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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만화경 16

염탐소녀 |2003.09.08 19:30
조회 167 |추천 1


멀리서 현수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m16 소총을 머리에라도 맞은 듯 쿵 하고 나동그라진다. 세상으로부터 격리 된 듯 동체가 선명히 드러나지 않는 심미적인 거리를 느끼고 있었다. 어떤 한 남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나를 가볍게 들어 올렸다. 그러자 나는 사막에서 모랫가루가 날리는 듯한 환상을 느낀다. Song  From a Secret Garden 들리는 곳으로 나를 데려가고 있었다▶▶ 나는 곱추같이 몸을 휘고 아픈 한쪽 팔을 구부정하게 들고 있었다. 그러다 어떤 포근한 잠자리에 이르자 온유함과 여유를 느낀다. 팔에서 피자 줄줄 새어 나오고 있었지만 마치 그 안에 꿈이 담겨 있는 듯 했다.


"이제 정신이 좀 들어?, 으나야?"

"........."

"나, 현수야! 이제 정신이 좀 들어?"

"오.. 오빠!"

현수가 머무르는 밀실 방에 눈에 들어 왔다.


# 마지막 입김.


"안 죽었네? 지지배 놀랬잖아! 뻐뜩 인나!"

Stratovarius 의 Forever▶▶ 노랫소리와 함께 나는 파도소리에 철썩 몸이 와 닿는 듯한 황홀함을 맛보고 있었다. 여긴 바닷가 같아. 헤엄을 치고 방금 나온 것 같은데, 물 속에서 정신을 잃었던 것 같아.

"이것 좀 먹어 봐. 죽이야. 너 살이 몰라보게 빠졌다. 홀쭉이가 됐어! 다이어트 진짜 성공 했다야! 하하핫"

한쪽 팔의 통증도 잊은 채 한참 단잠을 자고 일어난 듯 했다.

"여긴..."

"급해서 일단 여기로 데려왔는데, 독서실 안에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지? 여긴 나 잠자는 곳이야."

'내가 여기 알고 있다는 사실 다 알면서..'

"나 오빠한테 작별 인사하려고 했었는데.."

"거북이처럼 가방에 뭘 잔뜩 담고 도망치려고 했어? 하하핫.그 많은 걸 한번에 담으려니까 쓰러지고 그러지. 여 그런데, 너 팔은 왜 이런 거야? 피멍이 들었잖아. 약을 발랐는데."

"영진이와 좀 부딪혔어"

창가 쪽으로 걸어가 한참을 멍하게 바라보던 그가 갑자기 영진이 이야기를 꺼냈다.

"칠칠치 못하긴. 그런데, 영진이 녀석 말야.. 참, 맹랑한 녀석이야!"

난 갑자기 영진이 이야기가 나오자 팔이 아려오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

지갑 속에 넣어둔 진선이 사진을 보더니 그러더라.

"소개 시켜달라고. 예쁘다고."

한동안 말없이 영진이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의 말을 어떻게 믿어야 할까.


곧 전화벨이 울렸다.

"나 진우야. 여긴 병원이다."

"........"

"큰 부상은 없다니, 걱정은 안해도 돼. 근데 너, 이리 올 수 있니? 팔은 어때?"

"괜찮아, 갈게. 기다려"


그의 전화에 부들부들 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오빠 나 병원까지만 태워다 줄래?"

"왜? 정말 아파서 병원 가려고 그러니?"

"진하가 입원했대. 별건 아닌데. 가봐야 할 것 같아서."

"그래. 태워줄게.."

현수는 익숙하게 핸드폰을 손에 잡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자 갑자기 현기증이 몰려왔다. 좀체 정신을 차리기 힘들만큼의 어지러움증. 살이 빠져서 일거야, 한동안 그 맛있는 라면조차 먹질 못했잖아. 그래 나에게 영양분이 필요해. 지금의 난 너무나 허기지니까.
수능이 끝나면 뭐든 할 수 있을 거라고 했잖아. 사랑도 다이어트도, 그리고 나의 꿈도. 그러나 어느 하나 지금 난 눈에 선명하지가 않아.


# Bring me to life


엘레베이터 문이 열리자 병원 로비에서 초조하게 앉아 있던 진우를 만날 수 있었다.

