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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서늘한 저녁

설산 |2003.09.28 22:34
조회 122 |추천 0

 

바람이 서늘한 저녁이면

바람처럼 날아가버리지 못하는 마음이

책 나부랭이와 라디오 음악과 티브이 소음 속에 갇혀

내일의 발자욱 소릴 듣고 있다

 

한 걸음 크게 옮기면

달 밝은 오솔길

온 몸을 땀으로 적시며 달리는 강변

달보다 고운 웃음을 물고 선 언덕

팔 안으로 쏟아져들어오는 별들의

유년같은 밤도 있을 것만 같은데

어디서 왔는가?

저녁 거미 한 마리

검은 눈 속에 반짝 등이 켜졌다 꺼진다

가까이서 손 들자 재빠르게 달려간다

이미 암흑이 되어버린 그 놈의 눈

 

고향의 마을 뒤에 큰 연못이 있었는데

이른 봄이면 그 못가의 버드나무에 물이 올라

호드기를 만들어서 불었다

바람은 차고 물결은 발등을 물어뜯으며

으르릉거려도

가까운 산이 물 위로 내려와

할머니처럼 나를 품어주었다

버드나무 호드기를 밤 늦게까지 불고 다니면

뱀을 부른다고 어른들은 말렸지만 듣지 않았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연못은 푸르렀다

 

세월의 마디마다

곁에서 누군가가 호드기 소리를 말렸지만

어릴 때처럼 듣지 않았다

물보라를 일으키던 바람도 없이

누구 한 사람 말리는 이도 없이

나의 눈은 이제, 산이 그리워

암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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