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폰소 기드랜드 동료들이 기드라고 부르는 뱃살이 통통한 사내는 침대에서굴러 떨어졌다. 침대시트가 몸에 말려서, 마치 그의 고향인 루시아지방의 특선요리 통돼지밀전병말이처럼 그는 한참 뒹굴거리다가 부스스 일어났다. 베옷비슷한 색의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고, 어제 경비를 서다가 막 들어오자마자 침대로 직행한듯, 가죽재킷을 벗은 튜닉차림에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허벅지 살때문에) 착달라붙는 바지를 입고 있었다. 가죽으로 만든 신발은 저구석에 쳐박혀 있었고, 밤에 볼때는 몰랐지만 땟국물이 줄줄흐르는 깃발이 달린 할버드는 옷장옆에 세워져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조르쥬가 숨겨놓은 증류주한병을 얻어마신것이 화근이었다. 칼을 깔고 잤는지 커튼사이로 들어오는 투명한 햇살에 비친 허여멀건한 뱃살에 단검의 폼멜자국이 빨갛게 남아있었다.
"젠장.. 무슨 돼지 낙인 같구먼.."
기드는 담배쌈지를 뒤적거리다가, 침대바로 옆에 있는 탁자위에있는 파이프를 흘끗 쳐다 보았다.
"무에 대단한일 한다고, 파이프씩이나.."
기드는 쓰지도 않은 파이프를 쳐다보며 싱긋 웃었다. 기드가 묵고있는 여관 주인인 루프라는 미모의 여인이 다른 장기 식객(?)과는 다르게, 꼬박꼬박 집세를 낸다며, 선물해준 파이프였는데, 루프는 이곳 '백야'의 여주인으로서, 꽤나 유명한 여자 였다. 물론 예쁘기도 하거니와 여관주인답지 않은 나긋나긋함 때문에 칼체스터의 여관거리에서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 였다. 보통 우락부락한 여주인을 생각하는데, 백야에 처음 들어오는 손님들은 루프의 모습을 보고, 그대로 단골손님이 되버릴 정도이다. 기드는 고개를 휘저어 숙취를 이겨보려고 했으나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어 버렸다. 허리춤에서 만 종이를꺼내어 주저 앉은김에 담배를 채워넣었다.
"불... 불..."
담배를 물고, 게슴츠레한 눈으로 방을 둘러 봤지만 탁자에 놓여있는 등불은 꺼진지 오래였고, 철판으로 대충 만든 조잡한 난로도 불기는 없었다. 기드는 곤란하다는듯 콧수염을 매만지다가 던져놓은 가죽신발을 신고, 여관1층으로내려왔다. '백야'는 식사를 제공하지 않았고 밥은 건너편의 '산돼지식당'에서 먹어야 했다. 식당이 없기 때문인지 백야는 어딘지 여관이라기 보다는 바레스 수도 르네시아에 있다느 귀족전용숙박업소인 '호텔'과 비슷했다. 주인 루프의 깔끔한 성격탓인지, 나무로 바닥이 깔린 1층은 눈에 반사되어 두배는 밝은 햇살에 반짝거렸다.
"일어나셨나요?"
루프는 하늘색머리를 단정히 묶고 카운터에 앉아 하늘색의 수수한 에이프런을 두른 차림으로 방긋 웃어보였다. 기드는 싱긋 웃으면서 고개를 숙여 보였다.
"좋은 아침이죠?"
기드는 괄괄한 루시아 사람답지 않게 숫기가없는 편이어서,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짓으로 입에 문 담배를 가리켰다.
"글쎄.. 지금 날씨가 따뜻한것 같아서, 부엌에 가야 불씨가 있을텐데.. 잠시만 기다리세요?"
루시아는 쓰고있던 장부와 엇저녁 들이닥친 남부 산맥쪽으로 가는 모험가로 보이는 열댓명의 손님들이 휘갈겨놓은 숙박부를 정리하다가 몸을 일으켰다. 기드는 손사래를 치고, 헛기침을 하고는 건너편의 산돼지식당을 가리켰다.
