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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하현 4

서연 |2003.07.15 06:45
조회 115 |추천 0

     4

 

역시나 냉랭했다.
상현이도 내 호소에 못 이겨서 나오긴 했지만 잔뜩 부어터진 얼굴이었고
아빠는 아빠대로 안절부절 우리 눈치만 봤다.
좀 제대로 된 이별이길 바랬는데… 에휴. -_-

“안상현! 좀 더 제대로 인사하지 못 해?
그리고 아빠도! 이번에 가면 5년 동안은 못 볼 거라면서.”

상현이는 아예 아빠가 출국하는 기간동안 집에 안 들어 올거라고 선언했다가
내 등쌀에 별수없이 들어와서는 정말 2층에서 한 발자국도 내려오지 않았다.
아빠한테도 화가 났지만 내게도 엄청 삐쳐있다.

안 올거라는 걸 억지로 끌고 공항까지 온 건,
나도 뭐 아빠가 예쁘다거나 용서할 생각이 들어서가 아니다.

다만 고집부리기엔 너무 긴 이별이니까,
조금 위로를 서로 받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아빠는 밉고 용서가 안 되지만
5년후에 내가 아빠를 이해하게 될지도 모르고
그러면 얼굴도 보지 않고 먼곳으로 보내버린 일을 후회하게 될 테니까.

그리고 지금도 아빠는 울 것 같은 얼굴이다.
아무리 미워도 아빠의 저런 표정은 날 슬프게 만든다.

“하현아, 상현아… 정말 미안하다.”

아빠의 품에 안기면서 나는 멍하니 다른 생각을 했다.
엄마가 살아있었으면 어땠을까.
그러면 아빠는 이런 일을 하지 않았을까?
엄마가 있었다면 아빠를 붙잡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왜 우리들로는 안 되는 걸까.
다시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에이씨. 둘 다 쪽팔리게 울지 말고, 갈거면 빨리 가버리라구.
그동안 하현이는 내가 잘 데리고 있을 거니까…
아빠도 거기서 외롭다고 울거나 하지말고…”

상현이는 화가 잔뜩 난 사람처럼 허공에 대고 외쳤다.
부끄러워 하는 거다.
그래, 사실 나보다 상현이가 아빠를 더 따랐었다.
그렇게 믿고 사랑한 사람이니까 상처가 더 컸던 거다.
사실은 무지하게 서운했던 것 뿐이다.

“고맙다, 얘들아. ㅠ_ㅠ”
“주책맞게 울지 말라니까!”
“흑흑”

상현이의 고함소리가 더 커질수록 아빠의 눈물 역시 많아졌다. 정말… -_-;
가지 말까봐, 를 한없이 중얼거리던 아빠는
이번 일의 원흉인 주원아저씨 손에 끌려 게이트를 통과하면서까지 우리를 돌아보며 걸음을 못 옮겼다.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아직 아픈 가슴이 다 치유되진 않았지만 약간은 아픈게 덜해진 느낌이 든다.

아빠의 모슴이 완전히 사라진 순간,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아빠, 아빠… 벌써 보고싶은데 어쩌면 좋아.
씩씩하게 잘 견딜 거라고 약속해놓고 나 벌써 울보가 되어버렸나봐.

갑자기 끌어당겨져서 놀라 바라보니
상현이가 잔뜩 인상을 구긴 얼굴로 나를 가슴에 파묻었다.
상현이의 냄새와 체온에 나는 얼굴을 박고 한참 울었다.

상현이 가슴팍이 축축해져서 화를 낼 때까지. -_-;;
치사한 자식. 지가 울라고 해놓고 화를 내냐. 쳇. =_=

어쨋건 아빠와의 이별은 생각보다 더 슬펐고 허무했다.
금방이라도 다시 돌아올 것 같은 생각에 한없이 서있는 나를 상현이의 손이 잡아끌었다.
반대쪽으로 걸어나오는 길은 마치 유년시절에 안녕을 고하는 것처럼 묘하게 생생했다.

상현이의 팔을 잡고 걸으면서 물끄러미 상현이 얼굴을 올려다봤다.
177인데 아직도 더 클 거란다.
나랑은 벌써 15센티 이상 차이가 난다.
더 크면 크는대로 점점 차이가 나겠지.
가늘고 긴 팔다리랑 갸름한 흰얼굴은
우리 학교에 다니는 연예인들보다도 훨씬 예쁘고 나른한 몸짓은 묘하게 눈길을 끈다.
흐음… 푼수짓만 안 보면 괜찮은 남잔데 말야.

“뭘 봐?”

멋적은 듯 고개를 돌리는 상현이가 왠지 귀여워서 난 상현이 팔을 폭 껴안았다.
헤헤, 수줍어한다, 수줍어해, 오옷, 럭키. 놀려먹을 구실이 생겼다.

“야야, 떨어져.”
“싫어, 나 지금 마음이 허전해.”
“쳇.”

이런 점이 상현이답다.
부끄러워 하면서도 차마 뿌리치지 못하고 보폭마저 나한테 맞춰준다.
아아, 아깝다. 상현이 넌, 왜 내 오빠냐. 너 정말 괜찮은 남잔데 말야.

