까 총4번의 수면제가 투여된것입니다. 마지막 2번은 담당주치의 처방없이 인턴이 멋대로 더 투여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으로 투여했던 수면제는 강도가 하도 세어 조카가 숨을 못 쉴수있다고까지 했습니다. 조카는 MRI를 찍고 나오면서 이미 그 당시부터 조카는 정신이 없었고 새벽1시경에는 피를 토하고 2시~3시경에는 구토와 배변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형수님은 간호사실로 달려가 조카가 이상하다 빨리 조치를 취해달라고 얘기를 하니 그 간호사는 약을 투여하면 오늘 수술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 형수님은 “지금 애가 다죽어가고 있는 마당에 수술은 무슨수술이냐, 수술안해도 좋으니 의사를 불러달라” 고 했습니다. 간호사는 의사를 콜했지만 의사는 연락두절인 상태로 나타나지 않았읍니다. 물론 간호사는 약간의 조치를 취했겠지만 의사는 나타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제 생각에 이미 5시경에 조카는 죽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때서야 의사는 응급조치를 한답시고 나타나고 형수님은 빨리 응급실로 내려가자고 했지만 그렇게 하지도 못하고 조카는 그렇게 간호사병동에서 손한번 못써보고 저세상으로 갔습니다. 충분한 응급조치 시간이 있었는데..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다고 하는 병원에서 기도가 막혀서 죽었습니다. 즉 수면제의 강도가 세고 횟수도 2번에서 4번으로 하니 그 조금한 아이가 어떻게 정신이 있었겠습니까? 정신은 없고 속에서는 이물질이 올라오고 그것이 기도를 막아 죽은것입니다. 병원에서 기도가 막혀서 죽다니...
물론 이 사고경위내용은 피해자인 우리가 느끼고 알고있는 내용이라 일방적일수 있지만 간호사 기록차트를 보고 쓴것이라 정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병원측에서는 한마디의 사과의 말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담당주치의 처방없이 강한 수면제를 투여한 인턴을 만나 사과의 말을 듣고 싶었지만 병원측에서는 이 인턴을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면서 만나게 해주지 안했습니다. 우리는 너무 화가나 경찰에 고발했습니다. 경찰이 나타나서야 그들은 유가족 대표 몇명하고 의사 몇명하고 대질하자고 했습니다. 그들은 대질하는 그 자리에서 조차도 유감이라는 한마디의 말도 없었고 의사가 약간의 내용에 대해서 말을 하려하면 원무과에서 온사람이 그것은 경찰에 가서 진술하라고 말을 막았습니다. 우리는 조카시신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부검을 의뢰했습니다. 그리고 형수님이 쓰러져서 병원에 머물수 있게 입원실을 요구했지만 그들은 행정절차가 어떠니 하면서 오히려 우리들을 화나게 했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업무방해죄로 우리를 고발할려고 했읍니다. 한마디로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제 조카에 대해서 말하자면
제 조카는 다운증후군이었습니다. 그래서 태어날때부터 약해서 3살 때는 심장수술도 받았습니다. 거기서 죽을고비도 많이 넘겼습니다. 또한 조카는 병치레도 참 많이 하여서 형수님과 우리 어머님은 아기를 들쳐업고 인천에서 서울 큰 병원으로 전철을 타고 다니기도 숫하게 많이 하셨습니다. 하지만 크면서 보통 다른아이와 별반차이없이 잘 자랐습니다. 비록 정상애들과는 달랐지만 형님하고 형수님은 둘째아이를 갖지도 않고 오로지 그아이만 바라보면서 정말 열심히 키웠습니다. 그 아이가 나중에 사회에 약간이나마 적응하면서 살길 바라면서...
어머니와 아버지도 그런 형님과 형수님의 마음을 알고 있었기에 둘째아기를 갖으라는 말도 하지 않을만큼 그 아이는 우리에게 소중한 아이였읍니다.
그리고 조카는 보통아이들과 같이 일반초등학교에 입학해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물론 형수님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지요. 그리고 우리집안에 하나뿐인 손주고 조카라서 그 아이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고 불쌍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측은한 마음도 많았습니다.

