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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왕성에 대하여

아이스크림 |2003.09.06 11:48
조회 119 |추천 0

빙벽이름= 토왕성 폭포
등반길이= 약 320m(상단. 중단. 하단)보통 4피치로 등반 하고 있음
난이도= M.6-7 정도 상급자 수준
등반 장비= 로프 80m1동 아이스 피톤 10개 아이스 바일 선등자 3개 후등자 2개 등 기본적인 장비 고어택스 의류 비상식량 의약품등등
토왕성 폭포는 토왕골 상단부에 걸려있는 총 길이 약320m의 거대한 3단 수직 폭포다.하단90m, 중단80m, 상단150m로 연결되어 있는 국내 최대 폭포로서 12월 후반부터 결빙되어 3월초까지 유지되며 매년 결빙된다.

설악동 소공원에서 폭포까지는 1시간 30분에서 2시간 가량 걸린다. 전체 구간 중 고난도 등반이 이루어진는 곳은 200m정도이다.1976년 여러 팀에 의해 토왕폭을 도전하게 된다. 1976년 1월 14일 7박8일의 고투 끝에 동국산악회의 도창호, 이동훈씨가 하단을 성공적으로 등반하게 된다. 당시에는 40여개의 아이스하켄을 설치하며 인공등반으로 이루어졌다. 그 다음 해인 1977년 크로니 산악회의 박영배, 송병민씨등이 1월12일부터 12일의 걸친 고투 끝에 토왕폭 정상의 피켈을 꽂는데 성공한다. 상 하단 완등의 쾌거를 이룬 순간이었다. 실제 등반 시간은 23시간으로 총 70여개의 아이스 하켄을 설치하면서 인공등반으로 이루어졌다. 초등 13일 후인 1월25일 부산 합동대의 권경업, 김원겸, 김운식씨등이 완등해 2등의 기록을 수립된다.

등반시간은 1주일로 단축되었다. 그 이듬해인 1978년 2월4일 윤대표, 손칠규씨등이 1박2일의 3등을 기록한다.

토왕폭을 비롯해 국내 빙폭등반의 황금기는 1980년대 중반부터라고 볼 수 있다. 당시 토왕폭의 등반시간이 4~5시간대로 압축 되었고 그 후 계속해서 3시간 2시간 1시간 때의 속공 등반이 이루어 졌으며 단독등반 야간등반 여성이 선등과 단독 등반을 하는등 새로운 기록이 계속되었다.

그 후 삼복산악회 이상록씨와 필자는 1일 연속3회 등반을 했으며 토왕폭, 소토왕폭, 대승폭, 소승폭등 설악산 4대 빙폭을 당일 (20시간)등반을 필자가 한적이 있다. 이렇듯 1990년대 초까지 수많은 신기록이 수립된 것은 토왕폭이 기여한바 크다. 토왕폭 등반에는 80M 로프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중단부 완경사 역시 정상적인 등반으로 올라야 한다.상단 등반시에는 낙빙을 대비하여 안전한 곳에서 선등자 확보를 봐야한다.선등자는 80M쯤 오른 곳에 비교적 완경사에서 후등자를 올린후 정상까지 등반한다.토왕폭은 등반도 어렵지만 내려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빙벽을 통해 직접 하강할 경우 80m로프 2동이 필요하며 상단80M 확보 지점에 확보물을 설치하여 2번 하강하여 중단까지 내려갈 수 있다.

또다른 방법은 정상에서 왼쪽 능선쪽으로 100m 오른 후 왼쪽 안부를 넘어 큰 계곡 쪽으로 내려갈 수 있다.이때도 로프 89m1동은 필요하다.

또 다른 방법은 토왕폭을 쳐다볼 때 좌측 암벽에 하강용 볼트가 설치 되어 있다. 이곳을 통해 내려 올 경우에는 80m 1동으로도 (4회)가능하다. 하단 하강은 나무에 걸고 80m 한번으로 내려갈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빙폭을 쳐다 볼 때 우측으로 돌아서 내려갈 수 있다. 토왕성 폭포 가는길


외설악 설악동에서 매표소를 지나 좌측으로 100여m가면 비룡폭포 가는 방향으로 다리를 건너 좌측으로 계속 간다. 소토왕골 입구를 지나가면 가게가 있다. 그곳을 지나 계속가면 우측으로 길이 꺽어 지는데 그곳에도 가게가 있다 이곳부터는 계속 계곡으로 오르게 된다. 중간에 철계단을 지나고 마지막 철계단 끝나는 지점에서 곧바로 산비탈을 오른다. 이곳은 입산 금지로 되어있기 때문에 철조망이 쳐져있다. (이곳이 비룡폭포 50m전)이곳은 가파른 비탈이며 이곳을 약 100여m오르면 우측으로 길이 돌아가며 돌아서 계곡쪽을 보면 멀리 토왕성 폭포가 보인다. 토왕폭을 바라보며 계속 계곡으로 오르면 된다 이곳부터는 갈라지는 길이 없기 때문에 쉽게 찾아갈 수 있다. 설악동에서 토왕성 폭포 까지는 약 2시간 걸린다.

 

도천면(道川面) 면세일반(面勢一班)에 명소라하여 신흥사(神興寺), 토왕성폭포(土旺城瀑布), 비선대(飛仙臺), 계조암(繼組庵), 비선대(秘仙臺)라 기록되어 있다.
토왕성폭포는 “土旺城”이 아니고 “土王城”이 옳다.
1782년(正祖6) 발간된 문헌비고(文獻備考)三十一 여지고(與地考)十六 국방(國防)四 성곽(城郭)四 양양읍성조(襄陽邑城條)  三十一에《토왕성은 읍북쪽 오십리 지점에 있는 석축이다. 지금도 그 터가 남아 있다. 권금성과 설악산 위에 있다. 읍지가 왕씨 성을 가진 지방민이 쌓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土王城 在北五十里 石■  ■地■■  ■■城  在雪岳山上  邑誌  土民王 ■人■)

말하자면 토왕성폭포는 토왕성이 있기 때문에 토왕성폭포라 했고 토왕성은 王씨 성을 가진 그 지방 사람이 쌓았다하여 토왕성(土王城)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뜻이다.
토왕(土旺)이라고 쓴 것은 일제(日帝)때 1925년 도천면 면세일반에 “旺”으로 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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