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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해서.. 정말 너무 답답합니다.

힘들어요 |2008.03.17 13:57
조회 207 |추천 0

안녕하세요,

톡을 거의 매일같이 빼먹지않고 즐겨보는 27살의 여성입니다.

 

요즘 글 읽다보면 소설이다 아니다 말들이 많으시던데.. 정말, 이건 소설 아니구요, 길지도 모르니, 긴 글 싫어하시는 분들은 살짝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지지난주 회사를 그만두고 백조가 된지 어언.. 열흘정도 됐습니다. 친구도 만나고, 놀러도 다니면서 나름대로는 바쁜 시간을 보냈더랬죠. 오늘 아침.. 엄마랑 좀 다툼이 있었어서, 저도 나름대로 힘들었는데.. 엄마 힘든것만 이해하기를 강요하시는것 같아서 서운함에 눈물도 살짝 흘려버렸네요. 저처럼 힘들게, 아니 저보다 더 힘들게 살아오신 분들도 많겠지만.. 전 지금껏 살면서 제 주위에서 저보다 더 힘들게 사는 사람들은 못봤어서요.. 그냥 끄적여보고 싶었습니다 ;;

 

제가 살면서 가장 큰 사고[?]를 저질렀던건 18살 가을이었습니다. 아빠의 바람끼로 인해 집안에 불화가 생기게 되었고.. 성적과 집.. 가슴의 응어리 덕분에 과감하게 자퇴를 결심했었어요. 제가 했던 선택이니만큼 후회는 없구요. 다음해에 검정고시를 보고 한번에 붙었거든요.

 

검정고시를 보려고 준비하던 그 기간에.. 바람끼는 계속 되었고, 술을 병째로 들이 붓고는 집을 태워버린다면서 불붙이는 바람에 이불 몇개 태워먹었고, 주방에 있는 냄비며 후라이팬들은 무기로 둔갑했으며, 심지어는 칼을 들고 설치기까지 하더라구요. 그래서 전 그때부터 '아빠'라는 존재가 무의미해졌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제가 전문학교엘 입학하고, 해가 바뀌어 제 동생이 수능을 볼때쯤 아, 제 생일날이었네요. 뜬금없이 날도 안밝은 새벽에 가게에 가서 할얘기가 있다며 엄마랑 아빠가 함께 나가시는 모습에 '직감' 이라는걸 실감했습니다. 동생이 남자애다보니.. 따라가보라고 시켰고,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한테 전화가 왔고, 동생이 바로 집으로 뛰어들어왔고, 엄마가 나한테 맡겼던 것들을 동생손에 쥐어줬고, 동생이 나가고, 아빠가 바로 뛰어들어오고... 오분도 안되는 사이에 일어난 일들이었어요. 그렇게 엄마는 외삼촌집으로 피신을 하셨고, 그 뒤엔 합의이혼이라는게 이루어졌죠. 그렇게 이혼을 하고나서도 술주정은 계속 되었고, 한번도.. 단 한번도 따뜻한 손길을 보낸적 없던분이, 술먹는 날이면 자고있는 제 방에 들어와서 자는 절 어루만지고 안고 있다가 나가는걸 느끼곤 했었죠. 유독 저만.. 제 동생한테는 안그랬었거든요. 솔직히.. 무섭더라구요. 술먹고 무슨짓을 할지 모른다는거.. 정말 무서웠어요. 방문을 잠그고 자기도 했고, 문열라고 소리치다가 그냥 가면 다음날은 또 아무렇지도 않고.. 소름끼칠 정도였으니까요. 그렇게 하루하루 보내던중 컴퓨터를 하고있는 제게 와서 별것 아닌 일로 화를 내며 선풍기를 집어 던지려고 하더라구요. 다행히 남동생이 막아줬고, 이렇게 살면 정말 맞겠구나 싶어서 이모네 집으로 와서는 그 살던집 처분하고 나눈 돈으로 전 엄마와 둘이 살기 시작했어요. 물론, 아빠와는 연락을 끊은채로 핸드폰 번호도 바꾸고 말이죠. 동생한테는 미안하더라구요. 남자니까 자기는 괜찮다고 하는 동생 놔두고 나올땐 정말.. 눈물이 났었거든요.

