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림자처럼 움직여 그를 비호하는 무사...
그들을 일컬어 그림자무사 혹은 비검이라 불렀다.
1. 쌍두골
왜란으로 가식을 잃고 삶의 터전을 유린당한 서민들이 쫒기고 밀려 가야산 깊은 곳까지 흘러들었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협곡을 방어선으로 몇 채의 초가가 생겨나는가 싶더니 어느 듯 군락을 지어 한 마을이 생겨나고 있었다. 두개의 고개가 쉽사리 사람의 근접을 허락지 않아 산 아래 사람들이 그곳을 쌍두골 혹은 쌍두천리길이라 불렀다.
몇몇 사냥꾼들이 그 소문의 진상을 알아보겠다며 길을 나섰다 고개하나를 채 넘지 못하고 반 넋이 빠진 얼굴로 돌아온 후로는 마을의 대한 여러 가지 소문들이 눈덩이처럼 키워지고 있었다. 협곡에 들어 귀신을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고, 산의 혼령을 보았다는 이도 있었다. 저잣거리의 내로라하는 칼잡이조차 눈앞에서 불기둥이 솟아오르는 것을 보았다며 혼비백산해 돌아와 그 존재가 전설처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산채 잔치를 앞두고 이틀째 사냥을 나와 산 이슬을 맞은 김두령의 얼굴에 약간의 초취함이 묻어 있었다. 그에 반면 전통에서 화살을 꺼내 손질을 하고 앉은 청년의 얼굴에는 여전히 솟구치는 정기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를 바라보는 두령의 눈 속에 깊고 온화한 정이 흐르고 있었다.
“피곤치 않느냐? 이틀이나 한뎃잠을 청했으니 몸이 무거울 게다.”
“몸보다 마음이 더 무겁습니다. 이제 하루밖에는 말미가 없는데 이리 소득이 없으니 겨울을 날일이 걱정입니다.”
두령이 그 마음을 아는 듯 빙긋이 웃으며 조급함이 스민 청년의 눈을 깊이 바라보았다.
“그리 생각지 마라. 조급함은 늘 마음을 괴롭혀 일을 그르친다. 아직도 하루의 말미가 남아있질 않느냐. 네 마음의 움직임을 조절하기에 따라 그 시간은 한없이 길고 여유로울 수 있다. 허나 네가 그 속에 밀려 조급함을 거두지 못한다면 너는 그 시간을 한줌도 갖지 못하고 잃게 될 것이다. 네 것으로 가지려면 네가 그 흐름을 지배해야 한다.”
“예. 깊이 세기겠습니다.”
두 사람이 말에 올라타 또 다시 길을 나섰다. 청년은 두령의 말을 가슴에 세기면서도 다른 길을 잡아 간 무리들의 손에 묵직한 산짐승들이 묶여있기를 내심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늘 짝을 이루던 한 사람과 함께 길을 잡지 못한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려 불편함을 키우고 있었다. 그런 탓에 몇 번이나 표적이 빗나가 아까운 기회를 놓친 자신에게 화를 돋우고 있는 중이었다.
앞서 말머리를 잡은 두령이 속도를 늦추어 청년이 곁으로 오기를 기다려 입을 열었다.
“무영아!”
“예. 스승님!”
“네가 대견스럽구나. 처음 너를 받았을 때는 이리 꿋꿋하게 견디고 여물어 갈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었다. 어린 네 눈에 스린 분노가 세상의 옳은 이치를 막아설까 염려했었다. 허나 너는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너를 곧게 세워 가야산의 정기만큼이나 늠름하게 자라주었다. 내 직접 혈육을 생산치는 못했으나 너로 인해 자식이 장성해 가는 것을 지켜보는 기쁨을 맛보았다.”
무영은 두령의 말 속에서 품은 정을 밀어내려는 아릿함을 느꼈다. 영원히 그의 그늘에서 안식할 수 없는 삶이었다. 처음부터 자신에게 주어진 몫의 삶이 정해진 그에게 그곳은 잠시 힘을 키우는 둥지일 뿐이었다. 날개를 펴는 순간부터 부리로 쫒아 부셔내고 나와야 할 알 껍질과 같은 곳이었다. 두령 또한 그것을 알아 무영을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르다 여기지 않습니다. 제 몸을 세상에 잊게 하신분도, 또한 사람의 가슴으로 키워주신 분도 제게는 한 치 다를 것 없는 분이십니다.”
