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추석이라고 하면 내겐 그저 회사 출근 안 하는 연휴의 개념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게 되어버린 명절이 되어 버렸다.
새로울 것도, 다른 기대도 없는, 그래서 단조로움의 한 연장선상에 놓여져 있을 뿐이다. 다만 손님맞이를 해야하는 집안 특성상 이런 저런 불편을 감수해야하는, 아니 오히려 꺼리는 날이 되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집은 집안의 큰집인 관계로 항상 추석이 되면 차례를 지내기 위해, 집안 대소사를 의논하고 인사차 많은 친척들이 모여든다.
작은아버지들로부터 당숙들까지, 그 아래 자녀들(나랑 사촌이 되는)과 또 밑으로 조카들까지, 어림잡아 40명이 넘는 많은 이들이 명절이면 다녀간다. 그러니 상상해 보라. 그 많은 사람을 위해 준비해야 하는 음식과 그 뒷 감당을... 해서 어머닌 추석을 징글맞다고 표현하시곤 한다.
한바탕 손님을 치르고 나면 그야말로 어머니도 형수도 그리고 아내도 말 그대로 파김치가 되기 일쑤고 며칠을 후유증으로 고생하곤 한다.
남자들이야 신이 나겠지.
그동안 뜸했던, 1년에 한 두번 보게 된 친척들을 보니 무척 반가운 마음이야 헤아릴 수 없겠고, 으레 추석이면 벌어지는 술상과 고스톱(포커)의 즐거움을 또한 가질 수 있으니까 말이지.
추석을 앞두고 며칠 전부터 준비는 시작된다. 송편을 만들고(어머니는 꼭 직접 해야 속이 편하신가 보다. 하긴 몇 십 년을 손수 하셨으니 시중에서 사다 먹는 송편을 꺼릴 수밖에..) 당일 날 올릴 차례상 음식과 손님 맞이용 음식을 위해 지지고 볶고 삶고...
그 많은 일을 어머니는 맏며느리라는 직함으로 몇 십년을 훌륭히 감당해 내셨다. 어릴때야 우리 형제도 호기심 반 재미 반으로 이것저것 도와주기도 했고 심부름도 했지만, 머리 컸다고 스스로 생각하면서부터는 명절이면 놀러다니기 바빴었다.
이제는 나이를 드셔서 그런지 모든 일손을 놓아버린 어머니를 대신해 혼자서(아내야 막내한테 시집와서 그나마 덜하겠지) 이것저것 분주히 장만하고 준비하는 형수.
형의 감언이설(?)에 속아 우리 집안 사람이 된 형수는 어머니의 뒤를 이어, 여타 다른 집처럼 맏며느리란 타이틀로 인해 이만 저만 고생이 아니다.
명절부터 각종 제사까지.. 그야말로 좀 있으면 어머니의 말을 따라 할 것 같다. "징글맞다"고...
그러고보면 형은 아내 하나는 참 잘 맞이한거 같다.
그런면에서 집사람은 좀 영악한 편이다. 명절때만 되면 어디가 그리 아픈지 --", 며칠 전부터 가서 좀 도와주면 안되나?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꼭 전날에서야 마지못해 가곤 한다.
가을이 제 계절에 맞게 무르익어 갈 무렵 찾아오는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 가을 안에 있음으로 해서 추석이 의미 있는지, 아니면 추석이 있어 가을이 다른 계절에 비해 사랑을 받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어릴 적 시골에서 보낸 추석은 너무도 그리운 회상으로 자리잡는다.
야트막한 산이 듬성듬성 보이고 그 아래로 널따란 평야가 자리잡고 있는 내 부모님의 고향.
그 안에 초가집들이 오밀조밀 들어앉은 마을과 아담한 담과 얼기설기 엮인 싸리나무로 세운 울타리가 둘러쳐진 정겨운 시골집.
집안에는 드넓은 마당이 들어차 있고 그 한쪽으로 선 장독대에서는 간장과 된장이 익어가고, 또 다른 한쪽에선 고추와 들깨가 말려지고, 울타리 옆으로 피어난 가을 꽃들과 주렁주렁 열매를 매달고 있는 대추나무가 가을 그 풍성함을 말해준다.
삽살개는 오후 햇살을 이기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음에 겨워하고, 노란 병아리들은 삐약거리며 뭐 먹을게 있는지 연신 땅을 쪼아대고 있는, 밤이면 귀뚜라미가 구성지게 울어대고 하늘엔 헤아릴 수 없는 별들이 뭇 자랑을 헤대며 쏟아지고, 지붕 위엔 함초롬한 조롱박이 얹혀져 그 위로 둥근 보름달은 살포시 고개 내미는 내 유년시절이 묻어나 있는 집.
동구 밖 어귀엔 아름드리 밤나무와 사과나무며 배나무가 보란듯이 들어차 있고 그 너머 신작로엔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지.