다시 사건당일로 가서, 의사가 와서 조카가 죽은 경위에 대해서 설명하는데 다운증후군이라 아이가 죽었을 것이라고 설명할 때 저는 그 의사놈을 패주고 싶었습니다. 아니, 다리수술하고 다운증후군하고는 아무관계도 없는데 하물며 MRI.검사와 다운증후군이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우리조카는 MRI.검사도 많이 받았습니다. 지방에 있는 작은병원에서도..,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최고라는 병원에서 이런일이 생겼으니 정말 말이 안나옵니다. 7월4일 다음날 우리는 병원에서 마련해준 아주 조금한 응급실 격리실에 있었습니다. 병원에서는 그때도 아무위로의 말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무슨 금전적인 것을 바라는 사람인양 처다보는 것 같았읍니다.
그래서 형님은 도저히 딸을 죽인병원에 도저히 있을 수가 없다고 하여 인천에 있는 병원으로 가서 장례를 치러 주자하여 부검이 끝나는데로 인천으로 가려 했습니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돈을 내야 장례식장 냉동실에서 시신을 내준다고 하였습니다. 미칠 것 같았습니다. 참았습니다. 어서 우리 불쌍한 조카를 하늘나라로 보내줘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래서 원무과로 가서 계산을 했습니다.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MRI.값이 120만원 정도가 나왔습니다. 웃음이 나오더군요 머리가 멍해지면서...
우리는 인천으로 내려왔습니다. 3일장을 치러줘야하는데 하루는 부검 때문에 날리고 다음날은 병원에서 시간끌고, 오후3시경에 인천에 내려와 장례식장을 잡았습니다. 형님과 형수님이 조카를 매장해주자고 했습니다. 저 전라도 곡성에, 조카가 살아있을 때 너무 좋아했던 외가댁에, 그래서 결국 장례는 반나절밖에 못치러습니다. 내일 아침일찍 장지로 가야했기 때문에 말입니다. 다음날 우리는 장례를 치러주고 장지로 가는 도중에 조카가 다니던 학교에 들렀습니다 학교에 들르니 전교학생들이 운동장에 나와 조카의 마지막 가는길을 축복해주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눈물이 나왔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저 어린애들도 슬퍼해주는데 의사라는 작자가 위로의 말 한마디도 안하다니..
조카를 산에 묻어 주었습니다. 저는 영구차를 타고 오면서 또하나의 걱정이 생겼습니다. 아직 어머니가 조카가 죽은지를 모르고 계십니다. 어머니는 2년전에 중풍으로 쓰러지셔서 지금 거동이 힘든 상태시고, 만약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어머님 또한 쓰러지시게 될까 두렵습니다. 어머니는 단지 조카가 수술받고 깨어난줄만 알고 계십니다. 저는 이 사실을 영원히 숨길것입니다. 불쌍한 어머니, 손주가 저 세상에 간것도 모르고...
지금 우리는 부검결과만 기다리고 있는 상태입니다. 약간의 불안을 갖으면서..
왜냐하면 부검하는 사람들도 의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믿습니다.
지금도 저는 조카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 믿겨지질 않습니다. 항상 삼쫀하면서 따라다녔는데.. 불쌍한 것 몇만분의 일로 태어난다는 다운증후군으로 태어나 꽃 한번 못 펴보고 정말 재수없게.. 무슨 병으로 죽었으면 덜 분할텐데 이건 다리교정 하러 병원 갔다가 죽었으니 얼마나 억울합니까. 자다가도 일어나 저는 벽을 때립니다. 그때 그 의사들을 못 때려준 것이 분해서..
조카야 잘가라 이 세상에서 못 펴본 너의 나래를 저 하늘 나라로 가서 마음껏 펴보렴..
하늘도 슬퍼서 이렇게 비를 내려주는구나
불쌍한 우리 형님과 형수님 하루빨리 자식잃은 슬픔에서 벗어나야 할텐데, 어렵겠지만.. 형수님은 아직도 제정신이 아닙니다. 불쌍한 우리 형수님..
다시는 우리와 같은 일이 다른 사람에게 생기질 않길 바랍니다. 그리고 관계된 의사선생님과 그 병원에서 일하시는 분들, 당신들도 자식키우는 부모입장일텐데 그런 부모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리는 마음을 갖길 바랍니다.

이글을 읽어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합니다. 허접한 글솜씨로 쓰다보니 내용이 정신없지만 지금 이 내용은 한치에 거짓이 없음을 저는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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