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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지긋지긋한 상황에서 벗어나는 방법 좀 알려주세요.

지겹다. |2008.01.31 13:20
조회 445 |추천 0

 

저는 올해 24살이고, 직장에 다니는 평범하지만은 않은 여자입니다.

 

어디서 부터 말을 꺼내야할지 모르겠네요.

지금 막 엄마랑 전화통화하고 가슴이 답답해 글을 올립니다.

 

저희 부모님께서는 제가 3살때 이혼을 하셨고,

저와 오빠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아버지와 살던 여자분 밑에서..

 

첫번째 여자분은 제가 친엄마라고 믿었을 만큼 절 아주 어렸을때부터 키워주셨습니다.

술집에서 일을 하셨고, 아버지와 함께 집에서 사람들을 불러들여 도박을 하셨고,

술을 많이 드셨고 아버지와 엄청 많이 싸웠던걸로 기억합니다.

제가 몇살때부터 같이 살게된것인지는 모르지만 어렸을적 유치원 다닐때의 사진과 기억들이

있는걸로 봐서는 친엄마가 집을 나가고 얼마 후에 들어와서 살으셨던것같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집에 몇달에 한번꼴로 들어오시고 (어렸을때 제가 아버지를 몰라보고 무섭게 생긴 아저씨가 자꾸 오라고 한다고 그 여자분께 메달려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린나이에 아무것도 모르고 들었을때라 아무 생각없이 들었지만 아버지가 바람을 피워서 집에 안들어오신다, 어디가서 카드를 치신다 이런 소리를 자주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초등학교 4학년 가을에 두분이서 관계정리를 하시고

오빠는 운동때문에 전학을 할 수가 없어서 오빠는 아버지 가까이에 남아있고, 전 대구에 있는 큰아버지 댁으로 내려가 살았습니다.

그때 큰집도 그리 넉넉한 사정이 아니어서 절 잘 돌봐줄만한 사정이 아니었고 눈치아닌 눈치밥도 먹고 서러웠습니다. 샤워한번 하려면 방에서 아무도 못나오게하고 씻었어야했으니까요.. 쥐나오는 그런 곳에서.. 그래서 목욕탕을 가고 싶어서 큰어머니께 목욕탕비를 달라고 하면 그것조차 거절당했었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생활비를 한번도 보내신 적이 없더군요)

그 후에 저의 의지로 큰고모집에 들어가서 살게 됩니다.

큰고모가 나이가 많아 며느리가 있었는데 그 올케가 참 잘해줬습니다. 그래서 저도 많이 따랐고요.

그렇게 큰고모 집에서 잘지내다 한번씩 아버지가 오셨습니다. 아 한번씩이 아니라 한번 오셨군요.

다른 여자분과..

 

그 분이 두번째 여자분입니다. (얼마 안 살고 밤에 몰래 도망가셨다던..)

다방을 다니신다고 하셨고, 그때 자신이 안입는 옷가지를 들고와 저에게 입으라고 주셨던..

그분은 그때 한번 뵙고 그 다음엔 뵌 기억이 없습니다.

 

그러다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에 아버지가 첫번째 여자분과 오셨습니다.

저를 이제 데려가시겠다고요. 전 이제 아버지와 살거라는 마음에 그동안 아이들의 따돌림에 수근거림에서 벗어난다는 마음에 아주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도 잠시..

아버지와 첫번째 여자분을 따라오고 나서 아버지의 얼굴은 역시나 볼 수가 없었습니다.

늘 항상 집에 안들어오셨고, 아니면 잠시 들어오셔서 옷을 갈아입고 가신다거나 싸움을 하셨습니다. 그때마다 그 여자분은 절 끌고 동네 소주집으로 가서 혼자 소주를 드셨고, 저에겐 고기를 먹이셨습니다. 그 분이 절 참 이뻐하셨던것이 생각납니다.

 

얼마 후에 또 그 여자분과 또 한번의 관계 정리가 된 후 살고 계신 분이 지금의 어머니이십니다.

그러니까 첫번째 여자분과 두번째 같이 살면서 집에 안들어오신 이유가 지금의 어머니때문 이더군요.

그것이 제가 초등학교 졸업때쯤이었습니다.

그땐 여관 뒷방에서 살림을 차리셨고, 오빠와 저는 뒷쪽방에서 잠을 자곤 했습니다.

그러다 좀 나은 집으로 이사를 했고 (월세) 몇년은 정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아버지도 집에 잘 들어오셨고, 어머니도 정말 가정적이 셨거든요.