 

그렇게 엄마랑 살기 시작한지 한달쯤 뒤에, 제가 맹장으로 병원에 실려갔었어요. 여기저기 꽤 많이 분포되어있는 한X대학병원에 실려갔었죠. 나름 큰 병원으로 알고 있는데요.. 제가 실려간게 토요일이었어요. 잊혀지지도 않는.. 11시쯤 실려갔는데 이런 저런 검사 받으면서 아프기도하고, 짜증도 나고.. 아파서 지친다는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검사 다 마치고 나서 병원에선 '급성맹장'이라고 하더군요. 식당에 일하러 가셨던 엄마도 병원으로 오시고, 출근하셨던 막내이모부도 병원으로 오셨었는데, 급성맹장이라고 하면서 의사들이 다 퇴근했으니 월요일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던 병원관계자의 말에 복도 한복판에서 큰소리 내면서 싸우시던 막내 이모부의 모습이 생각나네요. 전 그 뒤로 그 병원 안갑니다. ㅋㅋ 아무튼, 그러다 다른 병원으로 옮겨갔고, 그 병원에 도착한지 한시간정도 후에 수술을 받았던걸로 기억해요. 맹장을 떼어내고도 검은피가 계속 나는 바람에.. 난소에 이상이 있다는걸 발견하고는, 퇴근했던 산부인과 의사선생님이 다시 오셔서 수술에 참여하셨었다고 하더라구요. 조금 더 늦게 발견했으면.. 장이 썩어서 위험할뻔 했다고도 하더군요. 수술이 끝나고.. 한달쯤 뒤에 실밥을 풀러 가기 바로 전날 엄마한테 얘기를 들었습니다. 임신 못한다고 병원에서 그랬다고.. 태어날때부터 난소가 기형이었는데, 장이 운동을 하면서 그게 꼬여서 썪었다나봐요. 그래서 썪은쪽은 잘라내고, 다른 한쪽도 기형이기에 일부만 남겨놓고 잘라냈다고 하더라구요. 그 순간엔 정말, 나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을까..? 하는생각이 절로 났었어요. 그래도, 애 못낳는게 무슨 죄랴 싶어서 아무렇지도 않게 살고 있죠. 주위에서 임신했다고 아이 지운다고 하는 친구도 여럿봤고, 한사람이 여러번 그러기도 하고, 친구라고.. 말할데 없어서 말은 하면서도 미안해 하는 친구들에게 모진소리도 참 많이 했더랬죠. '늬들은 몇번씩이나 지우는 그 아이가, 어떤 사람한테는 평생의 기적같은거다'라고 말이죠.

 

두번의 큰 사건을 겪고난 후, 사람을 만나는것도 무서웠고, 결혼이라는걸 꿈꾸지도 않았었어요. 누군가를 만나도 늘.. 3개월을 넘기기 힘들었으니 말이죠. 사춘기시절 좋지 않았던 기억들이 알게 모르게 제게 작용한듯 싶기도 했었어요. 괜찮은 사람인거 같은데, 날 정말 많이 생각해주는거 같은데도 늘.. 단점만을 찾으려 애쓰고, 밀어내고.. 누군가한테 마음을 연다는게 참 힘들더라구요.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정말 몰라요. 힘들었던 시간에 절대 휘둘리지 않겠다고, 삐뚤어진 생각 하지않고 나름대로는 열심히 달려왔다고 생각했어요. 주위에서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정도로 밝은 모습으로 지내려고 노력도 했구요. 그래서 다들.. 별로 힘들어 보이지 않아서 그랬나봐요. 내색하면 돌아봐주지도 않으면서 내색하지 않는다고 그걸로 됐다고 생각하는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어요. 진짜 나를 알아줬으면 했는데... 알고보면 힘들었던 그 하루하루가 상처로 남아서 작은 정에도 쉽게 혹하는 바보같은 사람이 되어버렸는데, 다들 저보고 차갑다고, 냉정하다고, 심지어는 독하다는 소리도 들어봤네요.

 

늘.. 사람들에게 주는 입장이었어요. 이해하고, 또 이해하고, 또 또 이해하고... 그렇게 지내다 보니 정작 제게는 주는 사람이 없네요. 끊임없이 나만 이해하고, 나만 참아야 하는 삶의 연속인것 같다고 해야할까요? 내가 하는 말 한마디, 하는 행동 하나를 '얘가 왜 이렇게 하는걸까?' 라고, 한번만 생각해주길 바라는게 잘못된걸까요? 너무 큰 걸 바라는걸까요? 삶이 힘들다고, 외롭다는 생각이 절실한 요즘이네요.

 

써놓고보니.. 짧게 쓴다고 썼는데도 기네요. 이건 뭐... 두서도 업고.. -_-;;

그냥, 하소연 했다 생각해주세요. 글이 길다고 너무 뭐라고는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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