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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서 거짓사실을 가르치는 크리스마스와 부활절

천하포무 |2007.11.23 11:01
조회 345 |추천 0

예수가 허구적인 인물인가는 크리스마스와 부활절로도 알수가 있다.
어째서 두 명절이 하필이면 고대 중근동과 중세때의 동지날 축제와 춘분축제(봄의 여신축제)와 정확하게 일치하는가? 어째서 예수는 기가막히게 동지날 축제에 태어나고, 춘분 축제때 부활했는가?

(1) 크리스마스의 기원

12월 25일(크리스마스)은 예수가 태어난 날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 정확한 예수의 탄생은 알려져 있지 않았으며,12월25일은 조로아스터교와 미트라, 로마인들의 태양신을 맞이하는 축제였다. 크리스마스(christmas)는 Christ(그리스도)와 Mas(미사,축제일)의 두 단어가 합하여 이루어진 말이다. Christ는 Christos(크리스토스)에 그 어원을 두고 있으며, 이 그리스어 크리스토스는 히브리어의 메시아(Messiah)와 같은 것이다. 어원에 충실하게 번역하면 메시아 제전이라는 뜻이 된다.

이러한 크리스마스가 예수의 탄생일이라는 것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에 의해 크게 왜곡되어 버린 것이다. 그날은 엄연하게 예수탄생 이전에도 동지날 축제와 수많은 메시아와 신들의 축제 였기 때문이다. 12월25일은 일년 중 낮의 길이가 짧아지다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는 시기에 속한다. 농경 생활을 하는 당시 사람들에게는 태양은 곧 절대자의 상징이었고 태양이 다시 그 힘을 회복하여 낮의 길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이날은 춘일의 도래와 함께 생명의 소생을 예고하는 날로서 고대인들이 메시아 신앙으로 미래를 소망하던 날이었다.

알렉산더 히슬롭은 그의 저서 '두 개의 바빌론'에서 12월 25일의 기원은 고대 바빌론 종교에서 하늘의 여왕인 '이쉬타르'의 아들 '탐무스'의 탄생일을 기념하는 종교적 축일이었으며,이집트의 하늘의 여왕인 '이시스'의 아들 '호루스'가 태어난 날이다.[알렉산더 히슬롭. '두 개의 바빌론'.도서출판 안티오크]

그런 종교적 관습은 후에 등장한 조로아스터교와 미트라교에도 이어지게 된다. 12월 25일은 다시 조로아스터교의 태양신의 생일이 되었으며, 미트라 숭배자들에게는 태양신(미트라)의 복귀를 축하하면서 새로운 태양을 맞이하는 축제로서 페르시아인들은 빛의 신인 미트라(Mithra)에게 불을 붙여 바쳤으며, 로마에서는 이날을 농민제(사트르날리아 축제)라고도 부르며 12월 중순부터 연말까지 농신제를 지키면서, 축제를 베풀고 거리에서 가면을 쓴 채 술잔치를 베풀었다고 한다. 기독교가 헬레니즘문화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 그들의 풍습을 하나둘씩 흡수하면서 손쉽게 이방인들을 교화시킬 수가 있었다.
이것을 기독교의 토착화라고 한다.

예수가 태어난 날은 복음서에 기록이 없어 B.C. 4C 이전에는 성탄절이 없었다. 다만 2세기 때 1월 6일 ‘신현절’이라 하여 이날을 예수가 태어난 날과 세례를 받은 것을 겸하여 지금의 성탄절로 지켰다. 1월6일로 결정한 것은 예수가 동방 박사들에게 나타난 것, 예수가 세례받을때 아버지와 성령이 나타나신 것, 예수가 가나에서 처음 행한 이적 등을 기념하여, 325년에는 전 교회 대부분이 성탄절로 지켜오던 것을 353∼354년경 교황 리베리어스가 1월 6일을 신현절 혹은 세례절로, 12월 25일을 성탄절이라 하여 예수 탄생의 날로 공식 발표하여 로마에서 이를 지키기 시작한 후 동교회에서도 동조했다. 로마역사에서 보면 그리스도교의 크리스마스 축제는 B.C. 336년경 로마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집트의 동방교회에서는 1월 6일로 사용하여 왔으나, 서방교회에 서는 4세기에 와서 주리안 달력으로 12월 25일인 동지(冬至, 양력 12월 22일)축제인 때문에 태양 탄생일인 동지일을 예수탄생일로 정하여 동서교회가 함께 12월25일로 일치되었다. 매클린톡과 스트롱의 '교회문헌 백과사전'에는 크리스마스에 대해서 이렇게 언급해 놓았다.