늘 저녁에 가족끼리 모여서 식사하는것이 행복할 정도로 살았습니다.

한번씩 싸우셔도 그게 오래가지 못했었습니다.

 

제가 차츰 나이를 먹고 고등학교를 들어갔는데 사람들이 집에서 화투를 치고있었습니다.

어렸을때도 워낙 익숙하게 본 것들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그게 화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게 흔히들 말하는 하우스(도박장)이더라구요. 그집에 방 두개 거실하나였는데 사람들이 큰방, 거실에서 화투를 치니까 좁은 작은 방에서 아버지, 어머니, 저, 다른분 1-2명 이렇게 껴서 자는 날도 있었습니다.

어느덧 제가 고3이 되고 취업을 나가는데 너무 힘이 들더군요. 공장이었는데 하루 13-4시간 일하고 한달에 한번 두번쉬고.. 그래서 사무 일을 하려고 다니던 곳을 퇴사하고 집에갔는데 그때도 역시 화투판이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참..

집에서 회사를 다니겠다 했지만,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더군요.

보다시피 니가 집에 들어와도 잘 곳이 없다라고요..

참 우스웠습니다. 내집인데 내가 일하고 와도 발뻗고 잘 곳이 없다니..

그렇게 전 20살 되는 겨울에 대구에 내려와 살고 있습니다.

후에 알게되었지만 그렇게 하우스를 돌리다가 어머니께서 돈을 떼인것이 많아 아버지 카드를 다 터뜨리고 집 보증금 마저 다 까먹고, 사람들에게 빌린 돈을 갚지 못하고..

휴~ 그렇게 새벽에 도망나오듯 이사 나오셨다고 합니다.

(전 중학교 동창들과 다 연락 끊었습니다. 다 동네 애들이었는데 너무 창피했거든요)

한번 집에 가보니 사람들이 어찌 알고 찾아왔는지 집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창문에 얼굴을 대고 빤히 안을 들여다 보고있더군요.

그 후론 집에 발걸음도 하기 싫었습니다.

생전 전화 안오는 어머니 전화가 그렇게 받기 싫었습니다.

한달에 80만원 받는 저에게 돈 보내라고 전화하시는 걸 알기때문에..

그럼 저는 40만원씩 50만원씩 보내드렸습니다.

(아버지가 돈을 안주신다는 그말에.. 또 여자를 만나고 다니고 도박을 하러 다닌다는...)

그렇게 23살때까지 돈을 한푼 못모았습니다.

그러다 작년 봄 아버지가 새벽에 쓰러지셨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부리나케 서류 정리해서 갔죠.. 말소된 아버지 주민등록 살리고 건강보험료 밀린것도 다 내고..

다행이 수술이 잘되서 회복이 빠르셨습니다.

다행이라 생각한것도 잠시..

 

아버지가 변하셨습니다. 예전엔 돈을 벌면 일단은 어머니께 드리시던 분이 이젠 어머니께 돈을 못벌었다, 받지를 못했다고 하시면서 돈을 안주고 통장에 넣어 놓고 혼자만 쓰신답니다.

그럼 어머니는 저에게 또 전화하시지요.

 

압니다. 드리면 안된다는 걸.. 이제 제 살길 제가 찾아야 한다는걸 압니다.

이제부터라도 모아야 나중에 시집 갈 돈이 생긴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그게 안됩니다. 어머니는 전화오셔서 죽을 소리 하시죠, 아버지께 전화드리면 짜증부터 내시며 전화 끊어 버리시죠, 오빠는 저보고 독해지랍니다.

그런데 그게 잘 안됩니다. 글을 적는 지금도 눈물이 자꾸 납니다.

 

돈 좀 벌어보겠다고 저 작년 12월 부터 회사 퇴근하고 7시부터 새벽 2시까지 호프집에서 알바합니다. 차비 아까워서 알바하는곳부터 집까지 걸어다녀요.

그런데 상황이 자꾸 이렇게 되니까 모든것에 의욕이 없어집니다.

일을 하면 뭘하나, 밥은 먹어서 뭐하나 이런 생각이 드네요.

예민해지다 보니 남자친구에게 자꾸 짜증만 내고..

답답할뿐입니다.

제가 죽어야 아버지가 달라지실까요.

아니면 제가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도망가서 살아야 달라지실까요.

익명이라는 장점에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어떻게해야 제가 살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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