'저기서 태우지요. 뭐, 하던일 계속하세요.'
루시아와 기드는 웃음을 주고 받았다. 기드는 다시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문을 잡아당겼다. 유리문이 달린 문이 아귀가 안맞는듯 조금 덜컹거리자 창에 달라붙어 있던 눈이 떨어 졌다. 밖은 루프의 말대로 날씨가 따뜻해서인지 눈이 녹아 검은색의 흙과 섞여서 눈쌀을 지푸리게 했다. 곳곳에 진창이 있었고, 마차가 지나갈때마다, 흙탕물이 튀겼다. 기드는 가죽신발에 물이 스며들라, 조심스레 진창을 피해가며 산돼지식당으로 건너가려 했다.
"자...!!! 이번에는 어제들어온 마룬족의 여자아이입니다. 허드렛 일로 딱 좋은 아이이지요. 어리지만 이렇게 튼실하답니다."
기드가 고개를 돌린 쪽에는 여관거리의 끄트머리에 있는 작은 공터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눈빛들이 예사롭지 않았다. 칼체스터는 상도이기 때문에, 도매시장이 여기저기서 열렸다. 서쪽에 있는 정말이지 바레스최고라고 봐도 될 도매상가에는 갖가지 물건이 가득 쌓였고, 바레스수도 르네시아로 가져갈 버섯이며 약초며 돗자리며 산에서 나는 각종남부의 특산물이나, 칼체스터를 거쳐 남부산지를 넘어 라이안왕국에 가져갈 북부대농장의 밀이나 보리같은 양식들이나 대부분 칼체스터에서 도매장이 열렸다. 체스터라는 이름이 가리키듯 고제국의 요새도시에서 출발한 칼체스터지만, 또다른 북부의 도시 론디니움과 함께 교역이 많아지면서, 점점 커다랗게 발전하고 있는 도시였다. 또한 북부대농장에서 많이 필요한 '노예'역시 칼체스터에서 도매거래가 많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여관거리끝에서 벌어지는 노예 매매는 바레스관령의 허가증을 갖지 못한 노예상들이 관령감시관의 눈을 피해 가끔 여는 비공식 매매였다. 어차피 소규모로 노예를 매매하기 때문에 노예상에게 물리는 비싼세금을 감당할수가 없는 사람들이 택하는 방법이었다. 만약 관령감시관이 뭐라한다해도, 여관거리이기 때문에 숙박하러 왔다고 둘러대면 그만이고, 감시관도 그정도는 눈감아주고, 노예를 몇명받기도 했다.
"어제 갓잡아온 마룬족의 여자아이 낙찰 되었습니다. 아 아아. 공국 딜화는 안되구요. 오직 바레스딜화만
받겠습니다. 없다구요? 그럼 안돼지요. 자자 다시 경매입니다. 마룬족의 여자아이입니다.!"
어느새 경매물품을 올려놓는 연단으로 바뀐 마차위에서 호들갑을 떠는 사내는 간밤에 그 '은카나'였다.
기드는 담배를 물고 수염을 가다듬으며, 그쪽으로 다가갔다. 마룬족의 여자아이는 도매상이 아니라, 귀족의 하녀로 보이는 아트리아인에게 몇딜의 싼값에 낙찰되었다.
"자.. 이번에는 무시무시한 후투족의 아이입니다."
마치푸줏간에서 볼수 있는 쇠꼬챙이에 달린 고기처럼, 마차의 지붕용골에 중요한 부분만을 가린 후투족의 꼬마가 밧줄로 매달렸다. 후투족의 꼬마는 전에 걸린 마룬족의 꼬마처럼 버둥거리지는 않았지만, 침착한 얼굴로 좌중을 쏘아보았다. 기드는 그아이와 눈이 부딯히자, 움찔하는 눈으로 은카나가 하는 모습을 쳐다봤다. 은카나는 푸줏간 주인처럼 후투족의 아이의 몸 이곳저곳을 고기를 두드리듯 살짝 찰싹찰싹 때려 보였다.
