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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상서랍을 열며...

nulpurn |2003.09.21 10:34
조회 227 |추천 0

 

사무실 한 켠을 장악하고 있는 내 책상과 의자, 그리고 사물함. 나를, 사무실이 그리고 이 회사가 인정해 주는 일종의 표식이다.
흔히 하는 얘기로 집에서는 방 빼, 사무실에서는 책상 빼라는 한마디로 나가라는 다소 과장된, 유머러스한 표현을 쓴다. 내가 살아가기 위해(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곳이 있고 그 곳에 내 책상이 있다는 거, 어찌 보면 안도의 숨을 내쉬기도 하지만 한 편으론 나를 옭아 매는 밧줄이 아닐까? 그 곳에 내가 앉아 일을 보는 책상이 있는 한은 말이다.
규정된 시간을 지켜야 되고 자리를 비울 땐(월차나 휴가, 출장 등..) 미리 허가를 맡아야 되고, 그 채 몇 평 안 되는 자리를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고...

 

책상서랍 속엔 그래서 지난 몇 년 동안 나를 옭아 맨 수많은 서류들과 그로 인해 파생된 갖가지 잡동사니들로 꽉 차 있다.
서랍 안, 빈 공간이 차츰 차츰 사라지는 만큼 내 젊음도 사라지는 걸 느낀다. 조금은 비극적일 수 있으나 내가 노력하고 애써 배우고 익혔던 것들이 이 작은 공간 하나를 차지하기 위해서,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해 온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서랍 속에서 그래도 나를 위안 시키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명함들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쌓여가는, 이런 저런 연유로 나와 관계를 맺어버린 이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이 명함들 말이다.
가지각색 모양도 무늬도, 박힌 글자채도 틀리지만 한데 뭉쳐 내게로 와 모여 있다. 자주 꺼내어 사용되는 것도 있지만 맨 뒤 구석에 쳐 박혀 있는 이들의 것도 있다.(내게서 멀어진 만큼 그 명함 주인의 얼굴도 희미해 진다)
더불어 내 명함도 줄어들고 있다. 앞으로 몇 번을 더 찍어야 될지 알 수는 없지만 나의 겉모습을 보여주는 명함으로 인해 나는 존재할 것이다. 나와 마주친 그 많은 이들에게 말이다.
또한 새롭게 만나는 이들에게는 나를 대체적-첫 만남에서 말이다-으로 알려주는 첨병이다.

 

책상서랍 속 명함과 함께 위안이 되기도 하지만 다소 씁쓰름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 이름이 아로새겨진 몇 개의 통장들이다.
입사 때 하나의 통장이었던 것이 그 수를 불려 이제는 몇 개로 번식을 했다. 무슨 무슨 은행부터 이런 저런 통장까지 직장 근무연수만큼 하나 하나 늘어만 간다. 돈이 쌓인다는 나름대로는 좋게 해석할 수도 있지만 딴엔 내 피같은 젊음을 내주고 챙기는 돈이라는 생각에 그러하다.
자칫 돈에 의지하고 매인 몸뚱아리가 되는건 아닌지 심히 걱정이 되기도 한다.

 

지난 7년 전 난 지금 있는 곳으로 한 번 자리를 옮겼었다.(물론 회사 인사 발령으로 인한 것이지만...)
그 동안 근무했던 부서원들과 작별 아닌 작별 인사를 하면서 내 책상을 정리했었다. 근무 한 지 얼마 안되었던 까닭에 그리 어렵지 않게 짐을 꾸렸다.
그 당시 찾아도 찾을 수가 없어 나를 애태웠던 서류도 서랍 밑동에서 찾을 수 있었고, 하나 하나 정리하면서 그것에 관련된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었다.
현재 내가 쓰고 사용하는 이 책상도 언제가 될지 는 모르지만 정리할 때가 있겠다 싶다. 그것이 전보든 퇴사든 간에 난 또 한 번 책상을 정리하겠지. 그 때는 지난 한 번으로 끝낸 내 책상 서랍의 정리가 다소 힘이 들거란 생각도 가져본다.
그 때가 되면 난 어떤 생각으로 정리를 하고 떠날지...
7년 전 처럼 새로운 환경과 새 얼굴들과 근무한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을 지...
아니면 정든 곳을 떠나 낯선 곳에서 근무해야 하는 약간의 두려움과 걱정을 하게 될지...
또는 이제는 무얼 먹고 사나 하는 걱정을 하며 정리할는지...
그도 아니면 새로운 도전에 상기되어 있을지...

기대 반 걱정 반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본다.

 

아침마다 출근해 앉으면서 키를 돌려 서랍을 열면서 친숙함으로 다가오는 서랍속 물건들.
내 손때가 묻어있는 사무용품들...
내 머리속 지식들이 함축되어 표출 된 PC속 데이타들과 서류들...
자신감으로 기안결재 서류 칸에 꾹 하고 찍었던 도장...
달마다 해마다 수치를 높이고 있는 내 급여 명세표...
읽다 마다를 반복하며 나를 속 썩이고 있는 책 두어 권...
그리고 내 업무 일지...

하나 더 있다.

나를 향해 방긋 웃고 있는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
나와 함께 해 왔고, 앞으로도 함께 할 내 친구들이다.

 

입사 때 맨 처음 내 책상과 의자에 앉아 마음속으로 "자! 시작이다! 열심히 하자! 능력 껏!"하고 외치며 첫 근무를 맞이하며 정성스레 서랍을 정리한 기억이 난다.
세월에 업무에 시달리며, 그래서 나태한 마음과 자세로 인해 덩달아 엉망이 되어버린 내 서랍을 오늘 보았다.
그 때로 되돌아가자고 나를 다듬으며 그 첫 의지로 서랍을 정리 할 까 한다, 오늘.
뭐가 뜻밖에 튀어나와 나를 놀래 킬지 사뭇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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