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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황노인과 손녀딸 (단편소설)

은하철도 |2003.09.28 00:35
조회 257 |추천 0

호랑이 황노인과 손녀딸

 


1.


황노인은 혀를 쯧쯧 차며 걷고 있었다. 
아무리 제 뱃속으로 낳은 자식이 아니라도 그렇지, 그래도 지 애비의 씨를 받은 자식인데, 무심해도 너무 했다는 생각이 들며 부아가 치밀었다. 


“제가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어요.  그 애의 성질이 보통이 아니잖아요?”
빤히 바라보는 눈빛으로 오히려 반문하듯 말하는 며느리도 얄미웠지만,  그 옆에서 꿀 먹은 벙어리 모양 한마디도 못하고 있던 아들 녀석이 더 못난 천치 같았다. 

 

버스에 올랐다.  공중에 뜬 아파트 한 채에 수억 원씩 간다는 아들이 사는 동네를 흰 눈으로 힐끗 쳐다보며 다시 한번 혀를 찼다. 
“쯧쯧...... 돈지랄을 해도 유분수지,  제 자식하나 제대로 건수하지 못하는 년놈들이......”


창가에 앉아 넋을 놓고 있던 황노인의 눈에 제잘 거리며 버스에 오르는 고등학교 여학생들이 들어왔다. 

황노인은 별안간 고개를 푹 숙였다.  왈칵 눈물이 솟아올랐다.  뒷주머니에서 때가 잔뜩 묻은 손수건을 꺼내어 눈가를 훔쳤다. 
“에이, 못된 것들...... 자기들만 배때기 부르고 등 따듯하면 제일인 줄 아는 모양이지?”
입 속으로 중얼거렸다.  긴 머리를 흔들며 알토란같은 얼굴로 웃던 손녀딸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상계동에서 내린 황노인은 수락산 중턱에 붙은 집으로 올라갔다.  꼬불꼬불한 골목을 지나서 잡풀이 우거진 공터를 지났다.  황노인의 발걸음을 알아 챈 점박이의 컹컹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당을 들어서자 검은 점이 숭숭 박힌 점박이가 앞발을 들며 황노인에게 반갑다는 고갯짓을 하며 대들었다. 


“저리 가, 이 놈아.”
황노인은 개를 향하여 소리를 꽥 질렀다.  찔끔하며 물러서는 개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마루에 썩 올라섰다.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텅 빈 집안에는 아무도 없다.  그냥 마루에 풀썩 주저앉았다.  담배를 꺼내어 뻑뻑 피우며 동네를 굽어보았다.  손녀딸인 수민이의 얼굴이 또렷한 모습으로 떠올랐다. 

 

“할아버지,  어깨를 주물러 줄게.”
금년에 고등학교 3학년인 수민이는 황노인을 잘 따랐다.  방학 때에는 혼자 사는 황노인의 집에 와서 지냈다.  어깨와 팔 다리를 주무르며 애교를 떨면 황노인은 껌뻑 넘어가는 것이다.  싹싹한 몸짓으로 지저분한 주방을 깨끗이 치우고는 곧잘 라면도 끓이고 밥도 했다. 


“우리 수민이 뿐이 없다.  할아버지가 오래오래 살아서 수민이 시집가는 것을 봐야지.”
어깨를 주무르는 손녀딸의 하얀 손을 바라보며 황노인은 어흠 하며 등줄기를 쭉 펴곤 했다.

 


2.


평생 동안 시청에 근무했던 황노인은 아들만 네 명이었다.  집안에 여자라곤 아내 한 사람 뿐이었다.  아침이면 남자 다섯 명이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하나씩 들고 집을 나섰다.  딸을 하나 낳으려고 애쓴 결과가 네 명의 아들이었다.  남들은 아들 복이 없다고 자꾸 자식을 낳는데, 반대로 딸 복이 없어서 아들을 줄줄이 네 명씩이나 낳고 말은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아내는 허약했다.  병원을 자주 들락거리더니 아예 드러눕고 말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아내는 유방암이었다.  이미 암세포가 몸속 깊숙이 침투하여 회생가능성이 없다는 의사의 말이었다.  사십을 갓 넘긴 아내는 그렇게 다섯 명의 남자들 틈에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아내는 동지가 없었다.  살림밑천이라고 하는 큰 딸이라도 있었으면 여자끼리 도란도란 거리며 이야기 하다가 유방암에 걸린 사실을 일찍 발견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머쓱한 남자만 판치는 집안이었고, 황노인 마저도 젊은 시절에는 과묵하였다.  아들 넷을 다스리는 가장으로서 항상 호랑이 눈빛을 하였으며,  아들이 잘못한 일이라도 있으면 사납게 꾸짖었다.  그 틈에서 아내는 아들을 감싸고 전전긍긍하였던 것이다. 