흙먼지 일으키며 생소한 택시가 한 아름 선물을 들은, 객지생활에 찌든 옆집 큰아들을 내려놓고 가면 동네 개구쟁이들은 신이나 뒤쫓아갔고, 코흘리개 뒷집 꼬마는 자기를 두고 달려나가는 누나가 미워 울음을 터트리며 뒤쫓다 넘어져 무릎팍이 까져 더 크게 울고 말았던 추억 어린 시골 풍경.
밤나무에 산다는 구렁이 이야기를 할머니로부터 들은 앞 집 돌이는 기웃 기웃 머뭇머뭇 거리며 천천히 다가가 잽싸게 발로 냅다 후려치고는 후다닥 뒤로 물러나 밤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다 행여나 다 떨어졌나 싶어 밤을 줏으러 들어가면 뒤늦게 떨어진 밤에 정수리를 얻어맞고 말았지.
그 모습에 저마다 낄낄거리며 한 아름 밤을 주워담아 모았었던 가을 속의 동화.
추석 하루 전, 할아버지가 색바랜 감색 테 두른 모자에 할머니께서 곱게 다림질 한 한복을 점잖게 걸치시고 장에 가신 날, 형만 데리고 간다고 닭똥같은 눈물 뚝뚝 흘리며 서럽게 울던 날 할머니는 '우리 강아지 울지 말라'며 토닥거리시며 먹을 것을 주셨지.
장에서 돌아오신 할아버지를 발견하자마자 쪼르륵 그 앞에 달려가 작은 손을 내밀면, 할아버지는 두툼한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며 호주머니에서 눈깔사탕 한 움큼을 꺼내 손에 떨구어 주셨지.
이야! 하며 손에 들어온 눈깔사탕을 누가 볼 새라 허겁지겁 주머니에 쑤셔 넣고 동네 아이들이 진을 치고 있는 마을 앞 회관으로 달려가 한 쪽 볼에 혹을 하고선 눈깔사탕을 내보이며 자랑 아닌 자랑을 해 댔었지.
집집마다 음식냄새 풍기며 굴뚝엔 연기가 모락모락 솟아나는, 해질녘에 집으로 돌아오면 낼 차례상에 놓일 부침이랑 전을 지지고 송편을 만드시는 할머니와 어머니 옆에 바싹 붙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었지.
나도 만들겠다며 나서는 내게 웃음지으며 할머니가 주먹만한 반죽을 떼어 주시며 '옛다! 그래 너도 함 만들어 봐라'하셨지.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그 두 분이 만들어 내던 송편을 만들 수는 없었지. 그 아담하고 빛깔 고운 송편을 말이지. 그 새하얀 송편에 반해 내 손에 얹어져 만들어진 것은 땟국물로 지저분해진, 모양도 이상한 송편 아닌 송편이었다.
추석날 차례와 손님을 다 치르시고 고단한 몸에 쉬고 계시는 어머니를 졸라 올라간 뒷동산에서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어린 나를 무한한 동심의 세계로 이끌었던 눈이 부셨던 보름달을 바라보았었다.
달에 살고 있다는 토끼 두 마리와 계수나무의 이야기를 해주시던 내 어머님의 얘기를 듣고 눈 크게 뜨고 쳐다보아도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아 애태웠던 그 순간들.
달님을 한 없이 바라보다 눈을 감으신 어머니께 왜 그러냐고 묻자, 내 어머니는 달님에게 소원을 비셨다고 했다. 우리 막내 씩씩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아마도 달님은 그걸 들어 주실 거라며 그 고운 미소를 내게 보이며 날 부드럽게 감싸 안아주셨지. 그 날 밤 난 다시 한번 내 어머님의 그 포근함과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었지.
내 조부모님의 고향이며 부모님의 젊은 시절이 녹아 있는 그 고향의 추석 전날 밤은 그렇게 깊어만 갔고, 그 이후 다시는 가질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서울에 올라온 이후로, 내가 중학교 들어가기 얼마전 조부모님들이 서울로 올라오신 이후로, 서울에서 보낸 추석은 그다지 기억날 만한 것이 없다. 다만 기억 한 켠을 채우는 것은 사촌 형제들과 추석 며칠 전부터 함께 한 시간들일 뿐.
하지만 그것도 세월에 묻혀 서로 대학에 입학하면서, 군 입대와 직장생활, 그리고 결혼으로 가정이라는 울타리에 안주하면서 사라져 버려 그나마 그래도 좋은 추억이 되었던 추석은 더 이상 없게 되었다.
이제 내게 남고 찾아 올 추석의 의미와 시간은 어른으로서 맞이해야 할, 그다지 반겨하지 않는 추석이 될 것 같다.
추석 전날 어머님이 사주셨던 새옷으로 인한 설레임도..
푸짐한 음식에의 흐뭇함도..
달맞이하러 뒷동산으로 올라갈 때의 흥분도 더 이상 없으니 말이다.
걱정인건 내 아이들이다.
그애들에게 추석의 진정한 의미와 간직할 추억을 만들어주어야 하는데 말이다.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만 해대는 우리의 아이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