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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팅의 고수가 되기까지 12...완결 (펌)

로맨티스 |2003.09.25 17:19
조회 1,215 |추천 0

그녀가 날 받아준 그 날 이후...

나와 그녀 사이엔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이 에피소드들을 하나하나 풀어 썼다간 앞으로 대략 10편은 더 넘게 써야 할거 같기에

생리악-_- 하도록 하겠다.

삐삐가 없던 나는 우연한 기회로 알게 된 141 서비스(무료 음성 사서함)를 이용했고,

나는 민정이의 삐삐에

민정이는 내 141 서비스에

하루에도 몇 번씩 음성을 주고 받으며 사랑을 키워 나갔다.

그런데... 잘 자라던 이눔의 사랑이란 놈이 -_- 어느 날 다 컸답시고

내 싸대기를 치고-_- 집을 나간 일이 있었으니...

[사랑] : 이제 나 좀 그만 키워! 너무 커서 반에서 왕따 당한단 말이야!

[오백원] : 뭐....? 내가 민정이랑 널 어떻게 키워 왔는데...

니가 부모한테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있니?

[사랑] : '어른들은 몰라요' 책을 보고 나서 깨달았어! 부모 따윈 중요하지 않아!!

[오백원] : 저번에 '참견은 노! 사랑은 오예!' 읽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더니...

설마 사춘기인 게냐?

[사랑] : 몰라 몰라! 난 엄마 아빠가 싫어!!

이렇게 해서 사랑이 날 떠나가던 날...

그 날은 손이 시려워 꽁! 발이 시려워 꽁! -_-

겨울 바람때문에 손발이 오그라들던-_- 어느 겨울 날이었다.

저녁때쯤 학원을 간답시고 집을 나섰다.

물론 민정이를 만나기 위해서 였다. -_-;

약속 장소인 놀이터에서 얼마간 기다리니 그녀가 뛰어왔다.

[민정] : 헉...헉.... 미안 똥싸느라 늦었다. (럭키짱에서 발췌)

[오백원] : 난 10kg 짜리 팬티 입고도 이렇게 뛰어 왔는데 겨우 똥사느라 늦어?

[민정] : 그걸 왜 사냐 돈 아깝게시리... -_-

[오백원] : 뭐...뭔 소리냐?

[민정] : 너의 오타를 이용한 하이개그였어 -_-

아... 지금 한심한 눈빛으로 모니터를 부셔버릴 듯한 독자분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항상 말하는 거지만 역시 내 개그는 어렵다. 좀 이해해줘 -_-

간단히 몇 마디 주고 받고 나서 할 말이 없어질 때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모래밭에 떨어져 있던 나뭇가지를 하나 줍더니 말했다.

[민정] : 우리 이거 하자 ^^

정확한 명칭은 모르겠지만...

모래를 쌓아놓고 가운데 나뭇가지를 꽃아 놓고 나서 한번씩 돌아가며 모래를 가져가다가

나뭇가지를 쓰러뜨린 사람이 지는 놀이...

바로 그 놀이를 하자는 것이 였다.

아.... 딸리는 한글 실력으로 이거 설명하느라 힘들었다. -_-

[오백원] : 야... 우리가 애도 아니고 꼭 이런걸 해야겠냐 -_-

[민정] : 싫어?

짱구의 눈빛 공격보다 더하고 구리구리의 목소리 보다도 더 깜찍한 -_-

그녀의 애교 공격을 차마 거부 할 순 없었다. -_-

[오백원] : 그래... 하자

[민정] : 그냥 하기엔 좀 지루하지?

[오백원] : 아니, 니가 하자는데 지루한게 어딨냐 ^^

[민정] : 그래도.... 그냥 하기엔 좀 지루하지?

[오백원] : 아니 ^^

[민정] : 좀 지루하지? ^^

[오백원] : 아니 ^^

[민정] : 아 정말!! 남자가 눈치 없게!!!!!

[오백원] : 뭐...? -_-; 아.. 그래 좀 지루하네 -_-

[민정] : 응... 그럼 우리 벌칙으로 진실 게임 하자 ^^

[오백원] : 그냥 진작 진실 게임 하고 싶다고 말할 것이지 -_-

[민정] : 으..응 -_- 어쨌든 하자

사귀는 사이끼리 진실 게임을 한다는 것 자체가 좀 이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아마도 그때... 그녀는 내게 뭔가 묻고 싶은 말이 있는 듯 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는 삽을 가지고 오더니 얼룩말을 묻었다. -_-

[얼룩말] : 왜 자꾸 나만 갖고 그래 -_-! 너 유머 소재 고갈이냐 -_-


[오백원] : ↓↙←↙↓↘→ + AC

자... 초 필살기를 맞은 얼룩말은 이제 내 글에서 더 이상 등장 하지 않는다.

그러니 중복 개그 한다고 딴지 걸지 말자 -_-

어쨌든 초딩시절... 나뭇가지 하나로 동네 놀이터를 접수-_-했던 실력으로

첫번째 판은 가볍게 이겼다.

[오백] : 자... 이제 아무거나 물어봐도 되는 거지?