좀체 정신없는 표정으로 나와 현수를 보던 그는 조금 놀라는 듯 했다.

"총무와 같이 있었어."

"진우도 와 있었구나."

"나 진우랑 할 말이 있었는데.으나, 먼저 들어가라!" 고 현수가 말했다.

[802 호 이진하]

병실 앞에 들어서자,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그 사이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전화 받고 엄청 놀랐잖아!"

진선 언니의 얇은 목소리.

"언니 내가 쇼맨쉽이 장난이 아니잖아. 그냥 확 넘어지는 척 했지. 지금 내가 빈혈인 건 아무도 몰라! 영진이 그 새끼 땜에 미쳐!"

"그럼 너 누구 좋아하는 건데?"

"몰라 다 싫어. 진하가 내가 버리는 애 사귈려고 할 태세니까 대학 가기 전까지 좀 놀아줘야지. 그 년은 지 주제도 모르고 아무 남자한테 껄떡거리면서 꼬리를 치고 다니더라니까."

"그럼 걔한테 현수나 물려주면 되겠네.. 하핫. 둘이 딱이다야!"

그녀는 나와 우리의 이야기를 그렇게 전하고 있었다. 거짓말처럼, 누군가의 이야기를 그렇게 들어보는 것은, 어쩌면 그 동안 내가 독서실에서 보던 구멍 속의 진심과 그렇게 다르지 않았다.

"언니 근데 우리 총무, 어떻게 생각하길래."

"얼마 전에 날 찾아 왔더라고. 그런데 걔가 이젠 마음이 정리가 됐다나 뭐래. 핫 참, 기가 막혀서. 난 신경도 안 쓰는데. 사실, 예전에 걔네 집이 좀 부자 였잖아! 그래서 꼬셔 버려고 .... 했었지"

내가 알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수중에서 발레를 하듯이, 그녀는 미끄럽고 질탕한 내면 세계를 나에게 그렇게 보여주고 있었다.

"근데 걔네 집 사업 망해서, 엄마까지 일하려고 나섰다는데 거기다 대고 난 너 가난해서 싫어, 이럴 수 있니? '난 네가 성형 때문에 그러는 줄 알았어, 받아들이기 힘들다'라고 했었거든, 헤어지자고 하기도 힘들더라구.그런데 재수 없게 독서실에서 마주친 거야? 날 찾아와서는 내가 마음 상했을까봐 위로하고 앉았어요! 나 참 웃겨서 원!"

그것은 어떤 화면보다도, 사진보다도, 그리고 전화보다도 더 알 수 없는 사람의 진심이었다.

"돈 딸리니까 독서실에서 일하나부지? 걔도 진짜 짜증나, 근데 언니! 나 이번에 코 다시 할까봐. 융비술 전에 했던 거 부작용인지 욱신거려! 이 참에 우리 반 지영이처럼 코끝에 확 진주나 박을까?"

그녀들의 대화를 밖에서 듣고 있던 나는 내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던 작은 껍질들이 벗어지는 듯한 아픔과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

문을 열고 그녀들의 안 속으로 들어 갈 수 없었다.

난 어느새 현수를 찾고 있었다.
나에게 너무나 가까이 있는 듯, 멀게만 느껴지던 현수.
나는 순간 현수가 내 몸 안에 들어왔다는 착각을 느끼고 있었다.
 
한동안 로비를 서성거리다 창문 저편에 서 있던 그를 만날 수 있었다.
난 그에게 차마, 그녀들을 만나지 말라고 이야기 할 수 없었다.
"오빠! 저 안에, 진선 언니 있어. 들어가 봐! 들어가서 그거 전해줘야지."
그가 바닥에 놓고 있던 장미꽃과 오렌지 쥬스 상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런 그는 힘들게 그 물건들을 손으로 껴안으며 병동 쪽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었다.

"오빠, 참! 진우는?"

" 진우? 방금 전에 엘레베이터로 내려갔어!"

"오빠, 나 진우에게 할 말 있는데, 잠시 핸드폰 좀 빌려줄 수 있어?"

"여기."

카메라를 받아 든 나는 병원 전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 돌아서서 병실 쪽으로 걸어가던 현수의 모습을 담았다.

