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을 만난 남자 친구가 있었습니다
서로 너무도 다른 세상을 20년 넘게 살아온 둘이었습니다.
비슷한 구석이라고는 한 군데도 없고,
10이면 10, 모두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던 우리였죠
하지만 그사람은 자기와는 너무 다른 저를,
그 내놓으라하는 성질 죽여가며
많이 사랑해 주었습니다
물론 서로에게 석연치 않은 구석도 많았습니다만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잘 지내왔는데
서로 사랑하지만
너무 다른 우리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너무 달라서
무언가를 보면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없었던 거죠
또 한 가지 문제는...
남자 친구와 저의 성욕의 차이가 너무 크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성욕이 너무 강해서
그것을 해결하지 못하면
만나는 내내 유쾌한 표정을 짓지 못합니다
그럴 때 해결하지 못하면
짜증이 나는 것은 이해하지만
제가 애교부리거나 팔짱끼는 것도
힘들어할 정도니...
자기도 인정하지만
좀 심합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우리 그냥 친구로 잘 지내자고 그랬죠
마음이 변해서가 아니라
연인같은 친구로 지내자고...
아직도 좋아하는 건 변함없다고...
선뜻 그러자고 하더군요
가슴이 찢어지는 한이 있어도 잡을 사람은 아니거든요
물론 예전과 똑같이 지낸다고 하지만...
그 '연인', '친구'라는 말만 바뀌었을 뿐인데...
힘들었습니다. 마음도 아프구요
그런데 친구로 지내면서 그 사람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우리 집에서 1시간 반 떨어진 곳에서 일하고 있고
일 마치면 직장 근처 영어학원에 곧 바로 갑니다
영어 학원에 다니는 건 제가 제안 한 일이었구요
저는 매일 그가 일 마치는 시간에 맞취서 1시간 반 떨어진 그 곳엘 찾아가고
학원까지 가는 10~20분을 함께 버스 안에서 보내고,
학원 앞까지 데려다주고.
전 다시 1시간 반을 지하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가 부담 스럽다고 오지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진심으로 제가 좋아서 하는 일 이었기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그 일을 반복했죠
그는 애써 저를 차갑게 대했습니다
혹시 다정하게 이야기 하거나 손이라도 잡으면
성욕이 주체가 안 되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
친구로 지내자는 제 말에 큰 충격을 받았거든요
그런데 점점 그 친구에게 실망이 커져 갔습니다
제가 그냥 퍼 주기만 하니까
거기에 너무 익숙해져서
저에 대한 배려가 없어지는게 느껴지는 겁니다
하루는 그가 학원을 빠지고
아는 후배 소개팅을 주선하러 나가게 되었는데
그 날도 당연히 제가 올 걸 알면서
아무런 말도 없다가 밖에서 1시간을 넘게 기다리게 한 것이었습니다
소개팅 주선을 해주고 그 쪽에서 주선한 사람과 넷이서 놀기로 한거죠
그 사람...철이 좀 없고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는지라
그런 일이 있으면
침착하지 못하고 신나서 정신이 없습니다
제 생각은 하지 못한 거죠
물론 그가 평소에 찾아오지 말라고 하는데도 제가 찾아 간 것이었기 때문에
눈물은 났지만 추호도 그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웃은 얼굴로, 웃는 목소리로,
어제 잘 놀았냐며 다음 날도 또 찾아갔으니까요
제가 그냥 웃어버리면 전혀 모릅니다.
어쩌면 저렇게도 모를까 싶을 정도로 정말 모릅니다
말하지 않으면 죽어도 모릅니다...제 마음을요...
조금만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도 알 것 같지만
보통의 사람들과는 마인드가 정말 너무 달라서...자기 맘 말고는 다른 사람 마음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런 일이 계속 쌓이고
그 사람도 제가 잘해주니까
끝도 없이 기어오르고...
미워졌습니다
하지만 사랑을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미워도 헤어지지 못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까지 해 준 게 아까워서라도
이대로 헤어 질 순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심했죠
미워도 보고 싶은 내 욕심도 채울 겸,
아무렇지도 않은 듯 참는 김에 계속 참고
진짜 잘해주다가
때가 되면 멋지게 차 버리기로...
진짜 잘 해줬습니다
천사가 따로 없었죠
저도 그에 대한 사랑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행복했구요
그러다가 또 한 번 재수없게 굴길래
싫은 내색도 않고 있다가
다음 날부터 연락도 안하고 찾아가지도 않았습니다
그 동안도 늘 제가 먼저 연락하고
찾아오지 말라는데도 가고
그랬던 거라서
그 사람이 왜 안오냐고, 왜 연락 안 하냐고 물어 볼 일은 없었죠
다만 전화오는 횟수가 잦아지고
연애할 때처럼 이유없는 전화도 틈만 나면 하고...
그러더라구요
나중엔
'오늘 저녁에 뭐해? 주말에 뭐해?'
늘 물어보기 시작했고
저는 늘 약속있다고 대답하고...
그럴 때면 늘 아쉬운 목소리로
'그래?,,,'
그러곤 전화를 끊었죠
제가 지방에 갈 일이 있으면
기차타고 가도 되는데
비행기표 예매도 해놓고......정말 노력하더군요
그러던 며칠 전이었습니다
일 할 시간인데
뜬금없이 전화가 왔더라구요
오늘 저녁에 뭐하냐고...
그래서 약속있다 그랬죠
(사실 약속있다는 말은 죄다 거짓말이 아니었습니다...제가 약속을 매일 잡아놨거든요)
처음엔, '그래...?'
그러더니
보고싶어 미치겠다고
약속 취소하고 오늘 저녁에 만나주면 안되겠냐고
거의 울면서 매달리더군요
그래서 그 결정적으로 재수없던 날 이야기를 냉정하게 해 주었더니
자기는, 저의 친구로 지내자는 말이 내내 마음이 아파서
일부러 차갑게 군거라고
매일 찾아오는 게 미안해서 그러지말라고 일부러 그랬던 거라고...
참내...그렇게 미안해서
자기가 갖고 싶은 거 사주면 어린 애처럼 좋아서 어쩔 즐 몰라하고
내가 해 주는 건 다 받았답니까?
그래서 얘기했죠
좋아하는 사람을, 연락도 없이 몇 시간이나 기다리게 할 정도로 냉정하면
그 마음으로 잊으면 되겠네
미안하다고 몇 번이고 비는 그의 전화를
그냥 끊어버렸답니다
너무 밉고 나쁜 사람인데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이 남아서 못 헤어 지시는 분들...
남은 사랑이 너무 짜증나시는 분들...
남은 사랑 아낌없이 다 줘버리고
멋지게 차버립시다
남은 사람 아낌없이 주는 동안도 행복하고,
그러고 차버리면 정말 시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