"크리스마스 기념은 하나님이 명령하신것도 아니며, 신약에서 기원한것도 아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일은 신약이나 여타자료에서도 확인 할수없다. " [ J. 매클린톡과 J. 스트롱 공편 , 교회 문헌 백과사전 (Cyclopedia of Biblical, Theological, and Ecclesiastical Literature).뉴욕1871년판 2권 P.276]

헨리 대니얼 롭스의 '예수당시의 일상생활'에는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 양은 .... 겨울에는 우리안에 넣는다. 이 사실하나만 보더라도 겨울에는 전통적인 크리스마스날짜가 옳을 수 없음을 알수있다. 왜냐하면 복음서에서는 그때 목자들이 들에 있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 [헨리 대니얼 롭스. '예수당시의 일상생활'. 뉴욕 1962년판, P.228]

이스라엘은 비록 작은 나라지만 북부와 남부의 기온 차가 커서 12월에 남부 해안에선 해수욕을 즐길 수 있는가 하면 북부 지방에는 스키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가득 하다. 북반부는 지중해성 기후이고, 요르단지구대는 여름에 찌는 듯이 더우며, 남반부는 전체가 네게브 사막이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땅에서 겨울철에는 식물이 자라지 않는데, 복음서의 기자들은 예수가 탄생할 때 목자들이 밤을 세워 들판에서 양을 몰았다고 한다. (참고삼아 말하면, 팔레스타인은 여름철에도 밤과 한낮의 기온 차이가 40도나 될 때가 있고, 밤은 떨릴 정도로 기온이 내려간다.
그래서 율법에서는 채권자에게 담보로 잡은 외투를 저녁에는 채무자에게 돌려주라고 권고하고 있다.) '아메리카나 백과사전'은 크리스마스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 내리고 있다.

" 12월 25일을 크리스마스로 정한 이유는 좀 모호한 면이 있지만,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느 동지 즈음에 ' 태양의 재탄생'을 위해 지켜졌던 이교축제 기간과 일치하게끔 그 날짜(12월 25일)가 선택되었다는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로마의 농신제(농업의 신인 사투르누스와 신생되는 태양신에게 바쳐진 절기)는 또한 이시기에 지켜졌으며, 일부 크리스마스관습들은 그 고대 이교 축제에서 유래된것으로 생각된다. " [아메리카나백과사전.1977년판,6권,P.666]

'신 카톨릭백과사전'에서는 크리스마스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를 내리고 있다.

" 그리스도의 탄생일은 알려져 있지않다. 복음서에서는 그 달과 그 날짜를 알려주지 않는다....H.유시너가 제기하였으며,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이 받아들이는 가설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탄생이 동짓날 (율리우스력으로 12월 25일, 애굽인에게는 1월 6일)로 지정된 이유는 그 날, 태양이 북쪽하늘로 되돌아 오기 시작할때 이교도인 미트라 신봉자들은 무적 태양의 탄생일을 축하하였기때문이다. 아우렐리아누스는 274년, 12월 25일에 태양신을 제국의 으뜸가는 수호신으로 선포하였으며 한 신전을 마르티우스 광장에 있는 그 신에게 바쳤다. 그 후 크리스마스는 태양숭배가 로마에서 특히 성행할 때에 시작하였다. " [신 카톨릭백과사전.1967년판,3권 P.656]

