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가끔 톡에 들어와 눈팅만 하고가는 26살 남자입니다.
연애에 관해 너무 답답한 마음에 이렇게 글을 적어요...
글이 깁니다. 꼭....덕담 한마디 해주실 분들만 읽어주세요.
제 나이 17살(고1 말쯤)에 처음 여자를 사귀었습니다.
2살 연상이었고 회사원이었습니다.
길을 가던 저에게 A라는 그녀는 느닷없이 연락처를 물어봤었고 그렇게 약 6개월간 연락을
주고받다가 사귀게 되었죠.
2년 6개월정도를 만났습니다.
사춘기시절 남들 다 그렇듯 이유없이 세상을 미워하며 방황하던 제가 마음을 잡도록 도와주고
힘이되어주던 A는 제가 대학을 입학하면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A는 대학을 진학하지않아서 제가 대학을 가는것을 반대 했었습니다.
이유인즉...대학을 가면 예쁘고 똑똑한 애들을 만나면 자신이 눈에 차겠냐는 이유였죠.
전 그런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죠....
그렇게 서로 힘들다가 A는 저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하더군요.
과장없이 한 50번은 잡았을껍니다.
A 스스로가 만든 비관적인 생각으로 저는 차였습니다.
가슴에 남은 상처를 1년가량 꾹꾹 참아냈습니다.
저는 대학교 2학년이 되었고 군대를 가려고 군 휴학을 했습니다.
입영날짜를 받아놓고 휴학한건 아니었고 좀 쉬었다가 군대를 가고싶어서 미리 휴학했습니다.
쉬면서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도중 저를 좋아한다며 고백하던 당시 대학 새내기 B를
만났습니다.
당시 저도 철이 없었지만 B는 더 철이 없어서...늘 제 가슴은 속상함과 안타까움의
연속이었던것 같습니다.
그래도 많이 사랑해줬습니다. 연인이면 다툴때도 있죠. 저와 잠시 다투었을때 B는 홧김에
소개팅을 했습니다. B가 소개팅을 한 X라는 남자는 유머감각도 많았고 매력이 많았나봅니다.
B는 그렇게 저를 버리고 X에게 갔습니다.
99만큼 사랑해주었고 잠시 1만큼 다투었는데...그 댓가로 사랑할 자격을 박탈당해버린
상실감에 참 많이 괴로웠습니다. 그렇게 또 차였습니다.
B와 헤어지고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힘들어하던차에 C라는 연하를 만났습니다.
그당시 C는 고3이었고 제가 B와의 관계를 힘들어 하고있을때 그냥 멀리서 저를 좋아하던
C였습니다. B와 헤어지니 C가 고백하더군요. 전 다른 누군가를 마음에 둘 여유는 없었고
아픈 마음을 꾹꾹 참아내기에 바빴습니다.
대략 4개월정도를 C는 보채지않고 절 지켜보아만 주더군요. 저도 감성이 풍부한 사람인지라
그뒤에 마음이 움직여 C와 사귀게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늘도 무심하신지....사귄지 5개월쯤 되었을때 영장이 나왔습니다.
영장이 나온지 정확히 6일뒤에 입대날짜더군요.
군대가던 2003년 1월.
많은것을 가슴에 담고 실한 남자가 되어 돌아오겠노라 다짐하며 군 입대를 했습니다.
저와 C는 그리움에 힘들어 하면서도 잘 견디어내고 있었습니다.
제가 상병2호봉때(군생활 14개월), 다녀오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전화 사서함 서비스중에
개인 사서함 번호에 예전 삐삐처럼 음성을 남길수 있는 서비스가 있었습니다.
그곳 제 개인 사서함에 "오빠 미안해. 나 힘들다...나 그냥 다른사람 만날래."
아직도 제 머릿속에 그대로 저 문장이 남아있습니다. 토시 하나 안틀립니다.
믿기지 않아 아마 몇날 몇일 사서함 확인을 하며 수도없이 저 음성을 들었던거 같습니다.
휴가나왔을때 집을 찾아갔고 C는 이사를 갔으며 전 제 가슴에 담아둔 단 한마디를
못해보고 차였습니다.
군 제대를 하고 사회적응 할겸 바로 복학을 안하고 한학기 연장 휴학을 하며 쉬었습니다.
사실 사회적응 이라기 보단...제 진로 결정을 못내려서였죠.
이것저것 공부에 시도를 해봐도 딱히 감이 오는게 없어서 고민하던 차에 D를 만났습니다.
아는 형님이 마련한 술자리에 제가 나갔고 D는 또 아는 형님의 친분있는 여동생이더군요.
그날 술자리가 끝나고 D와 저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어느날 D와 단둘이 술을 마시고 집에 데려다 주는 밤길. D는 조용한 목소리로
자기의 남자친구가 되어줄수 있겠냐 물었습니다.