 

아내의 장례식을 치루면서도 황노인은 울지 않았다.  눈물을 찔끔거리는 네 명의 아들 앞에서도 장군의 표정으로 담담한 모습이었다.  절대로 허약한 모습을 자식 앞에서 보이는 법이 없었던 것이다.  집안에서 유일한 여자였던 아내가 떠난 첫날밤에 황노인은 아내의 손때가 묻은 솥과 냄비를 만지며 부엌에서 혼자 눈물을 쏟았다.  내일부터는 도시락을 황노인이 손수 싸서 내밀어야 하는 것이다.  아내의 힘이 남아있는 행주를 들고 눈물을 한없이 닦았다.

 

안방과 부엌 사이를 가로지른 벽을 허물어 주방을 개조했다.  군대식으로 집안분위기가 변모했으며 황노인은 더욱 사납게 아들을 다루었다.  그 덕분에 큰 아들은 서울법대에 입학했으며 둘째와 셋째도 학교에서 일등을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막내가 항상 골칫거리로 등장했던 것이다. 

 

집안의 이단자였으며 반항아였다.  아내의 정을 끔찍이 느꼈던 막내는 제 엄마가 죽은 후부터 방황하는 빛이 뚜렷했다.  황노인의 시선을 피하며 내리깔리는 막내의 눈빛은 깊숙한 반감과 원망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학교성적도 나빴으며 사고를 치기 일쑤였다.  큰 아들이 막내의 일에 전적으로 나섰고 황노인은 침묵했다.  호랑이도 새끼를 낳다보면 덜 떨어진 새끼 한 마리쯤은 걸리는 법이다.  어둑한 마당에서 마주칠 때면 막내와 아버지 사이에 야릇한 기류가 흘렀다.  꾸벅 고개 숙이며 막내는 지나쳤다.  아버지는 침묵했다.

 

황노인에게 재혼을 권유한 사람도 있었지만, 남자들만 득실거리는 집안으로 누가 시집올 것인가,  물론 온다는 여자가 있어도 황노인은 단호하게 거부했을 것이다.  안방에 주방까지 차려놓고 자식들 뒷바라지 하는 오똑한 성깔 이면에는 평생 동안 가슴을 털어 놓는 말도 제대로 못한 채 저 세상으로 떠난 아내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리움이 깔려 있었다.  직접 해 보는 살림살이가 어렵게 느껴 질 때마다 아내가 얼마나 힘들었던 생활을 견뎌왔는지 알 수 있었다.

 

황노인은 큰 아들이 결혼하자 즉시에 분가시켜 버렸다.  여릿한 며느리가 남자들 살림을 다 감당하기 힘들다는 판단이었다.  그토록 착한 아내였기에 감당했던 살림살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둘째는 포항에 있는 회사에 입사하여 그 곳에서 결혼하였다.  셋째마저 유전공학박사 학위를 따기 위하여 캐나다로 유학을 떠났으니, 득실거리던 남자의 집은 썰렁한 공기만 감돌았다.

 


3.


막내와 아버지 사이에서 완충역할을 하던 셋째가 유학을 떠난 첫날밤에 막내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버지와 막내는 똑 같은 한 명의 여자를 서로 으르렁대며 그리워하고 있었다.  이제는 막내 한 명만 털어버리면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 한 것이라고 황노인은 생각했다.  그러나 겉도는 막내와의 관계가 그렇게 쉽게 풀리지 않았다.  막내의 가슴에 들어있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변질되어 늘 황노인에게 날아왔다. 

 

다섯 명의 남자를 떠받드는 엄마의 고충을 가장 잘 이해한 사람이 막내였다.  큰살림에 쩔쩔매는 엄마에게 아버지는 냉정했다.  물 한 그릇을 떠먹어도 꼭 엄마의 손을 거쳐야 했으며 형제들의 잘못이 있을 때에는 엄마에게 제일 먼저 불호령이 떨어졌다. 활달하고 자유분방한 성격의 막내는 자기의 잘못이 있을 적마다 엄마가 야단맞는 상황을 가슴 저려했다.  아버지에게 치도곤을 맞고 골방에서 서럽게 울 때에는 엄마가 살며시 찾아 들었다. 