두산세계대백과는 크리스마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크리스마스는 초기 그리스도교가 이교도 사이에서 행해지고 있던 봄의 광명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동지(冬至)의 축일, 다시 말하면 태양숭배의 습속을 이용하여 그리스도 탄생을 기념한 것으로 보인다. 주로 농경사회의 로마에서는 ‘사투르날리아’라는 농경신 새턴의 제일(祭日)이 12월 21~31일(혹은 17~24일까지, 또는 1월 1일)까지 계속 성대하게 베풀어졌다. 이 신은 본래 그리스에서 왔다고 전해지는 고대 이탈리아의 신으로서, 크로노스와 동일시하는 경우도 있다. 역시 그리스에서 와서 더 오래된 야누스의 도움으로 ‘황금시대’의 즐거운 날을 보내다가 문명화하는 일을 계속하였다. 새턴은 특히 사람들에게 대지의 경작법을 가르쳤다. 그리하여 새턴은 재배와 포도의 채집과 관련되어 있다. 이 크로노스 신(로마에서는 사투르누스신)을 제사하는 ‘사투르날리아’ 기간에는 노예도 자유롭게 주인의 연회에 참석할 수가 있으며, 혹은 주인이 거꾸로 노예에게 봉사하는 경우도 있는데, 일반적으로 연령 ·성별 ·계급의 구별 없이 연회 ·경기 ·행렬 따위가 벌어졌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도 서로 선물을 교환하였다. 이 기간 중에서 12월 25일은 동지가 지난 다음으로 태양이 소생하는 날이라고 하여 특히 기념되었다. 또 ‘미트라의 축일’도 이 날이었다. 미트라는 본래 페르시아인의 신으로서 태양과 동일시된 인도 ·유럽 민족의 옛 신성(神性)이었다. 이것이 로마 사람들, 특히 군인 ·병사 사이에서 숭배되어 유럽 각지에 전파되었다. 이것은 태양신, 불패의 태양으로서 숭경되었던 것이다.

 

어쨌든 켈트 민족의 제사(祭司)계급이었던 드뤼도들도 그들의 높은 성소(聖所)에서 이 기쁜 날을 축하하고, 또한 게르만인도 이 날을 유쾌하게 축하하였다. 초대 그리스도교의 지도자들이 이러한 농경력(農耕曆)상의 성대한 제일에 예수 그리스도의 탄신을 결합시킨 것이 크리스마스이다."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 크리스마스 (Christmas)항목]

로버트 J. 마이어의 '축전-미국인의 축일 전집'이라는 책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크리스마스가 축하되기 이전, 로마 세게에서의 12월 25일은 나탈리스 솔리스 인비크티, 즉 정복되지 않는 태양의 탄생일이었다. 줄리우스력의 동지 직후에 벌어졌던 이 축제는 태양신 미트라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다....미트라 숭배의 영향외에도, 이교의 힘이 작용하였다"

즉, 크리스마스란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 초대교회의 지도자들이 이교도적인 관습들을 흡수한 것이다. 루터, 칼빈, 쯔빙글리 같은 개혁자들과 미국을 건설한 청교도들은 이같은 크리스마스의 비성경적인 배경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에, 카톨릭의 미사는 물론이고 크리스마스를 교회의 절기인 양 받아들이는 것을 엄격히 금하기도 했지만, 이미 오랜기간동안에 지켜져왔던 축제일이기에 사라질수가 없었다. 마치 바늘과 실의 관계 처럼 성탄에 널리 유행하는 "크리스마스 트리"의 관습은 고대 이집트에서의 동지제(冬至祭) 때의 나뭇가지 장식하고, "로마"의 동지축제 행렬에서의 촛불을 단 월계수 가지 장식 등 옛날의 성목(聖木) 숭배에 그 기원을 두고있다.

흔히 "크리스마스 트리"로 전나무를 사용하게 된데는 8세기경 독일에 파견된 선교사 "오딘"은 신성하다는 떡갈나무에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야만적 풍습을 중지시키기 위해 옆의 전나무를 가리키며 "이 나무 가지를 가지고 집에 돌아가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라"고 설교한데서부터 비롯됐다는 전설이 있지만, 그것은 전설일 따름이고 '신브리태니커백과사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교도들이었던 유럽인들 사이에서 성행하였던 나무숭배는 그들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후에도 존속하였는데, 마귀를 쫒아내기 위해 신년에 집과 헛간을 전나무로 장식하고 크리스마스 시즌에 새들을 위해 나무를 세우는 스칸디나비아의 관습들을 통해 이어져 왔다."

고대 로마인들은 농사의 신 새턴을 위해 농신제 기간인 12월25일에
감탕나무 가지로 신전들을 장식했다고 한다. 또, 고대 영국의 드루이드 교도들은 겨우살이 나무가지에 신비한 힘이 있다고 생각했으며, 그가지는 악귀와 마법과 그 밖의 재액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호신부로 사용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겨우살이 가지 밑에서 입맞춤을 하면 결혼하게 된다는 미신도 생겨나기도 했다.

