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문턱 없는 집을 찾아라

깡베 |2008.03.20 03:39
조회 305 |추천 0

브리핑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고객의 사무실을 나선 정욱은 긴장이 풀린 탓인지 시장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약속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아침까지 굶고 집을 나왔기 때문에 뭐라도 먹어야겠다 싶어 음식점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휠체어가 들어갈 만한, 그러니까 문턱이 없는 음식점은 찾을 수가 없었다.
정욱이 10번째로 찾은 곳은 문턱이 10cm인 작은 까페였다. 정욱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어떻게든 여기서 해결하고 싶었다. 유리로 된 창을 들여다보니 카운터에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앉아있었다. 정욱은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치자 애절한 표정으로 손짓을 했고 이윽고 아주머니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정욱, 미안한 듯 “저... 죄송한데 부축 좀 해주시겠어요?”
아주머니, 친절하게 미소를 지으며 “잠깐 기다려 봐요, 총각.”
문을 열고 안을 향해 남편을 부른다. “여보! 잠시만 나와 봐요.”
잠시 후, 아저씨 나오며 “왜 그래?”
아주머니, 아저씨를 보고 “여보, 이 총각 좀 부축해서 안에 의자에다 앉혀줘요.”
아저씨, “응, 휠체어가 못 들어와서 그러는구나!” 정욱을 데리고 들어와 창문 옆자리에 앉혀준다.
정욱, 친절한 부부가 참 고맙다. “감사합니다. 저, 돈까스 하나만 주세요.”
아저씨는 주방으로 들어가고 아주머니, 정욱앞에 앉아 말을 건넨다. “이렇게 혼자 다니면 불편하지 않아요?”
정욱, “아! 예, 좀 불편하긴 해도 많이 익숙해 졌고 같이 다닐 사람도 없는걸요.”
잠시 후 아저씨가 직접 돈가스를 가지고 와 아주머니 옆에 앉으며 농담을 한다. “이 아줌씨는 그저 총각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니까... 아, 앉아서 수다만 떨지 말고 좀 썰어주구랴.”
아주머니, 돈까스를 썰며 “이 양반은 수다를 나보다 더 떤다우.”
아저씨, 정욱에게 “근데, 총각 타는 저 휠체어가 지 혼자 가는 거 맞지?”
정욱, 살짝 웃으며 “아, 예.”
아저씨, “한번 만땅으루 충전하면 얼마나 가나?”
정욱, “글쎄요, 가기 나름이죠 뭐. 한번도 시간이나 거리를 쟤 본 적이 없어서...”
아주머니, “근데, 총각 이름이 뭐야?”
정욱, “정욱이요, 한정욱. 그냥 욱이라고 부르셔도 되구요.”
아저씨, “무슨 일로 나온 건데? 돈가스 먹으러 일부러 나왔을 리는 없고, 혼자 밥먹는 걸로 보니까 데이트도 아니고...”
정욱, 미소 지으며 “예, 일 때문에 누구 좀 만나고 가는 길이었어요. 근데 우리 동네는 휠체어가 갈 수 있는 곳이 성당이랑 관공서밖에 없는데 이 동네도 그러네요...”
아저씨, 한숨을 쉬며 “그러게 말이야. 우리 집부터도 그러니... 총각, 미안허이...”
정욱, 손을 가로 저으며 “아니죠. 아저씨가 저한테 미안하실 건 없죠.”
밥을 다 먹고난 후 정욱, 지갑을 꺼내며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얼마죠?”
아주머니, “응, 6천원.”
정욱, 6천원을 아주머니에게 건네며 “아우, 싸네요. 써비스가 너무 좋아서 한 만 이천 원쯤 될 줄 알았는데...”
아주머니, 웃으며 “욱이 총각은 농담도 잘하네...”
그로부터 한 달 후. 정욱은 고객에게 제품(홈피) 사용법을 설명하고 사무실을 나섰다. 오늘은 배는 그리 고프지 않았지만 한 달 전 그 카페에 다시 가고 싶었다. 돈가스의 맛보다도 그분들의 친절이 그리웠던 것이다. 그 카페 앞에 다다른 정욱은 약간의 놀라움과 흐뭇함이 느껴졌다. 그 카페 문턱 앞에 베니아로 만든 경사판이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정욱, 아무 불편 없이 카페 안으로 들어가 카운터에 앉아있는 아주머니에게 꾸벅 인사를 한다. “아주머니, 저 왔어요.”
아주머니,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어! 욱이 총각 왔네!”
정욱, 놀라며 “어! 제 이름 기억하시네요?”
아주머니, “아 그럼, 욱이 총각을 어떻게 잊나? 그래 오늘도 돈가스?”
정욱, “네.”
아주머니, 주방을 향해서 “여보! 욱이 총각 돈까스 하나.”
정욱, 먼저 앉았던 자리를 보니 ‘휠체어 지정석’이라는 문구와 함께 4인용 테이블인데 의자는 2개뿐이다. 정욱이 의아해 하고 있는데...
주방에서 아저씨 나오며 인사한다. “욱이 총각, 들어올 때 어땠어?”
정욱, “편했어요, 아저씨가 직접 만드신 건가봐요?”
아저씨, 고개를 끄덕이며 “별로 어렵지 않더라고, 합판 한 장이랑 각목 몇 개로 되던데...”
정욱, 엄지손가락을 펴 보이며 “재주가 좋으세요. 어떻게 그런 신통한 생각을 하셨어요?”
아저씨, 빙그레 웃으며 “그거 좀 귀찮다고 단골손님을 놓치면 안되지...”
정욱, “제가 언제 다시 올 줄 알구요?”
아저씨, “휠체어 타는 사람이 어디 욱이 총각뿐이겠어?”
정욱,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럼, 이 테이블에 의자 2개도 의미가 있겠군요?”
아저씨, “응, 휠체어가 동시에 4대가 들어올 일은 없을 것 같아서...”
정욱, 테이블 위에 붙어있는 문구를 가리키며 “전 이 문구도 참 맘에 드네요. 장애인 지정석이 아니라 휠체어 지정석.”
아저씨, “응, 의자가 필요 없는 건 휠체어지 장애인이 아니거든.”
정욱, 아저씨의 손을 잡으며 “아저씨 같은 분이 있어서 저 같은 사람들이 힘이 나요. 어떤 곳에 가면 장애인이라고 음식 값을 깎아주거나 아예 안 받는 곳이 있는데 물론 그 마음이야 감사하죠. 하지만 그런 집은 오히려 잘 안 가게 되더라고요. 음식을 공짜로 주는 것 보다 문턱을 없애주는 것이 저희는 더 고맙거든요.”
정욱은 돈가스를 맛있게 먹고 카페를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기분이 흐뭇하다.

