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한국교회 부끄러운 과거①] “일제시대 교회, 민족배신 솔선수범” | 종교 2006/08/06 23:14
http://blog.naver.com/sohanmin/30007325110
[특집 한국교회 부끄러운 과거①] “일제시대 교회, 민족배신 솔선수범”
[데일리 서프라이즈 2005-09-18 16:01]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가 최근 친인인사 3090명의
명단을 발표하면서 이 사회의 친일 청산 작업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될 인사들의 명단 발표는 일부 보수 단체들의 강력한 저항을 받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 성숙한 국민들과 단체들의 자기 반성도 이끌어내고 있다.
***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될 예정자 3090명의 명단이 발표되자 기독교
일각에서는 이를 겸허하게 반성해야 한다는 반응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교회언론회라는 단체는 친일명단 발표가 ‘단죄’의 성격을 띠어서는 안되며,
“치열한 역사의 현장에서 발생한 불행한 과거에 대해 현재의 잣대로 재단할 수 없다”는
상투적인 반응을 보였다.
천도교 대표자가 명단 발표와 더불어 “천도교의 과거 친일 행적을 참회하며
민족운동의 전통을 이으려 한다”고 발표한 것과 대조적이다.
한국교회가 과거사에 대해 전체적으로 참회가 부족했고 지금이라도
신앙조상들의 잘못을 참회할 필요가 있다는 데는 공감대가 이루어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참회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르다.
교회가 친일행각을 한 기독교인의 명단을 공개한다고 참회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민족과 사회의 양심의 교사다운 처신을 위해서 먼저 무엇을 참회해야 할 것인가를 검토해야 하고
그 점에 대해 한국교회 전체가 공감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신사참배를 친일행위의 전부로 생각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신사참배만을 주로 거론해 왔다. 한국교회가 참회할 과제는 우상숭배의 죄만이 아니다.
배교, 이교개종, 신도침례, 백귀난행-친일행각, 민족배신, 비인도적 행각 등 청
산해야 할 죄가 많이 있다.
한국교회가 양심의 교사다운 정체성을 회복하고
민족과 사회를 위한 양심이 교사다운 정체성을 회복하자면
아래의 열 가지를 공적으로 참회해야 한다.
1. 신사참배, 우상숭배, 황거요배, 신도예배
한국교회는 1938년 말부터 1945년 여름까지 우상숭배, 곧 신사참배를 했다.
교회 대표자들과 총회원과 노회원들이 열을 지어 신사(神社)에 가서 신도교의
예배 대상인 일본 신(神)을 참배했다.
'가미나다'라고 하는 이동식 신사를 교회당 안 동편에 두고 신도들은 그것을 향해 예배했다.
제1부 예배로 신도예배를 드렸고, 제2부 예배로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했다.
일본의 신을 향하여 기도, 소원간구를 드렸으며, 그 예배는 찬양-손뼉, 예물 바치기,
황국신민서사낭독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일제는 신사참배를 종교[의식]이 아니라 국민의례라고 해석했다.
일제는 신도교를 국교로 삼은 종교국가였다.
정부가 이 국가종교와 그 사제를 관장했다.
일제는 신도주의(Shintoism)를 바탕으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을 침략했다.
신사참배는 국민의례였지만 그것은 일본민족주의에 토대를 둔 국가종교,
신도교의 우상숭배 의례였다.
한국교회는 그것이 명백한 우상숭배 행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신사참배가 제1계명과 제2계명에 저촉되는 이교 제례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황거요배, 동방요배도 신사참배에 버금가는 이교예배 행위였다.
주일날 신자들은 교회당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정오 사이렌 소리가 나면 일제히 일어서서 동쪽을 향해 절을 했다.
신사참배거부운동자들 사이에는 그것이 ‘살아 있는 임금’을
향한 신하와 백성의 예(禮)인가 아니면 우상숭배인가 하는 견해의 불일치가 있었다.
당시의 일왕은 ‘천황’이라고 하여 신격화 되고 있었다.
