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풍스런 고궁의 돌담 아래서 였다.
불쌍한 남자가 수현을 운명이라 생각하며 애꿎은 타이어만 발로 뻥뻥 차는 동안 맹랑한 다른 남자는 어떤 여자의 열렬한 키스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핸드폰이 터졌다.
“제이슨?”
“뭐해요?”
“지금 아주 찐한 장면을 보고 있어요.”
“아는 사람이에요?”
“네. 내 친구 용호에요. 걔가 잡지에서 많이 본 듯한 늘씬한 여자로부터 찐한 키스를 받고 있는 거에 요. 분수에 맞지도 않게요.”
핸드폰을 터뜨린 사람은 제이슨이었고 맹랑한 남자는 용호였다. 찐한 키스를 받는 용호의 모습은 유리에게 익숙지 않았다. 더군다나 여자는 용호보다 나이가 있어보였다. 아니 좀 더 늙어 보인다기 보다는 좀 성적으로나 스타일로 보다 노련해보였다. 유리가 알기에 용호는 그런 찐하고 섹시한 세계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친구 까치발을 들지는 않았어요?”
유리는 핸드폰 폴더를 더욱 가까이 귀 옆으로 들이댔다.
“아뇨, 여자가 낮은 굽을 신었어요.”
유리는 용호와 섹시하고 늘씬한 여자의 사진을 폰으로 찍어 제이슨에게 곧장 날렸다.
“재밌네요.”
제이슨도 폰으로 사진 한 장을 직방으로 날렸다.
“유리씨, 지금 우리 집으로 당장 올래요.”
“네?”
유리는 제이슨의 갑작스런 이야기에야 자신이 무슨짓을 하고 있는 지 깨달았다.
“저 지금 근무 중인데요.”
“나도 다 알아요. 지금 서울에 유행병이 있다잖아요. 학생들에겐 다싫기하부공병이, 직장인들에겐 다싫기하근출병이.”
“아무튼 며칠 새 모르는 게 없이 다 알아요.”
사실 사무실로 그냥 다시 들어가기엔 억울할 정도로 날씨가 너무 좋았다. 이런 날 출장 나왔다가 바로 들어간다면 진짜 억울할 것만 같았다.
“택시 타고 바로 갈게요. 우리 아파트도 제이슨네 맞은편이니까 거기서 바로 퇴근하면 되겠다.”
제이슨에게 아직 말하지 않았지만 유리는 오늘 남녀 관계에서 2가지 현장을 발견했다. 자신에게 무작정 들이대는 남자보단 낯선 설레임을 선사는 외국 남자에게 끌리는 친구 수현의 모습, 그리고 다른 하나는 친구 손용호의 익숙지 않은 모습이다. 용호가 평소 늘씬한 슈퍼모델급 여자와 찐하게 끝까지 가고 싶다는 말을 해왔는데 그것이 현실이 될 줄은 몰랐다. 물론 대낮에 딥키스 좀 했다고 그것이 끝까지 간다는 보장은 없다.
아무튼 모두가 애인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택시!”
싸인을 보내듯 유리 앞에 빈 택시가 한대 정차했고 유리도 약간은 간지러운 코끝을 문지르며 택시에 올랐다.
세상에서 제일 멋진 유리의 애인 제이슨을 만나러 가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