"어린나이답지 않게, 근육이 울근 불근 하지요. 우~~~~ 과연 남부의 지배자 후투족의 어린아이 답습니다."
은카나는 검은 손으로 잘 발달된 후투족꼬마의 갈색피부의 삼각근과 승모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마치 뱀이 먹이를 만지듯 승모근에서 팽팽하게 매달린 팔끝까지 쓰다듬었다. 은카나는 과장된 몸짓과 어투로 말을 이었다.
"우~~~ 무시무시하지요.. 이아이가 자란다면, 여러분의 목줄기를 끊어버리고 도망칠지도 모릅니다. 어제도 이아이를 잡느라 우리 호위꾼들이 조금 다쳤지요."
마치 연극배우처럼 은카나는 다친오른팔에 붕대를 싸맨 호위꾼하나를 흘끗 쳐다보았다. 다시 은카나는 좌중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나 걱정하실필요는 없습니다. 이아이는 여자아니니까요!"
은카나는 중요부분을 덮고있는 거적때기를 잡아당겼다. 기드는 눈쌀을 찌푸리고, 수염을 쓰다듬었고, 덕분에 담배가 부러져 진창에 떨어졌다. 후투족의 여자아이는 부끄럽지도 않은듯 당당한 눈으로 내려다 보고 있었다. 어젯밤에는 어둠에 가리워져 자세히 보지 못했으나 자세히 보니 분명 여자아이같은 이목구비였다. 탄력있는 갈색피부에 눈은 크고 동그랗고, 홍채는 칠흑과도 같았다. 마치 흑요석을 보는듯 아름다운 눈동자였다. 코는 그다지높지 않았고, 입술역시 약간 통통한 느낌이었다.키만 조금 작을뿐 자라면 남부미녀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아니 그보다 남부미녀와는 다른 묘한 매력을 온몸에서 내뿜은 여자아이였다. 기드는 남자아이보다 약간 봉긋솟은 가슴과 거적때기가 벗겨진 아랫도리를 애써 외면하면서 은카나의 하는 짓거리를 쳐다 봤다.
"자.. 이아이를 어디다 써먹을까요? 이렇게 예쁜아이를 어디다써먹을까요? 그건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기드는 구역질이 날것같았다. 같은 프리아인종이면서, 프리아인을 팔아먹는 노예상인인 은카나는 기드의 관념으로는 도무지 이해할수도 없었고, 노예매매를 많이 봤지만, 마치 푸줏간에 고기를 널어놓듯 매달아놓는 매매방식 역시 욕지기가 튀어나왔다.
"300딜!"
벌써부터 마룬족의 아이들보다 10배이상 높은 가격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남자들의 거친고함이 여관거리공터에 울려 퍼졌다. 관령감시관이 오건말건 그들은 미친듯이 소리를 질렀다. 후투족의 여자아이는 그런 미친광경을 마차위에서 벌거벗은 채로 노려보고 있었다. 기드는 속에서 시큼한 것이 올라오는듯 했다.
"보석도 되나! 은카나!"
기드는 종이대롱에 담배를 채우고 있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좋은 보석은 암만 못해도, 이곳이 도매상이라지만 몇천딜은 호가했다. 귀족정치가 한창인 바레스에서는 장신구에 달 보석이 없어서, 귀족들이 난리였다
"예......... 물론 되지요.. "
은카나는 뚱한얼굴로 있다가 갑자기 휘둥그래한 눈으로 기드가 담배쌈지에서 마차 위로 집어던진, 보석을 발견하고는 집어들어 밝은 햇살에 비춰보았다. 얼핏보아도, 세공이 잘된 루비였다. 그대로 금가락지에 박아넣어도 귀족나리들의 훌륭한 장신구가 될것 같았다.
"저.. 이거..보다 높은 가격은 없겠지요?"
은카나는 조용해진 좌중을 다시 빛의창을 맞은 악마처럼 멍한 얼굴로 쳐다보면서, 박수를 크게 세번 쳤다.
