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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녀석들이 춥다고 해서 잠자기전 1시간의 난방을 하고
아침에 깨어나 다시 1시간 난방을 했다.
어제만 해도 아침에 일어나면 춥다던 녀석들이 오늘은 아무말도 하질 않는다..
엄마가 난방을 살짝 미리 해 놓아서 그런건줄도 눈치도 못채고......^^
찬기를 느끼지 않을만큼 조금 따뜻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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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 저편속으로의 여행2 *
6학년 겨울방학에 접어든 어느날...
서울에 사는 이모가 왔다.
그전에 엄마와 이모가 전화로 무슨말이 오고 갔는지는 모르지만
이모는 내게 서울로 가자고 했다.
서울로 가서 이모 밑에 있으면 학교를 보내준다고 ...
겨울이라서 샘에서 물길어 오고 찬물로 부엌 일을 해서
손등은 트고 갈라져 피가 나고 있는 내 손을 이모는 눈물을 흘리며
그 하얗고 보드라운 이모의 따뜻한 손으로 감샀다.
돌아가신 내 친엄마의 동생인 이모..
그러하기에 난 이모를 믿고 학교 보내준다는 그 말만 내 귀에 박혔기에
배움에 굶주린 난 미련없이 국민학교 졸업장도 받지 않은채.....
6학년 겨울방학에 새엄마와 동생들 곁을 떠나 이모의 손을 잡고
기차를 타고 처음으로 낯선 여행을 했다.
서울이란 내겐 낯선곳이지만 이모와 함께 하기에 두려움은 없었다.
78년 신정동.... 비탈길을 한 참을 올라가서 이모는 어느집
쪽문으로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이모집에는 이모부와 이모의 아이들 4살 사내와 3살 계집아이
이렇게 네식구였다.
달랑 방하나에 부엌하나...
참 그모습에 암담하고 실망스러웠다.
내 상상과는 너무나 달랐다.
시골에 잔뜩 치장을하고 내려온 이모를 보고는 난 이모가
잘사는 줄 알았었으니까...
이모와 이모부는 그렇게 나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영등포에 있는 가게에 아침이면 출근해서 밤이 늦어서야 돌아왔다.
난 그야말로 아이들을 보고 집안일을 하는 식모 같았다.
지대가 높은 그곳은 남들이 잠들은 늦은 밤이나 되야 수돗물이 나왔다.
꼬박 꼬박 졸며 수돗물을 기다렸다가 받아 놓고 그 다음날 하루종일 써야했다.
난 학교 보내 달라는 말을 꺼내지를 못했다.
그다음에 14살 되던해 이모네는 장사가 잘 되어서 그나마
가게에서 가까운 영등포 방두칸 전세집으로 이사를 했고...
난 책 도매상을 하는 이모네 가게에 들러 내가 좋아하는 책을
실컷 읽을수 있어 그나마 행복을 느꼈다.
월간지가 나오는 날에는 더 행복한 날이였다.
어깨동무,소년중앙,학생중앙,소녀시대,등등...
난 책속에서 많을걸 배우고 초경이라는 것을
한다는 것도 알았다.
15살 3월 어느봄에 난 처음으로 초경이라는 것을 경험했다.
책으로 다 읽고 남보다 좀 늦은 편이라서
걱정하며 마음속으로 기다리고 있었을 때인데도 당황스러웠다 .
엄마~~~!!! 엄마가 갑자기 보고싶고 그리웠다
얼굴도 생각나지 않는 엄마가...
아~~~내 딸이 많이 자랐구나.... 그건 어른이 되어 가는 한 과정이란다..
대견하다..라며 등을 토닥거려 주고 포근하게 감싸 안아 줄 수 있는 엄마가 필요했다.
약국에 가서 처음 생리대를 사는데 목소리는 모기소리 만하고 얼굴은 홍당무가 되고
가슴은 마구 방망이질을 했다.
이모는 남자 성격이라서 전혀 나의 그런것에는 관심도 가져주질 않았다.
늘 손톱에 메니큐어 바르고 자신몸 치장하고 가게에 나가 의자에 앉아
계산서 끊는일만 했다.
집에오면 손하나 까딱 안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형편이 점점 피는지 가게는 커지고 점원들도 서너명씩이나
들어오고...
