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지금의 북평리를 도원-원창골로 부르다가 근래에 후평(뒷뜰)-북평리로 불려지게 된다. 일제시대엔 행정구역이 북면에 속해있었고 면사무소 위치도 현 제재소 기와집이었으나 지금의 여량으로 북면사무소가 옮겨갔다. 그후 행정구역 개편으로 북면에서 북평면이 분리 독립하여 (1986. 4. 1) 현재의 위치에서 발전하고 있다.
ㆍ 북평리 (北坪里)
고려 때는 주진 고을 소재지로 되어 있었고 그후 북면소재지로 되어 있다가 1915년 4월에 면사무소를 남평리로 이전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북평리라 부르게 된 것은, 정선군에서 본 리를 후평(後坪)이라 불리어 오다가, 조선 중엽에 남한강 상류인 임계 천을 중심으로 강 이남을 남평, 강 이북을 북평으로 각각 지명을 분리, 현재까지 북평리라 칭하게된 것이다.
자연부락은 상동, 하동, 항동, 내항동, 강선암 등 5개 부락으로 형성되어 있다.
ㆍ 남평리 (南坪里)
이 곳의 지명(里名)은 1779년(정조 9년)에 임계천 하류로 군내에서 가장 넓은 평야지대이므로, 강의 남쪽에 있는 평원지라 남평이라 칭하였다. 자연부락으로는 본동, 다슬, 봉화치, 한 대곡, 새을동 등 5개 부락으로 형성되어 있다.
ㆍ 장열리 (長悅里)
이곳은 구한말 시대부터 장열리로 불렀는데, 서향으로 평탄지가 길게 뻗쳐 있고 토질이 비옥하며 군내에서도 가장 이상적인 농촌으로서 지명을 장열리라 칭하였다. 자연부락은 본동과 가평(가坪) 2개 부락으로 되어 있다.
ㆍ 문곡리 (文谷里)
이곳은 산자수명(山紫水明)하고 인심도 후하며 선비와 신선이 함께 놀던 곳이라 하여 리명을 문곡(文谷)이라 하였다. 자연부락은 본동, 백운동, 이십동, 소곡, 대곡 등 5개 부락으로 형성되어 있다.
ㆍ 나전리 (羅田里)
나전리는 고려 초 정선군이 도원군(挑源郡)으로 되었을 때 어라전(於羅田)으로 칭하다가 구한말 행정구역 개편시 나전리로 개칭하였다. 자연부락은 본동, 야미동(夜味洞), 어도원(於挑源), 장평 등 4개 부락이 있다.
ㆍ 숙암리 (宿巖里)
옛날 이곳엔 인가가 전혀 없어, 이곳을 지나던 한 나그네가 바위 밑에서 노숙하고, 자연의 혜택에 감사하여 그 바위에 '숙암'이라 써 놓았다는데서 이름을 숙암리라 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