"자 이 후투족의 야성미있는 꼬마는 저 경비분에게 낙찰 되었습니다!자 이 보석으 쾌척한 경비분에게 박수를.. "
호들갑을 떠는것은 은카나 뿐이었다. 모두들 멍한 얼굴로, 은카나의 하는 짓거리를 쳐다볼뿐이었다. 은카나는 연신 싱글거리면서, 후투족 아이의 손을 묶고있는 밧줄을 단검으로 끊었다. 밧줄이 끊어지자, 후투족의 아이는 주저앉지 않고, 당당한 자세로 마차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는 마차끄트머리에 붙어있는 계단을 한발한발 딛고, 흙탕물이 고인 진창에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걸어서 기드에게로 다가갔다. 사람들은 침을꿀꺽 삼키고, 선선히 길을 비켜주었다. 기드는 종이대롱에 담배잎이 잘안들어가는지 연신 툴툴대면서, 담배쌈지를 뒤적였고, 소녀는 발등에 눈과 진흙을 묻히면서 천천히 다가갔다. 그녀허리께까지 오는 약간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은 자연스럽게 찰랑거렸고, 윤기나는 갈색피부가 햇살에 정말이지 아름답게 빛났다.
"....."
쏘아보는 눈은 어제 밤에본 그대로였다. 기드는 담배를 넣다 말고, 움찔했지만, 이내 감정없는 눈으로 소녀의 눈을 쳐다보았다. 아직 이글거리는 눈동자는 증오심을 가득 품고 있었지만, 기드는 그 눈이 문득 고향에 가져가서 땅을 살 자금이었던, 은카나에게 던진 루비보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놀랍게도, 소녀의 눈동자는 순수한 검정색이 아닌 푸른빛이 감도는 묘한 검정색이었다. 기드는 그녀의 윤기나는 검은 곱슬머리를 쳐다보며, 그대로 등을 돌렸다. 소녀는 증오어린눈으로 여관쪽으로 사라져 가는 기드의 뒷모습을 미동도 하지 않고, 쳐다 보았다.
사람들은 아연하다는 눈으로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여관거리로 걸어갔던 기드는 저 멀리 서있는 백야에 들어갔다가 다시 천천히 걸어나왔다. 그의 어깨에는 커다란 털가죽이 걸쳐있었다. 곰의 가죽같아 보였는데, 곰의 팔부분에 해당하는 부분이 자꾸 기드의 얼굴을 가려서, 기드는 연방 팔부분을 손으로 잡고 머리위로 올렸지만 이내 미끄러졌다. 그런 멍청한 짓을 서너버 했을까? 기드는 알몸으로 눈밭에 당당히 서있는 후투족의 꼬마앞에 다시 섰다. 그리고는 곰가죽으로 그녀의 몸을 감싸주었다.
"감기걸린다."
소녀의 눈동자는 종잡을수 없다는듯 눈을 또르륵 거렸다. 기드는 커다란 곰가죽을 알몸이 보일새라 꼼꼼히 여며주고는, 아까 기드를 성가시게한 곰의 팔부분을 그녀의 작은 목에 목도리처럼 여러번 둘렀다.그녀는 당당하던 모습에서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되었다. 곰가죽에 푹파뭏혀 고개만 어찌할바를 몰라 빼꼼 내민 모습이 어딘지 귀여웠다. 기드는 어디서 가져왔는지 무릎을 꿇고, 그녀에게 조그만 소녀용 의 가죽신을 신겨주기 시작했다. 그녀는 동화에 나오는 공주처럼 신발을 신었다.
"말을 알아듣지는 못하겠지만, 밥먹으러 가자. 산돼지식당의 요리는 여편네가 드세긴 하지만 맛은 있지."
기드는 산돼지 식당을 가리키며 성큼성큼 걸어나갔다.뒤돌아서 걸어가는
모습위로 드디어 불을 붙였는지 담배연기가 솔솔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