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그런데 아까부터 쭉 반말을 하시는데요...어려보이시는데 대체 몇살이신가요?"
"어허 숙녀의 나이를 묻다니 노매너구나?
"아니 그렇찮아요..아무리 봐도 동생뻘 밖에 안되보이는데.."
"복잡한 세상.. 뭘 나이따지고 뭐 따지고 그러냐? 그냥 대충 넘어가"
"대충 넘어갈게 따로 있죠..그래도 이것은 인륜의 기강을 세우는 건데..."
"아이씨~ 사내 자식이 궁시렁궁시렁 말 정말 많네...그래 너는 몇살인데..?"
"29살인데요."
"오~호 그래?..보기보다 나이 많이 먹었구나."
"글쵸?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말해요..제가 워낙 동안이라서
아직도 술집에 가면 주민증검사를 한다니깐요..후후.."
고수는 상당히 자랑스러운듯 말한다.
"그래 좋겠다.동안이라서...그냥 이건 니가 이긴걸로 하자.."
"뭘 이긴걸로 해요? 궁금한것은 절대 못참는 성격이라서..
그냥 몇살인지 말해주세요."
"참내~ 집요한 녀석일쎄..그래 알았다. 25살이다. 됐냐?"
고수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아니 이 어린것이 그동안 이 오라버니를 유린하고 갖고 놀았단 말이냐?
이런 싸가지 하곤..."
한손을 들어 칵~ 하는 시늉을 한다.
어이~ 고수야...그건 아닌다..그건 아니다..오바야~...
서희는 고수쪽으로 힐끔 차가운 눈길로 보더니
"그럼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까?"
순간 고수는 착~ 무릎을 꿇고
"아닙니다. 누님..-_-;;;.. 원래 저는 반말 듣는걸 좋아해요.
앞으로도 쭉~ 애용해주세요..헤헤.."
아아~ 고수의 비굴의 끝은 어디인가?
"그런데 니가 나이도 많은데.. 몰랐으면 몰라도 나이도 아는데..
존대말 듣는것도 그렇치 않나?."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누님 저는 괜찮습니다."
"아니 내가 불편해서 그래.. 그냥 너도 말놓아라"
"어허~ 그러면 그럴까?"
금새 무릎을 풀고 가장 느슨한 자세로 변신한다.
3단변신로봇처럼 순식간에 변하는 고수..
고수는 팔을 비비면서
"야 그런데 좀 춥지 않냐?"
"그래? 나는 괜찮은데.."
"역시 귀신이 나오는 집이라서 뭐가 틀려도 틀려...
전설의 고향이나 귀신나오는 영화 보면 귀신이 나타나면
발밑으로 스모그가 쫘악 깔리면서 차가운 냉기가 쏴아악~ 나오잖아.
아마도 그런건 가봐 글치?.."
고수는 웃으면서 말하자
서희는 무덤덤하게
"추우면 작은방 가서 에어콘 꺼"
"뭐..뭐야..에어콘?"
"응"
"쏴아악~ 냉기는?"
"그런게 어디 있냐? 쯧쯧..하여간 티이브가 문제라니깐..애들 다 버렸다니깐.."
"뭐냐? 그러면 그동안 쭉 에어콘 틀어 놓은거야? 그것도 풀타임으로?"
"응"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아니 이것이...전기값이 얼마인데.."
후다닥 뛰어가서 에어콘을 끄고 계산기를 가지고 와서 두드려보던 고수는 절망한다.
"사내자식이 쫀쫀하게 돈 몇푼에 그러냐?"
"이것 보슈~ 나 백수야..백수가 돈이 어디있어?..통장에 이번달 생활비 밖에 없는데..
전기값 내고 나면 에어콘 프레온 가스 마시면서 한달 버틸까?"
"젊은 놈이 일을 해야지..백수가 뭐냐?"
"참내~ 귀신언니 그게 니가 지금 할 대사냐?"
"흥..난 몰라"
서희는 싹 사라져 버렸다.
"야~.. 야~.. 어디가?
너 어디가서 돈이라도 훔쳐가지고 와라.
듣고 있지?..꼭 훔쳐가지고 와라..그것도 아주 많이..알았지?" -_-;;;
고수는 허공에 대고 말했다.
고수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여기저기 단팥죽이 튀어 있고 그릇이랑 수저가 아무데나 너부러져 있었다.
"야~ 니가 먹은것은 니가 치워야지..먹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냐?"
"........"