또, 크리스마스 트리와 더불어 크리스마스의 또 다른 주인공인 '산타클로스'는 일반적으로 알려진바에 의하면 미라(Myra)의 주교 '성 니콜라스'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그것은 전설일 따름이고,알렉산더 히슬롭의 설명에 따르면 산타클로스의 실체는 다름아닌 로마의 농신 새턴(Saturn)의 분신이요, 카르타고의 바알 함몬(Baal-Hammon), 옛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주신인 바알 신을 미화한 것이라고 한다. [알렉산더 히슬롭. '두 개의 바빌론'.도서출판 안티오크]

 

그 이방 신들은 한결같이 어린아이들을 희생제물로 삼아 잡아먹는 신들이었으며, 가령 농신제의 풍습 중에 작은 인형을 선물로 교환하는 풍습도 인신제물이 후대에 이르러 변형된것(순장이 토우를 매장하는 것으로 변형된것처럼)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런 이교도축제일이 어떻게 예수의 탄생일이 되었는가? 신 브리태니카 백과 사전'은 이렇게 말한다.

"가장 가능성 있는 이유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그 날짜를 '무적 태양의 탄신일'을 알리는 표가 되는 이교 로마 축제일과 일치시키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현대 그리스도교 내의 이교 사상'(The Paganism in Our Christianity)이라는 책에서는 이렇게 기술한다.

"사람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이교 축제들을 전통에 따라 받아들이고 그 축제들에 그리스도교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명확한 방침이었다."

즉, 백과사전과 수많은 사료들은 기독교가 토착화 하기위해 이방풍습을 받아들인것이라고 정의내리지만, 예수를 신화로 바라보는 신화파의 입장에서는 예수라는 존재가 중근동의 태양숭배에 기초를 둔 허구적인 존재였기 때문에 하나둘씩 받아들였다고 본다.

(2) 부활절의 기원

크리스마스와 더불어 부활절 역시 이방종교의 영향에 의한 것이다.
부활절은 영어로 Easter라고 하는데, 유대절기인 유월절과 지중해에서 지냈던 춘분(봄의 여신축제)가 기독교식으로 토착화된 것이며, 원래는 튜튼족 여신(Eastre)의 날이 토착화되어 영어로 Easter이 된 것이다. 부활절을 뜻하는 명칭인 Easter에서 알수 있듯이, 그 기원은 춘분때 봄의여신 Easter축제의 변형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부활절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해마다 바뀌는 것도 그것이 봄의 여신축제(춘분)의 영향이다. Easter(부활절)이란 말은 그 본래적 의미에 있어서 기독교,혹은 유대교적인 표현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 말은 이교 여신 즉, 낮과 봄의 떠오르는 빛의 여신 이름으로부터 온 말이다. Easter(부활절)은 에오스트레(Eostre), 오스테라(Ostera), 아스타르테(Astarte), 또는 이쉬타르(Ishtar)의 현대적 표현이며, 히스롭(Hislop)에 따르면 이 중 마지막 것인 아쉬타르(Ishtar)가 오늘날 우리가 발음하고 있는 Easter(부활절)로 일컬어지게 되었다.

'미국인의 연례 기념일 편람'은 여신 오스테라에 대해 이렇게설명한다.

"전설에 의하면, 오스테라는 발할라 신전의 문을 열어 발데르를 맞이하는 여신이다. 발데르는 그의 순수함때문에 백색의 신이라 불리며, 그의 이마로 인류에게 빛을 비춰주기 때문에 태양신이라 불린다" [The American Book of Days]

 

이 부활절(Easter)이란 말에서와 같이, 이 부활절 기간에 행하는 많은 관습들 역시 이방종교의 풍습에서 시작 되었던 것이다.
'브리타니카 백과사전'초판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신약성경이나 사도적 교부들의 저술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이 부활절을 지켰다는 암시는 없다. 특정한 날을 거룩히 여기는 것은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예수나 사도들도 이 축제일이나 기타 다른 어떤 축제일도 지키라고 명한 바가 없다."

