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은 의례껏 구질구질한게지만 마알간 하늘 보아내기 힘든 이즘은 더욱이나 축축 늘어지게할 뿐만 아니라 오락가락하는 빗방울을 보노라면 마음이 젖어들어 싫다. 한때는 비람 어떠한 비를 막론하고 참으로 정겨웁게 좋아한 적이 있었다. 나뭇잎을 적셔대는 소리에 잠을 깨이고 창을 타고 흐르는 빗방울을 온몸 가득 퍼 안아대던 날들이 있었다.
그날은 바람이 불어 창을 닫아버렸다. 함에도 모진 비 바람 몰아침을 알 수 있었음은 창이 흔들리고 창 밖의 모과나무 가지가 흔들리고 먹장 같은 하늘에 구름이 흔들리고 그걸 바라기 하고 있는 내가 흔들려서였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중에서도 "사계"를 있는데로 올려놓고 빗소리를 아니들어내려 몸부림 해댔었다.
하여 비오는 날엔 행복한 기억보단 아스라한 기억 저편 너머 희미하게 떠오르는 시린 기억뿐이라서 더,더욱이나 싫다. 내게 있어 비오는 날의 추억은 덜커덩 대며 기차 바퀴 구르는 소리와 차창을 스치던 빗방울이며 비에 젖어드는 남한강 두물머리가 눈에 잡힐듯 아스라한 추억 한자락으로 떠올라 슬픔에 잠겨들게 하는 것이며 우산 속에서 그녀의 온기와 가슴 떨리는 소리를 듣는 것이었으며 코를 흠흠 벌름거리지 아니해도 맡겨지던 아릿한 살내음이 묻어나 숨 멎어버릴 듯한 희열같은 것들이었다.
눈을 감아도 떠도 나를 떠나가던 순간이 떠올라 아프지만 그녀를 미워한 기억은 없다. 전생에 없던 연분 어찌 현생에 있을게냐며..남만의 사랑을 어찌 나만의 사랑이라 여겼었는지 그 헛됨을 잊어낼거라며 마음 드잡이 했었건만 "전생에 없던 인연" 임에도 쿨 하게 헤어졌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내가 미워질 수 밖에 없었다. 비만 오면 비에 젖어 내 뺨을 타고 흐르는 이것은 눈물이 아닌게라 여겨보려 했었다.
비 퍼붓던 비둘기 노닐던 청량리 역 광장에서의 돌아섬은 참으로 비참했었다. 그녀의 빈 그림자도 보아낼 수 없었던 시계탑 앞..그녀가 나를 떠날 수 밖에 없었음은 넘어서지 못할 현실의 벽이었기에 미워하지 않을수 있었는데 하필이면 비까지 퍼부어댈 줄이야..비오는 날 나를 떠난 그녀건만 이즉까지 원망조차 할 수 없는 내가 미웁기만 하다. 비,바람 몰아치는 시계탑 앞에서 젖어들고 있었던건 캐들고 갔던 제비꽃 만이 아니었다. 바짓단이며 구둣속으로 때꼬장 물들이 구질구질 하고 칙칙하게 젖어들어 짜증이 치솟았고 그날따라 오살하게도 많은 연인들의 우산속 도란거림이 짜증이 났고 빗물에 가려 보이지는 않았지만 쉬임없이 흘러내리던 눈물이 속절없었다.
기차는 1분도 어김없이 6시에 떠나건만 일각이 여삼추 같던 촌음의 시간들을 어찌 하겠던가. 난 또 다시 포장마차에 들러 쐬주 한병을 시켜서는 사이다 컵에 달달달 따라선 냉수 마시듯 벌컥벌컥 들이킬 수 밖에 없었다. 캐갔던 제비꽃을 그자리에서 짓밟아 버리지도 못하고 소중히 가져와서는 뜨락에 내동댕이 쳤었는지 지금도 알 수 없다. 이제 다시는 제비꽃을 좋아하지도 비오는 날을 좋아하지도 않으리라 다짐을 해댔다. 오늘도 비가 오신다. 언제나 처럼 비에 젖어드는 건 슬프다. 비야! 가라! 널 보면 슬퍼지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