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의순이라는 한 신학교 출신의 신앙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6.25전쟁의 피난길에서 빨갱이로 오해를 받고 체포당해서 포로수용소로 들어갑니다.
그는 유달리 이웃을 돕는 일과 복음전도에 헌신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가 빨갱이로 오인되어서 포로수용소에 가게 된 것입니다. 아무리 신앙이 좋아도 우리는 똑같은 기도를 하게 될거에요. “왜 저에게 이런 고난을 허락하십니까?”
그러나 그는 수용소에 가자 거기에 섬겨야 할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는 거기에서 광야교회를 시작했습니다. 높고 낮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으로 보게 되었을 때 그는 “하나님, 저를 여기에 보내신 이유를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저를 여기에 보내셨습니다”하고 기쁨으로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왜?”를 묻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얼마후에 중공군 포로들이 몰려 들어고기 시작했습니다.
맹의순 선생은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갈 수 없던 중국, 선교사로 가지 못한 내 앞에 이렇게 많은 중국인들이 몰려오다니... 그에게 포로수용소는 감격의 자리이며 선교의 현장이고 봉사의 현장이며 복음전도의 현장이었습니다.
밖에 있는 맹의순 선생의 친구들은 억울하게 잡혀 있는 선생의 구명운동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석방탄원서에 자기 이름만 서명하면 수용소에서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맹의순 선생은 그 서명을 거절합니다. 그리고 어느날 새벽 한시, 두시, 세시까지 중환자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손발을 씻기고 복음을 전하고, 찬송가를 가르쳐 주고 시편 23편을 읽어주다가 그 자리에서 쓰러져 숨을 거둡니다.
그의 장례식은 수용소밖의 어느 교회에서 진행되었는데 어떤 사람이 편지 한장을 가져왔습니다. 그 편지는 중공군 포로들 거의가 서명한 편지였습니다. 그 중의 한 부분만 읽어드리겠습니다.
“맹의순 선생 영전에 드립니다. 평화의 왕자, 화평의 사도, 인애의 왕, 우리에게 사랑의 주였던 맹의 순생이 정말 가셨습니까? 우리는 서로 말이 통하지 않던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우리처럼 포로의 옷을 입은 그가 미국군인 의사들을 도우며 우리 병동을 찾아오던 초기에 우리는 그를 경멸하고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늘 온화했고 우리를 돕는 그의 행동은 희생과 헌신으로 언제나 꾸밈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대개가 그 무엇인가에 대해서 몹시 화가 나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적이 따로 없었습니다. 전쟁이라는 것에 대해서 화가 났고 우리를 전장에 보낸 사람들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들을 죽도록 원망했습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맹 선생은 십자가의 도들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에게, 글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일일이 글시를 가르쳐 가며 찬미가를 불러 주셨고, 나무 십자가를 안고 다니며 그 뜻을 성심껏 설명해 주셨습니다.
선생은 새벽 한두시면 늘 병동으로 오셨습니다. 초저녁에 치료와 간병을 맡았던 사람들이 모두 물러가고 나서 중환자들이 더욱 심하고 무거운 고통에 짓눌리는 시간에 선생은 고통을 다스리는 천사로 우리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선생의 한 손에는 성경책이 다른 한 손에는 물통이 들려져 있었습니다 .선생은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를 골고루 만져 주고 주물러 주면서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선생의 손에는 신비한 힘이 있었습니다.
그 손이 얼굴에 닿으면 시원하고 가벼워졌습니다. ... 우리는 염치없이 한번만 한번만 더 그분의 손으로 씻기움받기를 원했습니다. 우리는 선생에게서 사랑의 신이 계시다는 것을 보고 깨닫고 알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말이 필요없었습니다. ...
맹 선생의 숨결은 우리의 껍데기를 녹여 주었습니다. 얼음장처럼 차고 두껍고 어둡던 마음의 문을 기도와 찬미의 손과 사랑으로 녹게 해주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도가 사랑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 사랑의 시작이 예수 그분인 것을 알았습니다. 십자가는 나의 죄의 모양이고 내 죄를 인해서 예수가 그 위에서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나의 죄가 죽고 사랑이 살아남으로 승리했고 그 승리가 영원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8월 11일 새벽에도 마지막 환자를 씻기고 난 선생은 자신의 눈물을 씻을 생각도 하지 않으시고 시편 23편을 우리말로 더듬더듬 읽어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봉독하신 후 그 분은 한번 더 힘차게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하시고 나서 먼곳을 바라보시며 쓰러지셨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때문에에 그 자리에 세워진 것을 믿었을뿐만 아니라, 알았고, 이 사랑의 복음을 전하기 위한 것이 자신의 삶의 목적인 것을 알아서 사랑의 명령 앞에 순종했던 맹의순 선생의 마지막 고백은 “내잔이 넘치나이다!”였습니다.
우리는 통곡합니다. 우리는 모두 통곡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맹 선생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예수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통곡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버려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맹 선생과 함께 주님 안에 있습니다. - 거제리 포로수용소 중공군 병동의 환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