'웹스터의 신국제 사전'에서는 이스터(부활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 고대 이교도들의 봄 축제, 2.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축제일로서 3월 21일 춘분이 지난 뒤에 오는 만월을 기준으로 해서 그 다음에 오는 일요일에 거행된다. 부활절은 춘분과 음력이 연결된 일자이기 때문에, 그 날짜는 매해 달라진다." [웹스터의 신국제 사전 제3판.(Webster's 3rd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성서대백과'는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이스터라는 명칭의 어원은 불확실하다. 그러나 비드(Bede)에 의하면, 이 명칭은 고대 튜우튼 족이 4월에 희생제물을 바쳤던 봄의 여신 '이스터'(Eastre)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크리스천 의식은 아마도 이 이교도 축제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성서대백과, 정인찬 편, 기독지혜사 ]

'중세의 성일과 축일'이라는 책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성일의 명칭이 새벽과 봄의 여신인 오스테르라는 이교의 신에게서 따온 것이다."[Medieval Holidays and Festivals / Piatkus]

3세기경, 교회에서 지킨 부활 축일은 오늘날 '이스터'(Easter)란 이름으로 지켜지는 부활절과는 상당히 달랐다. 또 이 기념일은 그 당시에 '이스터'란 이름으로 불리지도 않았다. 이 기념일은 파스카 즉 유월절로 불렸고, 이 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한 것으로 전해질 따름이다.[알렉산더 히슬롭, '두 개의 바빌론' 도서출판 안티오크]

그런데 이 '파스카'를 '이스터'라 불러 '춘분 뒤에 오는 만월(滿月) 직후의 일요일'에 축일로 지키기 시작한 것은 로마 카톨릭 교회였다.
기원후 325년 그리스 동방 정교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로마 카톨릭교회가 니케아 공회에서 춘분축에에 맞춰 부활절을 정한 것이다. [카톨릭 백과사전, p. 505]

부활절에 나누어 주는 달걀의 유래는 십자군전쟁당시 어느부인이 부활절에 색으로 물들인 달걀을 나누어 준 것이 그 유래라고 기독교인들은 설명하고 있으나, 그것은 옹색한 변명이다. 실상은 이집트와 중근동의 춘분축제때 달걀을 나누어 먹었다고 한다. 달걀은 생명이 싹트는 봄의 생명의 부활을 상징하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부활절 달걀들은 색칠하여 숨기고 찾아 먹는 것을 들 수 있다. 오늘날 이 관습을 순진 무구하게 행하고 있으며, 아이들의 놀이와 장난으로 자주 하고 있다. 그러나 이 관습은 하늘로부터 유프라데스강으로 떨어진 굉장히 큰 달걀에 관한 옛 이야기를 받아들인 바벨론 사람들에게는 이 달걀이 거룩한 하나의 상징이었다. 고대 신화에 의하면 그 거대한 달걀로부터 여신 아스타르테(Astarte-Easter)가 부화되었다고하며, 달걀은 이렇게 하여 여신 이스터(Easter 부활절)를 상징하게끔 되었다. 고대 이집트인들과 그리스인들은 종교의식에서 알을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비밀스런 목적을 위해 사원에 알의 형상을 만들어
바치기도 했다 영국의 고대 드루이드교도(Druids)들은 달걀을 우상 숭배하는 자기들 단체의 거룩한 상징으로 지니고 다녔다. 로마의 풍작의 여신 케레스(Ceres) 행렬에서는 달걀이 앞서 갔다. 아테네에서는 박카스 제전이나 디오니시아카의 제전 때 달걀을 성별하여 바치는 종교행사가 거행되었다. 인도의 힌두교도들은 금빛을 띤 창조의 알을 숭배했다.당신의 고대인들에게 달걍이 사징하는 의미는 두 가지 였다.

즉, 헬리오폴리스(Heliopolis)의 달걀과 티폰(Typhon)의 달걀이 그것이다. 이집트인들에게는 달걀이 태양, 즉 황금달걀과 관련되어 있었으며, 염색한 달걀을 거룩한 제물들로 사용하였다. 대영 백과사전은 다산과 새로운 삶의 상징으로서의 달걀은 봄 축제동안 달걀들을 색칠하고 먹는 관습을 가지고 있던 고대 이집트인과 페르시아인까지로 소급한다고 말한다. 기독교인들은 병아리가 달걍을 깨고 나오듯,예수가 무덤의 돌문을 열고 부활했다고 하여, 부활절당걀을 설명하려고 한다. 교황 바오로 5세(1605∼1621)는 이것과 관련된 하나의 기도문까지도 정하였
다.