[민정] : 띵띵~ 띵띵!~~ 띠디~~!!

[오백원] : 뭐냐 -_-

[민정] :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주제가 -_-

[오백원] : 그게 갑자기 왜 -_-;

[민정] : 무엇이든 물어보라고 ^^

[오백원] : 너도 내 개그를 닮아가는구나 -_-

얼떨결에 시작되버린 진실 게임이라 어떤걸 물어봐야 할지 몰랐다.

어찌 보면 대답하는 것 보다도

질문을 생각해 내는게 더 어려운 게임이 진실 게임이 아닐까 생각한다.

[오백원] : 음.... 너 정말 나 좋아해?

딱히 물어보고 싶은 것도 없었고

질문을 생각하느라 머리 굴리는 것도 귀찮고 해서

가장 평범한 질문을 해버렸다.

근데..... 그 평범한 질문이 내 심장을 도려내버렸다 -_-

[민정] : 아니 ^^

[오백원] : 뭐..........? 너 뭐야! 그럼 날 안 좋아한다는 거야?

[민정] : 질문은 한판 당 하나씩 ^^

별 생각 없이 물어본 말이 가슴에 비수가 되어 삽입-_-돼 버렸지만

다행히도 다음 판을 아슬아슬 하게 이겼다.

[민정] : 좋아.... 두 번째 질문 해봐

[오백원] : 아까 한말 거짓말이지? ^^

[민정] : 아니.. 진실 게임인데 왜 거짓말을 하겠니 ^^

[오백원] : ..........그럼.... 난 너한테 뭔데?

[민정] : 질문은 한판 당 하나씩 ^^

난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오르는데 이 뇬은 지금 웃음이 나오나 -_-

학창시절.... 땡볓 무더위 속에서 교장 선생님의 연설을 듣던 집중력-_-을 발휘해

이번에도 역시 이겼다.

[오백원] : 야!

[민정] : 어

[오백원] : 그럼 지금까지 날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사귄 거야?

[민정] : ........

[오백원] : 응? 그런 거야?

[민정] : 이제 늦었는데 그만 가자~


..................

 

.......................

 

.............................


거의 2개월 가까운 세월 동안 그녀와 사귀면서

지금까지 한번도 그녀가 날 좋아하지 않을 거란 생각은 해본적이 없었다.

그만큼 그녀는 나에게 너무나 잘 대해 주었고

항상 먼저 연락을 하던 것도 그녀였다.

그런데 지금.....

그 믿음이 무너지고 있다.

[오백원] : 야 뭐냐고! 진실 게임이면 대답은 해야지! <--- 중딩틱한 맨트 -_-

[민정] : ......

[오백원] : 안 좋아하는구나?

[민정] : 어.....

아... 그때의 심정을...

오랜만에 나만의 심리묘사-_-를 통해 써볼까 한다.

이번엔 초딩 시절 버전 -_-

더위사냥이나 쌍쌍바를 반으로 쪼개다가 삑살이-_- 났을 때 보다도 더 황당했고,

(이 기분 아시는분은 다 읽고 무조건 추천-_-)

지우개 따먹기에서 Tombow 점보 지우개-_-를 먹혔을 때보다도 더 열이 받았으며

동네 형들에게 스트리트 파이터 프리즘 카드-_-를 뺐겼을때의 분함....

이 모든 기분을 그 1초만에 다 느껴버렸다. -_-

이미 정신이 반쯤 돌아가 버린 나는 계속 똑같은 말만 반복하며

그녀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오백원] : 그럼 지금까진 뭔데?

[민정] : 야... 너 아무리 남자라지만 입술이 그게 뭐냐 다 터가지고는.....

[오백원] : 뭐...? 그래? -_-

지금에 와서 보면 뻔한 말 돌리기 수법 이였지만

중1이였던 난 그 뻔한 수법에 넘어가고 말았다. -_-

[오백원] : 겨울이니까 그렇지...

[민정] : 자, 이거 발라

그녀는 웃으며 나에게 립크림을 건냈다.

그리고 립크림을 받아 쥔 두 손이 경련-_-을 일으켰다.

이게 바로... 가...간접 키스....

간접 키스의 유혹에 사로잡혀 방금 전 있었던 일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야릇한 흥분함과-_- 동시에 입술 구석구석에 발라줬다 -_-

그리고....

립크림 따위와는 비교가 안되는 촉감이 내 입술을 덮쳐 왔다.

하지만....

짧았던 그 몇 초 사이... 내 입술에 그녀의 뜨거운 눈물이 닿았을 때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이라 되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가 있었다.

[독자] : 너 왜 갑자기 느끼하게스리 진지한척하냐 -_-

[오백원] : 오늘 마지막회잖냐... 좀 진지하게 하려고 ^^

[독자] : 유머 사이트에 와서 진지나 찾는 당신은 진지나 드셈 -_-^

이렇게 해서 난 진지를 드셨고 -_-

진지를 드시고 오니까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_-

예상 하셨겠지만 그녀가 눈물을 흘렀다는건 물론 농담이였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로 가끔씩 눈썹을 꿈틀거리며-_- 내 입술을 빼았았고,

반면에 난 거사-_-가 끝날 때까지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내 입술을 그녀에게 맡겨버렸다.

