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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군 북평면의 지명 유래

hanolduol |2006.11.10 11:11
조회 57 |추천 0

조선시대에 지금의 북평리를 도원-원창골로 부르다가 근래에 후평(뒷뜰)-북평리로 불려지게 된다. 일제시대행정구역이 북면에 속해있었고 면사무소 위치도 현 제재소 기와집이었으나 지금의 여량으로 북면사무소가 옮겨갔다. 그후 행정구역 개편으로 북면에서 북평면이 분리 독립하여 (1986. 4. 1) 현재의 위치에서 발전하고 있다.

 

ㆍ 북평리 (北坪里)

고려 때는 주진 고을 소재지로 되어 있었고 그후 북면소재지로 되어 있다가 1915년 4월에 면사무소를 남평리로 이전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북평리라 부르게 된 것은, 정선군에서 본 리를 후평(後坪)이라 불리어 오다가, 조선 중엽에 남한강 상류인 임계 천을 중심으로 강 이남을 남평, 강 이북을 북평으로 각각 지명을 분리, 현재까지 북평리라 칭하게된 것이다.

자연부락은 상동, 하동, 항동, 내항동, 강선암 등 5개 부락으로 형성되어 있다.

 

ㆍ 남평리 (南坪里)

이 곳의 지명(里名)은 1779년(정조 9년)에 임계천 하류로 군내에서 가장 넓은 평야지대이므로, 강의 남쪽에 있는 평원지라 남평이라 칭하였다. 자연부락으로는 본동, 다슬, 봉화치, 한 대곡, 새을동 등 5개 부락으로 형성되어 있다.

 

장열리 (長悅里)

이곳은 구한말 시대부터 장열리로 불렀는데, 서향으로 평탄지가 길게 뻗쳐 있고 토질이 비옥하며 군내에서도 가장 이상적인 농촌으로서 지명을 장열리라 칭하였다. 자연부락은 본동과 가평(가坪) 2개 부락으로 되어 있다.

 

문곡리 (文谷里)

이곳은 산자수명(山紫水明)하고 인심도 후하며 선비와 신선이 함께 놀던 곳이라 하여 리명을 문곡(文谷)이라 하였다. 자연부락은 본동, 백운동, 이십동, 소곡, 대곡 등 5개 부락으로 형성되어 있다.

 

나전리 (羅田里)

나전리는 고려 초 정선군이 도원군(挑源郡)으로 되었을 때 어라전(於羅田)으로 칭하다가 구한말 행정구역 개편시 나전리로 개칭하였다. 자연부락은 본동, 야미동(夜味洞), 어도원(於挑源), 장평 등 4개 부락이 있다.

 

숙암리 (宿巖里)

옛날 이곳엔 인가가 전혀 없어, 이곳을 지나던 한 나그네가 바위 밑에서 노숙하고, 자연의 혜택에 감사하여 그 바위에 '숙암'이라 써 놓았다는데서 이름을 숙암리라 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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