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 여자 입니다..
하소연할곳이 없어 이곳에 씁니다..
글이 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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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와 나는 성이 다르다.
그것은 언젠가 부터 자연스럽게 알게된 사실이다.
초등학교 다닐적 같은동네에 살던 친구가
세탁소에 걸려있는 오빠 교복에 적힌 이름을 보고
넌 왜 오빠랑 성이 달라? 라고 물어본적이 있었다.
아무대답도 하지못한 나는 그 순간부터
오빠와 성이 다른것이 창피한것이라고 느꼈고, 그 후 가족 얘길 꺼내는걸 싫어했다.
곧 오빠의 존재는 내게 싫은것,창피함이였다.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어찌보면 오빠와 여동생간의 싸움은 다른집에서도 흔한 그런 일이지만
나의 마음속에는 싸울때마다 쌓이고 쌓여서 오빠에 대한 미움을 키웠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사춘기에 접어들었을때는
언니가 결혼하는바람에 아빠,엄마와 따로 떨어져 살던 우리는,
나는 아빠,엄마와 살았고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오빠는 셋이 살던 그 반지하에 혼자 살았다.
그 후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함과 동시에 다시 아빠,엄마,오빠와 같이 살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오빠와 나의 갈등은 다시 시작되었다.
고등학교 내내 게임만하고 졸업하고서도 일할 생각없이 아빠엄마 돈이나 쓰는 오빠는
내게 무능력자로밖에 안보였다.
또, 아빠엄마의 싸움의 중심에 오빠가 있어 내 반감은 반감대로 커져있었다.
하루에 같은집에 살면서 우리의 대화는 한두마디 필요이상을 하지 않았다.
사실 나는 오빠와 대화하는 자체가 거북한일이였다.
그러나 그 없는 대화마저 오빠와 나는 매일 싸웠다.
오빠 성격을, 말투 하나하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나는 삐그덕 삐그덕.
소리지르고 울고 싸우고.
그러다 내가 고등학교2학년 때. 2005년 11월. 우리집엔 파도가 밀려왔다.
그저 집에만 있던 오빠가 가끔 머리가 아프다고 호소해왔나보드라.
그 때까지 집에 별 관심이 없던터라 그 자세한 내막은 모르나
엄마와 오빠가 CT를 촬영하러 갔었고, 그리고 나아가 종합병원에서 MRI를 촬영했던가.
별 다를일 없이 야자를 끝내고 집에 가던 나는 언니의 전화를 받고 친구앞에서 엉엉 울었다.
오빠가 뇌종양이란다.
드라마에서나 주인공이 걸리던 병이 우리집 식구가 걸린거다.
별 애정도 관심도 있다면 미움밖에 없던 오빠였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많은 생각이 오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뿐.
여하튼 오빠는 바로 강북삼성의료원에 입원했고
엄마는 매일 오빠 옆에 있었다. 밤에 들어와 새벽에 나가셨다.
그리고 아빠는 지방에 계셔 집은 항상 비어있었다.
야자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나는 허전했다.
남자친구와 헤어진후 바로 겪은 이 일은 18살이었던 내가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
항상 비어있는 집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고 방황케 했다.
오빠가 백여일동안 입원하고 수술하는 동안 난 단 한번 면회를 갔다.
그것도 언니의 성화에 이기지 못해.
그곳에 가서 아픈 오빠를 보고 왠지모를 울컥하는 마음에 제대로 보지도 않았고,
지친 아빠와 엄마의 모습을 보고 병원 화장실에서 울었다.
그리고 내가 언니에게 들은 충격적인 이야기.
오빠는 엄마가 데려왔는데 돌아가신 오빠의 아버지쪽 친척분들이 다녀가셨는데
아빠가.내가 가장 사랑하는 우리아빠가. 그 분들께 잘 못 키워서 죄송하다고 그랬단다
나는 아픈 오빠를 두고 너무너무 싫었다.
왜 오빠때문에 아빠가 그런말을 해야하지?
오빠가 아픔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빠가 싫었다.
퇴원후 오빠는 그전과 많이 달라져있었다.
수술은 성공적이였으나 55kg였던 오빠는 어느덧 80kg,
뇌수술을 받은덕분에 성격까지 난폭해졌다. 그리고 한쪽시력을 잃었다..
내게 받아들이기 힘든 변화.
환자가 있으면 가정도 병든다고 하였던가.
아빠와 엄마는 지쳐있었고 나또한.
그렇게 집안의 평화가 유지되나 싶더니
내가 수능보기 한달전. 2006년 10월.
오빠는 다리에 이상이 생겨 또 한번 입원했다.
극단적인 상황까진 아니지만 제대로 걷질 못했다.
여하튼 그렇게 11월이 오고 나는 수능을 봤다.
말그대로 망쳤다.
엄마가 집에 없어 불안한 나는.
이 모든걸 오빠탓으로 돌렸다.
내 마음엔 이해니 화해니 오빠에 대한 조금의 마음도 없었다.
지방에 있는 대학에 내려갔다가 가족과 떨어져있는 외로움에 반수를 결정했다.
연세가 60인 아빠는 힘이부친모습이셨고
내고등학교시절 아빠엄마가 매일 싸워 평화가 없던 우리집은 내가 떠나고 싶지 않은 곳으로 변해있었다.
그러나 오빠와는 여전히 대화가 없는 정도.
나는 시험으로 예민해져 오빠와 부디쳐 싸움을 피했다.
그리고 2007년 10월.
오빠가 또한번 입원을 했다.
뇌종양으로 입원했을적 식조절을 잘못해서 비만과 동시에 당뇨까지 겹친 오빠.
길에서 유모차와 부딪친 탓에 다리에 염증이 생겨 절단 직전에 이르렀으나 그 까진 가지 않았다.
아빠는 왜 매년 내가 시험보기 전에 그러냐며 소주를 기울이셨다.
항상 아빠는 술드시면 오빠얘길 한다.
환자니까 니가 이해해라. 이런얘기등.
나는 무얼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자라고 나니 오빠를 미워하는것도 오빠와 싸우는것도 더이상 부질없음을 느껴갔다.
시험이 끝나고 나 스스로 이해하기로 했다.
오빠와의 이해도 아니고 나 스스로 내 마음과 타협하고
어느덧 오빠에게 밥을 먹었냐고 묻는 내가 있었다.
그러나 수능이 끝난지 3일째인 오늘 새벽.
소란스러움에 잠깨어 나가본 나는,여느때 봐왔던 상황보다 더 긴급한 상황이 일어나 있었다.
목놓아 울고 있는 오빠와 왜그러냐며 묻는 아빠와 엄마.
그저 아무말도 못하고 우는 오빠.
엄마는 뇌에 이상이 생긴거라며 불안해 하셨다.
119를 불러 엄마와 오빠는 급히 병원으로 갔고
남겨진 아빠와 나는 그저 멍했다.
지금도 심장이 벌렁거린다.
앞으로 이런일이 얼마나 더 있을까.
아빠 연세60 엄마 50, 두분 모두 너무 지치셨다.
아빠엄마가 너무 안쓰럽다.
오빠에 대한 미움도 없는 지금.
다정한 오누이를 하고 싶었지만
오빠는 다시 병원으로 갔다.
아 지금 나는 너무 힘들다.
이것은 여전히 감당하기 힘든 일.
병든 우리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