D는 집이 잘살지 못했습니다. 저에겐 상관없었고 제 집안이 잘사는건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D가 불편해 할까봐서 데이트할때 필요할때를 대비해 현금 카드와
지갑을 열때 보는 눈을 대비해 현금은 3만원 이상 가지고 나가지 않았습니다.
데이트는 항상 검소하게 했었고 많이 배려하고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D는 술마시는것을 참 좋아했습니다. 다 이해해했었고 다만 집에 들어갈때 몇시에
들어갈것인지, 늦게되면 늦어진다고 중간에 연락만 해달라고 했습니다.
술마시고 연락이 끊기고 3-4일 만에 연락온적도 있었지만 참았습니다. 믿고싶었습니다.
내여자를 의심하는 나를 견딜수가 없어서 자꾸만 부정하고 부정했습니다.
어느날 또다시 술을 마시고 연락이 끊기고 밤새 걱정하던차에(딴엔 소심한 남자로 보일까봐
전화도 한두번 하고 부재중이면 마냥 기다렸습니다) 아침 나절이 되서야 전화를 했습니다.
D는 자다가 전화를 받았고 숙취에 아주 짜증이 많은듯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야..나 짜증많이 나거든...너도 짜증나잖아...관두자 걍"
잡지 않았습니다. 전화끊고 아무도 모르게 혼자 눈물을 참으며 상처를 가슴에 담았습니다.
전 사랑하는것을 좋아하고 사랑받는것도 좋아합니다.
미래에 누군지 모를 제 와이프를 만나면 못난 남편이 되어주지 않기 위해서 공부했습니다.
복학을하고 공부를 하고 교환학생을 지원하고 합격해서 유학을 갔습니다.
많은것을 가슴으로 느끼고 외로움도 가슴에 묻으며 공부했습니다.
공부하다가 E를 만났습니다.
아마 그당시엔....한국 여자들의 보편적인 사고방식이나 이런것에 제가 질려있었는지
한국 여자가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E는 한국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저를 아껴줄줄도 알았고, 제가 사랑해줌을 감사할줄도 알았고,
제 실수를 지적해주며 또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E도 유학생이었습니다. 그렇게 저와 E는 6개월을 사귀었고 6개월이 되던 달에 E는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웠고 외로웠지만 그리워할수있는 사람이 있다는것에 감사하며,
다시 만날날을 고대하며 기다렸습니다.
고국으로 돌아간 그녀는 바빠지더군요...많이....
이해했습니다....외로운 마음이 들때면 혼자 외로움에 힘들어하는 제 모습을 E가 보면
마음아파 할까봐 열심히 살았습니다.
어느날인가 제가 '우리가 이렇게 바쁘게 사는 이유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바쁜건데 사랑하는
사람 없이, 행복과 보람없이 바쁘게 사는건 무의미 하다' 라고 서운함을 표했습니다.
돌아온 답변은 '힘들면 그만 두라'는 한마디 였습니다.
그동안 제 마음에 상처가 되는 상황과 말을 많이 들어본 탓인지....
듣는순간 감이 왔습니다. 어감과 단어를 듣는순간 말하는 사람의 뜻을 알겠더군요.
뜻을 제가 잘못 해석했을 지언정 저 말을 듣고 난 후의 일들이 정말 속상하게도
예상이 되더군요.
연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다.
불안함 느낌이 확실시 되었음을 깨달았을때....또다시 상처를 받았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친구들을 만나고 기쁨도 나누며 시간을 보내면서....
문득 저의 지난 날들을 돌이켜봅니다.
한때 상처가 너무 깊어 여자라는 존재를 증오도 해봤었고, 그러면서 얻어지는건 깊은 가슴의
상처뿐이라는것도 깨달았습니다.
전 그저 사랑을 하고싶었고 사랑을 받고싶었습니다.
헌데 제 사랑을 다 주기도 전에 이미 다 받았다며 저를 떠났던 그녀들을 보며...
다시 누군가를 사랑할수 있을지 망설여집니다.
다른사람들이 연애를 하며 하던 실수들....다 가슴에 새기며 나는 내 여자한테 그러지
말아야지....하며 더 좋은 남자, 더 좋은 남편이 되기위해 하루하루 노력하며 살아갑니다.
얼마전 어떤분이 써놓으신....내가 평생 함께 살아가는 사람은 내 부모도 형제도 아닌
내 아내라며, 이혼을 후회하고 있다는 글을 읽으며 참 많이 느꼈습니다.
연애하고계신 여성분들, 남성분들.....
사랑할수 있을때, 사랑 받을수 있을때 그걸 지켜가는건 어렵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당연히 행해져야만 하는것들을 요즘 세상은 하면 대우받는 것으로 인식하는
세상이 잘못된것 같습니다.
애인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미리 연락 한번 주는거....당연한겁니다.
하면 칭찬받아야 하는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요즘은 서로 애인에게 미리 연락해주는 사람은 좋은 남자고, 좋은 여자가 되네요.
어딘가에서 밝게 살아가고 있을 내 아내님....
그래도 속물스러움에 흔들리지 않고 열심히 살아서 만나러 갈께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