즉, "오! 주여 우리가 당신께 간구하오니, 당신의 이 피조물 달걀들을 축복하사 주의 종들에게 건강이 좋은 양식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여 이것을 먹나이다."

카톨릭 백과사전의 다음 인용구는 의미심장하다.

"사순절 동안 달걀 사용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부활절 즐거움을 상징키 위해 붉게 물들인 달걀들을 부활(절)날 상위에다 갔다 둔다. 이 관습은 그 기원을 이교주의에 둘 수도 있다. 이는 봄이 다시 오는 것을 경축하는 대단히 많은 이교 관습들이 부활절에 끌리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은 유럽에서 인기 있는 관습들의 사례였다. 부활절 불은 산꼭대기에서 마찰을 일으켜 붙인 새 불로부터 얻은 것이었다. 이것은 이교도에서 기원한 관습으로 겨울에 대해 봄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주교들은 이 신성 모독적인 부활절 불들을 금하는 엄한 칙령을 발하였으나 각지에서 이 관습을 폐지시키지 못하였다." [카톨릭백과사전」제5권 p. 227,]

'대중 관습의 진기한 특징'의 '윌리엄'역시 카톨릭백과사전과 같은 견해를 보였다.

"초기 교회들이 확고 부동한 방침은, 근절하기가 불가능하였던 이 이교 의식들에 그리스도교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부활절의 경우에는, 변환시키기가 특히 쉬웠다. 자연의 태양이 떠오르고 자연이 겨울의 죽음으로부터 깨어날 때의 기쁨은, 의의 태양이 떠오를 때, 즉 그리스도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실 때의 기쁨으로 바뀌었다. 또한 5월 1일 경에 있었던 일부 이교 의식들은 부활절 축하에 대응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WALSH, WILLIAM S. / CURIOSITIES OF POPULAR CUSTOMS / Illus Lippincott Phila]

달걀과 더불어 부활절 토끼에 관하여 한가지 더 인용키로 한다. 토끼는 이교도의 상징이고 항상 다산의 상징이 되어 왔다. '브리타니카 백과사전'은 부활절 달걀과 마찬가지로 부활절 토끼도 고대의 관습으로부터 기독교에 흡수된 것이다라고 하고 있다.

"부활절 달걀과 마찬가지로, 부활절 토끼도 고대 이교로부터 기독교화 된 것이다. 토끼는 고대 이집트의 전설에서나 그 밖의 다른 지역에서 달과 관련되어 있다. 토끼에 해당되는 이집트 말 'um'이 '열린'(open)이란 의미와 '기간'(period)을 의미하고 있으므로, 이 토끼는 어떤 주기성 사상과 관련을 갖게 되었다. 즉 달과 인간에게, 그리고 젊은 청춘 남녀에게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으로 다산과 새로운 삶의 상징이 되었다. 이와 같이 토끼는 부활절 … 달걀과 관련되어 있다."

"기독교가 생기기 이전에, 부활절 달걀 혹은 토끼는 춘분에 즈음하여 생명의 새로운 탄생과 갱생을 가져다주는 상징이었다. 야생토끼나 집토끼는 게르만의 여신 오스타라(중세 영국의 에오스트레)를 나타내는 것이다. 아마도 이 여신의 이름이 이스터의 어원일 것이다." [진쿠퍼 / 그림으로 보는 세계 문화 상징 사전 / 이윤기 옮김 / 까치]