고수는 주위를 치우면서
'기지배... 생긴것은 곱상하고 예쁜데...싸가지는 만빵일세..
하여간 귀신이든 사람이든 겉만보고는 모른다니깐'
그래도 앞으로는 심심하지는 않겠다고 생각하니 빙긋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다음날 아침밥을 먹자마자 고수는 여기저기에 전화를 했다.
이때 서희가 스르르 옆에 와서
"어디다 전화하는 거야?"
"앗!..깜짝이야..인기척 좀 해라. 애떨어지겠다."
"흥..애가 들어서기나 한데?..."
"이제는 낮에도 나오냐?"
"원래 낮에도 밤에도 나오고 싶을때 아무때나 나올수 있어."
"그런데 왜 그동안 낮에는 안 나왔냐?"
"연출이지...왠지 밤이 더 으시시하고 분위기가 살잖아"
"분위기 같은 소리하고 있네..
잠깐 조용히 해...네에..글쿤요. 잘알았습니다. 별말씀을...
그럼 수고하세요.."
전화를 끊고
"휴~ 역시나..안되는군.."
"젊은 놈이 한숨은...왜? 뭐야?"
"전에 이력서 넣은 곳인데..다 떨어졌다...에라~ 모르겠다."
고수는 뒤로 벌렁 누웠다.
그렇게 누워서 한참 천장을 보더니
"큰일이다. 당장 들어갈 돈이 한두군데가 아닌데..
공동주택이라서 복도전기값이랑 수도값이 들어가고
생활비도 들고..전화비도 들고 전기료도 내야하는데..."
전기료를 말하면서 찌릿~ 서희를 바라보자
서희는 딴곳을 보는척 고개를 돌려버린다.
"안되겠다. 당장 알바라도 해야겠다. 그러면 한번 뒤져볼까나?"
점심도 거르고 검색을 해보았지만 다 나이가 어린 사람만 뽑기를 원하고
고수 나이에 할만한것은 눈에 띄지 않았다.
"정말 불경기는 불경기인가 보다..사람은 넘치고 일자리는 없고.."
다시 아까 그 자세로 돌아와서 천장을 보고 있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맞어..성수형...그래 성수형이 있었다..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성수형이 누구야?"
"과선배인데..이형 아버지가 엄청 부자야. 강남에 빌딩만 4~5채 되고
현금동원력도 엄청나서 사채업계에서도 알아주는 큰손이지..
그런데 이형이 너무 노는걸 좋아해서 마냥 노니깐 그형 아버지가
보다 못해서 강남쪽에 까페하나랑 피씨방 하나씩 열어줬다는데..
아마도 거기에 일자리가 있지 않을까?"
"알바로 되냐? 지속적으로 일할수 있는 직장을 잡아야지.."
"시끄러워..누구때문에 이고생을 하는데.. 이 전화번호가 될까?"
"최성수씨 핸드폰인가요? 아하.. 형이세요? 접니다..최고수"
"누구시더라?...."
"후배 최고수 입니다."
"글쎄요..기억이 안나는데요..잘못 건것이 아닐까요?"
아니 이 인간이 감히 나에게 쌩을 깔려고?
"하하...글쿤요..역시 제가 잘못걸었군요..형수님 안녕하시구요..
언제 꽃게탕 먹으러 가야하는데..그런데 정연씨도 잘있죠?"
"아..아하..기억났다. 고수구나...알지 최고수 내 사랑스러운 후배.. 잘알지..
내가 장난친거야...영어로 조크라고 하지..하하하.."
역시 약간 찌르니깐 바로 효과가 나오는군..후후..
"형 다른게 아니라 상의 드릴일이 조금 있는데요..그러면 제가 그 까페로 갈까요?
네에 잘 알겠습니다. 그때 뵙죠..그럼 들어가세요."
고수가 전화를 끊자 서희가 옆에 와서
"정연씨는 누구야?"
그러자 고수는 새끼손가락을 들어보인다.
"세컨?"
고수는 고개를 끄덕끄덕 하자.
"쯧쯧..그 선배나 그 후배나 똑같다...결혼했으면 아내한테만 충성해야지..
무슨 세컨이냐? 그리고 그런 사람 협박해서 일자리 얻으려는
너도 참 잘하는 짓거리다."
"그러면 어쩌냐?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하는데..뭐 나라고 이러고 싶어서
좋아서 춤추면서 하는짓인줄 아냐? 그러지마 나도 힘들어."
안방문으로 투과해서 들어가는 서희 뒤에다 대고 고수는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