 

항상 아버지의 눈치를 보는 엄마가 불쌍했다.  그러한 분노가 응결되어 막내는 엄격한 아버지의 반항아로 성장했던 것이다.  형들이 일류대학에 입학할 때에도 막내는 어두운 뒷골목을 돌아다녔다.  황노인은 막내를 일찍 군에 입대시켰다.  해병대에 입대하여 엄한 군대생활을 하다보면 한량 같은 기질이 좀 낳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백령도에서 근무하다 제대하는 막내에게 배가 잔뜩 불러 오른 한 명의 여자가 딸려왔다.  그 곳에서 만났다고 인사시키는 술집여종업원이었던 것이었다.  뽀얀 분을 쳐 바른 여자를 보며 황노인은 침묵했다.  아버지의 싸늘한 시선에 막내는 다른 동네에서 셋방을 얻어 그녀와 동거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딸을 낳았다. 

 

황노인은 혀를 찼다.  큰아들은 아들만 둘이었다.  둘째는 아예 아기를 가질 생각도 안하는데, 가장 골치를 썩이던 막내가 평생을 원했던 딸을 쓱 낳아버렸으니, 남자들만 득실거리는 집안에 일등 공헌을 한 셈이었던 것이다.  옹알거리며 두 손을 꽉 쥐고 우는 손녀딸을 가슴에 안은 황노인의 표정에 처음으로 막내에 대한 미소가 떠올랐다.  날이 따듯해지면 결혼식을 올려 주겠다고 약속했다. 

 

끼가 잔뜩 흐르는 듯한 막내며느리가 마뜩치는 않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막내며느리는 집을 나갔다.  막내의 눈치로 봐서는 외간 남자와 눈이 맞아 떠난 것이 분명했다.  막내는 딸을 혼자서 감당하기 힘들어 아버지의 집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그리고 아기 양육비라도 벌겠다고 하면서 아파트 보일러공사 현장으로 떠돌아 다녔다.  졸지에 황노인은 손녀딸의 귀저기를 빨며 우유를 타 먹여야 하는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자식까지 놓고 떠난 여자 때문에 막내의 생활은 엉망이었다. 
아버지의 눈치 때문에 집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황노인과 손녀딸은 매일 씨름하며 몇 년을 지냈다.  무정하게 떠난 아기 엄마는 영영 소식조차 없을 것 같았다.  황노인은 친구의 막내딸을 눈여겨 두고 있었다.  막내를 얼른 안정시킬 방법은 새로운 여자가 생겨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숭인동에서 평생 살던 조선기와집을 팔아서 막내의 결혼자금을 마련했다.  막내는 다행히도 친구의 막내딸이 싫지는 않은 눈치였다.  옛날에 근무했던 시청에서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강남개발은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그 때에 마련해 준 자갈밭 위에 지어진 터 넓은 시골집이 막내에게 커다란 재산이 되었던 것이다.

 


4.


황노인은 다섯 살 된 손녀딸을 새로 들어온 막내며느리에게 맡겼다.  손녀딸을 잘 키워 달라는 부탁과 함께 집을 팔은 돈을 몽땅 결혼자금으로 대주고 태어난 고향땅이 내려다보이는 수락산 중턱으로 이사 왔던 것이다.  황노인이 일부러 엉성한 무허가 건물이 잔뜩 들어선 수락산 중턱으로 이사 온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황노인이 서울시청에 근무하던 젊은 시절에 청계천에 다닥다닥 붙었던 판잣집을 철거했던 적이 있었다. 

청계천 뚝방동네에서 결사적으로 철거를 막던 집 없는 사람들과 철거반원이 대치했었다.  그때에 책임자로 있던 황노인은 상사의 채근에 단호한 철거명령을 내렸다.  철거반원이 우르르 밀고 들어가며 판잣집을 마구 부셨다.  맨 뒤에서 지휘를 하던 황노인은 판잣집 한 채가 청개천으로 쓰러지는 장면을 목격했다. 

