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처음 알게 된 건 지금으로부터 7년전, 그녀의 나이 17살, 내 나이 22살. 대학생과 고등학생의 만남이었죠. 어렵게 어렵게 서로를 알아가며 호감을 가지다 사귀게 되었습니다. 보통의 여고생과는 사뭇다른 나이답지 않게 차분하고 순수한 모습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 또래보다 더 아이같이 참 순수했던 사람이었죠. 전 그런 모습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그렇게 힘겹게 여친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어서도 여전히 그녀는 한없이 순수하고 맑았습니다. 아마 살면서 그토록 맑은 사람을 또 만났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내가 첫 사업에 실패하고 한참 힘들어할때도 불평 한 마디 없이 묵묵히 기다려주고 나 땜에 수능도 제대로 못 칠 정도로 힘들어했죠. 여느 여자같았다면 헤어지고도 남았겠지만 이 여자는 절대 불평 한 번 없이 다 받아주었습니다. 언제봐도 사랑스러웠고 한없이 미안하고 아껴주고 싶은 사람이었죠.
그러나 세월앞에 장사없다고 여친이 22살이 되면서부터 조금씩 변하더군요. 나를 대하는 태도가 변한건 아닙니다. 7년을 한결같이 나만 바라보고 헌신하던 여자입니다. 요즘같은 세상에 이런 여자가 있다는게 신기할 정도죠.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에서 자꾸만 부딪힙니다. 워낙 어릴적부터 남부럽지 않게 풍족하게 살아오다보니 저처럼 인생의 굴곡많고 역경 많은 사람과는 어울리지 않았나 봅니다.
가끔 함께 티브이를 보면서 힘들게 사는 사람들의 얘기가 나오면 전 참으로 공감하고 이해가 되는데 여친은 이해를 하지 못해요. 자신이 그런 경우를 겪어보지 않았고 주위에 그런 사람도 없어서 그런가 봅니다. 그러다보니 그런 문제로 자꾸만 충돌을 일으킵니다. 참 마음이 아픕니다. 사람의 앞일이란 아무도 모르는 법이고 언제 어떻게 불행해질지 모르는데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며 냉랭한 반응을 보일때마다 이 사람이 정말 내가 알던 사람이 맞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오히려 고등학교 시절보다 더 애가 되어 버린 느낌입니다. 갈수록 이해심도 부족해지고 술도 잦아지고 이해 못하는 행동들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나이가 들면 순수함을 잃어간다지만 어딘지 모르게 전 그런게 싫습니다. 제가 이상한가요?
전 지금 겨우 다시 일어서서 형과 함께 새로운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첫 사업을 실패하고 빚만 가득한채 힘겹게 일어선 기반입니다. 아직까진 큰 성과는 없어도 이제 겨우 밥숟갈 뜨고 사람처럼 살아가는 중입니다. 늘 일에 치여 밤 12시까지 일을 하는 날이 잦습니다. 이런 나를 이해 못하고 매일 일만 한다고 구박만 하고 불평만 합니다. 물론 이해합니다. 제대로 시간내어 만나지도 못하고 허구헌날 일만 해대니 어떤 여자가 좋아할까요. 하지만 이렇게 힘들때 위로는 못할망정 짜증만 내고 불만만 토로하니 전 백배 더 힘듭니다.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 남들처럼 풍족하게 살아오지도 않았고 어머님이 벌어다 주시는 돈으로 동생이랑 어렵게 공부하고 열심히 살아왔고 일찍이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누구보다 불행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불행이란건 모르고 자라온 여친이 한없이 미울때도 있습니다.
가끔 그런 생각도 합니다. 이 사람한테 내가 없어도 되겠다는 생각을....... 어차피 부족함 없는 사람이고 내가 아니어도 그 사람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 얼마든지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예전부터 했던 생각이지만 내가 사랑할 사람은 부족함 없이 살아온 사람보단 불행이 무엇인지 알고 작은 것에 행복을 느낄 줄 아는 소박한 사람이길 바랬습니다. 나 역시 그런 미래를 위해 매일같이 미친듯이 일을 하고 있구요.
정말 허무함과 자괴감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하루입니다. 참! 여친네 집에선 아직도 저랑 사귀는걸 모릅니다. 소개를 안 해주니........ 7년이란 시간동안 아직도. 그게 가장 슬픕니다. 이런 관계 지속해야 할지 저로선 답이 안 섭니다. 몇 번을 말했지만 아직은 말 할 자신이 없답니다.
성격상 어디에도 말을 하는 성격이 못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힘든 내색 안하고 늘 아무일 없는듯 씩씩한 모습 보여주며 삽니다. 분명 이곳에도 드라마처럼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분들이 있을겁니다. 형식적인 리플보단 마음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친구라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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