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울모드가 풀리는 군요^^
풀린 김에 다시 나를 풀어나가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L모 대기업과 K모 공사를 다니다 드디어 학교로 왔다.![]()
mbc로 오라는 선배의 말을 그림그린다고 무시한게 엄청 후회되더군...
오면 10년은 견디라는 말 때문에....![]()
학교에 온지 1년만에 여자를 소개 받았다.
30이 넘으니 결혼을 해야겠기에 나름대로 서두른 결과다.![]()
소개를 총 3번 받았는데 그중 괜찮아 보였기에...
결혼을하고 신혼여행을 가기 직전에 우리나라 미술잡지의 대명사로 불리는 출판사에서 미술교육에 관한 글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아서 써주고 신혼여행을 갔다.
그곳엘 다녀오니 예전에 작품활동을 할 때 알던 사람이 연락을 해왔다.
글에 감명을 받았다고 미술교과활동을 해 달라고...![]()
한참 열심히 활동을 하던 중, 친구놈이 사업을 한답시고 손을 벌려왔다.
친구라면 사족을 못쓰면서도 가진게 없는 나로서는 도와줄게 없어서 가계수표를 한권 끊어서 통째로 넘겨 줬다.![]()
그런데.....
당시 한권에 10만원이 한계치이던 수표가 50만원이 되어서 돌아와 펑크가 났더군...![]()
어머니와 같이 경찰서에 가서 조서도 쓰고 금쪽같던 현금 50만원을 물어주고 나왔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한번 데인 이친구놈이 사채업자에게 수표를 맡기는 바람에 다시 또 200이라는 금액이 날아왔다.![]()
도저히 안될 놈이라고 판단을 하고 더이상 물려들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한장에 200도 300도 되었으니 좌우지간 능력도 좋은 놈이다.
당시 내 부인도 계속 되는 적자를 내는 통에 어머님께 무릎을 끓고 200만원을 타낸 상황이라 더이상 금전에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그 친구놈 때문에 엄청난 빚을 지게된 또다른 막역한 친구놈이 호되게 걸려든 것이다.![]()
'내가 집을 팔아서라도 갚아줄테니 도와달라'하는데 어쩔 수가 없더군...![]()
친구들의 가장 중심역할을 하던 나는 친구들을 소집했다.
결과는 나 외에 한놈만 더 끼어들었을 뿐...
결국 각자 1000씩 돌려가며 보증을 서고 대출을 받았다.![]()
참여하지 못한 친구들중 한명은 암으로 죽었고 또 한명은 알거지가 되었고 한명은 엄청난 부를 현재 행사하고 있다...![]()
참여한 놈들은 어떻냐고?
방송국에 근무하는 고아출신인 한놈은 아주 잘나가고 있고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국영기업에 다니는 놈과 나는 죽쓰고 있쥐...![]()
아무튼 그해 집값이 2300이였는데... 4000이 차압이 들어왔더군...![]()
결국 그중 1000만원만 3년에 걸챠 닶는 것으로 해결은 되었는데...
나머지는 결국 그 친구가 집을 팔아서 해결 되었다는...![]()
봉급을 반밖에 가져갈 수 없으니 안그래도 적자나던 살림에 달리 방도를 취할 수 밖에..![]()
그동안 각종 미술 잡지에 기고를하여 5-10만원 가량씩...
수첩 디자인 해주고 50만원...
미술 참고서를 써주고 100 정도...
참 독특한 내용으로 방송을 탄 적도 있었다는...![]()
그렇게 하다가 한번은 당시에 북한을 탐방하고온 기자들의 사진집을 디자인해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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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만 앉혀주면 된다기에 그리알고 갔더니...
완전히 주먹구구식으로 하고 있었다.![]()
페이지에 어떻게 사진을 앉히는 지도 모르고 있었던 거다.
사진에 내가 빨간 싸인펜을 대각선으로 그었더니 자료를 망쳤다고 아우성이다.ㅡ,.ㅡ
즉 상식으로 되어있는 필름조차 구비하지 않고 오직 사진에만 의존하여 편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한민국의 기자들이 총연합한 것을 편집한다면 최고의 편집자들이 있는줄 알았는데...![]()
결국 어렵게 편집하는 사람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사진은 대각선을 이용하면 일일이 사각형을 그리고 거기에 맞게 사진을 자를 필요가 없다는 것을...
뻗정대던 그 인간들 나중엔 겸손하게 받아들이더군...^^![]()
그런데 내가 그렇게 한 이유중 가장 큰 것은 그 사진자료들 때문이였다.
그전에 북한을 다녀오면 신문에 나오는 것은 대문 뒤에 숨은 사람들의 맨발 사진과 같은 결국은 '저렇게 못살고 있다'였는데...
내가 본 평양거리의 획기적인 사진은...
북한에서 손수 제작한 일인용 스쿠터 만한 청소차량이였다.![]()
당시 남한에서는 청소차량이라는게 거의 없었고 그것도 극소수의 수입차량이였을 뿐이니...
아무튼 앙증맞게 생긴 그 차량을 여성이 운전하며 청소하는 모습을 보자 내가 알고 있던 북한의 모습이 송두리채 무너지는 것이였다.![]()
참 그 사진집은 결국 대중에겐 배포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
아마도 기자들끼리만 돌려보는...
또 상부 보고용으로만 쓰이는 그런 것이였을 것이다. 한정판이였으니까...
평양 거리가 그렇게 잘 생긴 것도 그날 처음으로 알았고...
63빌딩보다 높은 건물이 북한에 있다는 것도 그날 처음 알았다..![]()
아마도 내가 받은 아르바이트 중에 가장 고가를 받은 아르바이트가 아닌가 한다.
그 후엔 중학교 입시용으로 만들어진 모 전문 학습지에서 잠깐 반짝이며 만든 일년치의 월간지에 매달 기고를 하는 쾌거(?)도 올렸고 문제집(당시엔 중학생도 미술과목이 연합고사에 출제 외었음)을 매년 만들어 주었으니 제법 돈은 벌었을 터이다.![]()
아마 차압으로 빼았긴 돈의 2/3 이상은 건지지 않았을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차압당한 초기에 돈이 될까하고 동화를 그린 일이다.
동화를 그리기 전에 아르바이트에 자신이 있던 나는, 무조건 출판사 골목을 찾아갔었다.
몇곳을 돌면서 아르바이트를 신청했으나 모두 응답이 없더군...![]()
열몇곳을 들렸더니...
나보다 어려보이는 사람이 책한권을 주면서 그려보라더군...
제목이 '가장은 외롭다'로 기억된다.
당시 엄청나게 외롭던 나는 공감하는 부분이므로 바로 그림을 그려서 주었다.
그런데....
이친구... 응답이 없는 거다..![]()
좋다던가.. 나쁘다던가.. 반응이 없으니 답답할 수밖에...
이제나 저제나 하며 기다려도 하루 종일 기다리게만 할 뿐....![]()
결국 화가난 나는 그자리를 뛰쳐 나왔고 다시는 그런일을 안하리라 마음먹고 동화 그리기에 전념했었다.
차라리 그 때 힘 쏟았던... 그 동화에나마 계속 매달렸으면.. 지금쯤 또다른 작가로 활약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