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서늘한 저녁이면
바람처럼 날아가버리지 못하는 마음이
책 나부랭이와 라디오 음악과 티브이 소음 속에 갇혀
내일의 발자욱 소릴 듣고 있다
한 걸음 크게 옮기면
달 밝은 오솔길
온 몸을 땀으로 적시며 달리는 강변
달보다 고운 웃음을 물고 선 언덕
팔 안으로 쏟아져들어오는 별들의
유년같은 밤도 있을 것만 같은데
어디서 왔는가?
저녁 거미 한 마리
검은 눈 속에 반짝 등이 켜졌다 꺼진다
가까이서 손 들자 재빠르게 달려간다
이미 암흑이 되어버린 그 놈의 눈
고향의 마을 뒤에 큰 연못이 있었는데
이른 봄이면 그 못가의 버드나무에 물이 올라
호드기를 만들어서 불었다
바람은 차고 물결은 발등을 물어뜯으며
으르릉거려도
가까운 산이 물 위로 내려와
할머니처럼 나를 품어주었다
버드나무 호드기를 밤 늦게까지 불고 다니면
뱀을 부른다고 어른들은 말렸지만 듣지 않았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연못은 푸르렀다
세월의 마디마다
곁에서 누군가가 호드기 소리를 말렸지만
어릴 때처럼 듣지 않았다
물보라를 일으키던 바람도 없이
누구 한 사람 말리는 이도 없이
나의 눈은 이제, 산이 그리워
암흑이다