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에서도 여호와가 의전회의를 진행하는데 여기에 사탄이 참여한다. 사탄이 여호와에게 "그에게 재앙을 내리면 당신을 저주할것 입니다"라고 꼬드기자 여호와는 사탄을 시켜 욥을 시험에 들게 한다.
이렇게 구약의 중반부까지는 악마의 개념은 여호와의 하수인에 불과했으나, 이사야서 이후에 들어오면서 이 세상을 선과 악의 대결로 바라보는 이분법적 사상을 가진 조로아스터교가 급속하게 유입된다. 악마의 개념은 차차 여호와의 적대자가 되어버리고, 하늘을 지배하는 신의 세력과 악마가 지배하는 지상의 세계를 구분하기 시작했다. 신약에서 악마가 들어간 곳에 병이 깃들고, 인간의 인격을 타락하게 하며, 인간의 행동과 말을 직접적으로 조정하기도 하고(막 1:23, 26; 9:17~29), 예수가 악마들을 쫓아 더러운 돼지 떼로 보냈다는 이야기와 더러운 일곱 악마에 대한 비유(마 12:43~34)등은 조로아스터교에서 생각한 악마의 모습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민족신의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여호와 신앙이 바뀌게 된 것도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여호와를 포함한 다른 부족 신들과는 달리 조로아스터교의 아후라 마즈다는 모든 민족과 인종을 다스리는 보편적인 신 이었다. 역사 학자 헤로도투스는 페르시아인들은 신의 형상을 만들지 않았고 그런 행위들을 바보스럽게 생각 했다고 기록 하고 있다. 따라서 아후라 마즈다는 완전 무결한 존재였기에 인간과 교통 하기 위해서는 중간자와 천사들이 필요 했다. 반면 유대인의 신 여호와는 직접 선지자와 모세에게 나타났고 천사도 필요 없었다. 모세는 시나이 산에서 70 인의 장로들과 여호와의 목전에서 먹고 마셨다고 기록 하고 있다. 구약 시대에는 여호와의 명령이나 계시를 예언자들이 받고 전했으나, 중간기에 들어와서는 천사가 이러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인간의 미래나 세상의 종말, 예수의 탄생에 대한 예언도 천사를 통해 전달된다. 이러한 천사에 관한 개념은 헬레니즘 시대에 들어온 혼합주의 사상의 영향에 의해 형성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조로아스터교는 이 세상을 선과 악의 구도로 보고, 물질세계와 육체는 악한 것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물질세계로 구성된 이 세상은 필연코 멸망할 것이며,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는 조로아스터교의 교리는 묵시 문학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신구약의 중간기에 유대인들도 묵시문학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특히 역사를 숫자적으로 시대 구분하는 것 역시 페르시아적 요소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조로아스터교에선 후대로 갈수록 3천년 주기설 이론들(theories of three-thousand-year cycles)이 발전되면서 마지막 때와 인간의 죽음 사이의 간격에 대한 묵시적 해석이 늘어갔다.
또한 유대인들은 이집트의식인 포경수술 (할례)를 행했지만, 조로아스터교의 입교 의식은 물 등으로 세례 의식을 행했다고 한다. 세례의식은 신약에서나 등장하게 된다. 조로아스터교의 보편 적인 법도는 아샤르타로(True Prayer :진짜 기도)로써 이는 후에 그리스의 말씀(Logos)의 기본이 되었으며, 조로아스터교는 믿음이 신앙의 기본 이었고 진짜 기도를 외우면 영생을 얻는다고 했다. 반면에 유대인은 믿음 보다 선한 행실을 강조했다. 후에 "구원이 믿음에서 오는가? 행함이 없는 믿음은 꽹과리 인가?"라며 바울과 유대 분파의 쟁론을 살펴보면 바울은 조로아스터 혹은 영지주의(영지주의도 조로아스터에 뿌리를 두고 있음)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그리고, 조로아스터는 처녀가 잉태 하여 샤오샨트라는 구세주가 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반면에 이러한 메시아신앙이 유대인들에게 유입되기는 했지만 구약 속의 유대인의 메시아는 그들을 압박 속에서 해방시켜줄 정치적인 메시아였다. 즉, 유대인들의 구약에는 종말론적 사고 방식이 결핍 되어 있으며, 유대인이 생각한 여호와의 구원은 세상의 종말이 아니라, 그들의 신이 타민족을 제압하고 이스라엘의 번영을 이루는 것이었다.
조로아스터교는 조로아스터의 사후 마기(제사장)에 의해 많은 변질을 겪는다. 마기(magi)들은 성부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 성자 미트라와 성령 천사장(Spenta Mainyu)의 삼위 일체를 내세웠다. 후에 미트라 숭배사상은 초기 기독교와 공존하면서 예수에 대해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조로아스터교는 바빌론 유수 때 유대인들에게 영향을 끼쳤음은 물론, 주변지역으로 퍼져나가서 수많은 토착종교와 뒤섞이면서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크리스마스(동지축제), 부활절(춘분축제)등의 토착풍습이 조로아스터의 메시아 신앙과 융합되어버리고(원래 그날들은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신들과도 연관이 있는 날들인데, 조로아스터식의 메시아들이 그날을 차용했으며, 후에 기독교의 예수가 다시 차용해 버린 것 들이다.), 삼신사상등과 함께 그리스의 철학 등이 뒤섞여 버리면서 영지주의가 태동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기독교가 등장하기 전에도 이미 정통 유대교와 거리가 먼 에세네 학파 같은 비밀스러운 집단에서는 메시아, 종말론, 구원론이 매우 발전된 것을 알 수가 있다. 초기의 기독교는 수많은 영지주의 종파중의 하나였으며, 영지주의의 뿌리는 조로아스터교에 있다고 정의를 내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