------------------------------------------------------
위는 나의 희망사항을 소설 형식으로 적어 본 것이다.

음식을 먹으러 갈 때 휠체어를 타지 않은 사람들은 ‘맛있는 집’을 찾아가지만 휠체어를 탄 사람들은 ‘문턱이 없는 집’을 찾아 헤맨다. 휠체어를 타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음식점에 문턱이 있으나 없으나 문제될게 없으니 음식점을 고르는 최우선 기준이 당연히 ‘음식의 맛’이다. 그러나 나처럼 휠체어를 타는 사람들에게 ‘음식의 맛’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맛이 있건 없건 문턱이 있으면 그 집 음식은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기 때문이다. 조금은(?) 서글픈 이야기다. 위에 “문턱이 없는 집을 찾아 헤맨다.”라는 표현이 좀 과장된 것 같기도 하지만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내가 왜 ‘헤맨다.’라는 표현을 썼는지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우리 아파트와 건너편 아파트에는 장애인들이 많이 산다. 그리고 도시라면 어디나 다 그럴 테지만 아파트 단지만 나서면 크고 작은 상가들이 줄지어 있다. 상가들 중 단연 많은 것이 음식점들이다. 한 집 걸러 하나 꼴로, 혹은 닭집 바로 옆에 고깃집과 횟집이 있을 정도로 음식점들이 많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음식점들 가운데 문턱 없는 집을 찾기란 정말이지 ‘하늘에 별 따기’다. 물론 음식점이 아닌 다른 가게들도 상황은 마찬가지.
그래서 난 사람들과 만나 밥 한 끼 먹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성당 청년회에서 회식을 할 때는 건장한 남자들이 많으니 나(전동휠체어)를 들어 올릴 수가 있지만 그럴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가 없다. 문제는 적은 인원과 만날 때다. 집에서 음식을 시켜먹거나 조금 먼 대형 할인점의 푸드코트를 이용하거나 (문턱 있는)가게 앞에서(보도블록) 테이블을 놓고 먹는 수밖에 없는데 그것도 겨울에는 어려운 일이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차를 타고 가야 할 거리를 나 때문에 걸어가야 하고, 가게 안에서 먹어야 할 것을 나 때문에 길에서 먹어야 한다는 것 등이 나를 더 움츠리게 만든다.
몇 달 전 길가에 어떤 집이 인테리어를 새로 하고 고깃집을 개업한 듯싶어서 혹시나 하고 그 앞을 기웃거렸다. 역시나 휠체어는 들어갈 수 없었다. 주인인 듯한 사람이 말했다. 다음에 오실 때까지 경사를 만들어 놓겠노라고…. 그러나 아직까지도 그 집 앞엔 경사가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철판으로 문턱 하나에 놓을 경사 만드는데 10만 원 정도면 족하고 철판이 비싸다면 나무로 만들어 놓아도 되는데, 그것 조금만 신경을 쓴다면 장애인들을 단골로 삼을 수가 있을 텐데 가게 주인들은 왜 그 생각을 못 하는 걸까? “장애인들은 가난하므로 외식을 자주 할 리가 없다.” 이런 생각 때문일까? 언제 올지도 모르는 장애인들을 바라고 경사를 만들어놓고 테이블 하나를 비워놓고 테이블 위 수저통에 포크를 미리 넣어두는 가게주인은 미련한 것인가? 그래도 그렇게 해놓으라고 하면 억지일까? 그렇게 미련한(?) 가게는 진정 찾을 수 없단 말인가?
요즘은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져서 장애인의 방문을 싫어하는 가게는 없다. 심지어 어떤 집에선 장애인이라고 음식의 값을 깎아주거나 받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 그런 가게에는 두 번 다시 가게 되지 않는다. - 그런 것도 “장애인에 대한 배려”라고 할 수 있지만 음식 값을 깎아주는 것 보다는 문턱을 없애주는 것이 우리 장애인들에게는 더 고맙고 절실한 문제다.

그대에게 항상 평화가 함께 하기를...
깡베(http://blog.empas.com/bspk1215) 드림.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