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경제 위기 때 명퇴 한 어느 전직은행장의 죽음이 화제다.
알 콜 중독이 되어 아내가 잠시 돌아서 있는 동안 숨을 거둔 일이 문득 스치듯 우리들의 곁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별고 없으시지요?"
전화를 걸어온 사람들의 공통된 안부다.
"건강하시지요?"에서 "별고 없으시지요?"로 바뀐 게 금년 들어 중반을 넘어선 때부터 인 듯 했다.
"별고 없으시지요?...." 세상이 하도 뒤숭숭하다.
시골에서 몸담고 그럭저럭 살고있는 사람이 웬 별고가 있을까마는, 몸은 시골에 있지만 자식들과 가족과 가까운 친지이웃들이 시골에만 있는 게 아니니 더욱 그렇다.
한참 전원주택 붐이 일었던 적이 있었다.
모두 전원의 꿈을 꾸며 가까운 고향이나 수도권의 한적한 농촌을 찾으며 은퇴 후에 살집이나, 나이든 노부모를 한적한 전원에 살게 하며 자식들이 가끔 내려와 같이 쉬었다가려는 의도가 배어있어 붐이 일었다.
내가 사는 곳은 남한강을 끼고 있어 거의 무공해 고을이라 많은 사람들이 경치 좋은 곳을 골라 택지를 만들어 분양을 했었다.
내 후배 역시 강물이 가슴으로 밀려오는 양지바른 언덕에 택지를 조성하고 축대를 쌓고 나무를 심어 준공을 준비했었다.
돌아보면 주변은 진달래가 진창으로 피었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고, 언덕 너머엔 졸졸 샘물이 모여 흘러 내려 돌을 들추면 가재가 뒷걸음으로 숨는 곳이었다.
듣기도 처음인 IMF 라는 말이 귀에 설 게 들릴 때쯤 그는 투자한 돈을 하나도 거두지 못하고 지금껏 한숨 속에 살고있다.
"더해요..."
묻지 않아도 안다.
길가에 차도 줄었고 빈 사무실은 늘어간다.
겨우 몇 평 짜리 사무실 몇 개 세를 받아쓰는 사람도, 노후를 농촌에서 즐기려는 사람도 모두가 지쳐 가슴에 답답함만 쌓인다.
자식이 돈이 없어 절절매는 걸 보며 어찌 전원주택을 지을 수가 있을까?
농촌으로 가면 생활비가 적게 들것이다?..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하이칼라였던 은행지점장의 자리는 누구나 부러워할 자리였다.
판공비도 있고 기관장이라는 대우도 받았고 누구나 은행문턱을 넘을 때 걱정을 하며 넘어와 그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아부의 웃음을 흘렸으리라...
그가 명퇴를 당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세월...그 세월 속에 그는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혜안이 없었다.
혜안...아니 어느 누구도 그런 혜안은 가질 필요가 없었고 준비한다해도 이렇듯 힘든 세월이 오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나라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나라만을 위하며 살았다면 아마도 오지 않을 경제위기를 그들은 몸으로 느끼지 않아도 되지만, 그를 바라보고 있는 수많은 나라의 백성은 숨도 쉴 틈이 없이 빵 한 조각을 위해 거리를 헤맨다.
"내가 책임질게 열심히 일이나 해!....."라고 말할 사람이 없다.
"조그맣게 지으세요?"
은퇴를 앞둔 고향 선배가 찾아와 노후를 보낼 집을 지으려 할 때 그에게 충고를 했다.
"아니..더 있다가 지으세요...그 돈 아껴두었다가 비상금으로 쓰세요..?"
참 험한 세상이다.
비상금으로 둔들 그 얼마일지도 모르는 것을 두라고 했다.
지금 모든 사람들이 불안하다.
사오정이라는 말이 유행한다.
내 자식이 언제 실직을 할지도 모르며 언제 내가 아파 병원에 실려갈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그냥 사세요..조금만 더 참으시고..그냥 사세요.."
나이 30에 직장 잡고 15년 일하고 30년을 더 쉬어야 하는 우리 아들들의 이야기며 내 이야기가 될 사오정의 유행이 가슴을 메이게 한다.
나이 30이 넘어 아직도 직장을 구하지 못해 허구한날 거리를 헤매며 이력서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의 걸음걸이가 피곤에 지쳐있다.
누구이던가 ?
이토록 착하고 착한 사람들의 가슴속에 미움과 응어리진 저주를 가득하게 한 사람은...?
경기회복이 느리더라도 몇 달 후면 나아질 것이다... 아니... 내년엔 좀 나을 것이다....누구하나 그렇게 위로해주고 희망을 주는 사람이 없다.
위로해주며 희망의 불씨를 당겨주는 사람은 어디 있을까?
나를 따르라...내가 당신들을 잘살게 책임질 것이다.
저기 희망이 있으니 한마음으로 가자...!!라며 기치를 내걸고 횃불을 높이 든 사람은 왜 보이지 않는 걸까?
희망이 없는 삶과 있는 삶의 차이점이 극명하게 다름에도 위정자들의 행동 속엔 아직도 사리사욕으로 점철된 핏발선 눈빛만 보인다.
제 잇속을 위해 철새가 된 국회의원이 신문기사에 올라있다.
지금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있는데 제 안식만을 고집하는 듯해 보기 역겹다.
그들의 웃음...그들의 멀끔한 정장이 더 밉다.
술을 마시고 잊으리라... 이 험한 세상에 나약해지기만 한 내 모습을 보기 싫어 취해야 잊은 듯 살수 있을 거라 생각을 멈추고 마시기 시작한 술잔 이였다.
세상에 대한 괴리감은 더 이상 그를 꿋꿋하게 서지 못하게 했다.
그 희망... 그게 없는 좌절이 스스로 죽음으로 걸어가듯 피폐한 정신을 만들었다.
"별고 없으시지요?" 그 인사가 "건강하시지요?"로 바뀌길 기대한다.
누구에게도 고통의 파도는 밀려온다.
지나간 고통은 아름다운 추억이다.
앞으로 다가오는 새로운 파도 같은 시련이 더 무서울 뿐 지난 것은 이미 잊었다.
좋아질 거라는 형이상학적인 희망이라도 온 국민의 입에서, 생각에서, 무심결에라도 나온다면 얼마나 좋으리...
무덥다.
에어컨을 켜려다 멈춘다.
전기료라도 아끼자...라는 생각에서였다.
창문을 열고 대자연의 무심함을 본다.
새는 나무사이에서 지저귀고 바람은 죽은 듯 고요하다.
한 유하게 부채로 더위를 시키기엔 마음이 조급하다.
그냥 초조한 것, 그냥 어딘지 모르게 불안한 것, 그냥...내일이 두려운 게 나만의 생각만은 아닐진대 모두 무고했으면 좋겠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니 모두 무고하겠지....
그게 내 지금의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