“이제 이 난리도 머지않아 끝날 것이다. 세상이 조용해지면 너는 더 큰 회오리에 던져질 것이다.”
“그날을 위해 살아온 접니다. 제게 다른 삶이 있다 생각지 않습니다.”
무영은 힘주어 그 말을 하면서도 가슴 한편이 쓰라렸다. 그 서글픔 뒤에서 아련한 웃음으로 자신을 향해 웃고 있는 한사람이 있었다.
이틀 전 또 다르게 사냥 길을 잡아 나선 무리 속에 운이 있었다. 무리 중에 유일하게 여인의 몸이었으나 수확한 짐승의 절반이상은 운의 화살이 꽂힌 것들이었다. 늘 무영과 한조가 되어 사냥을 하던 운 또한 그와 떨어져 처음 나서는 산길이 어색하고 불편했다. 두령의 명령이라 다른 말을 하지 못하고 떠나오긴 했지만 갑작스럽게 무영과 자신에게 냉담함을 보이는 두령에게 서운함이 생겨나고 있었다.
계곡에서 휴식을 취하며 말에게 물을 먹이고 있던 김시로는 무명천을 적셔 얼굴을 닦아내는 운을 보며 입가에 미소를 걸었다. 김시로는 무영의 가장 가까운 지기였다. 문무를 비롯한 모든 것에서 어깨를 나란히 겨루었고 그 속에 사람의 정과 사내의 경계가 함께 있었다. 그러나 사람의 가슴은 겨루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운을 보는 김시로의 시선 속에 쓴 웃음이 묻어 있었다.
“네가 아니었다면 이번 사냥길이 부끄러울 뻔 했구나. 어찌 종일토록 쉬지도 않고 활시위만 당기고 있느냐? 사내들도 지치는 길인데 그러다 몸 상하겠다.”
“아니에요. 늘 마을에만 있어 답답했는데 이렇게 나오니 한결 시원해요.”
잠시 뜻 없이 김시로의 시선을 맞받은 운이 고개를 들어 먼 산을 바라보았다. 가끔 산채를 빠져나와 입으로 뱉어 낼 수 없는 말들을 눈으로 주고받던 무영과의 사냥이 떠올라 가슴한편이 싸하게 저려왔다.
“그래도 너무 무리하지는 마라. 혹여 네가 상하기라도 하면 내가 두령님이나 무영을 보기가 민망해지질 않겠느냐.”
“예. 염려마세요.”
몸을 일으키던 운이 얼룩진 자신의 옷을 이리저리 훑어보며 흙먼지를 떨어내고 머리태를 다시 묶었다. 저녁 무렵 합세할 무영을 염두 해 자신도 모르게 매무새를 매만지는 운의 모습에 김시로의 가슴으로 씁쓸함이 밀려들었다.
흐린 날씨 탓으로 일찍 날이 저문 산속의 기온이 전날보다 한결 더 싸늘해지고 있었다. 합류하기로 한 장소에 먼저 도착한 무영과 김두령이 화톳불을 피워놓고 운의 무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찍 날이 저물기는 했으나 도착할 시간이 지나도록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무영은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초조해 하며 서성이고 있었다. 그러다 수풀 저쪽에서 사람의 인기척이 들리자 반가움을 감추지 못하고 그쪽으로 달려갔다.
수풀 속에서 운의 무리가 모습을 드러내자 무영은 좀 전의 초조함을 숨기고 태연하게 그들을 맞았다. 시각이 늦은 것을 알고 있던 김시로가 먼저 연유를 말하며 말에서 내려섰다.
“오면서 큰놈을 쫒느라 길이 좀 지체됐네.”
“날도 저물고 비를 뿌려 산길이 위험했을 텐데 웬만히 하지 그랬나. 그러다 사람이라도 다치면 더 큰일이 아닌가.”