고대 이집트인과 다른 백성들이 지닌 전설들에는 이 토끼가 달과 관련되어 있다. 토끼라는 이집트인들의 말 'um'이 역시 열려 있는(open)것과 기간(period)을 뜻하고 있는 사실을 통하여 이 토끼는 달과 사람
쌍방에는 주기성 사상으로 또 청년 남녀에게는 새로운 삶의 시작으로 관계되어 있어 다산의 상징과 새로운 삶의 상징이 되었다.
이러한 것과 같이 토끼는 부활절의 달걀들과 관련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리하여 부활절 토끼와 부활절 달걀을 둘 다 성적(性的) 의미의 상징들이 되고 다산의 상징들이 되었다. 부활절 시즌에 그리스도인 들은 보통 일출 예배에 참석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해가 막 떠오르는 부활절 일요일 아침에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기 때문에 그런 종교행사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복음서속의 예수의 부활은 사실상 해 돋을 때 일어나지 아니하였다.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 무덤이 이미 비어있는 것을 알았을 때는 아직도 어두웠을 때였다. 정확히 따진다면, 이 일출 예배 모형은 고대 태양 숭배의 한 부분이었던 것이다. 에스겔서 8장 16절에서 볼수 있듯이 에스겔 시대에도 유대교의 추종자들조차도 태양경배에 빠졌고 이것을 자기들의 예배의 부분으로 삼았음을 알수 있다.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 안뜰에 들어가시기로 보니 여호와의 전 문 앞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약 이십 오인이 여호와의 전을 등지고 낮을 동으로 향하여 동방 태양에 경배하더라." [에스겔 8장16절]

엘리야 시대에 바알 선지자들이 바라 보았던 곳도 역시 동쪽이었다.
바알은 태양신도 되고 번개와 천둥, 불의 신도 되었다. 엘리야가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라고 하며 바알 선지자들에게 도전했을 때, 그는 바알 경배의 바탕과 맞서고 있었던 것이다. 이 바알 선지자들이 바알을 부르기 시작한 때가 하루 중 어느 때였는가? 그것은 바알 즉 태양이 그 첫 모습을 동쪽 지평선 위로 나타낼 때였다. 그 시간은 아침[왕상18:26] 즉, 동틀 때 였다. 한가지 형태로나 혹은 다른 형태로 통틀 때의 태양과 연관된 의식들은 많은 고대 국가들 사이에서 알려져 왔다. 이집트의 스핑크스는 동쪽을 바라보도록 그 위치가 정해졌다.
로마의 미트라 교도들도 태양신을 숭배키 위해 동틀 때 함께 만났다고 한다. Easter(부활절)란 말이 나온 이름인 봄의 여신은 East-er(동쪽-자, 부활절) 말에서조차도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동쪽(east)에서 태양이 솟아 오르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이리하여 동쪽에서 태양이 돋는 것과, Easter(부활절) 이름과, 봄 계절과는 모두 관련이 되는 것이다. 부활절과 함께 사순절역시 이교도의 것이다. 옛 전설들에 따르면 탐무즈(Tammuz)는 죽임을 당한 후 이승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 이쉬타르(Ishtar, Easter)가 애곡함으로 인하여 그는 봄에 신비하게 소생하였다. 농작물의 성공과 사람들의 다산을 보증하기 위하여 이쉬타르의 슬픔을 통한 탐무즈의 부활을 매해 극적으로 나타났었다. 매년 바빌론의 사람들은 이쉬타르와 함께 탐무스의 죽음을 슬퍼하여야 하고 그녀의 은총과 은전(恩典)을 새롭게 얻기 위해 신의 이 귀환을 축하하여야 했다. 새로운 식물이 싹트고 나올 때 고대인들은 자기들의 구세주가 이승에서 나와 겨울을 끝 마치게 하고 봄을 시작하였다고 믿었다. [우르딘,축제와 성일과 성인의 날들] 이스라엘인들 조차도 이교도의 축제의 가르침과 의식들을 받아 들였다. 에스겔서에서도 여인들이 앉아 탐무즈를 위하여 애곡했다는 일화도 있다[에스겔 8장14절]