이모네는 방을 한칸 더 얻어 그 점원들을 같이 데리고 살았다.
남의집 전세 살면서 방을 세칸씩 차지하고 이모네 가족은 여덟에서
아홉을 왔다갔다 하는 대가족이 되었다.
가게일이 힘든지 점원들은 몇개월을 못하고 그만두기가 일쑤였다
난 집안살림 도맡아 다하며 가게에 점심까지 내가고 사촌들 엄마노릇까지
해야했다.
다섯식구 손빨래 해가며 김치며 반찬이며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게
내가 할일들이었다.
지금도 가끔씩 생각하면 어떻게 살았을까 숨이 막혀오고 진저리가 쳐진다.
15살 되던해 이모는 날 집에서 가까운 야간학교에 넣어 주었다.
낮에는 일하고 5시반이면 학교에 가서 10시면 수업이 끝났다.
집에오면 또 가게에서 돌아온 점원들과 이모,이모부 저녁을 차려주고
설거지하고..
신학기 바쁜 대몫때는 가게를 문닫고 들어오면 12시 가까울때가
많았다..
12시 넘어 2~3시까지 졸면서 공부를하던 나는
아침에 세수 할때마다 일주일내내 코피를 쏟아야했고
아무도 모르게 휴지로 코를 틀어막고 눈물을 삼켜야만했다.
이유없이 반항을 하는 사춘기..
난 그 사춘기시절에 누구에게도 반항을 해보지 않았고
짜증한번 부려보질 않았다..
사춘기 시절에 난 내 부모가 한없이 미웠다.
왜 키우지도 못할거면서 씨앗은 왜 떨어뜨리고 나혼자만 달랑 남겨두고
자기들은 둘이서 그렇게 다정하게 땅속에 묻혀서 자식은 나 몰라라하고
알콩달콩 사느냐고...
왜 나는 같이 데려가지 않았냐고...
제발 데려가라고...
몇번씩 부엌칼을 가슴에 대보지만 날카롭고 차가운 칼끝이 닿을때마다
난 도저히 찌를 용기를 내지 못했다.
난 이렇게 내 부모처럼 책임없는짓 하지 않으리라..
낳기만하고 끝나는 그런 부모가 무슨 부모 자격이 있단말인가..
난 자식을 끝까지 책임못질 완전한 부모가 못 될바엔 차라리 결혼하지 않으리라....
사춘기시절 그러한 생각끝에 난 늘 수녀나 스님이 되기를 소망했다.
이모 내외는 늘 나를 친딸처럼 생각한다며 말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말로만이지 결코 내가 생각하기는 친딸이 될 수는 없었다.
난 언제나 늘 얌전하고 일 잘하고 말 잘듣는 모범생이었다
내가 살아야하기에....
상대방의 마음을 먼저 읽을줄 알아야했다.
그래야 사랑 받는다는걸 알았으니까...
어려서부터 상대방을 먼저 배려하는 마음은 그렇게
내 가슴에 늘 자리잡았다.
내게 남을 배려한다는 것은 참 아픈 기억속의 삶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렇게 주,야로 힘들게 4년이란 세월동안
중,고등학교 과정을 야간학교를 다니며 힘겹게 마쳤다...
난 그렇게 언제나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었다.
새엄마 가정의 울타리 안에...
이모네 가정의 울타리 안에..
비록 내겐 행복하고 따스한 온전한 울타리는 될 수 없었지만 ..
그 울타리는 나를 옳은길로 반듯하게 커 갈수 있도록 지켜주는
고마운 것이었다...................계속
ps: 글을 써내려 오면서 내가 왜 이 글을 쓰려고 했던가
후회를 해 봅니다.
너무나 아픈 과거이기에...
하지만 지금은 눈물나도록 행복한 삶을 살기에
시리도록 파란하늘에 아픈마음 씻으렵니다.
※ 아침마다 행복한 글을 접하게 해드리고 싶었는데
사연이 길기만하네요..
어두운 이야기 마무리 짓고 행복한 글을 올리고 싶습니다.
늘~~제게 용기와 희망과 행복을 빌어 주시는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모든분들 가정에 늘~~사랑과 행복이 함께하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