 

물 속으로 박혀있는 버팀목을 철거반원이 발길질하자 버팀목이 힘없이 뚝 부러져 나갔다.  그러자 그 위에 서 있던 판잣집이 기웃뚱 하며 냄새나는 개울물로 쓰러졌다.  그 순간에 판잣집에 난 엉성한 창으로 남루한 옷을 입은 노인이 몸을 밖으로 쑥 내밀었다.  황노인은 경악했다.  몸을 반쯤 창에 걸친 채 노인도 함께 개울물 속으로 쳐 박힌 것이다.  나중에 그 노인이 사망했다는 보고를 받았고, 청계천 철거사업에서 황노인은 물러났다.

 

남루한 옷차림의 노인이 판잣집 창문 밖으로 몸을 반쯤 내밀었던 모습은 평생을 쫓아 다녔다.  정년퇴직한 후에도 황노인은 가끔 그 기억에 괴로워했다.  그래서 과감하게 자신의 집을 처분하여 막내의 결혼자금으로 대주고 자신은 무허가 건물이 산을 타고 올라가는 산꼭대기로 이사 온 것이다.

 


5.


수민이는 새 엄마를 따르지 않았다.  틈만 나면 할아버지를 찾으며 울었다.  그러나 강남의 좋은 학교에 다니며 공부해야 한다는 황노인의 고집이었다.  황노인에게는 수민이 친엄마에 대한 감정도 있었다.  어미에게 버려진 자식을 누구 못지않게 훌륭하게 키우려는 욕심이었다.  수민이는 토요일과 일요일은 황노인의 집에서 지냈다.  할아버지가 더욱 가깝고 응석부리기 편했던 것이다.

 

정든 할아버지에게 가까이 오려는 수민이의 고집과 강남에 떨어뜨려 공부를 열심히 하게 하려는 황노인의 고집이 대립했다.  막내며느리도 아들 하나에 딸 하나를 낳았다.  수민이의 얼굴에는 항상 그림자가 드리웠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수민이는 새엄마와 친아버지에 대한 반항을 행동으로 표출했다.  가끔 가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떤 때에는 수락산 중턱의 할아버지 집으로 왔다.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수민이의 얼굴을 보며 황노인은 고민했다.  어렵게 태어나서 자란 손녀딸이 누구보다도 잘 되기를 원했다.  겉도는 수민이의 모습은 막내아들이 겉돌던 모습과 흡사했다.  영악한 막내며느리는 수민이를 걱정하는 척 하면서도 할아버지가 전적으로 간수해 주기 바라는 눈치였다.  마누라 하나 확 휘어잡지 못하는 막내아들이 한심해 보였다.

 

이번에 수민이가 찾아 왔을 적에도 황노인은 엄격한 표정으로 야단쳤다.  평소에는 아무리 황노인이 엄격하게 대하여도 수민이는 피식 웃으며 무서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팔에 매달리며 갖은 아양을 떨었고, 기어이 황노인의 입가에 웃음이 터져 나오게 만들었던 것이다. 


“에그...... 너희들 말처럼 킬러가 따로 없구나,  네가 할아버지 킬러야.”
황노인은 손녀딸을 끌어안고 껄껄 웃으며 말했다.  손잡고 시장을 보러가는 일도 많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수민이는 돌아갔다.  그리고 증발해 버린 것이다.
역삼동에 있는 아들집으로 몇 번을 전화했지만 수민이는 도착하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태연하게 말하는 막내며느리가 얄미웠다.  다음날 또 확인하니 어젯밤에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대답이었다.  순간적으로 황노인은 앗차 했다.  막내며느리의 목소리 뒤에 숨겨진 표정을 알아챘다.  아무도 수민이를 걱정하지 않았다.  심지어 자기의 아들까지도......

 

황노인은 즉시에 아들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아들과 며느리를 모아놓고 분통을 터뜨렸다.  아무리 어미에게 버림받은 자식이라도 그렇지,  같은 핏줄을 그렇게 무심히 대할 수 있느냐며 따지고 들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황노인의 목소리에 아들 내외는 고개 숙이고 있었다.  그러나 황노인은 이 집안에서 수민이가 얼마나 귀찮은 존재인지를 알 것 같았다.  이럴 줄 알았으며 진즉 자신이 키울 것이었다고 호통을 치면서 문을 박차고 나왔다.

 

황노인은 저녁 먹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담배만 연신 피워대며 마당에서 눈치를 슬슬 보며 끙끙거리는 점박이를 내려보았다.  마음은 다급했다.  어리지만 다 큰 손녀딸이다.  전에 자기를 끌어안았을 적에 불쑥 나온 젖가슴이 뭉클하게 닿지 않았는가, 
역삼동에 전화를 걸었다.  막내며느리는 수민이를 계속 찾고 있는 중이라고만 대답했다.