전승에 의하면 탐무즈가 40세 때에 멧돼지에게 받혀 죽었다고 한다.
히스롭은 예수의 부활전 전의 고난주간인 40일이 탐무즈가 세상에 산 1년을 하루로 해서 탐무즈를 위해 애곡하기 위해 따로 정해졌다고 지적하고 있다. 바빌론의 풍습은 탐무즈가 부활하기전 40일간의 금식기간이 있었다. 고대에는 이 40일 동안 신의 은총을 새로이 얻고자 즉, 신이 지하 세계에서 나와 봄을 시작하도록 자기에게 매질하는 것으로 지켰던 것이다. 이러한 관습은 바벨론인 뿐만 아니라 페니키아인,이집트인,이스라엘인, 그리고, 미트라교에도 흡수되어졌다. 미트라교에도 미트라가 부활하기전 40일간의 고난주간이 있었다. 알렉산더 히슬롭은 이교도들 가운데서 이 사순절이 탐무즈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연례 대축제의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이 되어진 것처럼 보였다고 말하고 있다.[알렉산더 히슬롭 / 두 개의 바빌론 / 도서출판 안티오크]
이집트에서도 오시리스를 위해 40일간의 금식을 행했는데, 이집트학으로 정평이 나있는 '윌킨슨'은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봄축제와 관련된 이교도들의 여러 가지 관습이 이미 카톨릭 교회 안에 유입된 고로, 이 축제에 앞서 행해지던 이교도의 "금식"을 받아들이는 것은 또 다른 단계로의 발전일 뿐이었다.「카톨릭백과사전」은 아주 솔직하게 이렇게 말한다. '4세기의 저술가들은 확실히 그렇다고 여길만한 주장이 없는 이 사도적 제도에 관하여 많은 관행들(예를 들면 사순절의 40일간의 금식)을 기술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Richard Wilkinson / The Complete Temples of Ancient Egypt]

사람들이 고기와 다른 몇 가지 음식들을 삼가는 동안을 거룩한 금식이라고 부르면서 교황이 사순절 준수를 공식적으로 명령한 것은 6세기에 가서였다. 카톨릭 학자들은 교회 안에 이교주의에서 빌려온 관습들이 있다는 것을 시인하고 있다. [카톨릭 백과사전, 제11권, p.390. '이교주의' 항목]

그리고 많은 카톨릭 교인들이 금요일에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기념키 위하여 매 금요일마다 고기를(물고기로 대체하였지만)먹지 않는다.
미국에 있는 로마 카톨릭 교회는 교인들에게 사순절 기간 외에는 금요일 날 고기를 먹지 말라고 이전과 같이 요청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많은 신자들은 아직도 금요일 날 물고기 관습을 따르고 있다. 성경에 따르면 금요일과 물고기가 관련되어 있지 않은 것이 확실하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금요일(Friday)이란 말은 프레야(freya)란 이름으로부터 왔는 바, 이 프레야는 평화, 기쁨 및 다산의 여신 즉, 다산의 상징인 물고기로 알려졌다. 옛날부터 물고기는 중국인, 앗시리아인, 페니키아인, 바벨론인 및 그 밖의 사람들에게 다산의 상징이었다. "물고기(fish)란 말은 번식 혹은 다산을 암시하는 다그(dag)에서 유래되었고, 이는 상당한 근거가 있는 것이다. 한 마리의 대구가 매년 9,000,000개 이상, 넙치류는 1,000,000개 이상, 철갑상어는 700,000개 이상, 농어류는 400,000개 이상, 고등어는 500,000개 이상, 청어는 10,000개 이상... 등등의 산란을 하고 있다. 비너스(Venus)는 로마인들 중 성적 다산의 여신으로 불리워졌다. 성병(veneral disease)이란 이 말에서와 같이 veneral이란 말은 이 비너스(Venus)여신이란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금성 (planet venus)이 금요일의 첫 시간을 다스린다고 신봉하여 비너스의 날(dies Veneris)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금요일을 비너스의 거룩한 날로 보게 된 것이다. 이 의미를 완전하게 말한다면, 비너스에게는 물고기가 신성한 것으로 여겨졌다. 고대 이교도와 현대 그리스도인 상징주의(Ancient pagan and Modern Christian Symbolism)란 책에서 볼 수 있는 삽화는 여신 비너스가 자기의 상징인 물고기와 같이 있는 것을 보여 준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교 여신으로 경배하였던 아스다롯(Ashtoreth)에게 이 물고기는 거룩한 것으로서 여겨졌다.

고대 이집트에서 이시스(Isis)는 때때로 머리에 물고기가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금요일이 성적 다산의 여신을 따라 이름이 지어졌고, 금요일이 이시스의 거룩한 날인 것과, 물고기가 그녀의 상징이 되는 것을 고려하면, 카톨릭 교인들에게 금요일에 고기를 먹지 않고 물고기를 먹게 하는 날로 가르치는 것이 우연한 일치 이상인 것으로 보인다.모든 학자들이 수긍하고 있듯이 Easter라고 번역된 말은 유월절 이란 헬라어 말인 파스카(pascha)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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