“저기…”
“왜?”
“아빠가 돈 남겨놓고 갔다고는 하지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알바같은거 해야할까?”

내 말에 상현이는 우뚝 멈춰서서 사나운 눈으로 날 노려보았다.

“쓸데없는 소리하지마. 쓸데없는 생각도 하지 말고.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넌 이제까지 하던대로 얌전히 공부나 해.”
“하지만…”
“입 다물고 시키는 대로 해. 딴짓하다가 걸리면 나한테 죽는다.”

뭐야, 안상현. 조금 무서우니까 가만히 있는다만 이따가 혼내줄거야.
조그마한 아파트지만 아빠가 마련해 줬고 생활비랑 대학갈 자금도 남겨 주셨지만
그래도 만일의 일이라는 게 있는 법이잖아.
내가 못할 소리 한 것도 아닌데 왜 그래.
너랑 나랑 같은 날 태어난 건 알고 있냐?

속으로 한참 툴툴대고 나니 그나마 마음이 좀 풀린다.
쳇, 상현이 너, 나빴어.
불퉁 튀어나온 내 입술을 상현이 자식이 손가락에 끼고 쭉 늘리고는 깔깔 웃는다.

“야아, 돼지가 오리됐다.”
“따여이어, 두어!” (상현이 너, 죽어!)
“재밌네.”
“아오야!” (바보야!)

티격태격 집으로 가는 길은 길었지만 나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상현이랑 나는 둘이 살게 된 기념으로 피자를 시켜놓고 맥주파티를 했다.
내일이면 이사가야 하는 정든 내 집.
내 기억의 가장 오래전 장소도 이 집이었고
기쁘고 슬프고 행복했던 일 모두 이 집에서 일어났다.
곳곳에 우리 가족의 추억이 묻어있는 곳.

그러니까 차라리 잘 된 건지도 모른다.
아빠의 흔적이 남은 이곳은 아직 너무 슬프니까.

적당히 취기가 오를 무렵, 상현이가 내 무릎을 베고 누웠다.
난 버릇대로 상현이의 가늘고 밝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나는 까맣고 뻣뻣한 직모인데 반해
상현이는 밝은 갈색에 하늘거리는 가느다란 반곱슬.
우리가 진정 쌍둥이라면 내 머리도 상현이같아야 하는 거 아냐?
더구나 키도! 암턴 상현이 넘이랑 나는 너무 안 닮았다.

좋은 건 지가 다 가지고 나쁜 건 죄다 나한테 왔나보다.
흥! 엄마아빠 미워! -.,-

“미워, 너. 쳇. 저만 잘났고…”

알아, 이거 술기운이다. 취한 거야. 그래도 투정 정도는 부리게 해 줘.

“그래? 난 하현이 너, 좋은데.”

허걱, 이 놈이 정말 취했나.
니가 맥주열몇병에 취할 놈이 아니잖아.
그러고보니 오늘 빈 속이었던가.
맞다, 상현이 오늘따라 피자도 한조각밖에 안 먹었고.
슥 이마를 짚어보자 상현이가 화를 냈다.

“아, 진짜! 이럴 땐 좀 조신하게 들어라.”
“니입에서 나올 소리가 아니잖여.”
“하여튼 기집애가 더럽게 분위기도 안 타요, 진짜.”
“헤헤, 근데 내 어디가 좋은데? 응? 응?”
“아, 몰라!”

아아, 또 얼굴 빨개졌다. 이럴때 보면 귀여워서 좋은데. ^0^

“아이, 상현아아~ 말해봐. 나, 어디가 좋은 거야?”

오옷, 외면한다.
이러면 더 놀리고 싶어.
상현이도 알고보면 놀리는 재미가 꽤 쏠쏠하단 말이지.
얼굴에 다 드러나는 타입이랄까. 부끄러운 건 죽어도 못 참는달까.
암턴 너무 재밌어. ^ㅁ^

“하현아.”
“어, 왜?”

왜 그렇게 쳐다보니?
아무리 니가 내 오빠고 한집에서 십칠년을 살았지만
그렇게 정색을 하고보면 좀 그렇잖아.
근데 너, 이렇게 보니까 정말 예쁘구나.
늘 보던 상현이랑 어딘지 달라보여.

“너 정말로 흰면팬티 입냐?”

화르륵. 얼굴에 불이 붙는 소리가 들린다.
창피? 그런 거 몰라. 이건 분노란 말이다!

“죽어, 새꺄!”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상현이는 머리를 감싸안고 나한테서 멀찍이 굴러갔다.
아아, 용서가 안 돼.

“상현아, 이리 와. 한대만 더 맞자. 응? *_* 어여 와.”
“미쳤냐? 괴수의 손아래 목숨을 맡기게?
저건 진짜 여자도 아냐. 너 패쌈같은거 하지? 그치?”
“그래, 아주 죽으려고 용을 써라. 얼른 일루 못 와? -.,-”

아아, 우리집에서의 마지막 추억은 역시나 상현이와의 싸움이었던 것이다.
웬수같은 새끼. 좀 우아하게 마지막 밤을 맞고 싶었건만.
역시 인생에 도움이 안 돼, 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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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리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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