 


6.


삼일이 지났다.  매일 달달 볶아대는 황노인의 성화에 아들과 며느리는 찔끔했다. 
“너희들만 잘 먹고 잘 산다구?  이 놈아 내가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  가출하도록 내버려 둔다는 말이냐?  어미의 얼굴도 모르고 자란 녀석이 불쌍하지도 않아?”


막내아들은 쩔쩔맸다.  불호령이 떨어지면 끝장을 보고야 마는 아버지의 성미를 잘 알았다.  황노인은 나흘째 되는 날에는 아예 아들집에 눌러 앉아서 수민이를 찾아 놓으라고 난리를 쳤다. 

 

일주일이 지나서야 며느리는 수민이가 있는 곳을 알아내었다.  학교친구들의 말에 의하면 구인광고를 보고 천안 밑에 있는 시골의 다방으로 내려갔다는 말이었다.  황노인은 그 말을 듣자마자 벌떡 일어섰다. 

 

“어머나, 아버님께서 직접 내려가시려고 그래요?”  며느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아들은 옷을 주섬주섬 입으며 내외가 갔다 오겠다고 말했다. 
“너희들이 내려가서 어떻게 하려고?  수민이가 너희 말을 들을 것 같아?  이 녀석아, 사람은 마음으로 말하지 않으면 듣지 않는 법이야.  너희들이 그 녀석을 진정으로 염려해 본 적이 있기나 해?”

 

“그러면 제가 차로 모셔다 드릴게요.”  아들은 황노인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황노인은 막내아들을 쳐다보았다.


“네가 아비를 원망할 적에 내 얼굴이나 똑똑히 바라본 줄 아냐?  내가 무슨 말을 하든지 네가 진정으로 내 말을 받아들인 적도 없을 것이다.  세상이란 다 같은 이치야.  평소에 마음을 주고받지도 않는 사람이 있으면 부담만 될 뿐이니,  나 혼자 가겠다.”

 


7.


황노인은 천안에서 차를 바꿔 탔다.  텅 빈 시외버스는 시골길을 달리고 있었다.  처음으로 꼼지락하며 품에 안겼던 손녀딸이었다.  투명한 눈과 웃음으로 자신을 위로했던 아이였다.  모든 자식들은 다 호랑이 같다고 자신을 무서워했지만 수민이는 안 그랬다.  오히려 짓궂은 표정으로 달려들며 어리광을 피우지 않았는가, 

 

어둠이 창 밖의 논과 밭에 깃들었다.  버스는 조그만 면단위의 마을에 들어섰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사방을 둘러보았다.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멀리 정다방이라는 간판이 눈에 띄었다.  황노인은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조그만 수퍼와 카센타를 지나는 순간에  골목을 돌아 나오는 그림자가 있었다. 

 

“수민아,”
황노인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부른 손녀딸이었다.  휙 돌아서는 수민이의 눈이 크게 떠지면서 손에 들려있던 배달찻잔이 쨍그렁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할아버지,”
입을 벌린 채 황노인을 부른 손녀딸이었다.

 

수민이는 무너져 내리듯 주저앉았다.  얼굴을 가린 채 엉엉 울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나는...... 나는 말이예요...... 너무 힘들어 죽겠어.......엉엉”

 

황노인은 달려들 듯 손녀딸을 끌어안고는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뺨에 흐른 눈물을 손으로 문질러 주었다.

“울지 말아...... 바보처럼 울긴, 자슥~”


황노인은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수민이는 얼굴을 맡긴 채 울음 반, 웃음 반으로 흐느끼며 말했다.
“할아버지도 울고 있잖아~”

 

황노인은 어흠 하며 얼른 뒤돌아섰다.  늙으면 눈물이 많아지는 것일까, 


손수건을 꺼내서 눈물을 닦으려 했지만 차마 손녀딸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고개를 들어 스치는 바람에 눈물을 말리려했다.

별안간 향긋한 내음을 풍기는 하얀 손수건이 황노인의 눈을 가렸다.


“할아버지...... 울보야,  내가 눈물 닦아줄게~”

 

“어흠...... 내가 언제 눈물을 흘렸다고...... 망나니 같은 녀석 같으니, 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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