“글쎄 말이네. 통 네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이 있느니 어쩌겠나. 하마터면 비탈에서 말이 낙마할 뻔 했네. 십년감수 했으니 두령님에게 일러 혼 좀 내주게.”
김시로가 농담을 섞어 말을 내놓자 무영이 고개를 들지 못하는 운을 건너다보며 양미간을 모아 인상을 찌푸렸다.
“네 또 사냥 길을 이탈해 말썽을 부린 모양이구나. 다른 사람까지 다치게 할 수 있다는 걸 왜 모르느냐.”
“그만하게. 그래도 운 덕에 마을 사람들 볼 낮이 섰네. 이정도면 그 어느 해보다 큰 수확이니 잘못했다 꾸짖기는 어려울 걸세.”
퀑 몇 마리를 불 위에 올려놓고 늦은 저녁을 시작한 무리들이 사냥 중 있었던 일들에 살을 불린 모험담을 만들어가며 이틀 동안의 피로를 풀어내고 있었다. 고기한 점을 먹는 둥 마는 둥 내려놓은 운이 슬쩍 그 자리를 빠져나와 말에게로 갔다. 종일토록 더디어 가는 시간을 재촉하며 날고뛰는 짐승들의 뒤를 쫒아 다닌 몸이 그제야 밀려드는 피로에 무거워지고 있었다.
풀을 뜯고 있는 말머리를 쓰다듬고 있던 운의 뒤로 무영이 다가왔다. 그 발걸음이 자신에게 한걸음 한걸음 다가설 때마다 운의 가슴이 출렁이는 파도처럼 파장을 일으키고 있었다.
“내가 분명 이러지 않았느냐. 조금이라도 위험한 상황이라면 사냥감에 욕심내지 말라 하지 않았느냐.”
“충분히 성산이 있는 거리였고 제 판단이 옳았어요.”
운이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여전히 말머리를 쓰다듬고 있자 무영이 그 앞으로 다가섰다. 달빛이 새어들긴 했으나 밤의 명암에 더해진 짙은 산 그림자로 앞에 선 운의 얼굴이 선명하지 않아 무영의 눈이 애가 타고 있었다.
“다친 데는 없느냐?”
“....없어요.”
운이 자신도 모르게 턱 아래의 상처를 손으로 가리며 고개를 돌리자 무영이 더 유심히 보려는 듯 가까이로 얼굴을 가져갔다.
“치워보아라. 어디보자?”
“별 것 아니에요. 그냥 나뭇가지에 살짝 스친 것뿐이에요.”
목을 감싼 운의 손을 들어낸 무영은 턱 아래로 할퀴어 진 상처에 가슴에 쓰라려 얼굴이 굳어졌다. 괜스레 다른 무리 속에 운을 합류시켜버린 김두령이 원망스러웠다.
달빛이 잘 드는 바위위에 운을 앉힌 무영이 자신의 허리춤에서 작은 나무통을 꺼냈다. 함께 사냥을 다닐 때마다 이리저리 긁히고 상체기를 내는 운 때문에 늘 마음이 쓰였던 무영은 언제부턴가 약통을 지내고 다니는 습관이 생겼다. 그 약통을 여는 일이 생길 때마다 무영의 가슴 또한 함께 쓰라렸다.
“제가.....”
무영의 굳어진 얼굴에 잔뜩 풀이 죽은 운이 약통을 받아가려하자 무영이 무뚝뚝하게 말을 잘랐다.
“가만 있거라.”
조심스럽게 운의 상처에 약을 발라주던 무영의 손이 하얀 목덜미에 멈추었다. 여전히 그 목소리에 화기가 남아 있었지만 그 보다 더 애잔한 염려와 연정이 스며있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해라.”
“제 실력 아시잖아요.”
“안다. 그래서 더 두렵다. 차리라 네가 몸이 둔해 이런 험한 것들은 익힐 생각조차 하지 않기를 바랬었다.”