그녀의 얼굴과 내 얼굴이 떨어지고 나니...

침묵이 흘렀고

난 갑자기 그녀가 그런 짓을 한 의도도 몰랐을 뿐더러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다행이 먼저 입을 연 건 그녀였다.

[민정] : 난 널 좋아하지 않아.....

뭐지.... 지금 내 순결을 빼앗아 놓고도 이런 말이 나오는 건가 -_-?

[민정] : 사랑해... 바보야 ^^

지금와서 보면 참 유치한 짓이였지만-_-

그래도 처음이었다.

좋아하는 사람한테 사랑한단 말을 들은 건....

키스에서부터 사랑한단 말을 들은 것까지...

겨우 1분도 안되는 짧은 시간동안 이런 일들이 일어났으니...

그저 멍하게 서 있는 수 밖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오백원] : 어..? 그래

결국 내 입에서 나온 바보 같은 말이다 -_-

[민정] : 오늘은 나 데려다 주지마 ^^

[오백원] : 왜?

[민정] : ........

그녀는 갑자기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500원짜리 동전을 하나 꺼냈다.

[민정] : 이거 받어

[오백원] : 어? 500원은 왜?

[민정] : 이거.... 저번에 PC방에서 니가 나한테 빌려줬던 그 500원이야

[오백원] : 뭐.......? 그때 분명 돈 모자르다고... 그럼 계산할 때 냈을 텐데...

그걸 니가 왜 가지고 있...?

[민정] : 넌 좀!! 눈치가 그렇게 없냐!

[오백원] : 응??

[민정] : .......일부로 그런 거였어

[오백원] : 뭐...?

[민정] : 으휴 참.... !

[오백원] : -_-; 뭔데 끝까지 말해봐

[민정] : 너랑 만날 구실......이 필요했거든....

.......

 

..........


그 날은 그때까지 내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날인 듯 했다.

좋아하는 여자한테 처음으로 사랑한단 말을 들었던 날인데다가

일부로 나와 만날 구실을 얻으려고 500원을 빌렸다는 것...

그건 그녀도 날 좋아했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난 그때 좀더 깊이 생각을 했어야 했다.

그녀가 왜 갑자기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했는지...

정말 그 500원이 내가 줬던 거였다면 왜 굳이 나에게 다시 넘겼는지...

적어도 약간의 의심은 가져 봤어야 했다.

결국 몇 일이 지나서야 그 날이 내 인생 최고의 날이 아닌...

인생에 있어서 최고로 후회하게 만들던 날이란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와 난 하루에 적어도 1~2개씩은 음성 메세지를 주고 받곤 했는데...

나는 분명 꼬박꼬박 메세지를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이틀째 아무 연락이 없었다.

결국 이틀째 되던 날...

궁금함을 참지 못해 저녁때쯤 그녀의 집으로 가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집은....

 


비어있었다....

나는 아직도 그녀의 마음을 모른다.

처음엔 그렇게나 나한테 전혀 관심이 없는 듯 보이더니만.....

그녀도 처음부터 날 좋아했었다는게 아직도 믿기가 어렵다.

하지만 정말 날 좋아했다면.... 굳이 그런식으로 떠났어야 했는지....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끝이없다.

정말 어딘가로 이사를 갔을 수도 있고

그 일이 있은 후 바로 그녀의 삐삐마저 끊겼던 걸로 보아

한때는 해외로 이민을 갔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느쪽으로든 결론은 내리질 않기로 했다.

중요한 건...

적어도 나한텐 지금에 와서 추억으로 남길 수 있을 만큼 소중한 인연 이였다는 거니까.. ^^

내가 그녀를 처음 보고 좋아하게 된 계기는 분명 채팅상에서가 아닌 오프라인 이였지만

그녀에게 말을 붙여 볼 수 있었던 것, 그리고 그녀와 만날 수 있었던 계기를 마련해 준건

어디까지나 온라인, 그러니까 채팅에서였다.

흔히 말하는 온라인 인연... 그리고 온라인에서 사람을 알아간다는것...

채팅으로 사람을 사귀는 건 쉬워도

'인연'을 만난다는게 얼마나 허망하고 힘든일인 줄 알거라 생각한다.

나 역시 한동안 채팅에 빠졌다가, 온라인 인연의 한계를 깨닫고는 관뒀던 사람 중 한명이다.

그래서 난 이렇게 생각한다.

채팅의 고수란...

타자가 빨라 단시간에 많은 이성을 꼬실 수 있는 사람을 일컫는 말도 아니고,

채팅상에서 말빨이 화려한 사람도 아니다.

채팅으로 시작된 인연을 이어 간다는 것...

채팅에서 시작되서 평생 기억에 남을 만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

쉬워 보이지만 채팅을 통해선 얻기 힘든 이런것들을

한번이라도 경험해 본 사람은 모두 채팅의 고수가 아닐까......?


이렇게 소중한 추억을 가지고 있는 난....

 

 

 

 

 

 

 

 

 

 

분명 채팅의 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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