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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군 신동읍의 지명 유래

hanolduol |2006.11.10 11:12
조회 72 |추천 0

조선 중엽에는 평창군 동면 관할로 있었으나, 1906년 평창군에서 정선군으로 편입되면서 신동면이란 지명을 갖게 되었다. 1950년 광산개발로 상주인구가 차츰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1970년대 후반, 에너지 파동으로 인해 석탄소요량이 늘어나자 인구도 급격히 증가하면서 신동면신동읍으로 승격되었다. 현재에는 석탄합리화방침에 따라 지역의 모든 활동이 축소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었다.

 

ㆍ 함 백(咸白)

함백이라는 지명은 함백광업소가 생기면서 사용된 것으로, 광업소 뒷산인 두위봉에서 함백산(태백시 소재)까지 탄맥이 이어져 있어 풍성하게 매장되어 있는 석탄을 개발하여 번창하길 기원하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 설도 있다. 이 지역은 두 가지 지명이 통용되고 있는데, 그 중 하나인 함백은 함백광업소 부근(방제리)을 가리키고 있으며, 또 하나의 이름인 조동은 현재 초등학교 부근을 중심으로 대부분의 마을 이름이 조동으로 되어 있다. 옛날에 새가 많이 살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또 땅 모양이 새가 앉아 있는 모습같아서 붙여졌다고도 한다.

 

ㆍ 용거리 <예미禮美)>

1900년대 신동읍이 평창군 동면에 속해 있을 때부터 이 마을은 배영거리(拜迎巨里)로 불렀다. 그 당시는 현재 읍사무소가 있는 마을이 의림길(義林吉)로 집단부락이었으며, 배영거리는 10여채의 가옥이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의림길 부락에서는 손님을 맞고 또한 배웅할 때 이곳까지 나왔다고 하여 배영거리라고 불렀다 한다. 그러다가 약 20년 전부터 이곳 동리 주민 몇 사람들이 용거리라고 부르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차츰 용거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 온다.

 

ㆍ 용주골 (예미5리)

옛날 이 골짜기에서 용이 등천하였고 그 용이 올라간 자리에 샘물이 솟기 시작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그래서 샘물로 인해 생활의 터전이 생기고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지금도 이 골짜기의 물은 마르는 때가 없다고 한다.

 

양지마을 (천포리)

이 마을은 북쪽을 등지고 동·남쪽을 향해 있어 겨울철에도 온화하여 양지마을로 불리는 것 같다. 다른 이름으로는 '샘개'라고도 부른다. 양지마을 앞에서 큰 내가 있으나 평상시는 물이 흐르지 않아 건내라 하며, 큰물내기라고 부르는 곳은 비가 오면 샘물이 솟는다.

 

ㆍ 납운돌 (納雲乭)

이 지역은 땅밑이 돌 한 덩어리로 형성되어 있다고 하여 '납운돌'이라 불리어 온다. 이 곳엔 수령 150년이나 되는 매채나무 밑에서 샘이 솟아 신비의 맛을 내며, 여름철엔 시원하고 겨울철엔 따뜻하여 식수로 쓰이고 있다.

 

ㆍ 설론 (운치3리)

이 지역은 앞뒤의 산이 매우 높고 겨울엔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이어서, 눈이 많이 내릴 때 그 눈을 치기 위한 방법을 논의하였다고 하여 설논(雪論)이라고 불리어 온다. 과거엔 많은 식구가 살았으나 현재는 자꾸만 다른 곳으로 이주해 가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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