내가 그의 뒷모습을 본 적 있을까.

까마득하게 오래 전부터, 나를 알고만 있다고 했던 그.
그의 어두운 그림자가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겨 있었다.

그리고 아직 지워지지 않은 몇 방의 사진들, 그리고 동영상.

난 복도 끝으로 전속력으로 달려가
[▼] 버튼을 눌렀다.
 엘레베이터가 내려오기 무섭게
1층으로 향하고 있었다.

병원 정문에서 그를 이리저리 찾아 헤매고 있었다.
반드시, 그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는 나와 가장 비슷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멀리 주차장에서 오토바이를 뒤로 한 채 헬멧을 착용하고 있었다.

"진우야!"

"진우야!"

"진우야!"

여러 번 그를 불렀는데 그는 나의 말을 듣지 못한 채 오토바이에 올라타고 있었다.
난 있는 힘을 다해 그를 따라 갔다. 가볍고 또 가벼워지는 듯한 착각을 하면서 멀리 빠져나가려던 그를 가까스로 그를 잡을 수 있었다.

헉헉-

난 그에게 현수의 핸드폰을 넘겨주고 있었다.

"이건 뭐야?"

"진우야, 이 안에 네가 정말 알아야 할 것이 있어."

나를 잠깐 쳐다보다가 그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이 핸드폰은 나중에 총무에게 전해주면 돼"

그런 나에게 진우는 말하고 있었다.

"으나야, 나 오늘 독서실 마지막날이야."

"알고 있어.."

그렇게 그는 병원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 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벤취에 앉아, 그렇게 다시 나만의 세상에 빠져들었다.
저 멀리 전광판에서 8시 뉴스를 하고 있었다.

버릴 것 과  남겨둘 것
썩은 계절이 주리를 튼다
음산한 오물 엉킨 봉지들
징그러운 유통기간과
남아 있는 찌꺼기들이
길길 웃고 있었다.
 
8시 뉴스가 시작할 때 그들을 짓밟는다
살해를 하고 시신을 8일 동안 방치한 아이
독거 노인을 살해하고 금품을 훔친 사람
죄를 짓고도 모르는 자를

누른다, 정강이가 부을 때까지
부순다, 말하지 못하도록 
노란 테이프 붙여 놓는다

꽁꽁 묶인 실체들 양손에 들고 
이무기에 떨어지는 자신까지 버리러 간다
더미에 우글거리는 형태의 아우성과
무언가 말하려는 혀들을 든 나
말하지 못한 것과 말 할 수 없는
실체 터진 놈들이 뚫고 나오려는지
봉지가 찢어진다

그 안에
장미 반 잎
편지 조각
피 묻은 옷가지가 드러난다.
 
그를 보는 내 눈을 테이프로 감싸자
씻어도 지지 않는 그림자가
가로등 밑에 버려진
나를 보고 웃고 있다.

도망쳐 오는 길
또 다시 시작되는 12시 뉴스


현수에게 전화가 왔다.

"너 카메라 가지고 어디로 사라졌냐?"

"여기 병원 정문 앞이야."

갑자기 전화를 끊고 하늘을 바라보는데 우두둑-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몰려오던 먹구름이었을까. 오랜 가뭄 끝에 장마 같다. 나의 가슴에도 비오는 순간, 그렇게 시린 태양 꽃 하나 피는 듯 했다. 그렇게 어디서 노래가 들릴 것만 같았다.

비를 맞고 있던 나의 곁에 현수가 다가왔다.

"오빠, 나 핸드폰, 진우에게 건네줬어! 그래도 괜찮지?"

그런 나를 그는 한동안 말없이 쳐다만 보았다.

"으나야!"

"왜 진작 나에게 영진이와 진하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어! 나랑 진우 바보 만들려고 그랬어? 오빠 나빴어! 왜 다 보고 있었으면서 말 안 했어!"

"으나야.."

"그리고 나 오빠에게 돌려줄 것이 하나 있어."

그리고 그에게, 예전에 받았던 탄생석을 내밀었다.

"오빠 나, 오늘 다시 태어났으니까, 이거 다시 오빠에게 돌려줄게."

추천수1
반대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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