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사설
성호사설은 이익이 학문을 닦으면서 느낀 것, 들은 것을 그때 그때 적은 것을 모든 것으로 40년간에 걸친 기록입니다.
이 책은 일종의 백과전서적인 저술로서 전체 내용을 천지문(天地門), 만물문(萬物門), 인사문(人事門), 경사문(經史門), 시문문(詩文門) 등 5개의 문으로 나누어 3,700개의 항목을 수록했으며 천문, 지리, 역사, 관제, 군사, 경제, 풍속, 문학, 종교 등 그 범위는 각 분야에 미치고 있습니다. 이중 정치 분야로는 주로 당쟁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이익은 당쟁은 쟁투에서 일어나고 쟁투는 이해(利害)에서 일어난다고 보았습니다. 여기에서 이해는 관직을 의미하며 관직의 수는 정해져 있는데 그것을 얻으려는 양반의 숫자는 많기 때문에 쟁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익은 양반 세계의 모순이 당쟁의 원인이 됨을 극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익은 또한 토지개혁론을 개진하는데 그의 토지 개혁론의 핵심은 균전론(均田論)입니다. 균전론은 일정한 넓이의 땅을 영업전으로 정하고, 그 이상의 토지를 가진 사람에 한해 토지의 매매를 허락하고, 토지 소유량이 영업전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토지매매를 법적으로 금하자는 것으로, 토지를 백성들이 골고루 점유할 수 있게 하자는 것입니다.
또한 국정 전반에 걸친 개혁사상을 개진하고 있는데, 이는 관제 개혁론으로 집약됩니다. 임진왜란 이후 국정의 최고의결기관이자 집권층의 집합체였던 비변사의 개혁과 의정부의 정비를 주장합니다. 또 겸직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그것의 시정을 요구하고, 관리의 빈번한 교체와 서리들의 폐단을 지적하게 됩니다. 그리고 중앙과 지방의 관서를 대폭 통합해 관리를 강화함으로써 재정적 낭비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성호사설은 기술개발 문제에도 상당한 관심을 보입니다. 철광과 동광 등 풍부한 자원을 갖고 있으면서도 제광과 가공 기술의 낙후로 일본이나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막대한 재화가 외국으로 빠져 나가고 있음을 지적하고 정부가 기술개발에 주력할 것을 지적합니다. 또한 농업기술 문제에도 관심을 보여 수리시설의 개발에 주력할 것을 주장합니다. 성호사설에는 사회개혁 뿐 아니라 역사적인 인식론에 관한 글도 실려 있습니다. 여기에 실린 역사론의 중요한 특징은 중국 중심의 역사관을 극복하고자 했다는 점입니다.
당시의 지배적인 역사관은 화이사상(華夷思想)이었습니다. 이는 한민족(漢民族) 왕조를 중심에 두고 주변 민족을 오랑캐로 보는 역사관인데, 조선의 학자들도 이를 받아들여 조선을 소중화(小中華)로 자처하고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도 오랑캐의 나라라고 적대시하며 이미 멸망한 명나라를 흠모하기에 이른다. 이에 대해 이익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둔하게도 본국사를 불신하고 언제나 중국의 역대지(歷代誌)에 의존해 기록했기 때문에 군국(郡國)과 산수의 명칭이 착잡하고 어려워졌다』고 통렬히 비판했습니다. 또 『오늘날의 중국이라는 것은 대지 중의 일편토(一片土)에 지나지 않습니다. 크게는 구주도 한 나라이지만 작게는 초나 제도 하나의 나라다』고 말해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극복하고자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