무영의 눈에 가득한 진정이 운에게 전해져 심장이 달아올랐다. 자신의 살처럼, 그 심장에 박힌 가시처럼 아파하고 늘 염려를 놓지 못하고 있었다. 핏줄의 정을 모르는 운에게 무영은 세상의 유일한 따사로움이었다. 어린 날 그렇게 연을 맺어 강산이 변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정은 또 다른 향기와 빛깔로 서로에게 담기고 있었다.
“승산을 따지기 이전에 너를 아껴 무모한 위험에 빠지지 마라. 내가 싫다. 그러니 약속해다오.”
“약속할게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서로에게 닿아있는 온기가 은은한 달빛에 녹아들어 이틀 동안의 피로를 풀어주고 있었다. 가만히 운의 얼굴을 들여다보던 무영이 부드럽게 입 꼬리를 올리며 소리 없이 웃었다.
“왜 웃어요?”
무영이 대답 없이 웃음만 머금고 있자 운이 그 눈을 동그랗게 떠 보이며 다시 물었다. 그 모습이 어릴 적 그때처럼 천진하고 어여뻤다.
“왜 그래요. 음흉해 보여요.”
무영이 운의 콧등을 툭 치며 볼을 살짝 잡았다.
“넌 내가 화나서 눈만 크게 떠도 겁먹는다.”
“아니에요. 누가 겁먹는다고 그래요.”
“네 어릴 때는 내가 화내면 금방 그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흘렀었는데.... 근데 말이다.”
무영이 하던 말을 멈추고 운의 볼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여전히 그 입가에 미소가 걸려 정겨움이 넘쳤다. 무영이 말이 멈추자 운이 궁금증이 생겨 재촉하며 물었다.
“근데 뭐에요? 내가 언제 그랬다고...”
“잔뜩 겁먹어 큰 눈에서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데도 넌 네 잘못 절대 인정하지 않고 또박또박 네 할 말 다했다. 난 화가 났다가도 그런 너를 보고 있으면 금방 풀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냥 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그래졌었다. 지금도 넌 화를 내려는 나한테 미안해하면서도 내 실력운운하며 끝까지 잘못한건 아니라 말하지 않느냐. 그런데 나는 또 그런 네가 이리 좋으니....... 이리 어여쁘니..... 그때처럼 그리 하고 싶구나. 그리 안아주고 싶구나.”
단 한 번도 그렇게 자신을 내보인 적 없는 무영이 거침없이 그 마음을 흘려내자 운은 돌연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어쩌면 그에게 다른 일이 생기고 있음을 예견하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싸늘한 예감이 운의 입가에서 미소를 거두어냈다.
“오라버니니까..... 동생을 어여삐 여기는 오라버니니까..... 그렇게 달래주고....”
운이 말을 다 내놓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어 버리자 무영이 몸을 돌려 나무위에 걸린 달을 올려다보았다.
“언제부터인가 그 말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무리와 떨어진 두 사람이 시간이 지나도록 오지 않자 두령이 김시로를 보내 무영을 불렀다. 무영이 운에게 가슴에 묻어두었던 오래된 이야기들을 꺼내려는 찰나 김시로가 두 사람 곁으로 다가왔다.
“두령님이 찾으시네.”
두 사람에게서 묘하게 흐르고 있는 감정의 자락들을 김시로도 느끼고 있었다. 몸을 일으키는 운에게 김시로가 괜스레 밝은 목소리로 그 흐름을 잘라냈다.
“막사를 쳐놓았다. 많이 피곤할 테니 들어가 쉬거라.”
“예. 오라버니들께서도 고생 많으셨어요. 편히 쉬세요.”
운이 막사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무영이 김두령의 곁으로 가 앉았다. 김두령은 운과 무영이 너무도 오랫동안 정을 쌓도록 그리 둔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무영의 성품을 잘 알아 사람에게 흐르는 정을 쉬 잘라낼 수 없을 것도 짐작하고 있었다. 김두령의 술잔을 받은 무영이 그것을 단숨에 비워 내렸다. 듣지 않아도 김두령이 꺼내려는 말을 이미 알고 있어 그 가슴을 술로라도 마비시키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