천황의 ‘천’(天)은 종교성을 가진 단어이다.
그러므로 ‘천황’에게 절하는 것은 예배하는 행위로 풀이할 수 있다. 로
마제국 시대의 황제숭배와 같다.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신사참배가 국민의례이지 종교[제의]가 아니라는
일제의 해석을 받아들였다.
교회가 ‘국가의 신학적 해석’을 수용한 것이다.
일제의 기만적 신학적 해석을 수용한 것은 한국교회가
국가권력에 무작정 굴종하는 전례가 되었다.
이러한 전통은 한국교회가 이승만 정권의 반공이데올로기와
군사정권 하의 철권통치 이데올로기를 수용하거나 그것에 대한 저항력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사참배와 관련하여 한국교회는 (1)우상숭배, 동방요배, (2)신도예배,
(3)그리고 이것들이 종교제의가 아니라 국민의례라고 교인들을 기만한 일,
(4) 일제의 신학적 해석을 수용한 일, (5) 일제의 교회 간섭을
허용한 것 등을 참회해야 한다.
5. 백귀난행, 부일협력
한국교회는 적극적으로 부일행위를 했다.
성전(聖戰)이라는 이름의 악의 전쟁에 협조했다.
신의주에서 모인 장로교 총회는 교회조직을 전쟁보조 기구로 개편했다.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 회록에 따르면 장로교회는
1937년부터 3년 동안 국방헌금 158만원, 휼병금 17만2000원을 모아 바쳤고
, 무운장구기도회 8953회, 시국강연회 1355회, 전승축하회 604회, 위문회 181회를 치렀다.
1942년에는 ‘조선장로호’라는 이름이 붙은 해군함상전투기 1기와 기관총 7정
구입비 15만317원 50전을 바치고, 미군과 싸워 이겨달라는 신도의식을 거행했다.
1942년에 열린 제42회 총회의 보고를 보면 장로교단은
교회당 종 1540개와 유기(鍮器) 2165점과 12만여원을 모으고 마련하여 일제에 바쳤다.
경북노회 노회장 송창근 목사는 산하 교회들에게 명령하여
교회의 종과 철제 물건과 유기를 관청에 갖다 바치고 그 보고서를 노회에 올리도록 했다.
교회와 그 지도자들의 이러한 친일 ‘애국’ 활동은 전국적으로 펼쳐졌다.
친일 부역은 ‘조선예수교장로교도 애국기(愛國機) 헌납 기성회’ 회장
정인과 목사를 포함한 일부 친일파 목회자들만의 소행만은 아니다.
감리교회는 1944년에 교단 상임위원회의 결의로 ‘감리교단호’라는
이름을 붙인 애국기 세 대를 살 수 있는 돈 21만원을 헌납했다.
모금은 ‘성도의 헌금 전액과 교단 소속 교회 병합에 의한 폐지 교회의
부동산을 처분하여 충당하는’ 방법에 따랐다.
‘교회병합 실시 명세표’를 만들어 전국 교회에 보냈다.
광주지역 기독교는 세 교회당만 사용하고 나머지는 폐쇄, 매각하여 일제에 바쳤다.
금정교회는 교구장의 사무실과 주택으로 사용되었다.
광주지역에서 예배를 드린 곳은 양림교회당과 중앙교회당 뿐이었다.
향사리교회, 구장정교회, 일곡동교회, 유안동교회를 폐쇄하고
부동산과 재산을 팔아 일제의 군수물자구입비로 상납했다.
밀려난 목사들은 농사를 짓거나 소일했다.
이러한 친일행각을 한 광주지방의 일본기독교조선교단의
총 책임자는 정경옥 목사(전 감리교신학교 교수)였다.
장로교의 성갑식, 백영흠, 조아라 목사가 그 아래에서 친일행각을 하고 있었다.
일제말기의 한국교회 신자들은 대부분 ‘기독교도연맹’에 가입했다.
교회는 연맹회비를 한 사람당 20원씩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